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9 성검-1
원로원들이 하려고 한 것은 레오나르도의 공을 깎아내리고, 죄를 들추어내어 자존감과 명예에 흠집을 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레오나르도는 유능한 인재를 편안히 주무를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본목적은 레오나르도라는 존재의 편안한 이용일 뿐, 레오나르도의 죄에 대한 문책은 표면적인 핑계였다.
그렇기에.
[오호, 머리 좀 썼다.]
이런 결과만큼은 절대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그게 무슨...!”
“원로회의 청문을 통해 확신은 굳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자리는 저에게 과분했던 것 같군요.”
크리스와 마르켄 모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들도 어떤 처벌이 내려도 변호를 해줄 의항은 충분히 있었지만, 저런 식으로 스스로 사직할 의사를 밝힐 줄은 도저히 예상하지 못했다.
“사직서는 추후에 가주님을 통해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원로회의 귀중한 지혜와 시간을 나누어 주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잠시만...! 기사직이 그리 멋대로 그만둘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나?!”
[은퇴한 채 골방에 박힌 니들이 할 말은 아니야.]
직설적인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우회적으로 포장해야겠지.
“본디 전 기사가 될 수도 없는 몸, 이렇게 된 것은 필히 일어날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원로원들을 바라보았다.
“용사 가문의 기사도와 신념을 함께 잇는 자리는, 제 노력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이었군요.”
약간의 자조와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면 효과는 배가 된다.
“그럼...! 전속 기사...!! 전속 기사는 어떻게 할 거지?!”
용케 생각해낸 게 그건가? 노인치고는 참 귀엽고도 찌질한 발상이었다.
“필요하시다면 후임자가 오실 때까지는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가씨에게도 이 사실은 말씀드려야 하니까요.”
“그렇게...! 나갔을 때 여파는 생각도 안 하나?! 기사직이 그리 쉽게 얻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나본데...!!”
흥분한 나머지, 격앙된 어투로 원로원들은 계속해서 외쳤다. 고령의 그들이 만들어낸 품격과 예의는 고작 소년의 사퇴에 무너져내렸다.
“쉽게 얻어졌다고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생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런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제가 부족하기에 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죄송하지만... 폐만큼은 끼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습니다.”
사실 레오나르도가 2년 동안 만들어낸 성과만 놓고 보면 원로원들이 쌓은 위업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로원님들의 말씀대로 예상치 못한 죄와 실수가 많았군요.”
마지막으로 화살을 원로회로 돌린다. 이걸로 저들도 인지했을 것이다.
[지들이 다 망쳤네.]
<항상 그래왔죠.>
아리아스필이 홀로 죽은 것, 그걸 가만히 방관한 원로원의 우둔함을 레오나르도는 단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죄는 죽음으로도 씻길 수 없을 정도로 썩어있는 녹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퇴하면 명예로울 거라고 생각하나!? 명예도, 돈도...!”
“괜찮습니다. 그것 또한 저의 업보이니 달게 받아야겠죠.”
이 말은 종지부였다.
<당신들이 어떤 것으로 날 회유해도 난 따르지 않을 거다.>
그 의미가 담긴 종지부.
자신은 원로원의 기사 따위가 아닌, 용사의, 아리아스필의 유일한 기사니까.
“그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이후 원로회는 혼돈과 격앙의 도가니가 된 채로 대책 회의를 벌였다.
***
크리스 라인하르트는 아까의 동심 파괴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원로회가 레오나르도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스스로 기사직을 포기하게 만들 거라고는 예상도, 상상도 하지 않았다.
급히 그녀는 열린 대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보이는 건 복도를 걷고 있는 소년, 그 소년의 어깨를 붙잡으며 크리스는 외쳤다.
“성급한 판단으로 가지 마라...! 아직 기회는 있다...!”
“그런 기회도 제가 받기엔 과분하죠.”
소년은 뒤를 돌아보며 가볍게 웃어보인다. 간신히 짜낸 웃음은 체념과 슬픔이 억지로 입꼬리를 붙잡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어떻게든 변호해보겠다...! 스스로 사퇴한다면 네 잘못으로 끝날 뿐이야...! 아무도 납득하지 않을...!”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몸을 돌려 제대로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어째서인지 초점도, 생기도 없었다.
“사실 저도 고민 중이었습니다. 제가 아리아스필 님 곁에 있어도 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 말에 순간적으로 크리스의 손힘이 풀어졌다. 항상 자신만만한 말과 그에 상응하는 실력을 보였던 레오나르도였다. 어떤 위기도 타파하고 극복했던 레오였기에.
그렇기에 자신들은 안심하며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는 고민이 없을 거라고.
“저는 호위 기사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제가 아닌 다른... 흑암님이나 집행 기사단장님이라면 더 나은 경험을 줄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고민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20년조차 살지 못한 어린 소년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리고 원로원 님들의 말씀을 들으니, 수긍이 되더군요. 저는 아리아스필 님을 돕기에는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었다. 크리스 눈에는 레오나르도가 유일하게 아리아스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저는 가문과 아리아스필 님께 의지했을 뿐이었요. 어리광을 부리며 나약해진 거죠.”
당연했다. 가문에 왔을 때는 고작 13살, 그리고 지금도 15살이라는... 청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그런 소년이 의지하는 것으로 욕을 받아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전 참 운이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아 아가씨에게 시비를 걸고 싸운 것은 제 일생 최고의 행운이었죠.”
행운은 영원하지 않았고, 행복은 고통에 잠겼다.
“그분은 제 세계의 전부였고, 제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자신의 세계는 다시 깨졌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빛이 사라지니 눈에 보이는 것 따위는 없었다.
“그러면 더...! 더 남으려고 노력을...!!”
“그만둬라.”
뒤로 나온 것은 마르켄이었다.
“단장님...!!”
휘익
던져진 것은 흰색 통이었다. 레오나르도는 그 통을 열어보며 마르켄을 번갈아 보았다.
“귀환용 스크롤이다. 기사를 그만뒀으면 궁시렁거리지 말고 꺼져라.”
“배려 감사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스크롤을 피며 순간이동을 발동시켰다.
“안녕히 계세요.”
레오나르도는 그대로 빛과 함께 사라졌다.
“아버지...!!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돌아가기 위해선 스크롤이 필요하니 준 것일 뿐이다.”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크리스는 전례없이 격앙하며 외쳤다. 평소에게는 잘 거스르지도 못하는 아버지 마르켄에게 말이다.
“...크리스티나, 넌 13살 때, 그리고 15살 때 뭘 했지?”
“...그건...”
떠올린다. 13살 때는 멋진 이명을 만드느라 한나절을 허비하는 게 일상이었고, 15살 때는 안대나 붕대를 액세서리로 두르고, 기술명을 짓는 것이 재미였다.
지금 생각하니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흑역사였다.
“난 가주로서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지. 당시에는 불평도 많이 하고 일탈도 종종 했었다.”
이윽고 떠오르는 건, 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저 아이는 어떻지?”
그 질문에 말문은 막혔다. 그 소년을 보면 당연하게 여긴 삶마저 부끄러워졌다.
“부모는 타계하고, 10살 때부터 지금까지 피와 칼이 난무하는 자리에 계속 싸워왔을 거다.”
저 소년의 고통과,
“가문에선 평민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고아라는 사연만으로 멸시받았지.”
고뇌가 하염없이 무거웠기에.
“그럼에도 저 아이는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어. 울지도,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지.”
그럼에도 묵묵히 살아가며 싸워나갔던 한 소년의 의지를,
“우린 그걸 너무나 당연히 여겼어. 그랬기에 우린 의지할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 것이지.”
제대로 보지도, 인지하지도 못했기에.
“인정해라. 우린 저 소년의 세계를 배반했고, 붙잡을 자격도 없어.”
말문이 수치로 막힌다.
***
그 시각 레오는,
<제 연기 어땠습니까?>
[알곤 있었지만, 지금 바로 태세 전환하니까 소름 돋는다.]
연기의 절정에 실실거리며, 이후에 나올 결과물에 기대가 찼다. 아마 연극으로 치자면 가장 믿었던 조력자가 배신한 것만큼 충격적인 반전일 것이다.
<상관없잖아요? 그 늙은이들은 그래도 싸요.>
원로원은 현자 말따마 뒷방 늙은이들이 모여 대우해달라는 노인정이었다.
그들이 처먹는 연금만 해도, 라인하르트의 모든 기사의 봉급을 2.2배를 올릴 수 있는 정도였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겠다는 명목 하에 가문에 지속적인 간섭을 이어온 기생충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노인정이 유지되고 있는 까닭이 뭐겠습니까?>
[뭐겠냐? 당연히 나이의 지혜를 빙자한 짬밥이겠지.]
그 말대로 그들은 라인하르트에게 영광을 줬다는 이유로 원로회에 있는 것일 뿐, 표면적으로는 지혜를 나누어주겠다는 명목으로 있는 것이었다.
<근데 만약에 현역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새나라 어린이를 문책시켜 사퇴하게 만들었다면? 그 지혜는 뭐가 될까요?>
[니 입으로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나락으로 갔겠지. 그 꼰대짓 봐주던 애들도 옳다구나하고 물어뜯을 걸.]
명확한 정답과 함께 이후에 있을 여파가 예상한 현자였다. 역시 이런 간사한 짓에는 현명한 인간이었다.
<원로회도 사실상 아리아를 죽인 원흉 중 하나입니다.>
용사가 된 아리아스필은 계속된 전투와 악마 사냥에 시달린다.
분명 현명히 적재적소를 배분해 일을 나누었다면 원만히 해결될 일도, 그들은 단지 아리아가 용사라는 이유로 전부 떠넘겼다.
[...늙은 개새끼들이네.]
<차라리 그거였으면 그나마 처맞는 걸로 끝났겠죠.>
레오나르도가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아리아의 상태를 알린 언론에조차 통제를 건 것이었다. 이유는 라인하르트의 믿음이 흔들리고, 민중들이 두려움에 떨 수 있다는 하찮은 핑계 때문이었다.
[...너...설마...]
이미 늦었고 지난 일이었다. 바꿀 기회는 현재에만 존재했고, 과거는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사실 가장 잘못한 건, 자리를 비운 저지만요. 차라리 이렇게 말로만 사퇴한다고 했을까봐요.>
농담이었지만,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었다. 거기서 뼈처럼 욱여넣어진 죄책감과 자조는 영혼의 피와 살을 뒤틀어놓았다.
[...너 잘못 아니다.]
<하, 현자님이 보기라도 했어요?>
[그럼 넌 내 인생을 보기는 했냐?]
그 일갈 같은 물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다지 보고 싶진 않네요.>
[나도 마찬가지다. 이것아.]
서로에게 박는 욕, 나름 정겹게 느껴지는 건 이것도 적응했기 때문인가.
[넌 열심히 했다. 부끄럽지 않게 사랑받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소년의 어깨는 조금, 그리고 확실히 들썩였다.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는 건 저 남자가 유일하게 남은 자존심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니까 조금은 널 위해서 열심히 살아. 솔직히 사람이 안 쪽팔리면 신이나 시체지, 그게 인간이냐?]
“하...”
헛바람처럼 터지는 웃음, 흐느낌도 아닌, 울음조차 안 나오는 한 현인의 조언이었다.
<그게 위로인가요?>
[위로겠냐?]
<...네, 위로네요.>
조금은 기운이 났다. 살다보니 마법의 시초에게 위로 받는 날도 왔다.
[오글거리는 소리는 넣어두고, 근데 하나만 물어도 되냐?]
<개소리만 아니면요.>
[아리아한테는 뭐라고 말할 거냐?]
잠시 불안한 정적이 흘렀다.
“...나중에 대가리 박고 사과하죠 뭐.”
사실 그건 계획이 없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차라리 알몸으로 절을 해라. 그게 생존 확률이 더 높다.]
저 사람은 기껏 올려놓은 점수를 배로 깎는 기적의 교환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리아스필이 그렇게 박정한 사람도 아니고, 진짜 떠나는 것도 아닌데 호들갑을 떨겠는가.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여기서 야숙해야겠네요.”
[그래, 그래도 목숨은 중한 거지.]
절대 아리아가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단지 오늘 날씨가 선선하고, 저택 분위기도 심란해질 테니 자리를 피한 것일 뿐.
***
그 시각 라인하르트의 저택.
“레오!! 레오나르도!!”
아리아스필은 아침부터 사라진 자신의 전속 기사를 찾고 있었다.
사실 레오가 원로회에 간 건 가주와 이 일에 관여한 인물들만 알았을 뿐, 아리아에게는 비밀로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찾았어?>
[아니, 주변에는 아예 없어.]
정령들에게 물어도 대답은 ‘없다’로 일관되었다.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디로 간 거지...?”
솔직히 화가 난다기보다는 걱정되었다. 이런 때 레오는 항상 이상한 일이나 위험한 일에 휘말렸기 때문이었다.
“아리아아아아아!!!”
그 순간, 오빠인 한 등신이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왜? 좀 조용히 해. 지금 레오 찾느라...”
“레오가 기사 그만둔다는 게 무슨 말이야아아아?!”
그날 아리아의 세상엔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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