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4 계시-7
고유마법
근본을 따지자면 서클 마법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고대, 그리고 태초의 마법.
마법사 본인의 고유한 육체적, 성향적 성질을 답습해 만들어낸 고유한 원리의 마법.
태초의 마법사들 뿐만 아니라, 현 시대의 대마법사들조차 의무적인 지식욕으로 만들어낸 마법의 결정체.
그게 고유 마법이었다.
그렇기에 고유 마법의 지론은 마법사마다 달랐다.
흑탑주의 경우에는 유용성을.
-자신에게 가장 유용한 마법, 그게 고유 마법이라고 생각한다만? 좀 더 정확히 알고 싶다면 대학원으로 오게. 언제든지 환영이니.
백탑주의 경우에는 효율성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마법이여야 하지. 그런 경우에서 리오스의 고유 마법은 실격이야. 물이 없는 지역에서는 능률이 반의 반으로 줄어드니까.
적탑주의 경우에는 차별점을.
-결국은 자신다운 마법이 중요하지! 결국 이론 뿐인 고유 마법으로는 타인도 따라하기 쉬우니까!
청탑주의 경우에는 학문성을.
-고유 마법을 개발했다는 것은 마법의 본질을 느꼈다는 것이지. 개발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마법의 의미가 변화할 거다.
리오스의 경우에는 목적성을.
-사실 내 건, 원정 때 항해가 종종 있거나 악천우가 많아서 특수하게 만든 서포트 마법이야. 내 고유 마법은 너무 유별나서 도움은 안 되겠지만, 연애 상담은 내가 꽉 잡고...
여러 조언을 종합해본 결과, 고유 마법의 중점은 마법보다 ‘자신’이라는 점에 주축을 두고 있었다.
고유 마법은 마법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신비의 존재.
그러니 마법이라는 개념에 종속돼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단지 마법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깨부술 수 있었다.
***
“...말도 안돼...! 어떻게...! 4서클이...!”
“당신이 못한다고 남도 못한다는 개같은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혹시 공개 고백하고 같은 데에서 나온 건가?”
전례로 리오스 또한 저수 지역 한정으로 최상급 마법과 손색 없는 물의 고유 마법을 만들었다.
정타로 날린 조롱 겸 질타에 플라투스의 얼굴은 점차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어차피... 리오스처럼 약점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마법으로 모래먼지를 흩뿌렸다. 마법에 한해서는 자신이 유리할 거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도 있었다.
“그게 패착이 될 겁니다.”
덤덤히 전투를 관전하고 있던 아인은 사제과 성기사, 그리고 아리아스필에게 상황 중개를 해주었다.
“청탑주의 하위호환 형태로 같은 패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거리를 벌리며 중거리 형태로 돌기둥을 발사했다.
“어차피 검술하고 마법을 섞은 것뿐이...!!”
•베기 제1형 할(割) 수평베기
유려한 번개의 검기, 그리고 연이어 검기에 이어진 마나의 흐름은 하나의 인을 맺었다.
“라이트닝 엑셀.”
영창을 짧게 부르자 전격이 레오의 몸에 감돌았다. 단순히 마법을 발현시킨 것이 아니었다. 검격을 휘두를 때마다 몸에 두른 전격이 강해지며 속력이 가속되었다.
아예 강화용 전격이 검을 통해 방출돼 그녀에게 고통을 줄 정도였다.
‘...뭐야...!? 왜 속도가 나보다...!’
지금 레오의 마법 발현 속도 그녀는 물론, 청탑주조차 능가했다. 지금 발현시킨 마법의 능력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고유 마법 원리는 단순합니다.”
오러에 마법을 쓸 수 있는 속성을 추가해 마법의 검을 만든다. 까다롭기는 했지만 이는 숙련된 마법사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후의 과정이었다.
“무술 자체를 거대한 수인, 마법진으로 삼아 마법을 발현시킵니다.”
마법의 보조 동작인 수인 자체를 중심으로 잡아 만든 고유 마법, 알고 있는 모든 마법식을 계산해 몸으로 마법진을 산출해 그린다.
마지막에 소리내어 영창을 외치는 것은 완성된 마법진의 방아쇠와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 이외에는 이를 실현시킬 마법사는 제 지식 안에는 현존하지 않습니다.”
원리나 이해도, 마나량이나 센스의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주는 육체가 느리면 아무 의미도 없었으니까.
저런 신비의 경지에 오른 무예를 지닌 마법사는 고금을 뒤져보아도 레오나르도 이외에는 전무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부서진 돌기둥을 촉매로 삼아 지면에 작은 결계를 만들었다. 이윽고 그 결계는 물리적인 돌의 벽이 되어 레오를 휘감았다.
“걸려...!”
콰아앙!
불과 1초였지만 말이다. 청탑주가 4초였다는 걸 생각하면 나름은 괜찮았다. 나름은 말이다.
[윈드 버스트]
바위 감옥을 뚫고 솟아오르는 바람의 기둥, 외부를 단절하는 결계가 레오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었다면 바로 구멍이 뚫려 깨질 정도였다.
“지금 아버지의 코어와 서클은 연동되었습니다.”
마검사의 코어와 서클은 별개의 영역이다.
유사한 구조로 되어있지만, 코어는 방출의 마나적 장기, 서클은 조작의 마나적 장치였다.
코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서클 또한 만들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조건일 뿐, 실제로는 마법에 대한 이해도와 조작력이 있지 않은 이상 가능하지는 못했다.
반대로 서클을 가진 마법사도 육체의 단련과 방출에 대한 경험이 없는 이상, 제대로 된 코어가 형성되지 않는다.
대개 마검사들은 이를 분별해내지 못하고 뒤엉켜 섞어놓아 코어와 서클이 불균형, 또는 전체적으로 부족한 형태로 자리잡기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를 정확히 분별해내 수련하고,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연동시켰습니다.”
현자의 조언과 지적, 그리고 가르침 덕분에 코어와 서클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은 채, 각자의 방향성에 맞은 형태로 체내에서 역할을 다했고.
회귀 전의 전투 경험과 회귀 후의 마법 지식이 합을 맞춰 결합한 결과, 고유 마법을 발현하는 순간만큼은 서클과 코어가 연동이 되었다.
“이를 통해 아버지는 마법과 같이 섬세한 오러를, 오러와 같이 강력한 마법을 동시에 발현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간단했다.
“...이런 건... 불공평해...”
레오의 고유 마법은 불완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베기 제2형 참(斬) 수직베기
“화청격.”
무술과 마법의 화음은 아름다운 아리아를 연상시키며 눈 앞의 적을 섬멸시켰다.
화염의 폭발과 검격에 그녀는 그대로 날아가 결계에 부닥쳤다. 우득거리는 소리로 봐선 찰과상이나 탈골로 끝날 문제는 아니었다.
“...그만...! 이제...!”
항복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던지기 제10형 투(投) 조준 투척
레오는 그대로 단검을 날렸다. 번개와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단검, 이는 실제로 전격의 마법이 단검에 둘러졌기 때문이다.
퍼억!
단검은 그대로 그녀의 볼을 살짝 찢으며 바닥에 꽂혔다. 뇌격의 전류가 볼을 타고 흐르며 통각을 자극했다.
‘...하지만 단검이 없는 지금...!’
“이쪽이야. 병신아.”
단검에는 전격 마법 뿐만 아니라, 단거리 순간이동의 마법인 블링크도 영창되있는 뒤였다.
“커헉...!”
레오는 그대로 그녀의 목과 멱살을 통째로 쥐며 들어올렸다. 한 손의 악력만으로 그녀의 목 전체는 쥐어짜지며 그대로 허공이 띄워졌다.
“항복하고 싶어?”
“켁...! 하...악...! 크악...!”
목이 쥐어진 탓일까, 항복이라는 짧은 단어도 나오지조차 못했다.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레오도 거리를 좁히고 목을 조른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그러고는 한 손으로 결계 마법진의 술식을 변형시켰다. 그러자 암막 커튼이 내려온 것처럼 결계의 색이 어두워지며 외부와 시야도 차단되었다.
“레오나르도...!!”
“루미네 사제님!! 어떻게 합니까...?!”
만약 저 상황에서 레오가 진심으로 분노해 플라투스를 죽이기라도 하면, 상황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얼른 결계를...!”
“지금은 지켜보도록 하죠.”
그 위험한 제안에 다들 그 판단을 꺼낸 인물을 전부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들은 경악하며 고개를 숙였다.
“성...성하님...!!”
“소란스러워서 나와봤는데, 정말로 소란스러운 일이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얼른 말리도록...”
“아뇨. 괜찮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성황은 신성력의 빛을 발산해내었다. 그러자 결계 너머의 상황이 외부의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고위 신성술인 만큼 이는 레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커헉...!]
손아귀에 힘을 풀자 플라투스는 지면에 떨어졌다. 사실 힘을 풀었다기보다는 레오가 직접 지면에 내동댕이친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바깥에는 이곳 상황 안 보여. 안 보이니까 도움 같은 건 바라지도 마.]
사실 전부 보이고 있었으나, 아직까지 레오도, 플라투스도 그 사실에 눈치채지 못했다.
[...너... 너 이러고...! 무사...!]
퍼억
즉각적으로 들어가는 발차기, 찰나의 망설임도, 훗날의 두려움도 없었다.
[내가 뭐에 두려워해야지? 청탑? 청탑주님이 할 짓 없어서 진 줄 아나봐?]
청탑주는 말 그대로 레오나르도에게 완패했다. 아무런 핸디캡도 없었음에도, 실전 경험과 간극의 차로 레오에게 패배했다. 이는 청탑주도 승복한 바였다.
[마탑이... 가만히...!]
[당연히 가만히 안 있겠지. 징계가 올 거야.]
콰직
레오나르도는 태연히 손가락을 발로 짓누르며 말했다.
[너한테.]
[으아아아악...!!]
비명을 배경음으로 삼으며 레오는 태연히 훗날의 일을 확신하며 설명했다.
[니가 한 병신짓 덕분에 지금 청탑 이미지 개판나는 소리하고 신전하고 관계도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거든.]
레오는 그러고는 부드럽게 다리에 힘을 뺐다. 오히려 골절된 손에 외부의 자극이 사라지자 더 큰 고통으로 물들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너한테 기회를 줄 거야. 사과만 제대로 하면 바로 내보내줄게. 치료도 제대로 해달라고 부탁해줄 거고.]
그게 레오가 남긴 일말의 자비였다.
[그러니까 사과해봐.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잘...잘못해...했습니다...]
[뭘?]
[...예?]
레오는 가볍게 복합골절된 손에 자신의 손으로 쥐어주었다. 마탑에 있는 동안, 그녀가 행했던 불쾌한 스킵십보다는 훨 나았다.
[크아아아악...!!]
[뭘 잘못했냐고? 말을 해야 용서를 해주지.]
[...앞에서...! 계속 얄랑거려서...! 죄송합니다...!!]
고통으로 인한 것인지 사과는 빨랐다. 하지만 레오의 분노는 그 자리에 중점이 있지 않았다.
[그게 다야?]
[...아아아아악!? 왜... 더 힘을...!]
그 무례하고도 무식한 질문에, 레오는 친히 분노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아인이 기분은 생각도 안 하지? 사역마니까.]
[...하지만...! 그건...!]
지금 실시간으로도 고통을 맛보고 있어도 그녀는 마법사로서 높은 자존심과 명예를 가지고 있는 학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인은 그저 ‘학문적 가치를 지닌 인형’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 아인은 지성을 지닌 인간형 사역마야.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나도 마법사인 이상 그걸 부정할 수는 없지.]
피와 살점 대신, 마나와 유동형 광물로 이루어진 존재.
세상을 아인에게, 아인은 자신에게 그렇게 평가했다.
[근데 말이야. 나도 이런 가족 놀이 안 하고는 못 배기겠더라고.]
그래서 화가 났다.
[사역마랑 계약을 하면, 초기에 그 사역마의 사념이 흘러들어와.]
계약하는 동안 계속해서 사념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지만, 초반에는 안정화가 되어있지 않아 사역마나 주인의 사념이 흘러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걔가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이 뭔 줄 알아?]
레오와의 대화를 통해 감정이라는 개념을 깨닫자, 아인은 이 감정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었다.
[죄책감이더라?]
그게 아인의 첫 감정이자 낙인이었다.
[자신의 존재, 그리고 감정에 대한 죄악감. 그게 내 딸이 처음으로 느낀 기분이라고.]
그리고 지금 레오가 느낀 분노의 주축을 이루는 하나의 기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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