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64화 (64/248)

EP.64 휴가의 끝-1

눈이 끔벅인다.

아리아의 벽안도, 레오의 적안도 같은 박자로.

차이가 있었다면 벗기려고 했던 아리아의 얼굴은 엄청나게 붉어져 있었고, 벗겨질 뻔했던 레오는 의외로 초연한 표정을 보이는 것에 있었다.

“...저기, 잠시만 뒤로 가서 돌아봐주시겠어요?”

“...어?! 어어...!!”

그녀는 급히 바지춤에서 손을 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한껏 달아오른 얼굴에는 식은땀마저 뜨겁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옷은... 여기 있구나.”

그 동안, 레오는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계속해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아리아의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돌아볼까하는 충동이 들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다... 했어?”

여러 충동과 흑심 때문에 눈을 질끈 감은 아리아는 슬며시 눈을 떴다.

“네, 다 갈아입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바지와 속옷을 갈아입은 레오가 서있었다. 옆쪽에는 곱게 개어져 있는, 커피가 묻은 바지와 속옷이 보였다.

아쉽게도 속옷은 바지 아래에 깔려있기에 오러로 눈을 강화해도 보이지 않았다.

“아가씨.”

레오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사실상 노려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병실에 누워있는 사이,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바지를 내린다고 생각해봐라.

그것도 성별이 다른 이성이, 그리고 들키지 않았을 뿐, 자신은 속옷까지 들추어 레오의 가장 소중하고 민감한 부위를 엿보려고 했다.

“...그게... 그러니까...! 나는 그러려는 게 아니고...!”

“전 괜찮아요.”

“...어...어?!”

괜찮다니, 뭐가 괜찮다는 것인가.

옷을 벗기려고 한 것에 용서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아리아 자신한테는 그런 부위조차 보여도 괜찮다는....

“화상은 없더라고요. 커피가 미지근해서 살았어요.”

“...아... 다행이네...”

뭔가 여러 의미에서 민망했다. 속으로 그런 착각을 한 것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커피가 미지근하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한 것이 제일 부끄러웠다.

“당황하신 건 이해하지만, 다음에는 간호사를 불러주세요. 아무래도 정말 화상을 입었을 때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찰나에 모든 걸 이해한 레오의 이해력과 이해심에는 정말 감사해야 마땅했지만, 그 말에 알겠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여기 간호사는 다 여자니까...’

아리아의 질투심은 생각 외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의료 목적으로서 갈아입히는 것에도 아리아는 불만이 넘쳐났다.

“...몸은 어때?”

“푹 쉬었더니 완전 회복했어요. 바로 퇴원해도 될 정도에요.”

“그래도 조금 쉬어. 그리고 사실 나도 화났거든.”

안 죽는다고 해놓고서 번개를 직접 맞는다니, 거짓말도 이런 거짓말도 따로 없었다.

“전격에는 내성이 있는 편이여서 괜찮다니까요.”

“...그런 것치곤 맞고 나서 손 하나 까딱 못 하던데?”

확실히 그건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그때 리오스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아리아가 포션을 먹여주지... 않았더라면...

순간적으로 당시의 장면이 떠오른다.

얼굴이 갑자기 달아오르며 아리아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가슴을 계속 깃털로 간지럽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 가만히 같은 방에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저기... 아가씨... 그때...”

당시의 일을 물으려던 순간,

똑똑

그 순간, 병실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레오는 빨리 이 기분과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아... 실례하겠습니다...”

들어온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이리나 리테이

제하드에게 협박을 당한 여성이자, 레오와 말을 맞추며 데이트 연기를 했던 소녀였다.

“아, 이리나 씨군요.”

“...기억하고 계셨나요?”

“아무래도요. 잊기는 힘들죠.”

레오는 입꼬리를 가볍게 올려보이며 말했다. 긴장했던 이리나도 그 미소에 조금은 긴장을 풀었다.

‘...저 여자...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 거야...!?’

하지만 옆에 있는 아리아는 분노와 증오에 눈이 이글거렸다.

저 가증스러운 년은 레오와 그렇게 알콩달콩하게 식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거기에 너머 목숨까지 부지할 수 있었다.

도저히 화를 참고는 못 배겼다.

“저기... 혹시 할 말이 있는데...”

이리나는 슬며시 아리아의 눈치를 보았다. 척 보아도 원수를 보는 것 같은 적대감이 시선에서 느껴졌다.

“아가씨,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왜.”

진심으로 화가 난 눈치였다. 생각해보면 저번에 밥을 먹을 때도 이러지 않았는가.

레오는 저 여자의 뭐가 좋다고 저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굴도 자신이 낫고, 몸매나 실력도 자신이 몇 배는 나았다.

‘...설마 머리 모양인가?’

그러고 보니, 리오스가 예전에 말한 순정 소설 내용 중에 그런 게 있었다. 남자는 은근히 여자 머리 모양에 따라 취향이 갈리기도 한다고.

‘...그때는 그냥 바보 소리 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저런 하잘 것 없는 여자에게 밀릴 리가 없었다. 내세울 것라고 해봤자 저 포니테일 정도밖에 없겠지.

“아가씨?”

“...우선 나가볼게.”

하지만 그 정도는 자신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러니 우선 이 자리는 양보해줄 것이었다. 참고로 레오는 그런 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휴... 흡...”

하지만 안 엿듣는다고는 안 했다. 오러로 감싼 귀는 문과 벽 너머의 소리까지 명확히 들렸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아리아 아가씨 덕분에요. 운이 좋았습니다.”

그 아가씨는 주먹은 쥐며 승리 포즈를 지었다. 역시 자신의 기사였다.

“...그게...”

훅!

이야기에 더 집중한 순간, 귓가에 입바람이 불어졌다.

“악!!”

순간적, 그리고 본능적으로 아리아는 바람이 불은 쪽으로 주먹을 날렸다.

퍼억!

“쿠헉...!”

귓가에 입바람을 분 리오스의 안면을 찌부러진다.

“리오스!?”

“...오빠?”

“안녕, 동생...!? 좀 괜찮아져서 와봤는데... 다시 코가 막힌 것 같네...?”

감기 기운이 조금 가신 리오스는 병문안이라도 할 겸, 다시 병실로 찾아왔다. 아마 안면으로 주먹이 꽂히지만 않았더라면 분명 저런 코맹맹이 소리는 안 났을 것이다.

용케 부러지지 않은 코뼈를 부여잡으며 리오스는 손을 흔들었다. 입과 코를 감싼 마스크가 쿠션이 되어준 것 같았다.

“괜찮아? 리오스?”

아메리는 급히 리오스의 마스크를 벗겨보았다. 마스크 안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미...미안.”

그걸 본 아리아는 순간적으로 사과를 말했다.

“...잠깐, 왜 피는 이렇게 나오는데 멍 하나 없어?”

리오스의 얼굴은 피 이외에는 말끔했다. 마치 주먹의 충격은 전혀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아, 이거 그냥 코피야. 가끔 흥분하면 나와서.”

애당초 주먹은 보호막으로 받아내었다. 코피는 흥분한 본인의 자력으로 난 것이었다.

“자자, 그런 게 중요합니까? 지금은 저기가 중요하지.”

분명 어째서 맞지도 않았는데 그런 코피가 났는지도 몹시 신경쓰였으나, 아리아에게는 그런 냉정한 판단을 할 이성이 부족했다.

“...어디...”

리오스는 병실 문에 작은 마법진을 새겨두었다. 그러곤 자신의 손으로도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텔레파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뭔가요?]

이렇게 하자 방 내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리오스 일행에게 전부 들렸다.

“...뭐야...? 이건...?”

“텔레파시의 응용법이야. 내부에 울리는 음파를 문에 새긴 마법진으로 송신해서 텔레파시 마법으로 들리게 하는 거지.”

현자의 유산을 얻을 때, 레오가 개변시켰던 텔레파시 마법의 하위호환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이런 거... 해도 괜찮아?”

“괜찮아. 우리 레오가 얼마나 지조있는데!”

“...사생활 보호 말하는 건데...”

“잠깐만요. 얘기가 안 들려요.”

“...아...네...”

두 남매는 이럴 때만 죽이 맞았는지, 무시한 채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메리도 흐름에 타 어느새 병실 안의 이야기를 집중하고 있었다.

-[...그게...]

잠시 우물쭈물하던 이리나는 입을 다시 열었다.

-[...나중에 연락해주세요...!]

-[...이건...]

쪽지는 피는 소리, 내부가 보이지 않았지만 뭘 건넨 건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제... 연락처에요...! 나중이여도 좋으니까... 꼭...!]

잠시 쑥스러워하던 그녀는 문 밖으로 뛰어갔다. 아무래도 더 있기 민망해서 그런 것 같았다.

턱...!

-[잠시만요.]

정황으로 봐선 레오가 이리나를 붙잡은 상황, 아라아는 그 영화의 한 폭과 같은 장면이 상상되어 입술이 파랗게 될 때까지 깨물었다.

-[하지만 전... 여기에 더 있기엔...]

-[아, 가기 전에 이거 가지고 가시라고요.]

자연히 주먹이 주어진다. 저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더 챙겨주는가. 자신이라면 저딴 년보다 더 잘해줄 자신있는데...!

-[...네? 이걸 왜...]

-[도로 가져가시라고요. 연락할 생각 없으니까.]

예상치 못한 반전, 그 반전에 모든 이들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병실 안에 있는 이리나마저 마찬가지였다.

-[...그게 무슨... 왜...?]

-[전 당신이 싫거든요.]

계속 이어지는 돌직구,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언어의 암살술은 시작되었다.

-[상식이나 개념이 있는 사람이면 이딴 거보다 사과를 먼저 하지 않습니까? 제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레오가 이렇게 입원한 데는 제하드와의 전투도 한몫했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게 된 건 이리나도 원인 중 하나였다.

-[그...그건... 저도 좋아서... 그런 게...!]

-[아, 그러시겠죠. 당신도 살고 싶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마인한테 사람 목숨도 팔고 그런 거잖아요?]

굉장히 상냥한 목소리와 그렇지 못한 내용.

-[뭔가 착각을 하시나 본데, 그때 그런 식으로 도와준 건 당신도 피해자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겐 개인적인 호의도, 인연 따위는 당초에 없었다고요.]

어느샌가 팝콘을 물어뜯는 리오스, 말리던 아메리도 이젠 카페인 농축제와 팝콘을 함께 입에 털어넣었다.

-[근데 사과도 없이 연락처만 주면 저보고 어쩌시라는 거죠? 만약 제가 거기서 눈치 못 채고 죽었으면 장례식에도 연락처라도 남길 생각이었나?]

매도에 가까운 독설, 이 독설에 제일 무서운 점은 전부 논리적이고 사실을 근거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냥 가세요. 제가 기분 좋을 때.]

레오는 살기를 뿜어내었다. 텔레파시를 쓰지 않아도 병실 밖으로 한기가 뿜어나올 정도였다.

-[...아가씨 몸에 흉터라도 났으면, 당신은 싫어도 날 만나야 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살기를 감추었다.

-[가세요. 다음엔 이러지 마시고.]

그런 상냥한 말투를 끝으로 대화는 끝났다. 이리나의 발걸음이 들리자 아리아 일행들은 우선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리나는 제하드를 본 것 이상으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아리아 일행은 만족스럽게 병실로 들어왔다.

“아우~! 몸은 어때?!”

“괜찮아요. 그보다 감기는 어떠세요?”

“괜찮아. 원래 감기는 순애 소설 한편 보면 낫는 거여서.”

그리고 아까 본 건, 거의 장편 순애 소설의 명장면과 필적했다.

“하긴~ 우리 아리아가 그렇게 사랑을 듬뿍 담아서 치료해줬는데, 안 낫는 게 더 이상하지.”

그 말에 아리아와 레오 모두 얼굴을 붉혔다. 둘 다 구강으로 느꼈던 물약과 입술의 맛이 생생한 눈치였다.

“...그...그런 거 아니거든...! 레오가 위험하니까 도와준 거야...! 레오 곤란하게 그러지 마...!”

보통이라면 레오나르도가 자주 하는 말내용, 아리아도 내심 레오가 맞장구를 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그런가요?”

하지만 레오의 얼굴은 그날따라 붉었다.

“...레오?”

“...죄...죄송합니다. 그런 의도가 아닌 걸 알고는 있지만... 이런 게... 처음인지라...! 조금 의식하게 되는군요...!”

부끄러운 소년의 고백, 그 말에 리오스는 1년치 순애를 더 적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괜찮아~! 아리아도 처음이었을 걸.”

“넌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겠어?”

일행의 시선이 모두 아리아에게 집중되었다. 당연히 모두 아리아에겐 그게 첫 키스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게...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선...”

하지만 아리아는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는 기색으로 명확한 대답을 망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아에겐 명확한 첫 키스의 추억이 있었다. 꿈속에서의 아름다운 키스의 장면과 감촉은 현실에서도 똑똑히 기억났다.

“...동생, 설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차게 식는 주변의 시선, ‘그렇게 안 봤는데’라는 의미를 함축한 시선의 소통법이었다.

“...레오...! 그러니까...!”

“괜찮아요. 아가씨.”

레오나르도는 싱긋 웃었다.

그 미소에는 상쾌하고도 싱그러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잠깐 같이 산책할까요? 오랜만에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이 보고 싶네요.”

물론 상쾌하고 싱그러운 살기를 품고 있는 미소였다.

그날 아리아는 공포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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