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0 성검-2
“...그게 무슨 말이야?”
아리아스필은 정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농담이라면 오빠라는 존재를 검으로 말소할 것이다.
하지만... 저게 만약...
“...너도 몰라...?! 나도 방금 들었단 말이야...!!”
늘 여유가 있었던 리오스가 드물게 당황해하고 있었다. 농담이나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설마...”
아닐 것이다. 마탑에서의 격전 이후 그런 약속까지 받아놨고, 꿈과 현실에서 동시에 입맞춤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레오가 자신을 배신하는 것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설마...알프레드가...”
왠지 모를 죄악감에 짓눌린 리오스는 혼자서 ‘알프레드’의 이름을 여러번 중얼거렸지만,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웠던 아리아에겐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닐 거야... 왜... 또... 레오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상상이 계속 떠오른다. 설마 지금 자리에 없는 것도 그와 관련 있지 않을까하는 불길한 망상이 떠오른다.
“...할아버지...!”
혼란으로 공황으로 치닫기 직전, 아리아의 눈에 자신의 조부가 들어왔다. 평소라면 저택에 잘 오지 않는 마르켄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에, 이해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레오나르도는 어디에 있지?”
조부인 마르켄도 제법 어두운 표정으로 레오를 찾았다. 차라리 레오를 찾아 평소처럼 혼이라도 냈으면 좋겠다.
“크리스 님...!”
이번에는 고모를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평소에 있는 겉멋이 들은 표정이 아닌, 죄책감이 깊게 깔린 얼굴이었다.
“...설마... 아직 안 온 것인가?”
“...왜요... 도대체 왜 찾으시는데요...?”
거의 아리아는 울먹이며 흐느끼기 직전이었다. 제발 뭐라도 좋으니 그 이유만큼은...
“...미안하다...”
사과가 나온다. 불안이 확신으로 변하며 절망을 짜내어온다.
“...레오나르도는... 기사직을... 반납하겠다고 했다...!”
간신히 전한 고백, 목청과 언성을 높여야만 힘겹게 이 무거운 사실을 전달할 수 있었다.
“...왜요...?”
고백을 듣자 든 생각은 분노도, 하물며 절망도 아니었다.
“...왜냐고요...”
순수한 의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원로회의 문책 때문이었다. 거기서 말한 죄값을 치른다는 명목으로...”
“...죄요...?”
누가 그 소년에게 잘못을 논하는가.
“레오는 열심히 잘 해왔잖아요...”
모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 자리의 누구보다 열심히 했잖아요...!”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요...! 도대체... 왜 아무도...!!”
레오나르도에게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하주지 않은 것인가.
“어디에요... 누가 그랬어요...!”
누가 자신의 자신의 기사를 내쫒는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자신의 남자를 쳐내는가.
“원로회 측에서도 혼란스러웠다. 아마 이런 결과를 기대하고 문책한 것이 아니겠지.”
그런 변명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남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놓은 노인네들의 사정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원로회는 어디에 있는데요...”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얼어버렸다. 정령들이 그녀와의 감정과 공명한 것일까, 공기의 온도조차 냉랭해졌다.
“원로원들에게 따져도, 사과를 시켜도 의미는 없을 거다. 레오나르도는 이미 우리들이... 한 짓에 환멸을 느꼈을 테니까.”
아리아가 말한대로 레오나르도는 그 나이대 이상으로 출중한 일을 해냈다.
단지 시기한 한심한 어른들이 그 소년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을 뿐, 거기에 환멸하지 않는 걸 바라는 건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그게 다예요...!? 레오나르도는 어떤 상황에도 저를...!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는데...!!”
아리아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우린 그냥...! 레오를 포기하냐고요...!!”
“...매번 너희들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 같아 미안하군.”
마르켄은 검은 천으로 둘러싼 물체를 내밀었다.
“그 녀석을 붙잡고 싶다면 이걸 받아라.”
“...붙잡는...다고요...”
“우린 자격을 잃은 지 오래다. 설득할 말한 능력이 있는 인물도 아니지.”
천을 벗기자 적색의 섬광이 주변에 빛나며 화염의 열기를 뿜어내었다. 타오르는 불덩이가 검날의 형태로 제련되어 있었다.
“...이건...”
“하지만 아리아, 너는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자격과 능력을 모두 가진 사람이다.”
용암검 화청이었다.
“정령술을 배웠다면 분명 화청도 다룰 수도 있겠지. 화청을 쓴다면 레오나르도에게 이길 가능성도 올라갈 거다. 그러니...”
터억
그녀는 화청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데려올 거에요.”
아리아가 잡자 화청의 적색 칼날은 푸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의 푸른 눈도 함께 이글거렸다.
감정과 불꽃의 온도로 주변은 열기로 가득찼다.
***
달이 저물고 해가 천천히 내일의 미래를 오늘의 현재로 가져왔다.
새어들어오는 햇빛은 나무 그루터기를 목침으로 삼고 있는 레오의 잠을 깨우며 갈 곳을 비추고 있었다.
[일어나. 가야지.]
“그래야죠.”
옷에 묻은 낙엽과 흙먼지를 털며 레오나르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향하는 곳은 자신의 일터이자 집은 라인하르트 가의 저택.
[머리 박으면서 옷 벗을 각오는 됐냐?]
<차라리 뒤질 때까지 맞죠.>
[그냥 맞지 말고, 즐기면서 맞으면 용서해줄 게다. 신음도 잘 내보고 그래.]
힘든 상황일수록 즐기라는 것일까, 아니면 변태적인 개소리일까. 아마 후자겠지.
“...후...”
저택의 정문에 도착하자, 넓은 정원이 보였다. 저 초원과 같은 광활한 정원도 이제는 앞마당처럼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특별하게 느껴지는 점을 찾자면 정문에는 경비병과 정원사 대신에 한 소녀가 서있었다는 상황에 있었다.
[아주 벼르고 기다렸는데?]
아리아스필이었다. 정문에 등을 기댄 것이, 한두시간 기다린 정도가 아니었다.
[살기는 글렀다?]
<각오는 했다니까요.>
아마 진짜 죽을 때까지 맞을 것이다.
“왔구나.”
그녀는 감고 있는 눈을 뜨며 자신의 기사를 그만둘 소년을 바라보았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눈치네요.”
태연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한 말, 그 말에 아리아스필은 잠시 눈을 감았다.
“...”
잠시 고요한 바람 소리가 지나갔다.
“정말 갈 생각이야?”
바람을 타고 그녀의 질문은 날아왔다.
“가는 게 아니라, 있지 못하는 것 뿐이죠.”
본인에게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타인이 보기에는 다를 것은 없었다.
“...그래?”
하지만 아리아스필은 이해하도록 노력했다.
터억
저 소년의 방식을, 그녀 손의 장갑은 그에 대한 증거처럼 소년에게 날아가 쥐어졌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계시죠?”
“이거라면 나도 납득할 수 있어.”
풋, 그 방식에 레오는 자기 모르게 웃고 말았다. 비웃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상쾌하고 맑은 웃음이었기에 아리아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하...미안해요. 조금 옛날 일이 생각나서요.”
“...너랑 나랑 처음 만났을 때도 이랬었지.”
생각해보면 그날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기이하고도 길었던 연의 시작은 그 결투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리아스필은 모를 것이다. 레오가 기억한 추억은 시작이 아닌, 일어났고 일어나서는 안 될 끝에 있었다는 것을.
“...그럼 대련장으로...”
“아뇨. 장소는 바깥이 좋겠습니다. 옛날처럼요.”
“...좋아.”
끝과 시작이 원형으로 이어졌다. 유한한 소년의 삶이 잠시 무한에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
전투의 장소로 택한 곳은 라인하르트에 있는 작은 뜰, 작다고 할지라도 가문의 크기를 생각하면 대련을 하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사람들이... 제법 있네요.”
주변에는 라인하르트 가의 미래를 앞서 이끌고 있는 기사들과 아리아스필의 가족들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라인하르트 저택에 소속된 모든 사용인들조차 전투를 보기 위해 뜰에 모여 있었다.
“정말... 그만둘 생각인가?”
선배였던 알폰스는 레오에게 다가가며, 믿고 싶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이렇게 허무히 떠나는 건 아무도 바리지 않았다.
“확신할 수는 없군요.”
하지만 레오는 자신의 의중을 숨기며 뜰의 중심으로 향했다.
“이 대결이 끝나면 알겠지만요.”
아무도 그런 레오나르도를 붙잡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는 건, 기사도, 용병도 아닌 수라였으니.
일개 사람들이 붙잡을 것이 아니었다.
“시작은 이 장갑이 떨어지는 걸 신호로 하죠.”
레오나르도는 아리아가 던진 장갑을 들어보이며 물었다.
“...알았어.”
“그럼...”
레오나르도는 장갑을 하늘 위로 높게 던졌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상승과 동시에 낙하를 시작한 장갑을 향했다.
때아니게 불어오는 바람, 장갑의 방향이 흔들리며 바닥이 떨어지는 속도가 불규칙해진다.
그리고 뒤틀린 궤적에서 장갑이 떨어지자,
콰아아앙!!
울리는 굉음과 섬광, 의식의 파장이 장갑으로 집중된 순간, 터진 섬광의 음폭이었다.
의식이 끊기며 신경이 마비된다. 인간의 정신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처하면 순간적으로 흐려진다.
특히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는 특히나.
카아아아앙!!
섬광과 음파 마법을 더블 캐스팅을 사용한 레오나르도는 그대로 검격을 날렸다. 기습적인 돌진에 아리아는 선제 공격은커녕 방어에 급급했다.
“감각만으로 막는다라... 여전히 무서운 재능입니다.”
시야도, 청각도 아까의 충격으로 봉인되었다. 사실 정신까지 마비되는 것이 정상적이었지만, 아리아스필의 존재는 이미 정상의 궤도를 벗어났다.
“비겁하게 뭐하는 짓이지...!? 너답지...!”
“비겁? 당연하죠.”
레오나르도는 돌려차기로 우회해 충격을 날렸다. 유연한 반격에 아리아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전 이제 기사도 아닙니다. 당신들의 ‘정정당당’에 맞춰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죠.”
이게 레오나르도라는 존재가 싸워온 방식이니까.
“그럼 죽을 때도 비겁하다는 이유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습니까?”
“...죽을 때... 너 설마...!”
대답은 하지 않는다. 저런 문답을 하는 것보다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나을 것이다.
“...상관없어...!!”
아리아스필은 다시 일어나며 준비해뒀던 화청을 뽑아들었다. 시야도, 청각도 완전하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역으로 당할 수 있었다.
“화청입니까? 나름 준비는 하셨군요. 나름은요.”
화르르륵
푸른 불꽃이 화청에 깃들었다. 열기만으로도 그 위력과 힘이 체감되었다.
“처음 다루는 때부터 청색이라... 재능 하나는 대단하셨죠.”
콰아아아앙!!
이윽고 지면을 불태우며 날아오는 화마, 청염의 검기에도 레오나르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윈드 아머-개조형 소드 오러]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1서클의 바람 방어 마법을 2서클의 형태로 개조시킨 공격 보조 마법, 검에 둘러진 바람에 따라 푸른 화염은 점차 레오의 검격에 휘말렸다.
그리고 이내 레오가 검에 둘린 바람의 검기를 날리자 그대로 화염도 함께 방출되었다.
방출된 화염 덩어리에 아리아는 또다시 역습을 당했다.
“아리아스필, 당신이라면 절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그에 대조하는 차가운 어조, 주변에 있는 이들마저 저런 소년은 눈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포기하시죠.지금 당신의 검엔 제가 찾는 목표는 없으니까.”
지금 겨누어진 검은 한없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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