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81화 (81/248)

EP.81 계시-4

다음날 신전에서의 소동이 대강 정리가 되자, 레오와 아인 부녀는 성황을 찾아뵈러 일찍 일어났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아인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레오나르도와의 대결에서도 패배했고 결정은 성황에게 있었기에 현재로서는 암묵적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좋은 아침...인가?”

현 시각은 새벽 4시, 아침이라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시간대였다.

“좋은 새벽이라 말할 수 있겠군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으며 아인은 말을 정정했다. 저 초롱초롱하게 생기가 없는 눈은 아마 졸리기는커녕 잠 자체를 필요치 않는 눈이었다.

“그럼 가기 전에...”

자신의 몸을 가볍게 정돈한 뒤, 레오는 아인의 몸을 정돈해주었다. 머리를 빗어주고, 회색 로브를 털어 정갈히 둘러내주었다.

“괜찮아?”

“어떤 점이 말입니까?”

“...그냥, 전체적으로.”

“안 좋은 점은 없습니다.”

기계적인 답변인지,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한 대답인지 모를 말에 레오나르도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가끔은 불만도 말하고 그러면 좋을...”

“그럼 결혼...”

“그건 보류야.”

무감정한 것이 걱정되어서 사랑이나 애정 같은 감정을 설명해주거나, 가족이나 자식 같은 관계를 강조했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아마 결혼만 된다면, 지참금과 집까지 구해줄 기세였다. 자식이 그런다는 시점에 막장부모가 된 기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자식한테도 철벽을 치냐?]

숙면을 취한 뒤에, 현자도 자기 몸을 복구한 것인지 영체로 떠다녔다. 옆에 아인이 그 악령을 보며 주먹을 쥐는 것이 참으로 기특했다.

[야야야야야!! 말려! 말리고...!!]

“아인, 꼴보기 싫은 악령이지만 지금 참자.”

“예, 알겠습니다.”

아인은 주먹을 거두자 수명이 조금 연장된 악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지능 설계는 현자님이 했잖아요.>

현자의 동굴에 처음 갔을 때 봤던 수호자도 그렇지만, 현자는 사역마의 지능 설계 자체를 너무 거지같이 했다.

[그렇게 해야 돼. 원래 멍청해야 말을 잘 들어.]

들어보니 더 쓰레기 같은 이유였다.

“아인, 한 대 세게 갈기렴.”

악랄한 자기변호에 보다 못한 레오나르도는 아인에게 정의의 철권을 허락했다.

“예, 아버지.”

콰직!

생전 살면서 레오는 주먹이 부딪치는 소리가 ‘콰직’으로 들린 경우는, 아리아 이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유전자는 속일 수 없다는 뜻인가.

[...이...패륜...아들이...]

“레오 기사님! 아인 님!”

일격에 넝마가 된

악령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날개를 자랑하는 두 천사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특히 성인 후보인 루미네는 깊은 숙면을 취한 것인지

기쁜 마음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고, 천사인 앤젤라는 아인의 눈빛을 보자마자 질겁했다.

{루...! 루미네...!! 저 불경하고 사악한 존재를 소멸시키십쇼!!}

전 성녀에 현 천사라는 작자가 몇 대 좀 얻어맞았다고, 저렇게 추한 소리를 일삼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죄송하지만 아인 님을 소멸시키는 것은 마탑과 신전의 결정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할 수가 없군요. 성녀님.”

{그런 생글생글한 미소로는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루미네 수사.}

“제 진심이 전해지지 않다니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보면 루미네도 나름 인간적인 면모가 존재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생각해도 아인에게 몇 대 더 쥐어박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점에서 선량한 편이지만.

“루미네 사제님. 천사님의 일시적 소멸을 원하신다면 부탁하셔도 좋습니다.”

아인의 달콤한 제안에, 잠시 루미네는 미소가 굳은 채 경직되었다. 이내 5초밖에 고민하지 않은 루미네는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왜 5초씩이나 망설입니까?}

[왜겠냐?]

어느정도 몸이 복구된 현자는 피아식별도 못 하고 개소리를 지껄였다.

{당신이 만악의 근원입니다!! 왜 저런 걸 만들어서...!!}

[야...! 아픈 데 때리지 마!! 때리지... 으억...!!]

평소라면 비등비등했을 테지만, 아인의 주먹으로 영체가 파손된 현자로서는 전투에서 이길 수 없었다. 그대로 성녀의 샌드백이 된 현자를 바라보며 아인은 물었다.

“도와드립니까?”

“그럴 필요는 없지. 그러고 싶어?”

“아뇨.”

“그럼 돕지 말자.”

루미네는 암묵적으로 동의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부터 상쾌한 풍경과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안정되며 정신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성황님을 뵈러가죠.”

“예? 아리아스필 님은요?”

“...신전에서의 교리와 규정을 생각하면 데려가지는 않는 것이 현재는 나을 겁니다.”

지금까지 아리아의 반응과 마탑에서 건 조건, 그리고 신전 자체의 교리를 생각하면 변수 요소는 줄일 필요가 있었다.

시간대를 새벽으로 고른 것은 그런 이유도 존재했다.

지금부터 할 항변을 생각하면 아리아스필은 듣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라고 합니다. 아리아 언니.”

순간적으로 섬뜩한 감각이 느껴졌다. 단순히 아인이 한 맥락에 맞는 대답이 아닌 것 때문도 있었지만, 지금 어깨에 쥐어지고 있는 악력의 힘이 승모근에 고통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 두려웠다.

“좋은 아..침입니다...”

뒤를 슬며시 돌아보자, 정말 미소를 지은 어머니가 되고 싶은 아가씨가 있었다.

“좋은 아침인가?”

“...아뇨... 좋은 새벽...”

“어디가 좋은 거야? 나 빼놓고 간 게 그렇게 좋아?”

콰직

“끄아아아악!!”

어깨에서 콰직 소리가 났다. 이거 분명 뼈가 골절됐을 거다. 근육도 파열된 기분이었다.

이때 확신했다. 저 둘은 확실한 모녀라고.

***

“괜찮으세요? 레오 기사님?”

“...예...”

탈골이 된 어깨를 신성술로 치료하는 루미네, 빠진 어깨를 붙이며 레오는 간신히 기운을 차렸다.

“아리아 언니, 화를 푸시지요. 아버지도 어머니를 싫어해서 따돌린 것은 아닙니다.”

“...”

아리아는 자신의 팔에 안긴 아인의 표정을 힐끔 바라보았다. 소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놓고 봐도 무척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어릴 때 레오의 사진과 쏙 빼닮아 더욱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딸은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착할까~! 괜찮아~! 괜찮아!! 엄마 이제 화 다 풀렸어!!”

아리아는 그 무심한 애교에 참지 못하고 그녀를 껴안고 얼굴과 몸을 비볐다.

“언니를 닮았습니다. 그리고 언니와 결혼할 아버지와도 닮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엄청난 소리를 한 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딸 효녀네! 효녀!! 얼른 엄마가 되야겠네!!”

보는 내 민망한 입장도 조금은 고려해줬으면 좋겠다. 몹시.

“우선... 진정해주세요. 설명해드릴테니까요.”

레오가 아인을 슬며시 떼놓으려고 해도, 아리아의 부드러운 팔과 다리힘을 여러의미로 이겨낼 수 없었다.

“설명해봐. 우리 애가 듣고 있다고.”

[아주 맛이 들렸구만.]

당신은 좀 닥치세요. 굳이 따지지 않아도 댁이 모든 일의 원흉이구만.

“아리아 아가씨께서 아인에게 모정을 느끼는 건 괜찮습니다. 그거에 대해서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 결혼은 거절하는구나?”

“...그런데 결혼은 거절하시는군요.”

아주 모녀가 귀엽고 얄미울 정도로 똑같았다. 덕분에 이쪽만 고생이었고.

“문제는 신전의 교리에선 ‘인공적으로 만든 인간과 동일한 지성 생명체’의 취급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요.”

종교의 본질은 ‘인간의 도덕’에 있었다. 때때로 도덕이라는 개념은 법률이나 지위보다도 상위에 속하는 문제이기에, 그만큼 종교의 위상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인의 존재는 ‘도덕’을 넘어 ‘인간’ 그 자체를 건드리는 안건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아스필에게도 상상이 됐을 것이다. 지금 아인에게 놓인 딜레마가 어떤 것인지를.

만약 아인이 지적 생명체로 인정된다면, 마탑에서 해부 대상은 안 되겠지만 그 대신으로 신전의 이단 심문관에게 척살당할 것이 분명했다.

반대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문제였다. 지금까지의 변호가 무의미해지고, 아인 반대파 세력들에게 힘이 실릴 테니까.

“...그러다 보니 모정을 강조하는 아리아 아가씨께는 함께 가달라고 하기 곤란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용사인 아리아의 입지가 불안정해지고, 아인에 대한 결론이 객관적이다 못하다라는 인식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잠시 생각하던 아리아는 이내 입을 열었다.

“아빠가 아인이를 많이 사랑하네.”

“...왜 해석이 그런 쪽으로 가요?”

아리아는 따뜻한 미소로 아인과 레오를 바라보았다. 요망한 것도, 매혹적인 것도 아닌, 인자한 따스함이 아리아에게서 흘러나왔다.

“레오는 항상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혼자 떠안으려고 하니까. 그러면서도 자기한테는 박정하고.”

“그건 맞습니다. 역시 아리아 언니입니다.”

저 둘이 그렇게 말하니, 들리는 감각이 달랐다. 저 둘에게는 자신이 그렇게 보였던 탓일까.

“그 마음은 고마워. 그래도 같이 고민해보자.”

“...그래도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몰라서...”

“그래도 같이 고민해보자. 너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무언가 할 수 있는데 모르는 채 아무것도 못하는 건... 조금 섭섭하거든.”

...설마 아리아에게 그런 지적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이었는데, 그 마음을 아리아는 계속 고민하고 서로 나누려고 하고 있다.

“...반성해야겠네요. 맞는 말씀입니다. 아가씨.”

“그래? 반성하면 결혼...”

“그건 보류하겠습니다.”

그 말에 아리아의 표정이 팍 식었다. 애초부터 이걸 노리고 한 말이었구만.

“...아버지는 고자이신 겁니까?”

푹, 말이 찔렸다. 분명 찔렀다. 아니고서야 이렇게 아픈 통증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아인이 아빠는 무척 건강하신 편이야. 여러의미로.”

의미심장한 표정과 어투로 아리아스필은 자애로운 미소로 말했다.

변호는 감사한데, 그런 변호에는 호응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건 자신 뿐인가?

“...우선 약속한 시간에 늦으니 가는게 낫지 않을까요? 성황님 성품을 생각하면 그리 가혹한 처사는 없을 것 같아요.”

이런 가족애와 욕정이 뒤섞인 사랑이 보기 묘했는지 루미네는 상황을 정리하며 수습했다.

“그래야겠네요. 얼른 가시죠.”

“예, 아버지.”

“그래, 아인이 아빠.”

여태까지 한 설명들이 전부 거품처럼 덧없이 터져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타까웠지만 나름 아름다웠기에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성황 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그래도 나름대로 아인은 나름 대책을 모색하고 싶었는지, 정보를 모으려고 했다.

“흠... 성황 님은 역대 성황님들 중에서도 급진적이신 편이에요.”

그 말대로 지금 성황은 팔순은 족히 넘긴 나이에도 종교 개혁을 추구하시는 급진파였다.

포교 활동을 강요하지 않으며, 종교의 자유 및 개종을 쉽게 만든 것 또한 현 성황의 개혁 방향 덕분이었다.

[의왼데? 성직자들도 다 꼴통은 아니구만?]

{당신이 할 말입니까?}

이어지는 타격음은 무시한 채, 레오 일행은 신전의 중심부에 찾아갔다.

“오셨군요. 좋은 아침입니다.”

성황 피에타스 인둘겐티아는 인자한 미소를 일행을 맞이했다. 노령의 몸임에도 문 앞에서 일부러 마중을 나온 것이 그의 인덕과 배려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성황 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아인 님이시겠군요.”

“안녕하십니까. 성황 님.”

마치 아인은 레오를 따라하듯 똑같은 어투와 표정, 그리고 말내용으로 인사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아인 님과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예? 그건...”

잠시 일행들을 보던 레오는 이내 다시 성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괜찮습니다. 괜찮겠어? 아인?”

“문제 없습니다.”

아리아스필은 조금 걱정하는 기미가 보였지만, 성황의 인덕도 그녀도 아는 바였기에 아리아는 자신의 딸을 믿기로 결정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성황과 함께 생명의 기로에선 아인은 방으로 들어갔다.

***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문이 열렸다.

“대화는 끝났습니다.”

“...이렇게 금방?”

적게 잡아도 1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

“제 판단으로는 긍정적인 결론이 나왔습니다.”

단순히 딱딱한 말은 아니었다. 조금이지만 아인의 입술과 목소리에는 감정이 섞인 눈치였다.

“주례는 성황 님께서 서주시겠다더군요. 혹은 성인 후보인 루미네 사제님께도 허락을 구해보겠다고 하셨으니 걱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닐 게 아니었다.

왜 온 세상이 날 결혼 못 시켜서 난리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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