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67화 (67/248)

EP.67 원로원-2

설원에선 격전이 이어졌다.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정권이 내질러진다. 피했음에도 레오의 몸은 부들거린다. 공포 같은 건 하찮게 느껴질 주먹의 풍압이 몸을 밀어낸 것이었다.

일격이라도 공격은 허용해서는 안된다. 알프레드의 성격을 생각하면 죽이지 않겠지만, 실력을 생각하면 죽이지 않고도 충분히 제압할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냥 농담이나 씨부려. 농담 암살술 뒀다 어디에 써?]

<쓰고 싶어도 못 써요.>

알프레드의 귀, 정확히는 고막 부위에는 오러가 둘러져 있었다. 아마 레오가 농담을 하든 도발을 하든 제대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왜 진심으로 막는 건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검의 형태가 변했군요. 같이 성장한 것 같아 기쁩니다.”

이어지는 알프레드의 상냥한 말투, 아마 로우킥을 날리면서 말하지만 않았더라면 웃으며 화답할 수 있는 칭찬이었다.

‘...그럼 도박을 해보는 수밖에...’

레오는 검의 길이를 최대한 늘리고 고의적으로 휘게 만들어 채찍과 같은 공격을 날렸다. 동시에 화력이 높은 마법도 연발했다.

“화려하군요. 마탑에서 배운 건가요?”

유효타를 내기보다는 거리를 벌리기 위한 위협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 공격에 알프레드도 거리를 벌렸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성장한 ‘검은 돌’의 능력을 써보는 수밖에 없었다.

검이었던 검은 돌은 액체처럼 유연히 변하더니, 촉수처럼 팔에 말아져 감쌌다. 가죽과 철제 건틀릿의 중간 형태인 장갑이 레오의 손에 착용되었다.

“호오, 격투로 승부를 볼...!”

콰앙!!

지면에 내리꽂아지는 건틀릿의 충격, 정면으로 치고 들어왔음에도 기습적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거 지금 쓰게?]

<한 방 먹이려면 이거밖에 없죠.>

강화된 검은 돌의 능력, 그건 신체와의 연결 및 융합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마나를 먹고 성장한 덕분일까, 검은 돌의 일부는 체내와 연결해도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게 지금 개량한 신기술.

《검은 돌-붉은 선 [5%]》

붉은 선, 검은 돌을 육체와 연결하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기술, 위험한 만큼 아직은 신체의 5%가 한계였다.

[그런 위험한 미완성 기술을...]

장갑의 겉면에 밝게 빛나는 붉은 선처럼, 지금 레오 자신의 손 또한 혈관이 터지기 직전이 몰아가졌다.

혈관 한 줄마다 혈압을 높여 평소 사용하던 오러와 신체 모두 한계치를 높이는 도핑 작용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작 그거 때문에 쓰냐...]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 납득이 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저 노인네한테는 무리야. 레벨이 다르다고.]

그건 사실이었다. 검술도 아닌, 격투술로는 그를 도저히 꺾을 수 없었다. 그 증거로 레오 자신이 공격을 밀어붙이는데도 불구하고 알프레드에게는 스치지도 않는다.

알프레드는 도핑된 자신의 속도에 적응하면, 즉각적으로 턱을 쳐 기절시킬 것이다.

<맞아요.>

진동이 느껴졌다. 지진처럼 느껴지는 진동은 격전 때문에 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격투술로는 그렇죠.>

하지만 난전만큼은 레오나르도 자신이 유리했다. 회귀 전이든, 지금이든 말이다.

“...이 진동은...”

알프레드는 귀를 막은 오러로 감각을 강화시켰다.

“확실히 알프레드 씨는 강해요. 격투전으로 가면 제가 지는 건 자명했습니다.”

이내 그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산 중턱에서 밀려들어오는 눈의 파도였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알프레드 씨도 그걸 알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기에 자신을 제압하는데 집중할 것이다. 눈사태의 소리는 오러로 막은 귀로는 들을 수 없을 테고, 그로 인해 생기는 작은 진동들은 격투의 충격으로 숨긴다.

“아까 날린 마법은 이걸 위한 전초전 때문이었군요.”

아까의 마법들도 눈사태를 일으키기 적합한 지형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초석, 회귀를 통해 이곳의 지형을 미리 알아둔 덕분에 쓸 수 있는 전략이었다.

“훌륭합니다. 마음 같아선 정말 당해주고 싶군요.”

알프레드는 주먹을 쥐더니 눈사태를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파도를 맨손으로 파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참 난처한 노인을 적으로 두었다는 걸 되새길 수 있었다.

“자, 이제 레오 군...!”

하지만 이것도 상정한 내용이었다. 이미 자신은 알프레드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퍼억!

주먹은 얼굴에 적중했다. 서로의 팔이 교차하며 내리꽂아진 주먹, 양쪽의 공격은 엇갈리며 이내 서로의 안면에 마주했다.

“크악...!”

기습적인 공격에도 알프레드 카운터에 레오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눈을 막는데 정신이 팔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턱이 나가 그대로 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각오 덕분일까, 그에 대한 보상은 톡톡히 치를 수 있었다.

“한 방... 먹으셨네요?”

알프레드는 맞은 뺨을 어루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맞았다고 한들 부러지긴커녕, 멍도 안 들고 피부가 약간 붉게 변한 정도였다.

“예, 한 방 먹었군요.”

알프레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레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의 승리입니다. 레오나르도 군.”

레오나르도는 그 손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격으로 몸이 약간 떨리긴 했지만, 못 버틸 정도도 아니었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집사이지만, 때때로 원로원 측에선 이런 식으로 시험하라 명령하는 때가 종종 있어서 말이죠.”

“아뇨. 괜찮습니다.”

레오는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씨익 웃어보였다.

“집사는 집을 지키는 기사 아니겠습니까?”

참고로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저 노인은 웃다가 쓰러진 것일까.

통신 장치를 통해 보던 원로회의 원로원들 또한 그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다.

농담 암살자의 전설은 (원치 않아도) 계속 되었다.

***

알프레드는 귀환용 스크롤을 사용해 먼저 돌아갔다. 레오 자신에게는 무운을 빌어주며 비밀은 꼭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덤이었다.

아마 레오가 급히 전기 충격으로 웃음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호흡 곤란으로 실신했을 테지만, 그건 끝난 일이니 굳이 꺼내 곱씹진 않았다.

“그럼 어디...”

레오는 눈보라가 일는 설원에서 시력에 힘을 주었다. 안개와 같은 눈의 장막에 희미하게 보이는 잿빛의 건물, 의심할 것도 없이 저곳이 지금 향해야 할 목적지였다.

[용사 가문도 어지간히 미쳤구만. 나 때는 원로원은커녕 저런 저택도 없었는데.]

사실 현자의 말도 이해는 되었다. 아마 지금의 용사 가문은 초대 용사인 루벤 라인하르트와 부정적인 면으로 판이하게 삐뚤어졌다.

용사가 세웠던 업적은 현재로 와선 단지 권위를 살릴 도구로 전이했으며, 용사가 구했던 세상은 그 이상으로 다시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이래서 자식을 안 낳아요. 부모 속 썩여볼 줄은 알지, 효도는 항상 불로 지지듯이 해요.]

연애라도 하고 저런 말을 했으면 그나마 고개라도 끄덕여줄 텐데, 저 인간의 묵은 솔로 인생을 생각하면 차마 빈말도 나오지 않았다.

[닥쳐. 이것아.]

<예.>

이젠 속마음을 아는 것도 놀랍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날아서 가고 싶네요...>

몇 시간 째 설원을 걸은 레오는 이 고생에 조금은 투덜거렸다. 평소라면 불평도 하지 않았겠지만, 알프레드와의 전투로 생긴 피로는 레오의 억센 체력을 떨어뜨리기엔 충분했다.

[아서라. 여기 결계는 닿으면 그대로 기절할 테니까.]

<알고 있어요. 자주 와봐서 모를 수가 없었거든요.>

결계로 비행을 금지시킨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사실상 원로회로 향하는 것조차 시험의 일환이기는 했다.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제대로 된 탈 것도 없이 묵묵히 걷는 것만으로 체력은 소비되었고,

“크르르르...!”

그런 추위에서 굶주린 짐승을 상대하는 것, 회귀 전에도 알프레드와의 전투가 없었음에도 깨나 고생을 겪어야만 했다.

“캐릉...!”

지금은 레오의 점심이지만 말이다.

[늑대가 맛있냐? 난 살이 비려서 도저히 못 먹겠던데.]

가죽을 벗겨낸 뒤, 대충 썰어댄 늑대 고기를 질겅대며 레오는 말했다.

<마물의 피나 살갗에 비하면 맛도 있고, 영양가도 있는 편이죠. 잘만 구우면 나름 먹을만해요.>

가문을 떠나고 나서 몇 년 동안 여행하는 동안 수난이라는 수난은 다 겪은 레오였다.

고작 고기 누린내 가지고 힘들다고 하는 것은 귀여운 걸 넘어서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넌 맨손으로 무인도에 가도 아예 살림 차릴 놈이야.]

<3개월 동안 생활한 적은 있었죠. 구조되는 게 더 아쉬웠습니다.>

아예 나무를 잘라 집도 만들었는데, 버리는 게 더 아까웠다. 가구도 나름 쓸모 있었는데.

[이게 왜 진짜인데.]

담소를 나누는 사이 마법으로 피운 모닥불 옆에 있는 고기들은 전부 익혀졌다. 그렇게 만든 늑대 구이들을 전부 위장에 집어넣으며 레오는 다시 길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안개 속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잿빛의 성이 드러났다.

성이라기보다는 격전에 대비한 하나의 요새인 장소.

“도착했군요.”

그 요새가 라인하르트의 원로회장이었다.

***

원로회장의 원로원들은 처음부터 레오나르도에 대한 호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레오나르도는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그랬기에 알프레드로 기선을 제압하고자 했다.

자신의 주제를 파악시켜 청문의 우위를 점하고, 스스로가 라인하르트에서는 그리 뛰어나지 않는 존재라고 자각시킨다.

유치하지만 그 시험의 고난은 결코 유치하다 넘길 수 없었다. 때때로 연륜의 지혜보단 물리적인 힘으로 인한 굴복이 잘 먹히는 법이었다.

“...저게... 저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그들의 기대와 생각은 눈사태와 함께 잠재워졌다.

“아무래도 노쇠했다고 하나, 알프레드 또한 라인하르트의 기사였던 몸일 터인데...”

지금 그들은 그 장면을 보며 인지의 괴리를 느끼고 있었다.

분명 알프레드는 인정도, 사정도 봐주지 않은 채 공격을 퍼부었다. 그건 자신들의 기량으로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마르켄 님...!”

하지만 아까의 역전은 본인들의 굳고 낡은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왜 저런 외부인에게 그런 무기를 넘기신 겁니까?!”

그들의 판단력은 자존심으로 녹슬어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 저들은 레오나르도의 기량이 단순히 도구의 힘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집행기사단장님의 판단을 무시하는 건가?”

이어지는 살기, 살기의 주인 라인하르트의 그림자였다.

“무시가 아니라,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일세. 이런 특혜는 직계 혈족은 물론, 방계조차 용납할 수 없을 걸세.”

크리스의 살기에 조금 위축된 것일까, 가장 젊은 원로원은 목소리의 크기를 낮추며 반론했다.

“특혜라...”

묵묵히 그런 이야기를 듣던 마르켄은 중얼거리더니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날의 옛 추억은 저 노장에겐 나름 괜찮은 안줏거리였다.

“그럼 어째서 직계와 방계 혈족들은 저 무기를 택하지도 않고, 선택받지도 못한 거지?”

이미 마르켄은 다른 혈족들에게도 무기를 나눈 지 오래였다. 그것도 자신이 엄선한 훨씬 더 귀중하고 의미있는 고급품으로 말이다.

따지고 보면 저 검은 돌은 진흙 속에 감추어진 진주나 다름없었다.

“...그건...”

“그리고 내 무기고의 무기를 나누는 건, 직책이나 격식을 떠나 내 권리일 텐데... 이를 침범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인지하고는 있나?”

순식간에 싸늘해진 원로회장, 저 거구의 노장은 요새에 들어앉은 채 은퇴를 즐기는 퇴물들과 다르게 아직도 헌역에서 일하고 있는 괴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반항할 수 있는 자는,

“...조용...”

라인하르트의 원로원주밖에 없었다.

제이론 라인하르트는 눈에 힘을 주며 원로회의 쓸데없는 잡음을 사그라뜨렸다.

반세기를 세 번이나 겪은 늙은 사자의 눈빛은 그의 발톱과 이빨이 아직 건제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저 아이가 누구라 했지?”

“레오나르도라고 합니다.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들 그 말에도 탐탁치 않은 눈치를 보였다. 성씨조차 없는 천한 것이 라인하르트의 원로회장에 온 자체가 그들에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자네들의 불만은 청문회에서 격조 있게 듣도록 하지. 저 아이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보다...”

혈족들의 수장은 창문 밖으로 시선으로 돌렸다. 까마득한 아래에 있음에도 그의 시야에는 한 소년 기사의 존재감이 똑똑히 느껴졌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것 같군.”

“...말도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 여기까지는 족히 몇 시간은...”

“말뿐인 장소에서 말이 안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면서 라인하르트의 흑암은 흰 코트를 입으며 창문 밖으로 걸터앉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크리스티...”

“그러니 행동으로 설명해드리지요. 원로원님들.”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는 요새의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왜 굳이 정문이 있음에도 창문으로 뛰어내리지는 아무도 이해 못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

[근데 여긴 지들이 초대해놓고 마중도 안 나와?]

<나올 겁니다. 지금 흐름대로면 안 나오고는 못 배길 사람이 있거든요.>

쿠웅...!!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천공의 성까지는 아니었으나, 원로회장의 성벽은 하늘조차 닿을 정도로 아득했기에 그런 표현이 저절로 나왔다.

“오랜만이군. 레오나르도.”

“예, 안녕하셨습니까? 크리스 님.”

그녀는 그런 등장에 놀라지 않는 레오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사가, 그것도 흑암인 내가 안녕하면 쓰지 못하지. 저곳에 있는 녹슨 검들처럼 말이야.”

지나치게 비유적인 표현이었으나,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이해하였다.

“흑암이라는 이름과 달리 오늘 옷은 희시군요. 느낌을 바꾸신 건가요?”

“훗, 좋은 질문이다.”

그녀는 만족스러히 자신의 흰 코트를 바람에 휘날리게 만들었다. 아주 옛날 소설에서 유행할 법한 자세였다.

“진정한 어둠은 주변의 색에 동화해 몸을 감추는 법이지. 숲과 산의 제왕인 범이 설산에선 백호로 살듯 말이야.”

[뭔 호랑이가 담배 피다가 폐병 걸린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현자의 지적대로였다. 너무 어이없는 말을 저리도 당당히 하니 지적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원로회로 안내하기 전에, 성장한 실력을 보도록 하지. 가볍게...”

“저기, 크리스 님.”

그 욕구를 참지 못한 레오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설마 아직 부상이 안 나았나?”

“실력을 보이기 전에, 한 가지 정정해드려도 되겠습니까?”

크리스의 뇌리에는 불안이 엄습했다. 분명 전에도 이런 상황이 두어 번 정도 있었던 같았다.

“...그래... 해보아라...”

하지만 크리스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상황을 반복해버렸다.

이윽고 크리스는 백호가 서커스장이나 관상용으로 쓰기 위해 강제적인 근친상간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씻지 못할 탐욕의 결정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