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6 성인-3
아리아스필은 지금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지금 자신의 레오나르도와 그 성인인지 성녀인지 모를 인간이 32분 34초를 서로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아리아은 그 나이대의 비해 냉철하고 객관적인 성격으로 용사 뿐만 아니라, 전사로서의 기량이 무척이나 뛰어났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를 포함한 그녀 자신도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설마... 바람을...’
그녀의 집착과 욕정은 남녀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과 관계의 발상을 퇴행시킨다는 것에 있었다.
지금 아리아스필의 머릿속에는 있지도 않은 시답지 않은 막장 연극이 찍히고 있었다.
상상 속 루미네가 온갖 치유술을 동원해 레오나르도의 갖은 통증과 흉터를 치료해준다.
레오 씨 괜찮은가요? 많이 아프셨겠어요. 이런 야만스러운 상처는 도대체 누가 낸 건가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군요. 몸에 힘 안 들어가시죠? 괜찮아요. 제 무릎에서 편히 쉬세요.
고마워요. 루미네 사제님. 역시 난폭하게 성검이나 휘두르는 아리아 아가씨보다 이렇게 상냥히 치유술을 해주시는 성인님이 나으십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매일매일 저를 위해 기도해주실 수 있나요?
아니 그건 마치 프러포즈 같네요. 너무 좋아요. 저도 기사님 같이 복근이 탄탄한 남자가 취향이었어요. 애는 몇 명 나을까요? 남자아이가 좋을까요? 아니면 여자아이?
우선 결혼식장부터 잡고 생각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루미네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게 해줄테니까요. 지금 생각할 건 사랑을 나누는 거겠죠?
하아, 짓궂으려셔라. 기사님.
하하하하하하하
...라는 세 살배기 아이도 정색할 막장에 개연성도 전혀 없는 망상이었지만, 그런 기괴한 상상을 할 만큼 아리아의 지능이 하락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에이, 아닐 거야. 레오나르도가 얼마 지조가 있는데...’
그렇게 고개를 저을 무렵, 병실에서 두 사람이 걸어왔다.
“하하하, 종종 만나는 날이 있으면 좋겠네요.”
“저도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불쾌하리만치 친해진 채로 말이다.
빠득
아리아의 이빨이 갈리는 건 어째서인가.
그게 레오나르도의 수명이 갈리는 소리라고 착각하는 어째서인가.
답은 아리아만이 알고 있었다.
***
[오늘은... 이걸로 끝낸다...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털을 다 뽑아서 거꾸로 메달았을 거야...!]
거의 형체가 없는 연기 수준으로 뭉그러진 현자는 용케 말을 꺼내며 도발을 시전했다. 그 모습을 보니 10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상쾌함을 느꼈다.
{당신이야 말로...! 그 타락한 영혼을 부지한 것에 안타까운 감사를 느끼시죠...!!}
복날에 개 대신 잡아먹히는 닭마냥 넝마가 된 천사는 탈모가 찾아온 것 같은 날개를 퍼덕이며 씨알도 안 먹힐 협박을 내었다.
루미네의 미소도 그날따라 상쾌하게 느끼는 건 착각일까, 자신의 심리를 생각하면 착각은 아닐 것이다.
“하하하, 종종 만나는 날이 있으면 좋겠네요.”
이런 격투극을 한번으로 끝내는 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명절이나 휴일에 가끔씩 만나면 아주 좋은 눈요기가 될 것이다.
{루미네 수사, 현자의 제자에게 헛소리하지 말라고 전해주시죠.}
천사가 된 성녀의 독설에도, 병실에 나온 그들의 표정은 싱글벙글했다.
“저도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루미네도 레오의 의견에 적극 공감한 것인지 화사한 미소로 동의의 의사를 표했다.
[비둘기 후계자한테 닥치라고 전해라.]
어차피 아픈 건 자신들이 아니라, 저 역사의 뒤안길로 꺼져야할 망령들이었으니 상관없지 않은가.
까놓고 말해 자신들에겐 피해 없이, 저 타락한 천사와 노망난 악령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을 알아낸 것에 레오와 루미네는 하염없는 기쁨을 느낄 정도였다.
“괜찮나? 레오?”
크리스는 혹시 모를 걱정에 레오나르도의 눈을 바라보았다.
“루미네 사제님 덕분에요. 후유증까지 말끔히 치료됐습니다.”
“그렇군. 다행이다. 확실히 안색이 좋아졌어.”
그건 분명 몸의 피로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였던 존재가 호되게 당한 덕분이었다.
‘...안색이 좋아졌다고...?’
그러고 보니 지금은 미소가 상쾌했다. 평소와는 달리 무척이나 상쾌한 빛깔이었다.
사실 그것은 평소 매시간 현자가 레오의 옆에서 깐죽거렸기 때문이 컸지만, 아리아에게는 알 턱이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루미네님.”
“안 괜찮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호위로 따라온 성기사도 놀란 눈치였다. 분명 지금껏 봐왔던 루미네의 미소는 위선으로 만들어진 가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소는 진심으로 상쾌하고 후련해보이는 미소 아닌가. 그 미소의 형상 또한 아리아의 눈에 톡톡히 새겨졌다.
“...사이가 좋아보이네. 고작 30분 사이에.”
아리아는 불쾌감이 증폭됐는지, 약간 반항적인 태도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아무래도요. 사제님의 윤리와 철학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영광이었죠.”
{이렇게 세 치의 혀만 잘 놀리는 걸로 봐선 역시 현자의 제자가 맞군요.}
무슨 실례의 말씀을, 현자는 사실 말도 잘 못하는 편입니다.
“저도 기사님의 용맹과 지혜를 조각으로나마 들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옘병을 해요. 용맹과 지혜를 알면 저년이나 신인지 나발인지 수발들게 꺼지라고 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라고 말해도 들을 인간이 아니었다. 당초에 지금은 인간도 아니었고.
{이 다 죽은 늙은이가!!}
[이 개썅년이...!!]
이어지는 2차전,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저 난전을 유심히 관람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둘 다 지친 것인지 30초도 채 가지 못했다.
“그렇구나. 서로 그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구나. 정말 몰랐네.”
아리아스필은 불쾌를 가식과 위선으로 미소로 간신히 가리며 분노를 삭혔다. 자신 앞에서도 저런 표정은 자주 안 지으면서 오늘 처음 만난 타인에게는 그리 쉽게 보여주니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할까...요?”
그럼에도 자신의 기사 앞에서는 티를 내기 싫었기에 그녀는 최대한 표정을 푼다.
“그럼 미안하지만, 레오나로드 기사 당신은 나가줘야겠습니다. 이건 라인하르트 혈족들만 들을 수 있게 내려진 계시이니까요.”
[거 까다롭긴.]
<뭐 어때요?>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운 레오나르도라고 해도 용사로서 내려진 계시까지 들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엄연히 별개의 문제니까. 그래서 전생에도 용사의 계시를 직접 듣지는 못했다.
“알겠습...”
“그건 아니죠.”
나가려는 레오의 소매를 잡으며 아리아는 반론을 제시했다. 소매를 쥐는 힘이 너무 지나쳐 팔 전체가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레오도 들을 권리는 있지 않나요?”
“...예?”
예상 외에 전개에 레오는 잠깐 당황한 눈치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리아는 팔을 잡아당겨 레오의 팔과 몸을 껴안았다.
“저희는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안 그래? 레오?”
그러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우쭐한 표정으로 루미네를 바라보았다. 분명 여성으로 자신이 앞섰다고 생각한 것이겠지만, 당초에 루미네는 여자도 아니었다.
{흐음~ 아무래도 이번 시대의 용사는 제법 귀엽군요.}
뭔가 기분 나쁜 시선으로 천사는 이해했다는 추임새를 넣었다. 자신에게 제대로 된 배후령이 있다면 얼른 가서 저 얼굴을 뭉개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의 불쾌감이 샘솟았다.
“그런 소꿉장난과 같은 감각으로 계시를...”
“아니, 아리아 말에는 일리가 있네.”
옆에서 듣고 있던 크리스는 그 반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성검이 아리아를 선택한 순간은 레오나르도와 결전을 벌인 도중, 그럼 계시와 연관될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크리스치고는 나름 논리적인 변론이었다. 아리아의 행동에 당황해하던 레오나르도조차 납득할 정도였다.
“...사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괜찮을 것 같습니다. 레오 기사님이라면 발설의 위험성도 적을 테니까요.”
그 말에 레오나르도도 그리 눈치를 보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오히려 계시와 회귀 후의 기억이 연관점이 있다면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할 정도였다.
“...저기, 아가씨...?”
다만 눈치를 볼만한 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팔을 부여잡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가문을 이끌고 이끌었던 두 가장이 있었다.
가주 글라디오의 시선은 몹시 차고 날카로웠고, 마르켄은 어째서인지 검의 날을 미리 확인해두고 있었다.
[...야, 내가 무서운 얘기 들려줄까?]
{뭡니까?}
[쟤네 안 사귄다?]
{...당신과 닮았군요.}
[저런 복에 겨운 놈이랑 비교하지 마.]
둘 다 관짝이든, 저승이든 알아서 골라서 꺼졌으면 좋겠다.
“저기... 아가씨...”
“레오.”
아리아스필은 딱딱히 굳은 미소로 자신의 기사 레오를 노려보았다.
“사제님이랑 많이 친해졌나봐? 호칭이 편해졌네?”
“...예?”
그렇게 생자와 망자의 겹치는 대화에 혼란스러워하는 와중, 아리아스필은 불쾌감에 올라온 불만을 조금 표출했다.
“벌써 애칭으로 불러?”
“...애칭이요?”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레오’ 기사님이라고 이름을 짧게 줄여서 부른 것 정도였지만, 애칭이라면 애칭이라 말할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부르기 편하다보니까요?”
꽈악
잘못의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이 아리아는 더 강하게 레오의 팔을 조여내었다.
“그렇구나. 고작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구나?”
“...아...그게...”
“괜찮아. 신경 쓰지마.”
어차피 넌 내꺼니까, 라는 뒷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아리아도 유치한 감정을 넣어두며 그 잘나신 성인의 계시에 경청했다.
“...그럼 계시를 고해드리겠습니다.”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루미네는 전달받은 계시를 꺼내들었다.
“아리아스필 라인하르트님. 지금 이 순간부터, 성검을 뽑은 순간부터 용사로 임명되셨습니다.”
신의 계시와 공명하는 것인지, 성검의 빛도 조금 일기 시작했다. 가슴에 상처를 낸 신성력과 같은 결의 힘이 느껴졌다.
“이제부터 당신은 신전에서 직접 계시를 얻을 때까지 용사로서의 수행을 거쳐야 합니다.”
그 말에 아리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조금 불안감이 휩싸인 것처럼도 보였다.
“그때까지는 용사 직책은 공표할 수 없지만, 성인 후보인 저 루미네 앙겔루스와 현 성황님께서 빛의 증인으로서 용사인 당신을 헌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라인하르트 가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형태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용사로서의 수행이라는 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 겁니까?”
글라디오의 질문에 루미네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간결히 설명했다.
“사제, 그리고 성기사로서 기도와 신성력 사용을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선대 용사님의 역사 및 기록도 배울 테죠.”
“그럼... 언제 돌아올 수 있는 건가요?”
리오스의 질문에, 루미네는 조금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수행을 통해 계시를 받을 때까지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럼 수행이 끝나는 기간은 언제지?”
“...그건... 정확한 기간을 잡을 수 없습니다. 역대... 사제와 성기사의 기록에 따르면 최소 7년에서 8년은 걸릴 겁니다.”
그 말에 아리아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럼 면회와 같은 개념은 존재하나?”
“그런 것 따위는 없습니다. 라인하르트의 후예들이 지금 용사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시는 겁니까?”
호위 성기사의 일갈에 라인하르트의 일가 전원이 그 위압감을 뿜어내었다. 그 자리에는 레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정하세요. 샤를리안.”
“...죄송합니다. 루미네 사제님.”
루미네는 부드러운 배려가 녹아있는 어투로 기류를 안정시켰다. 위압감을 뿜어내던 용사의 후예들마저도 진정할 정도였다.
“...신전 쪽에서도 갑작스러웠습니다. 계시보다 성검이 먼저 뽑혔다는 점에서, 그리고 뒤늦게 온 계시에 저희도 제대로 준비를 마칠 수가 없었거든요.”
루미네도 회귀자인 레오의 존재로 그나마 이해했을 뿐, 사실 갑자기 계시가 왔을 때는 당황해했다. 다만 성인 후보라는 직책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했을 뿐.
“하지만 계시가 온 이상,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용사의 의무는 내려진 이상 받아들이는 수밖에...”
“...싫어.”
아리아스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런 건... 싫다고...!!”
“자...잠깐! 아리...!!”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스필은 방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모두가 경악하며 아리아스필을 쫒아 추격했을 때, 레오나르도는 태연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넌 안 쫒아가냐?]
<이미 어디에 갔는지는 감은 잡히니까요.>
생각해보면 예전에 시리카의 생신을 포함해 아리아가 사라질 때마다 그녀를 찾았던 건 레오나르도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눈치네?]
<회귀 전에도 비슷했거든요.>
그때는 성인에 다다른 나이였고, 정석적인 절차에 따라 성검을 이수받고, 용사의 이름을 이었으니 증상이 덜했지만, 어린 지금으로서는 당연히 받아드리기 무겁고 힘든 부담일 것이다.
[설득할 거냐?]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뭐가 아리아를 위한 건지 모르겠거든요.>
성검을 얻어 용사가 된 미래에서 아리아는 죽었다. 하지만 성검을 포기하고 도망친다면 세계는 결과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최선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리아가 선택하는 것에는 최선을 다해 협력할 것입니다.>
그게 자신이 돌아온 의의였으니까.
***
아리아스필은 지금 바깥 정원 뒤편에 있는 마구간에 있다. 사람들은 정령 때문에 놀라서 뛰쳐나간 말에 아리아가 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테니 어느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휴...”
“제법 화려하게 하셨네요?”
아리아스필은 놀란 나머지, 짚더미를 이불처럼 몸으로 싸맸다.
“...어떻게...”
그 말에 레오나르도는 피식 웃게 되었다.
“...옛날 생각나네요. 시리카 님 생신 때도 이랬죠.”
“...턱시도 입고 춤추자고 했다가, 결국 칼싸움 하게 된 날?”
아리아스필에게는 그렇게 기억되는 날인가,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웃어보이게 되었다.
“그렇게 칼춤 추고... 벌써 2년이네요. 시간이 참 빠르기는 해요.”
옛 추억에 잠기기에는 아리아의 기분은 갑갑하고 불편했다.
“...날 설득할 거야? 용사가 돼서 그 성인이라는 여자랑 몇 년이고 신전에서 막막하게 수행하라고?”
그 말에 레오나르도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리아스필은 결국 레오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울분이 찼다.
단순히 수행에 기약이 없어서도, 용사라는 책무의 무게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레오를 붙잡기 위해 했던 결투가 오히려 자신을 레오에게서 떨어뜨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울분이 찼다.
신이여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뭐부터 설명해야하나...”
잠시 말을 정리하던 레오는 입을 열었다.
“우선 성인 후보이신 루미네 사제님은 남성이세요. 오해할만한 외모지만 본인은 싫어하는 눈치니 가급적이면 그런 방향의 이야기는 자제해주세요.”
그 말에 아리아는 잠시 벙쪘다. 말그대로 황당한 나머지 멍해진 것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한 망상이나 질투, 그리고 견제가 다 혼자서 삽질한 게 되지 않은가. 창피한 나머지, 울분이고 뭐고 얼굴부터 붉어진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용사를 하시라고 설득할 만큼 당위성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윽고 레오나르도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꺼낸다.
“그러니 만약 정말 용사가 되기 싫으시다면...”
꺼낸 것은 마치 과거를 비추는 낡은 거울 같았다.
“...같이 도망치시죠. 저랑 같이.”
차이가 있다면 이 도피는 단순히 하루의 일탈 정도가 아닌, 평생은 함께 해야할 도주였다는 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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