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00화 (100/248)

<+--|-|--+>

“나오는 게 늦네요.”

점집의 바깥에서 레오나르도는 30분은 넘게 나오지 않는 아리아에게 걱정하는 눈치였다.

“예언이라는 건 그리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니까.”

그건 레오나르도도 알고 있었다.

예언이란 인과율의 파편이 쪼개져 인간에게 어느 형태로 들어온 정보.

신탁과는 유사했지만 예언이라는 것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절대 당사자를 위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신탁은 나아갈 방향에 조언해주는 신의 계시.

예언은 모든 방향에서 나올 수 있는 뜬소문.

그에 따른 결과는 적어도 신탁이 예언보다 나았다. 적어도 신탁은 예언과 달리 생각할 여지와 방향성을 주니까. 예언은 신탁과 계시에 비해 친절하지 않았다.

‘...역시 혹시 모르니 들어가기라도...’

“...저기, 레오.”

딘은 점집 밖에서 골목 바깥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로 송곳니를 잘근거리는 걸로 봐선,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갑자기... 물어봐서 미안한데, 용병 길드에 가입했을 때 혹시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나온 말이었다.

이 상황과는 관련이 없는 말.

하지만 용병 생활에 관해서는 딘이 궁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레오는 대답했다.

“글쎄... 따지고 보면 가입하는 것 자체는 힘들었어.”

10살짜리 애가 비정규 전투대도 아니고, 정식 용병으로서 등록하는 것은 까다롭다 못해 비상식적인 일에 가까웠다.

“길드장님도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지.”

자신의 어머니인 렌의 이름을 대자 오히려 더 극심하게 길드장은 레오의 가입을 반대했다. 아마 자신이 렌과 같은 전철을 밟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 지금의 레오는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설득했냐?”

“그냥 딘이라는 늑대인간이랑 싸워서 제대로 이겼다고 말했더니 기회는 주더라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길드장도 딘이 늑대인간이라는 것과 사냥꾼으로서 유능한 자라는 것 또한 소문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제대로야?! 엄청 비겁하게 싸운 주제에!!”

“뭐래? 기억 안 나?”

딘이 자신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을 때, 그 늑대인간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나가서 죽고 싶다면, 나부터 때려눕히고 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일부러 체념한 척, 가만히 있는 척을 하면서 몸을 수련하고, 각종 부비트랩을 미리 깔아두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 것 뿐이라고. 싫었으면 조건을 잘 정했어야지.”

약올리는 듯한 말투, 친형제 간에서나 사이가 좋다 못해 징글징글한 가족에서나 보이는 어투였다.

“그래도 양심이 있지! 그걸 이겼다고 하냐?!”

나무에 도끼질을 하고 고정해서 부러지기 쉽게 한 것까지는 납득이 됐다. 사냥꾼으로서 함정은 기본적인 전술이었으니까.

“치사하게 가짜 피로 다친 척을 해?! 지금 생각해도 괘씸하네!”

“진짜 피야. 제프 아저씨한테 얻은 동물 피지만.”

딘에게 한 대 맞아서 날아갔을 때, 레오는 일부러 몸을 구르며 나무에 부딪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딘이 걱정돼 다가왔을 때, 입에서 머금은 가짜 피로 눈과 코를 완전히 동물의 피로 적셔 제 역할을 못하게 만들었다.

나머지는 준비한 나무를 전부 부러뜨려 딘을 찍어눌러 제압했고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노랬구만.]

<그래서 처음엔 제가 천재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리아라는 큰 벽을 만나고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부러진 뼈가 시큰거린다!!”

“그럼 그런 동생이 준 돈은 필요없겠네? 다음 달부터...”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돈생이 밖에서 고생할까 걱정해 마음이 더 시큰거렸단다...!”

지금 ‘돈생’이라는 한 건가? 동생의 ‘동’에서 나오는 발음이 현금 ‘돈’에 있는 발음과 몹시 유사했는데.

이게 착각인가.

[치료비 준다고 생각해. 까놓고 마을 밖으로 내쫒아도 할 말 없네.]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심한 짓을 하고도 이겼다고 우기고 반쯤 가출하듯 마을 밖으로 빠져나갔으니까.

회귀 전에는 돌아갈 엄두도 안 나서 가문에서 일할 때는 연락조차 안 했지.

“그래서, 적응은 잘 했냐?”

“죽을 맛으로 잘했지.”

까놓고 말해 용병 생활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길드장은 어느 베테랑 용병과 함께 다니는 것으로 우선적으로 경험을 쌓으라 말했고, 레오도 거기에 동의해 어떤 중년 용병과 팀을 맺었다.

[근데 따먹혔다고?]

<먹힌 게 아니라, 할 뻔한 거예요. 다시 기억하니까 기분 진짜 더럽네.>

오두막에서 밤을 보내던 날, 중년 용병은 몰래 술을 먹고 주정으로 자신을 밧줄로 묶어놓았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죠.>

나름은 믿었던 상대였으니까.

등을 내줬던 동료라고 생각했으니까.

중년 용병은 바지를 벗고 물건을 세우려고 하는 사이, 레오는 마룻바닥에 튀어나온 두꺼운 가시로 팔을 묶어놓은 밧줄을 갈아내었다.

그리고 그 밧줄을 끊은 가시를 뽑아, 그에게 어울려주는 척을 하다가, 범하기 직전에 그 나무 가시를 사타구니에 찔러넣고, 위협용인 장검을 뺏어 그의 숨통을 끊었다.

[...그게 처음 사람을 죽인 때냐?]

<적어도 지인 중에서는요.>

애초에 용병으로 살면서 사람을 죽이는 건 각오했다.

다만... 일주일은 넘게 무언가를 먹으면 계속 토가 나올 것 같았기에, 억지로 죽에 최대한 물을 넣어 묽게 만들어야 간신히 소화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배신이나 뒷공작 같은 걸 많이 당해서 몇 번은 죽을 뻔 했어요.>

또래라고 멋대로 친구라고 생각한 자신도 멍청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긴 거미 괴물이 나오는 둥지에 살기 위해선 친구도 버리는 게 인간이기는 하지만,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결국은 죽어버렸지만요.>

그 뒤로도 몇 번 동료를 만들 기회는 있었지만, 그때엔 사춘기와 트라우마로 인간불신이 심히 와서 곁에 누군가를 둘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럼 그때 당시에 친한 용병은 없어? 렌 씨를 아는 용병이라던가...”

“...나나 엄마나 용병업계에서는 제법 유명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에 소속되지는 않았어.”

그래서 어머니인 렌의 추적은 더 힘들었다. 다만 특징이 있었다면 은 등급의 용병패를 받았지만, 하는 일은 대부분 위험부담은 적지만 확실하게 임금을 받을 의뢰만 수주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추측이지만, 어머니는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기간이 될 때면 항상 임무를 쉬거나 의뢰를 늘 실패하는 경향이 있었다.

직원이나 길드장은 그건 비약적인 생각이라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레오는 길드장에게 부탁을 구해 자료실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은 문뜩거리며 들었다.

“아마... 너무 등급이 올라가는 것도 곤란할 테니 그런 걸 테지만.”

확실히 금패 용병이 되면 수입 자체는 늘 테지만, 그만큼 쉬운 의뢰를 받을 기회는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 최대한 빨리, 그리고 안전히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렌은 그런 판단과 선택을 한 것일 거다.

은패로도 수입 자체도 가난한 것까지도 아니었으니까.

“...그럼... 렌 씨는 확실히 용병에 소속된 거지?”

“왜 그래? 새삼스럽게. 자료실에는 그림이랑 인화된 사진까지도 붙여져 있었다고.”

자신도 헷갈릴까봐 몇 번이고 확인했다. 습관이나 행동에 한해서도 꼼꼼히 확인했지만, 이상은 없었다.

하물며 화상을 입었는데 그대로 둬서 생긴 독특한 흉터까지도 손목에 확실히 있었다고 확인되었다.

“...딘, 갑자기 그런 얘기는 왜 하지?”

새삼스럽다 못해 기묘하기까지 한 딘의 질문에 아누스는 따지듯 물었다.

“...그냥요. 용병 시절 때 이야기는 별로 안 하는 것 같아서.”

딘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자신의 코를 만지작거렸다.

자신의 후각이 부디 녹슬었으면 하는 바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근데 아가씨 너무 늦네요. 한번...”

한번 확인이라도 해볼까, 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천막을 걷으며 한 소녀가 나왔다.

지금 소녀라고 하기엔, 너무나 진지하고 고심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예언 내용이 안 좋았나요? 저도 예언가 분께 가볼까요?”

아리아는 레오의 눈을 마주보았다. 하지만 왜인지 초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어둠 속에 있는 검은 새를 바라보는 듯한 흔들리는 시선이었다.

“...레오.”

아리아는 떨리는 듯한 눈과 입으로 물었다.

“올해로... 우리 나이는 19살이지?”

“...”

많은 생각이 든다.

어째서 ‘지금’ 나이를 묻는 것인가?

그것보다 우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뭐지?

설마 저 예언가가 회귀를 말한 것인가?

아니면 과거를? 혹여나 미래를?

그렇다면 어디까지 아는 거지?

정말 알고 있다면 바로 물을 수 있는데, 왜 그러지 않는 거지?

숨겨야 하나? 말해야 하나?

어떻게  숨겨야 하지?

말한다면 어디까지 말해야 하지?

혹시 떠보는 건가?

그러면 어떻게...

“...따지고 보면 레오는 생일이 애매하니, 정확히 19살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그때 딘이 별 생각이 툭 말을 던졌다.

“...생일이 애매해요?”

“생일이 있긴 하다만, 그건 레오가 마을에 온 날짜에 맞춰서 한지라 확실치 않군.”

아누스는 혀를 차며 끌끌대었다. 렌은 부모인 주제에 자기 아들 생일을 죽어도 안 말했다고 말이다.

“...아....”

이내 딘의 표정은 늦게나마 어두워졌다. 그저 암울한 이야기여서가 아닌, 무언가 계속해서 석연치 않은 추리가 신빙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요. 엄마 오실 때마다 선물은 꼭 챙겨왔는데.”

큰 뱀처럼 생긴 인형이나, 바람을 불면 좋은 소리가 나는 뿔피리, 때때로 직접 나무를 깎아 목마나 그네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생일을 말씀 못 한 건... 사정이 있었겠죠.”

레오도 어느 정도 추측은 되었다.

생일이 없는 이유는 존재도 모르는 자신의 아버지와 연관되기 때문일 거다.

렌은 항상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면 화제를 전환하기 바빴으니까.

충분히 어른이 됐다면 알려주겠다고 했으니... 뒷내용은 어른이 된 지금 대강 예상이 되었다.

‘...낳아주고 마을에서 키워준 것만 해도 감사한 거지.’

의도치 않게 생긴 아이였다면 더욱이 말이다.

“...그렇구나.”

“...그러니 설명은 어려울 것 같네요.”

아리아는 우울한 표정에 간신히 힘을 주어 입술을 올렸다.

“...난 괜찮아.”

“...네, 저도...”

“레오.”

아리아는 레오의 거짓을 잘라낸다.

용사로서 모든 걸 베었던 것처럼.

“네가 괜찮다면,”

레오는 천막으로 향해 점집의 문을 걷어올렸다.

“나도 괜찮아.”

하지만 그 말에 잠시 몸이 멈춰졌다.

“...미...”

현자는 사과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분명 시선은 아리아를 향해 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의 따가움은 배로 자신에게 쏘아지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

사과는 사라진 자리에 대신에는 감사가 들어갔다.

“언제나 고마웠어요.”

어느 순간에도.

어떤 시간에도.

감사와 동시에 레오는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고마우면..."

하지만.

"더 이상 고마워하지 마.”

아리아의 모순이 그를 붙잡는다.

레오의 모순을 아리아가 붙잡았다.

“...네가 열심히 한 거잖아...”

어떤 순간에도.

“...네가 포기하지 않은 거잖아...”

어느 순간에도.

“...네가... 제일...”

고통스러웠을 이를 위해.

"..."

<......>

'.........'

아리아의 얼굴엔 눈물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울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내 뺨에서 아리아의 눈물이 대신 흐르는 것 같다는 착각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로보로스의 뱀은 자신의 꼬리를 문 채로 원을 만든다.

이는 무한한 순환을 의미하여 완전함을 상징한다.

또한

머리와 꼬리에는 사이에는 몸이 있는데, 이는 계속 성장해 변화하므로, 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연금술에선 이를 완전한 금으로 변화시키는 현자의 돌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럼 두 개의 머리를 지닌 우로보로스는 무얼 상징하는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