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9 예언-4
점집은 생각보다 더욱 누추하고 허름했다.
큰 건물 사이에 골목길에 어설프게 천막으로 공간을 만들었을 뿐, 제대로 된 건물이라는 감각은 들지 않았다.
“왜 이렇게 허름하대...? 장사 잘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오는 사람은 많다. 장사 수완이 거지 같아서 그런 거지.”
그래서 거지 같이 사는 거라고 덧붙이는 건 덤이었다.
“예언쟁이, 오랜만이다.”
아누스는 특유의 까칠한 말투로 천막의 입구를 걷어 들어갔다.
“그래, 오랜만이네.”
예언가는 생각보다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어린애를 상대로 인신매매가 있던 도시의 빈민가에서의 차림과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회귀 전보다 늙었음에도 새치가 없었으며, 그리고 눈동자에도 훨씬 생기가 있었다.
“일행이 딱 맞네.”
의문스러운 말이었다.
직접 부른 사람은 아누스.
그나마 예상이 가능한 인물은 딘 정도.
레오와 아리아는 분명 예고도 없이 추가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감탄을 내었다.
처음부터 봤던 것처럼.
“언제는 많았나?”
아누스는 그런 반응이 놀랍지도 않았는지 태연히 독설을 쏘아붙였다.
“적었던 적도 없었지. 그래서 너랑 친구를 했나 봐.”
“재수없는 년.”
그렇게 쏘아붙이며 아누스는 데킬라 한 병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저래봬도 수도에서 자신이 아는 최고의 주점에서 따로 부탁해놓은 최고급 데킬라주였다.
“우선 손님 두 명이 왔으니 술은 나중에 마실게.”
“언제 그렇게 성실했냐?”
“글쎄... 내가 본 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 뒤부터.”
어떤 때인지 구분이 갔지만 시간과 기간에 얽혀있지 않는 대답이었다. 미래를 본다는 시점에서 시제는 불필요한 형용사였는지도 모른다.
“얼마 안 됐다는 뜻이구먼.”
“그런 셈이지.”
“그럼 나가 있나?”
데킬라 병을 도로 가져간 채, 아누스는 천막을 들춰 밖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 주면 고맙지.”
“그럼 나가도록 하지. 너희 둘은 천천히 물어보라고.”
딘도 그런 아누스를 따라가며 천막 밖에서 대기하려고 했다.
“잠깐, ‘백발의 검은 기사님’도 나가주시지 않겠습니까?”
“...”
그 말에 레오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단순히 자신에게 나가라는 말을 해서가 아니었다.
‘...백발의 검은 기사...’
[...회귀 전 니 별명 아니냐?]
모르겠다.
지금 걸어둔 자신의 변장 마법을 집어서 하는 말일까.
생기지도 않아야 할 사라진 과거의 악명을 집어서 말한 것일까.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도 레오도 이걸 들으면 좋을...”
그 말에 늙은 노파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리아의 귀에 작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고작 4초 정도만 입을 움직였을 뿐인데, 아리아의 표정은 각양각색으로 역동적으로 변했다.
“우선 나가있어줘...!”
“예?”
아리아는 엄청나게 붉어진 표정으로 레오를 밀어내었다.
용사의 가문만이 들을 수 있는 신전의 신탁도 무리하게 듣게 해주었던 평소의 태도를 생각하면 정말 기묘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서! 얼른!! 예언에 부정탈라!!”
과하게 흥분하며 아리아는 당황스러워하는 레오의 등을 떠밀었다.
[...쟤 분명 신탁 안 물어본다.]
<...설마요.>
설마 그러겠는가.
신탁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자신이 듣는 게 걱정돼서 저러는 거나.
아니면 저 예언가가 하찮은 간계를 부려 잠시 혼란이 생겨 혼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일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곳에 온 목적을 잊을 리가 없을 거다.
그것도 천재라고 소문난 아리아스필이 그런 실수를 하겠는가?
“그래서...! 레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라고요?!”
실수는커녕 일부러 대화의 궤도를 틀어버린 아리아였다.
아리아는 분명 천재가 맞았지만, 레오와 연관된 이야기만 한다면 아인 이하로 지능과 눈치가 하락했다.
“우선 진정하렴.”
예언자는 천막에 손을 대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은 암막이 아리아와 예언자의 주변으로 한겹 더 둘러졌다.
“...이건...”
레오나르도가 청탑주의 딸을 두드려 팼을 때, 사용했던 방음 및 암막의 결계였다.
“밖에서는 적당히 얘기하는 것처럼 보일 거란다.”
밖에서는 안의 풍경이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대화 내용은 바람이나 가림막으로 있는 천에 묻혀 뭉그러지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일종의 서비스란다. 정말 오랜만에 은인을 만났는데 이정도 예우는 필요할 것 같아서.”
“아... 아누스 님이랑 많이 친하신가봐요.”
아리아는 단순히 그 은인이 아누스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리아의 말이 재밌었는지 예언가는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셈이지. 좋은 친구야. 아누스는.”
“...그래서... 혹시 말씀해주시려던 이야기는...?”
갑자기 흥분한 것과는 별개로 예언가가 말할 것이 자신에게는 너무 쑥스러운 내용이었기에.
아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넘기면서 필사적으로 냉정함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그래도 사실 지능이 하락해있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말이다.
“그건 내가 멋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네...? 그럼...”
예언가는 점술집다운 수정구슬을 꺼내며 미소를 지었다. 수정구슬의 둥근 면으로 미소가 굴절되니 미소의 곡선이 깊고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네가 알고 싶은 걸 물어보렴. 예언가의 본질은 알리는 것이 아닌, 대답하는 것에 있으니까.”
예언해서 알아낸 사실을 떠들어대기만 하는 점술가는 틀림없는 삼류다. 그런 이야기는 어떤 이도 쉽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테니까.
예언한 사실 중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정보만 알려주는 점술가는 분명 이류일 것이다. 처음에는 그 단맛에 만족할지 몰라도 결국 당사자는 미래와 운명에 종속되는 노예가 되어버리니까.
그렇기에 일류 점술가는 지극히 당연한 방식으로 예언을 이끌어나간다.
“난 묻는 질문에만 대답할 거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어.”
묻는 사실에만 대답한다. 거짓이 없되 미래의 진실을 파편적으로 대답한다.
그게 진짜 예언가의 방식이었다.
“...그렇군요.”
아리아는 약간 긴장된 기색으로 예언가를 마주보았다. 준비된 의자에 앉아도, 예언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왠지 모를 긴장이 몸을 감쌌다.
불쾌나 악의와는 다른 기준의 감정이었다.
어쩌면 두려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비밀이 있나요?”
“있단다.”
담백한 대답, 예언가는 사뭇 실망한 눈치였다. 아마 그건 이런 대화에서 하수들이 하는 실수가 예언가의 눈에는 보였기 때문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지. 너도 말 못할 비밀이 여러모로 있잖니.”
아리아의 머릿속이 다시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비밀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미 틀통났다는 사실을 되새기니 얼굴을 안 붉히는 못 배겼다.
“그 나이대 쯤 되면 말 못 할 비밀들이 있는 법이란다. 문제는 비밀이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비밀을 어째서 말하지 않는가가 더 유의미한 주제가 되겠지.”
예언가는 평소와 달리 문제의 초점을 잡는데 유달리 실마리를 주었다. 아마 아리아가 자신의 은인과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면 예언가는 별 힌트 없이 건조히 정보만 알려주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절 좋아하나요?”
순수하고 어린 소녀 같은 질문이었지만, 이번에는 제법 대답해줄만 질문이었다. 물론 그건 예언가에게도 호의가 있었기에 대답해줄 것이 있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는 내 주관이 들어갈 거란다. 그래도 괜찮다면 대답해줄 수 있단다.”
“...괜찮아요. 우선 듣고 싶어요.”
아리아는 약하지만 각오를 굳힌 눈치였다. 아마 레오가 동성애자면 남자다워지거나 아예 남자가 될 방법을 강구하고, 무성애자라면 어떻게든 성욕을 발산시킬 방안을 마련할 각오를 말이다.
“우선 사랑이라는 감정에 있어서 레오나르도라는 존재는 널 누구보다 헌신하고 있을 거란다.”
“...그...그런가요...?! 그런 것치고는... 꽤나 무덤덤하던데...!”
애써 부정하는
눈치였지만, 아리아는 입꼬리가 올라가 귀에 걸리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주관적인 생각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가장 좋아하는 상대가
자신에게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너에 대해서 무덤덤하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그건...”
되짚어보면 이상하기는 했다.
레오가 했던 행동들은 그저 충성이나 우정과 같은 감정에서 나왔다고 치부하기엔 너무 비정상적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자신을 욕보였다는 이유로 선임이나 선배 기사를 두들겨 패는 종자가 있을까.
그리고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임에도 동등하게 같이 있고 싶다는 이유로 직책을 자신 쪽에서 거절하는 친구가 있을까.
어떻게든 자신과 가문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닥치는대로 단련하는 전사가 있을까.
아무리 모욕적인 처사를 당해도 분노하지 않고 자신의 곁을 지키고, 아무리 달콤한 제안과 유혹이 있어도 배신하지 않는 기사가 있을까.
본인이 죽을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타인을 위하고자 하는.
인간이 있는 것인가.
“...하지만...”
사랑이 맺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즈음 레오는 스스로 이야기를 끊어내었다. 고의성이 없더라도 이상할 정도로.
“...이해가 되는구나.”
“...이게요?”
사랑하는 감정이 있다. 하지만 사랑이 맺어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런 모순이 성립될 수 있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모순이란 결국 관점의 차이인 법이니까.”
모든 걸 뚫는 창과 모든 걸 막는 방패가 부딪친다면 어떻게 될까.
문제에만 집중하면 그걸 풀 수 없을 것이다.
모순이라는 그런 것이었다.
그건 아리아가 겪고 있는 모순에도 통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레오는 저한테 사랑받고... 싶지 않은 건가요?”
그저 상식으로 매인 시선이라면 말도 안되는 질문이었다.
사랑하는 상대한테 사랑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테니까.
“...이제야 문제에 다가섰구나.”
빠른 성장, 이라이가 천재라 불리는 이유를 예언가는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그 말은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
정말 모순이었다.
사랑하는 상대한테 헌신을 하면서 사랑을 받고 싶지 않다니.
필히 그건 봉사나 헌신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혼돈의 감정일 것이다.
“정확히는 혐오하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이 역겨울 테지.”
“...레오는 자신을 싫어하는 걸까요...?”
예언가는 다행이라는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제멋대로인 집착은 아닌 듯 보였다.
적어도 자신의 상대가 어떤 심리인지는 걱정하고 있는 눈치였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에 증오하는 수준일테지.”
용서라는 말에, 아리아는 떠올린다.
아니, 떠올려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죽었어요. 부모님은.’
레오가 마을 밖으로 여정을 시작한 이유를.
‘첫사랑한테는 대차게 까였어요.’
‘연락도 안 받았는데 알고 보니 죽었더라고요.’
레오가 강박적으로 힘에 집착하는 이유마저도.
“...그건... 레오가 예전에 있던 일 때문인가요?”
“그런 셈이지.”
그렇다면...
“...그건 레오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 때문인가요?”
“...”
잠시 입을 다물던 예언가는 수정 구슬을 내밀었다.
“문제를 푸는 걸 조금은 도와줘야겠구나. 상황이 가상해서라도.”
“...수정구슬로 점을 봐주시게요?”
“시간을 봐주는 거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거란다. 그 사람의 기억이 담긴 시간을 보는 거지. 중요한 것은 촉매인데, 그 인물의 신체 일부분이 필요는 하지만...”
자신의 실력과 아리아의 신체 촉매만 있더라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언가는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말할 기회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거면 될까요!?”
검은 머리카락이 다발로 든 주머니, 그리고 다른 주머니에는 흰 반달 모양의 손톱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이건...”
예언가는 이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신체였던 것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식은땀이 떨어지는 건, 그에 대한 양 때문이었다. 아마 하루나 일주일에 모을 만한 양은 아니었다.
“...혹시 피도...”
“아니...! 이정도면 충분하구나!”
심히 당황한 표정으로 예언가는 손톱과 머리카락을 하나 줌씩 가져와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루를 수정의 밑그릇에 담아 불을 붙였다. 단백질이 타는 괴이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내 그 연기는 위에 있는 수정구슬을 향해 차오르며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이게 뭘로 보이나?”
“...처음으로 레오랑 만났던 장소에요.”
레오나르도와 시비가 걸렸던 장소.
그 장소에는 아리아와 레오가 서있었다.
아리아는 사람의 목을 잘라서 나무에 건 것과 경비원을 두들겨 패 허수아비로 만든 것에 지적했고.
레오는 기가 찬다는 듯 그런 그녀를 비꼬며 결국은 결투 신청으로 장갑을 던졌다.
‘...몰랐지만... 알고 보니 진짜 나쁜 사람들이었지. 둘 다.’
전 기사였던 제하드가 레오를 찾기 위해 알아본 결과, 경비원은 정말 비리를 저질렀고, 그 베인 목의 주인은 사람을 100명은 넘게 죽인 도적단의 두목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때 레오는 조금 이상하고 거칠어 보였는데...’
생각해보면 처음 레오의 자세를 봤을 때는 정말 기본도 없고 약해보였다.
하지만 일순 이상한 말을 하고는 눈이 바뀌더니 자신을 압도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립네...’
또래 중에서도 자신을 이긴 유일한 상대.
그게 바로...
챙!
퍽!
레오였을 텐데...
“...내가...”
어째서 자신이 승리해있는 것인가.
“이긴 거지...?”
그것도 압도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