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90화 (90/248)
  • EP.90 사랑의 고민-1

    이후 레오나르도는 유유히 방 밖으로 나갔다.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기가 찼는지 이미를 친 뒤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나가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을 비유하자면 굳이 힘겹게 만든 요리를 숟가락으로 떠줘서 입에 넣어주었는데, 씹지도 않고 스스로 뱉어 토해낸 수준이었다.

    눈치가 없는 것도 이정도면 거의 광기였다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는 확신했다.

    “...음...아리아...”

    “...가주님, 제 방에 좀 가도 될까요?”

    아리아는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잿빛으로 타버린 얼굴로 멍하고도 공허하게 출구를 바라보았다. 속도 모르고 태연히 나간 한 기사가 사용한 탈출구였다.

    “...그게 가구도 그대로고 청소도 해놓고는 있지만, 오랜만에 왔는데...”

    “...그럼 가보겠습니다.”

    잿더미가 된 아리아의 정신력은 그런 상투적인 정과 예의를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끼익...쾅...

    분노조차 재가 된 것인지 아리아는 힘없이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아마 얼굴로 보니 오늘 밤, 아리아가 침대와 베개에 머리를 박은 채로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 머리로나마 상상되었다.

    “...”

    “...하...”

    “쯥...”

    말은 한마디도 오가지 않은 채, 어수선한 침묵이 이어지며 착잡한 기세를 보였다. 단순히 레오나르도의 반응은 사람들이 많은 장소였기에 부끄러워서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 침착한 어투, 홍조는커녕 분이라도 바른 것처럼 일정 피부 상태, 아주 건강하고 일정하게 울리는 심장 박동은 도저히 사랑에 빠지거나 호감이 있어 당황해 감추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전문 암살자조차 그런 기행은 실현시키지 못할 것이다.

    “...다 알고 계십니까?”

    운을 뗀 것은 아인이었다. 아인은 단순히 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가 아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명백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확신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주어를 생략했음에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아인의 말을 이해해버렸다.

    “...순애 소설만 백권을 넘게 읽은... 이 외삼촌이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리오스도 심히 허탈한 눈치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지금 리오스에게는 가장 재밌게 읽은 순애 소설이 연재 중단과 작가의 정신 붕괴로 비극 전개로 끝난 것보다도 허탈한 순간일 것이다.

    “...난 흑암으로서 첩보를 하는 동안에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에 도가 텄다. 하지만 이건 정말... 답이 없군...”

    잠입이나 심문을 하는 집행기사의 소양으로서 마음을 읽는 기술은 당연히 익혀둔 크리스였다. 물론 크리스의 평소 행색을 생각하면 그 소양이 의심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설득력 자체는 존재했다는 말이었다.

    “...나도 늦게 알아챈 입장이니... 썩 할 말은 없다만... 이 정도일 줄을은...”

    “...약혼이니 결혼이니 해도.. 결국은 알아채야 진전이 있는 법인데...”

    라인하르트 부부는 깊게 눈을 깔았다. 글라디오도 따지고 보면 시리카가 언질도 하고 직접 설명도 했기에 제대로 알았지만, 사실 대략적인 흐름은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리카는 어머니이자 같은 여자로서 아리아의 호감을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는 뒤였다.

    “...하... 차라리 용병 생활로 머리가 다친 거면 좋겠군. 성인님, 그건 치료가 가능합니까?”

    “...하하... 그러게요...”

    웃지 못해 답답해 목이 막혀 질식으로 죽을 것 같은 농담이었다.

    사실상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정말 레오가 머리를 다쳤는지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지를 고려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리아스필 용사님이...신전에서 그... 아닙니다.”

    루미네도 차마 뭐라 더 말이 안 나왔는지 더는 말을 넣지 않았다.

    {그런 기행은 저조차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건 아니다, 라고 속으로나마 생각하는 루미네였다. 현자가 말한대로 실제로 신전의 고목 뿌리 밑에는 한 성녀의 이상 성벽이 담겨있는 노트가 필사되어 있었으니까.

    “다 알고 계시는 것 같으니 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째서인지 이곳에서 제일 손아랫사람인 아인이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었지만, 너무 침착하고 태연한 태도에 아무도 그 부자연스러움을 눈치채지 못했다.

    “제가 보기에는 아리아 언니는 분명 아버지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조카 아인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을...”

    휙, 확, 턱

    칼 같은 군무처럼 보이는 거수였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제히 손을 들어올렸다. 반대측 의견은 반대파가 존재하지도 않으니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럼 아버지가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전원 거수로 인해 완벽한 만장일치가 이루어졌다. 불행 중 다행인지 라인하르트 가문의 민주주의는 지극히 선순환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참 이상하군요. 아버지는 책략과 사람의 심리를 읽는데 한해서는 어떤 이에게도 밀리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건 ‘신은 왜 전지전능하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직접 돕지 않는 것인가’와 동급인 의문이었기에 아무도 해답을 내지 못했다.

    “혹시 각자 짐작가는 것을 말씀해보시겠습니까? 각자의 정보를 종합하면 답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아인의 주도 아래에

    이제는 거수 토론에서 의견 토의 형태로 바뀌었다. 따지고 보면 회귀 사실과 내막의 일부를 알고 있는 아인이 정답을 찾아내는

    입장에 가장 근접했으나 안타깝게도 아인의 감수성으로는 그 마음을 헤아리기가 부족했다.

    “...흠... 몸에 이상이라도 있나? 용병 생활이나 부상 때문에 말이다.”

    마르켄은 ‘고자’나 ‘무성애자’라는 표현을 일부러 돌려가며 아인에게 의견을 말해보았다. 어찌됐든 저 귀여운 회색 로브와 머릿결의 아이는 자신의 증손녀가 되는 격이었으니 말이다.

    “육체적 성불구자, 또는 정신적인 무성애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마르켄 집행기사단장님.”

    하지만 아인에게는 굳이 돌려말할 이유도, 방법도 없었다. 자신의 무릎을 살짝 넘는 어린 손녀가 저런 말을 태연히 내뱉으니 다들 조금은 충격을 먹은 눈치였다.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한 것은 리오스였다.

    “그건 아닐 거에요. 할아버지.”

    “리오스 님 말대로입니다. 아버지의 혈액을 흡수할 때, 몸에 이상이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레오나르도의 몸은 정말 건강한 것으로 판정되었다. 몸에 유난히 흉터가 많은 것 이외에는 육체, 그리고 성기능에는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육체의 기본적인 유전자는 지극히 평균 남성의 것과 완벽히 일치했고, 그런 재능으로 그런 육체를 이끌어낸 것이 역으로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든 의문이다만... 아인 너는 라인하르트의 피가 있는데도 백발의 벽안이 아니군? 이유가 있나?”

    뜬금없는 질문이긴 했지만 크리스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는지 가볍게 아인에게 물어보았다.

    초대 용사인 루벤 라인하르트의 피를 이은 후손들은 그의 영향으로 인해 모두 백발과 벽안을 지니게 되었는데, 거기에 예외에 있는 것이 나름 놀랍기 때문이었다.

    “그건 제가 아버지의 성분과 아리아 언니의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융합시켰기 때문입니다.”

    본래라면 적안이라면 적안, 벽안이라면 벽안으로 형질이 이어지겠지만 이례적인 사태로 유전자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마치 색이 섞인 듯한 보랏빛 눈동자가 된 것이었다. 머리칼도 같은 원리였고 말이다.

    “이를 보아 알 수 있듯, 아버지의 유전 형질과 아리아 언니의 유전 형질은 궁합도 좋습니다. 차후의 생식 문제에 대해서는 과도한 체위 이외에는 위험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어...그런가...?”

    사용되는 용어가 저속한 의미로 표현된 것은 아니었지만, 성적인 단어가 망설임 없이 아이와 같은 입에서 나오는 것에 크리스는 황당하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표현은 자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떤 표현입니까? 연관되는 용어는 최대한 자중 또는 우회해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의 얼굴은 완전히 붉어질대로 붉어져 대장장이가 달군 쇳덩이처럼 열기가 나고 있었다. 저렇게 겉멋을 들여보여도 크리스는 남자 경험 한 번 없는 미혼의 처녀였다.

    오히려 크리스의 기행 아닌 기행 때문에 있던 혼삿자리마저 끊겼으며 그녀 본인도 그렇게 결혼이나 혼기에는 연을 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저런 여러 의미로 순수한 아이가 일목요연하게 묻고 있는데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 또한 흑암에게는 수치였다.

    “...체...에위와 그와 관련된 표현을... 자중해라.”

    “알겠습니다. 특정 페티쉬나 은어 및 속어는...”

    “자자, 그런 건 어른들이 말할 테니 우리 아인은 자중하고 편히 말하세요.”

    시리카가 그 중간에서 간신히 중재하자 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시리카 님. 그럼 아버지의 자기 위로 행위와 성적 지향과 관련된 내용은 제 쪽에서는 언급을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 방향에

    한해서도 아버지는 평균적인 위치에 속하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지만, 사실 이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리오스와 아메리,

    레오나르도가 사회성을 기르지 않을 때에는 아예 ‘예, 요청에 따라 아인은 성적인 단어 및 의료학적으로 성과 관련된 언어를

    자중하겠습니다.’와 같은 더욱 기계적 발언을 하고, 일일이 그 단어들을 확인한다는 차원으로 읊었을 것이었다.

    ‘...그래도 나 없는 사이에 아우가 많이 신경 썼네.’

    레오나르도의 감정 교육과 사회성 교육이 효과를 보인 덕분인지, 지금은 그저 너무 똑똑해서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리오스에겐 이 또한 순애의 일부로 보였다.

    “그럼 레오 기사님이 마탑에서 애인이나 마음에 둔 사람이...”

    그 순간, 루미네가 가볍게 입을 연 일순.

    공기가 무겁게 내리앉았다.

    “...호오... 그건 그 자식이 아리아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의미인가?”

    갑자기 마르켄은 손가락의 관절을 풀었고.

    “...내 조카의 마음을 헤집어놓고, 노리개처럼 던지다라... 숙청으로는 충분하군.”

    그림자에 암약하는 흑암은 자신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아버지, 잠깐 라인하르트 무기고를 개방을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좋군. 내 것도 거들어주마.”

    두 가장은 아예 있지도 않은 죄를 숙청할 방법을 무기고에서 찾고 있었으며.

    “...양다리나 어장관리는 순애 소설에서 제일 열받는 전개인 거 아시죠? 네? 루미네 사제님?”

    리오스마저 살의가 등등한 눈동자를 실눈 밖으로 꺼내며 살기를 꺼내었다.

    “...죄송하지만 이게 저희 집안에서는 이게 평범한 겁니다. 성인님.”

    시리카는 이런 태도에 거의 해탈했는지 부들거리는 루미네의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다.

    “...그런...가요? 어디까지나... 개념없는... 추측이니 괘념치 말아주세요.”

    그 말에 맹수 몇 마리와 같은 살기가 잠재워지며 사그라들었다. 루미네는 순간적으로 답답했다고 생각한 레오를 불쌍히 여기며 차를 힘겹게 들이마셨다.

    “그것도 아닐 겁니다. 성인님.”

    라인하르트의 피 덕분인지 아인은 그런 상황에서도 떨지 않고 반론을 내주었다.

    “마탑 내에서도 수도 없이 러브콜이 왔었고, 거기에는 추후의 마탑주 자리를 담보로 교수직을 약속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 태연히 서두의 반론에도 다들 경악한 눈치였다.

    레오나르도의 수준이 굉장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마탑주의 자리는 6서클은 넘겨야 기본적인 자격이 주어지는 대마법사의 정점이나 다름없었다.

    말그대로 그 자리는 귀족 가문이 전재산을 털어도 얻을 수 없는 지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와 동반된 각종 고위 마법사 또는 귀족의 약혼 제의나 추파, 그리고 청혼 편지를 전부 자필로 거절한 걸 고려하면 그 이유라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너무 경악스러운 반론에 다들 떨떠름한 눈치였다. 아마 레오나르도가 지속적인 추파를 던진 청탑주의 딸을 두들겨 팬 것까지 알면 다들 놀라서 기절할 기색으로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역시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 토의의 문제점을 눈치챈 것일까, 아인은 가장 직관적이며 단도직입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는 수밖에 없지.”

    리오스는 아인의 의견에 납득한 눈치였다. 결국은 본인이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방법이 애매하잖나. 갑자기 가서 이상형이나 사랑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누가 순순히 대답하겠어.”

    마르켄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것도 4년째가 되어서 막 돌아온 지금의 시점에서 묻는 것은 분명하게 부자연스러웠다.

    “...아뇨. 은근히 될 수도...”

    리오스는 여태까지 읽은 책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일까,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이는 약간의 수치가 있을지언정 그렇게까지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연애상담을 받아보는 척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연애상담을 한다고? 레오나르도 본인이 사랑인지 뭔지도 자각을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게 아니라, 저희가 받는 쪽이 된다고요.”

    리오스의 역발상에 다들 관심이 생긴 것일까, 주변인들은 주의 깊게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기 연애 얘기나 고민인 척, 밑밥을 던지고 은근히 레오나르도의 심리도 꺼내보는 거죠. 이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던지, 이런 경우는 어떤 감정인가...라던가요.”

    리오스가 말한 것이기도 했고, 표면적으로 이상은 했으나, 깊게 생각해보면 그리 이질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대화나 소통은 기본적으로 주제나 공감대가 일치되면 원활하게 진행되기 마련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하지?”

    글라디오가 물은 것은 단순한 방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난 알다시피...”

    가주 글라디오는 시리카와 결혼했다는 시점에서 연애상담을 받는 것 자체가 코미디였다.

    그런 의미에서 시리카나 마르켄은 당연히 논외 대상이었고.

    “저는요?”

    “매번 사랑 노래를 불러대던 네가 갑자기, 그것도 레오나르도에게 연애 상담을 하는 게 그리 설득력이 있지는 않지.”

    크리스의 지적대로 리오스는 그런 고민을 상담하기에는 레오나르도보다 사랑에 관심이 많았다. 상담을 해주는 거면 몰라도 받는 것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전 성직자인지라...”

    이런 곤란한 상황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실제로 루미네도 연애적 사랑에 관한 상담을 받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이었다.

    “...저는...”

    “안돼.”

    아인은 그냥 논외다. 사랑 이전에 문제가 있었으니 말이다.

    “...소거법대로 가면...”

    방 안의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이 가문의 그림자를 수호하는 어둠의 기사이기도 했다.

    “...왜 나를 보지?”

    크리스(티나) 라인하르트가 이 일에 가장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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