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97화 (97/248)

EP.97 예언-2

째깍거리는 시계소리.

부드러운 물소리를 따라지며 찻잔에 차가 담긴다.

뜨거운 김과 감미로운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아무도 차에 입을 갖다대지 않았다.

마치 레오와 에일린이 마탑에서 처음 만나, 대련을 벌이고, 그 뒤에 순간이동으로 찻집을 왔을 때와 비슷한 기류가 흘렀다.

“불청객이라고 차를 음미하는 것에도 눈치를 주는 겁니까? 이거 참 너무하군요.”

그 원인이기도 한, 템페리우스 가의 영애는 부드럽게 찻잔을 들었다. 그녀의 옆에 있는 늑대인간은 눈치를 보기 바빴고, 아누스는 옆에서 마찬가지로 차를 마셨다.

“...템페리우스 가문의 영애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연락도 없이.”

가주 글라디오는 나름 견제의 의미로 질문을 던졌다.

“그 건에 대해서는 사죄드리죠. 글라디오 가주님.”

찻잔을 내려놓으며 에일린은 작위적이며 위선적인 미소를 지었다.

“마법의 대선배님을 본 나머지, 저도 모르게 말을 걸어버렸더군요. 정말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제 후배의 가족분을 도울 수 있는 영광을 얻었지만 말이죠.”

그 말에 늑대 인간이 지나치게 몸을 부들거렸다. 자신은 단순히 미인에게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것에 좋아라 했을 뿐인데, 이런 가시방석에 앉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특히나 한 백발의 용사가 자신을 힐끔거리며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게 너무나 두려워서 차를 마실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마법의 대선배라고요?”

갓 깨어났음에도 집중력을 놓지 않고 레오는 이야기 한 단어 한 단어에 주의를 놓지 않았다. 설사 현자가 옆에서 칼렌이라는 성의 개념을 초월한 양성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말이다.

“...전부 옛날 이야기지. 빈말은 넣어두지 그러나?”

아누스는 에일린의 작위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름의 쓴소리를 날렸다.

“빈말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아누스 정령술사님께서 내주신 정령술과 윤리적 권리에 관한 연구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은 잘하는군. 결국 마탑은 정령을 마법이나 마나를 대신 쓰고 모으는 보조 기기 정도로밖에 모르지 않나?”

아누스의 따가운 말에 에일린은 쿡쿡대며 웃음을 내었다. 평소 그녀답지는 않은 자연스러운 웃음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군요. 적어도 지금은 마탑은 바뀌었습니다. 아누스를 포함한 여러 마법사님들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얇게 뜬 아누스의 눈동자에는 무표정한 레오의 얼굴이 비쳐 있었다.

“그리고 그걸 공헌한 마법사 중에는 아누스 님의 손자이자 제 유능한 후배도 있었죠.”

그 말에 시선이 다들 레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동시에 리오스나 아누스와 같이 마법에 조예가 있는 인물들은 아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상 아인이 영구 박제 형태로, 실험과 해부가 반복되는 건 자명했습니다. 그러는 편이 마탑에 이득이였고, 무엇보다 윤리적인 문제가 적었다는 것도 이점이었죠.”

라인하르트 일가들은 살기가 밴 눈치로 에일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한 편으로는 그들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론의 승률은 낮았고, 선뜻 변호하고자 하는 이는 없었죠. 적어도 완벽히 생물로서의 권리가 보장되는 변호는 말이죠.”

이해가 안 될 리가 없었다.

그건 레오나르도도, 리오스도 이후에 아인을 소개하면서 몇 번이고 강조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레오를 대단하고도 생각했고, 가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에 안타까운 씁쓸함을 느꼈다.

“거기서 레오 후배가 역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누스 정령술사 님이 마탑에 남겨놓은 논문 덕분이었습니다.”

리오스도 그걸 알고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변론에 준비할 논문에서 ‘아누스’라는 석자의 이름을 봤을 때 지었던 회심의 미소는 지금도 잊을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그런 희대의 역전극을 보였던 후배가, 알고 보니 자신의 조모이신 아누스 님꼐서 남긴 지혜를 올바르게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으니.... 제법 감동적이군요.”

에일린이 말해서 호응은 적었지만, 사실 내용만 보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분명 레오나르도가 훌륭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아누스 님의 교육이 의미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리아는 이때 당시에 생각했다. ‘고작 아부에 넘어갈 아누스’가 아니라고. 그리고 그건 대략 10초 안에 깨졌다.

“...착각하지 마라. 자기 멋대로 잘 큰 거일 뿐이야.”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는 아누스, 눈을 피하며 슬며시 올라가는 입술을 가리는 것이 정말 진국이었고 말이다.

그 행동에 아리아는 아누스가 자신의 편이 되어주리라 확신이 망치로 두들겨 패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 걸 느꼈다.

자신이 죽기살기로 공격을 날려 얻은 대리 장모인 아누스의 허락은, 대략 10분 만에 에일린에게도 주어지는 것 같았다.

찰캉

레오는 품격있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동시에 고의적으로 내리친 소리를 크게 만들어 붕 떠버린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진정시켰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십니까? 에일린 선배님.”

차갑고 사무적인 말투로 레오는 말했다. 선을 긋는다는 느낌이 여실히 드는 어조였다.

“...이거 고맙군.”

하지만 그녀에게는 여유있는 수비 범위였다. 갑작스러운 감사에 다시 전원의 관심은 아일린에게로 이어졌다.

“플라투스 블랑에게는 선배라는 호칭도 생략했다고 들었는데, 다행히는 나는 여전히 선배라 불러주는군.”

플라투스 블랑에 대한 추문은 이미 마탑에 전체에 뿌려진 지 오래였다. 그녀의 추태와 작태는 퍼질대로 퍼졌고, 그로 인해 청탑의 명예는 정말로 바닥에 떨어졌다.

오히려 청탑주는 자신의 딸을 두들겨 패준 레오에게 감사를 느낄 정도였다. 덕분에 갱생 및 동정을 얻을 여론도 그나마 생겼으니 말이다.

“...제의를 거절한 것은 죄송하지만, 에일린 선배님께서 주신 은혜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에일린 템페리우스는 레오나르도가 마탑에서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주기적으로 마탑에 찾아가 레오에게 템페리우스, 하다못해 마탑에라도 이런 형태로나마 소속돼 있으라 권유했다.

실제로 자신이 이렇게 어느 마탑에 소속되지 않고도 여러 마탑의 수업과 자료실을 이용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또한 마탑의 감시자인 에일린의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꽤 미련없이 떠났군 그래. 모두가 아쉬워하는 송별회도 간소하게 즐기고 갔으니 말이야.”

여러 후배들과 마탑의 선배, 그리고 교수, 심지어 일부 마탑주들은 레오에게 아예 마탑에 뿌리를 잡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꺼내었다.

하지만 레오는 계속해서 정중한 거절의 의사를 표했고, 마지막 송별회에서마저 그 의사를 확실히 표했다.

“...난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거 사람 차별하는 건가요~?”

아누스, 그리고 딘을 제외한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자기 행실부터 생각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일일이 사람마다 자필로 최소 200자의 편지, 거기에 그 사람과 관련된 마법서를 동봉해 선물로 보냈으니 더는 붙잡기도 힘들었지.”

그건 상대

마법사로서의 최고의 경애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내용은 물론, 편지 자체에도  라인하르트에 돌아간다는 의사 또한 확고히 적어, 더는

붙잡을 수 없게 만들 정도였으니 붙잡을 사람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상히군. 템페리우스 가는 마탑을 견제하는 입장일 텐데, 어째서 마탑에 남는 것을 권유하는 거지?”

크리스의 의견은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타당했다. 마탑의 힘이 커지는 건, 템페리우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긴, 이런 인재가 어떤 수단을 써도 빠져나가지 않고 지조 있게 버텨주는 라인하르트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겠군.”

적어도 마탑이라도 좋으니 마법에 도움과 발전이 될 존재를 어떤 형태로든 붙잡고 싶은 마음을 말이다.

“...무슨 말이지? 불청객에게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말인데.”

크리스와

에일린과는 묘한 기세가 몰아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크리스와 에일린과는 유사한 판단이나 감정이 보였다. 다만 크리스는 지나치게

순수했고, 에일린은 지나치게 염세주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을 뿐, 일종의 동족혐오와 같은 감성도 존재하거라 레오는 추측했다.

“정말로 이해를 못하는 건가? 레오나르도의 존재 가치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입을 다물었다.

마탑에서 돌아온 후부터, 아니, 사실 레오가 라인하르트에서 온 뒤로, 이미 라인하르트 일가의 전원은 의식적으로는 어렴풋이, 무의식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레오는 라인하르트에 무리하게 남아있지 않아도, 처음부터 라인하르트에 오지 않았어도 성공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걸.

“처음에는 라인하르트에게 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개인적인 감정이 있거나.”

개인적인 감정이라는 말에 한 백발벽안의 소녀가 든 찻잔을 떨며, 홍조가 듬뿍 묻은 귀로 그걸 기대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조력과 원조의 방향은 태반이 반대더군요.”

에일린의 말은 무례했지만, 부정할 말을 지닌 사람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 방향과 형태는 이상했으니까.

“하다못해 라인하르트의 마나연공법을 배운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독자적인 마나의 수련법을 개발해 라인하르트에 넘겼다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다들 떠올린다.

레오나르도가 처음으로 라인하르트 가에 왔을 때, 선보였던 마나체련술의 연공법을.

생각해보면 레오나르도는 어떻게든 이득을 끌어모을 수 있음에도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비전을 넘겼다.

마치 받은 걸 돌려준다는 듯이.

“놀랍게도 이후에 라인하르트 가엔 새로운 연공법이 생겼고,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스필의 전속 기사가 되었죠.”

이미 알고 있는 말투, 그리고 그녀는 이미 심증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거기에 그게 사실이라면 레오나르도가 받은 것은 해준 것에 비해 너무 사소했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게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면 어떤 감정이...”

말의 도가 지나치자 레오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런, 주변에 모기나 파리라도 있었나?”

“그럴 리가요. 단지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께서 가주님을 포함한 가문의 식솔들을 무례하게 취조하는 것 같아 주의를 주는 것일 뿐입니다.”

이제는 경계에서 적의가 배였다.

“그런가? 역시 충심이 깊군.”

“라인하르트가 있었기에 저도 이렇게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건 레오에게서 나오는 진심이었다.

한번도 그 사실을 잊은 적은 없으니까.

문제는...

‘...정말 그럴까...’

이미 가문의 식솔들에게는 의심이 각인되었다는 점에서 에일린은 계책은 반이나 먹힌 것이었다.

자신들에게는 레오를 붙잡을 명분도, 자격도 없다는 것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하면 자신에게도 끌어들이기 쉬울 테니까.

“그럼 불청객은 가보도록 하지. 나중에 꼭 다시 봤으면 좋겠군.”

“예. 머리가 식은 뒤면 더 좋겠군요.”

“그럼 미안하군.”

그녀는 피식 웃으며 순간이동의 술식을 짜놓았다.

“레오, 네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건 힘들 것 같아. 만날 때마다 항상 머리와 가슴이 달아오르거든.”

“그럼 쉽게 못 만나겠군요.”

완벽하게 선을 긋는 레오, 하지만 아리아는 거의 분노와 집착, 질투로 뒤섞인 눈으로 성검을 뽑아들었다.

“...그건 아쉽군.”

사라지는 에일린, 그 사이에 아리아가 수직 베기를 날린다. 에일린은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그대로 사라졌다.

“누가 당신 같은 거한테 내 레오를 보게 냅둘 줄 알아!? 다시는 오지 마!!”

그 분노와 역정에 다들 경악을 넘어 공포마저 느낄 정도였다. 바로 성검의 검날 옆에 있는 딘은 급히 레오에게로 뛰쳐오며 귀에다가 말했다.

“...혹시...저 둘 사이가 안 좋아...?”

“어, 왠지 모르게 몹시.”

그걸 모르는 것도 능력이라고 딘은 생각하고 실수로 입 밖으로 뱉을 뻔도 했다.

“...근데 어떡하냐?”

“괜찮아. 딱히 형 잘못이라고 생각은 안 할 걸.”

딘과 아누스는 이 일에 대해서는 부외자이자 피해자, 오히려 자신의 가족이나 다름 없으므로 환대해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 여자도 그 예언자가 있는 곳으로 간대.”

“...뭐?! 왜?!”

왜 하필 그 여자가 그런 곳으로 간단 말인가...! 예언 따위는 무시할 것 같은 여자가...!

“오랜만에 경매랑 카지노가 하고 싶다고 하다가 말이 그쪽으로 연결돼서...!”

“잠깐... 경매랑 카지노라는 건...”

수도에서 합법적으로 찾아갈 수 있는 경매장과 카지노가 있는 장소는 한 곳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환락의 알레오에 있다고? 그 예언가가?”

번화가이자 표면상 합법적인 환락가.

또한 합법과 불법을 오가는 경매와 도박이 성행하는 유흥의 거리.

[뭐가 미래를 보기 싫은 예언자라는 거냐?]

<...하...그러게나 말입니다.>

회귀 전의 말과는 어긋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납득이 되는 장소였다.

그곳만큼 운명의 고저가 빠르게 갈리는 곳은 찾기 어려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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