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5 성인-2
혼란스럽다.
“저기 괜찮으세요?”
눈이 유령의 손가락에 찌부러져서?
그건 아니다.
“눈에 초점이 안 맞아... 역시 병실에서 기다리는 편이 나았어.”
눈에 고통이 느껴져서 그런 것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야, 일단 모르는 척 해. 저 년 진짜 사이코야.]
지금 자신이 죽을 때가 됐는지, 옆쪽에서 광명과 함께 떠다니는 천사 때문일까, 분명 이거겠지.
지금 눈 상태가 나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눈빛이 이상하다는 게 아프다는 핑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죄송하군요. 눈에 뭐가 들어간 지라...”
들어간 게 아니라, 아예 쑤셔 박은 정도였지만 지금 적당히 둘러대야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간단히 확인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성검으로 인한 부상도 제대로 확인이 안 된지라 걱정되어서...”
그렇지만 확인도 확실히 해둘 필요는 있겠지. 저게 현자가 눈을 찌부러뜨려 만든 환상인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입니다. 혹시 빈방이 있으면 안내 가능할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아뇨... 지금은 간단히 치료만 받는 거니, 둘이서만 가도록 하죠.”
그 말에 몇몇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분명 처음 보자마자 한 부탁치고는 조금 이상하고 어색하기 때문이겠지.
“레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그 말에 루미네는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는 성녀가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거리가 거리인지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제님!”
성기사가 큰 소리로 외쳐도 루미네는 인자한 미소만을 보였다.
“괜찮습니다. 레오나르도 기사님의 성품과 명성은 익히 들었거든요.”
그 미소에 모두는 경계가 누그러진 것인지 더는 붙잡지 않았다. 옆 방향에 있는 천사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졌지만, 일부러 아는 척은 안 했다.
[봐봐. 저거 인성 나온다니까.]
<닥쳐요. 눈깔을 아주 그냥 파버릴까.>
물론 현자보다는 아니었다. 누구 때문에 이 사달이 났는지 망각한 치매 노인보다는 당연히 미인에 천사까지 돼 자애로워 보이는 성녀가 나은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야만 했다. 성녀까지 그 꼴이면 이 세계에 가망은 없을 테니까.
***
들어간 방은 레오가 실신하고 나서 치료를 받았던 저택의 구석진 병실, 다른 기사들은 물론 사용인들도 잘 오지 않은 끝방인지라 인적도 드물고 조용했다.
“...저기, 레오나르도 씨.”
방문을 닫는 레오를 보며 루미네는 부드러운 말투로 물어보았다.
“예. 루미네 사제님.”
“혹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현자는 그 눈치와 판단에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레오나르도는 익숙한지라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네, 아무래도 상태나 어투로 봐선 그런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싸움으로 얻는 경험보다 대화를 통해 습득한 경험이 판단력을 상승시켜주는 법이었으니까.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뒤쪽에 있는 천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눈의 시선도 다시 올곧게 그녀를 향해 돌렸다.
“저분은 언제부터 보이셨던 겁니까?”
루미네의 표정은 일순 정지했다. 하지만 감정을 다시 진정시키고 통제한 것인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저분이라니, 여기에 다른 누군가가 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말이라도 한번이라도 떨리고 식은 땀 정도는 흘렸을 거다.
그만큼 숨기는 것에 능통하다는 것이겠지.
그에 비해 저기 있는 성녀인지, 천사인지 모를 여자는 온갖 감정을 표정으로 다 표출하고 있는데 말이다.
“경계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저도 13살 때 보인 이후로 계속 숨겼으니까요.”
그럴수록 침착하게 대응해야 서로에게 소통이 원활해질 것이다.
“...설마... 당신도 보이십니까?”
“저분이 어떤 동작을 하고 있는지 바로 맞출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성녀는 약간 미심쩍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능글맞은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슴을 레오나르도의 얼굴에 드이밀었다.
[봤지? 미친 변태년이라니까. 페도 끼도 있다 싶더니... 으휴...]
어째서 인류는 이런 광인들에게 구원 받은 것일까.
참으로 통탄 해야할 일이었다.
“우선 들이밀고 있는 가슴부터 치워달라고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레오가 눈 한번 깜박이지 않은 채, 그녀에게 간접적으로 면박을 주었다. 그 냉철한 말에 그녀는 조금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진짜 보이시는군요...”
“...저도 비슷한 증상이 있거든요.”
[저 년이랑 같은 취급하지 마.]
당연하지 않은가. 다 죽어가는 노망난 유령보다는 당연히 저런 아름다운 천사가 훨씬 좋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였고, 기대감 따위 현자라는 위인 때문에 잘근잘근 짓이겨지었는지 오래였다.
<그럼 차이라도 보여줄 겸 좀 나와봐요.>
[저 미친년 앞에서는 싫다. 이것아.]
전에도 꺼지라고 해도 억지로 주변을 돌아다녔던 양반이 지금 와서 떼를 쓰고 난리였다.
<그럼 그냥 현자님 있다고 말하는 게 낫겠어요?>
그건 그것대로 현자에게 곤란할 것이다.
[...하...그래. 알았다고. 아프다고 엄살이나 부리지 마.]
현자는 정말 마지못한다는 기색으로 영체를 다시 만들어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몸에 힘이 빠지고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아악...”
“괜찮으세요?!”
[괜찮아. 안 죽어.]
이미 죽음의 유경험자인 한 노령의 유령은 루미네의 옆에서 친히 대답해주었다.
“...어...? 목소리가...”
제대로 듣지는 못한 눈치였다. 아무래도 감각적으론 위화감을 느꼈지만 현자의 돌이라는 촉매가 없는 이상 보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있죠?}
그리고 이내 방에 섬광이 일으며 천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렸다. 텔레파시와 유사한 감각이었다.
[내가 묻고 싶다. 이젠 성녀에서 비둘기로 전직했냐?]
“...천...사...인가요...?”
마찬가지로 섬광에 맞은 루미네도 현자가 보이는 것인지 당황한 눈치였다.
{저런 천박한 망령이 천사일 리가 없죠. 반성하세요. 루미네 수사.}
“...아...예... 죄송합니다...”
항상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던 루미네가 저리도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걸로 봐선 ‘저것’도 정상은 아닌 눈치였다.
[너보단 정상적이야. 이 미친년아.]
{보십시오. 저리도 천박한 언변, 전형적인 악령의...}
[남자애한테 가슴골이나 쳐드밀이는 너보단 나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추한 언쟁, 이 자리에 성직자나 마법사가 자신들밖에 없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우선 진정하시고요. 일단 서로 상황부터 간단히 설명해보죠.”
이 불튀는 분란의 신경전에서 레오나르도는 간신히 상황을 다독였다. 그리고 최대한 편안히 상황을 주도해나갔다.
“우선 저희 쪽은...”
[잠깐, 저 비둘기 쪽에서 먼저 하라 그래.]
무슨 애새끼도 아니고, 다 늙은 노인이 그딴 쓸데없는 자존심의 견제를 날렸다.
“아, 그럼 저는...”
{잠깐, 저희 루미네 수사에게 그런 심한 모욕을 하다니... 대답할 필요 없습니다. 수사.}
뭔가 맞는 말을 하는 것도 같은데, 묘하게 분란을 일으키는 기름 같은 발언이었다.
[걔 말고 다 뒤졌는데 관짝 안 들어가고, 조류로 퇴화한 그쪽 말이야.]
...결국 자기 욕 아닌가?
그 무식한 모독에 레오는 하는 수 없이 한 수 접기로 했다.
“...저희 현자님이 잘못했으니 설명 먼저 하겠습니다.”
[야야...! 이건 자존심 싸움...!]
“자존심이란 게 있으면 좀 닥치세요. 품위를 매시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양반이.”
그 말에 현자는 짜증이 난 듯 머리를 싸맸고, 성녀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현자가 곁에 있는 게 아까울 정도로 상냥하고 덕이 있군요. 혹시 저희 빛의 교단에 입교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죄송하지만, 저 악령에게 타락해버린 이상 그건 어려울 것 같군요.”
{저런... 빛의 은혜가 있기를...}
옆에서 저 악령이 중얼거리지만, 지금은 무시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부득이하게 회귀에 대한 사실까지도 설명해야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레오나르도 군은 미래인에 현자의 돌을 얻어 과거로 오게 된 건가요?”
세부적인 내용은 부족했지만, 그 정도면 적절한 요약이었다.
“믿기는 어렵겠지만, 그렇습니다.”
{...기구한 운명이로군요.}
성녀는 진심으로 슬픈 표정을 지으며 한 사람의 애도를 표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종과 함께 2년이 넘는 세월을 버텼을까요... 참으로...}
그쪽도 물론 동정받을 만한 내용이었다.
[닥쳐. 너도 마찬가지잖아. 광신도.]
{저렇게 삿된 말이나 일삼는 악령에게 시달리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흐..흑... 자기 장기를 봐달라며 달려들기도 했습니다... 으흑...”
지금도 그것 때문에 트라우마로 내장 요리를 잘 못 먹는다.
[됐고, 너네들 차례다. 기분 더러우니까 얼른 씨부려.]
“...아...! 예!”
역사적 위인들이 만들고 있는 추태의 개판에 간신히 정신을 붙든 루미네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들은 현자는 이내 고개를 끄떡이며 감상을 말했다.
[저년은 뒤지고도 이상 성욕자네.]
{삿된 자에게는 삿된 것만 보인다더니... 안타깝...}
[참 한결같이 광신도에 페도, 마조, 사디스트야. 이 정도로 골고루 미친 인간은 찾기도 힘들어? 그치?]
차마 긍정도 부정도 못하겠다.
{닥치세요!!}
드물게 소리를 지르는 전 성녀이자, 현 천사, 그리고 이는 현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생기게 되었다.
[야, 당초에 7살 애한테 달라붙은 거부터가 페도 새끼지.]
{당신에게는 그런 생각밖에 안 들겠죠. 저는 그저 순수한 교리와 선의를...}
[그래서 굳이 어린애들이 있는 매시각마다 대중 욕탕을 찾아갔냐?]
그 말에 잠시 움찔하는 성녀, 천사의 날개는 급격히 퍼덕거리게 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
[루미네라고 했나? 신전의 대성당에 가면 거대한 고목 나무 있거든? 거기에 검은색 뿌리인 부분 파봐. 거기에 저 페도년 일지 베껴서 적어놨으니까.]
뭔가 의심하기는 몹시 자세하고 섬세한 지리 설명이었다. 실제로 옆쪽 천사가 흥건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걸 필사했습니까?! 어디까지 추악한 겁니까?! 당신은!!}
[그 추악한 일지의 주인이 댁인 건 알지?]
구분 짓기 힘드니 둘 다 추한 걸로 했으면 좋겠다. 정말.
[어린 아기한테는 자기 젖탱이에 우유 묻혀서 처먹였던 새끼 어디서 깨끗한 척이야. 젖병이라는 개념을 몰라?]
{닥치세요!!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요!!}
[까놓고 말해서 저 애도 네 취향이니까 고른 거지?]
루미네가 저렇게 생물을 향해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건 처음 보았다. 루미네도 어느정도는 저 성녀의 배덕에 눈치챈 눈치였다.
그랬기에 루미네가 저 정도로 해탈하지 않았나 싶다.
[야, 그리고 뭐? 건전한 포교? 범죄자들 경전으로 패고 십자가 날로 찔러서 입교시킨 건 사회적으로는 고문이야.]
{거짓부렁입니다! 듣지 마세요. 루미네 수사!}
[그러고 나서는 치료할 때는 고통도 공유받으면서 혼자 발정하던 사디스트 마조년이라고. 저 년이.]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루미네와 친해지게 된 계기에 부디 저 치녀의 반열에 든 천사의 개입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용이 솟듯 샘솟았다.
[그래, 뭐 덕분에 신자는 많이 늘었지? 와 대단해! 역시 성녀!]
{입 다무세요!!}
[그럼 제대로 반박을 해봐. 야, 그러고 저년 주정 부릴 때는 더 골 때리는데 내가 살다살다 노란색 성수는 처음 봤거...]
퍼억
전 성녀의 분노가 담긴, 천사의 일격. 유령이었던 현자의 얼굴이 날아간다.
“...저...천사님?”
{악마의 말을 일삼는 악령을 제령했습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이젠 더는 알고 싶지 않으니 둘 다 저승으로 꺼졌으면 좋겠다.
[...이 년이 선방을 날려?]
다시 형상을 되찾은 현자의 영체는 이윽고 마나탄을 투척했다.
{쿠헥...!}
[아예 통닭으로 만들어주랴?]
레오는 자신의 마나를 썼음에도 딱히 별말이 없이 그 싸움을 구경했다.
“...저기...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옛 위인들이 되살아나 격전을 벌이는 걸 보며 루미네는 조심히 물었다.
“말린다고 말을 들을 분이라면요. 그렇습니까?”
루미네는 눈을 살짝 흘겨보며 다시 대답했다.
“...아뇨.”
“그럼 그냥 두죠.”
어차피 재밌는데, 차라리 저 천사나 악령 중 한 명이 아예 재기불능이 되면 나은 것 아니겠는가.
수긍한 루미네는 옆에서 진귀한 격투 경기를 함께 관람했다. 이리도 귀한 안주가 있는데 술이 없는 것이 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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