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3 외전-인연
소년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태양의 빛으로 가득 차있었다.
사람들은 태양의 빛에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소년은 생각했다.
‘밤이 오면 어떡하지?’
소년은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태양의 빛은 다가갈수록 소년을 불태운다.
날개는 재가 되고, 온몸엔 연기로 가득했다.
이윽고 몸이 타오르자 소년은 말했다.
“태양보단 못하겠지만, 의미는 있겠지.”
소년은 떨어졌다. 몸은 마른 장작이 되어 작은 화롯가가 되었다.
해가 저물자, 사람들은 화롯가에 모였다.
인간은 처음으로 빛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 빛을 우린 불이라 부른다.
***
문득, 눈이 띄었다.
어둑한 밤, 귀뚜라미 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긴 화음을 만들고 있는 밤이었다.
자신은 이불에 덮인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프거나, 금이 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몸, 특히나 좌반신의 팔은 아예 돌덩이처럼 감각이 없었다.
우선 여기가 어딘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레오는 몸에 약간 반동을 주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나?”
방에 있는 건, 벽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성.
두꺼운 시가를 입에 문 것이 나름 운치가 있어보였다.
“당신은...”
머릿속으로 과거가 스친다. 분명 자신은 돌벽의 잔해가 깔아뭉개질 뻔하다가, 갑자기 저 사람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다.
“흑암 크리스 라인하르트, 널 이곳에 데려온 사람이라 생각해도 좋겠지.”
몸에는 약이 발라진 붕대로 잘 동메여져 있었다. 잔 상처도 없는 걸로 봐선 자는 사이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크리스는 시가를 넣으며 레오 쪽으로 걸어왔다.
“피해자들은 후유증은 남겠지만, 수개월 치료만 잘 받으면 회복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아리아, 너와 같이 사선을 넘은 아이는 지금 교육을 받고 있다. 무모한 행동을 한 벌을 받는 것이지.”
아리아, 그 소녀와는 퍽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크리스는 아리아가 거기로 가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었다. 갑자기 수상한 사람들이 아이를 데려간다고 그대로 미행하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게 그 애다웠다.
“교육...벌이요?”
“그래, 흑마법사의 의식장에 몰래 쳐들어갔으니 말이지.”
들어간 뒤에 추측은 했지만, 진짜일 줄은 몰랐다. 흑마법사의 의식은 소문으로만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리아에겐 벌로 끝나는 걸 감사해야겠지만 말이다.”
“...”
확실히 죽는 것보다는 반성문 같은 걸 쓰는 게 몇배는 좋은 것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말이다.
“그래서 몸은 어떻지? 부상이 있다면 말해라. 늦으면 치료가 더 힘드니.”
레오는 잠시 몸 상태를 보더니, 이내 마비된 좌반신에 대해 떠올렸다.
“몸이 잘 안 움직입니다. 부러진 거나 근육통하고는 다른 느낌 같은데...”
“어디.”
크리스는 갑자기 레오의 옷을 내리더니 가슴팍을 만졌다. 갑자기 성숙한 여성이 가슴을 만지니 당황스럽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춘기 소년에게 저 가슴골은 너무 큰 자극이었다.
“아무래도 내 생각대로군.”
가슴의 흉터에서 손을 떼며, 크리스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흉터가 생긴 지는 얼마나 되었지?”
“대략... 한달 전 쯤에... 그 애랑 싸우다가 가슴에...”
가슴에 단검이 박혔다. 그리고 대충 램프로 지져서 지혈했고 말이다. 아무래도 치료를 엉성히 한 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아리아가 그런 건가?”
“아니... 그건 따지고 보면 제가 시비를 건 거여서요...”
장갑을 던진 것도 자신, 중간에 날뛴 것도 자신이니 피해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잘잘못을 따지려고 한 말은 아니다.”
“예? 그럼...”
“너의 마비는 아리아의 공격 때문이니까. 그거에 대한 판별이다.”
크리스는 칼집에서 검은색 중단검을 들었다. 칼면과 손잡이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나름 멋은 있었지만, 사실 검의 능력과는 하등 관계없는 장식이었다.
“이걸 본 적은 있겠지?”
검에 흐른 명확한 기운, 기류가 바뀔 정도로 선명한 에너지였다.
“...오러입니까?”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빠르겠지.”
그녀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오러... 마나를 쓰기 위해선 선천적으로 타고나거나 특수한 훈련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오러를 쓰지도, 배우지도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러에는 사장된 편법이 몇 가지 있지.”
그녀는 다시 발도하며 찌르기를 날렸다.
“아마 아리아의 단검에 담긴 오러가 네 심장에 흡수된 걸 거다. 최근에 가슴에 계속 통증이 있지 않았나?”
있기는 했다만, 그건 당연한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치료법으로 후유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오러가...?”
“간단한 것치곤 후유증은 심각하지. 지금처럼.”
확실히 통증은 그렇다 쳐도 몸이 마비가 된 건 피해가 컸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다. 저장된 마나를 찰나에 분출시킬 각오가 없다면, 오히려 독이 되지.”
그제서야 돌벽이 쪼개진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 화재에서 자신은 일시적으로나마 오러를 분출한 것이었다.
“...그럼 해결된 건가요?”
“반쯤 불구로 된 몸으로 살아도 된다면 해결된 것이겠지.”
그건 당연히 아니었고,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지금 네 몸은 오러의 통로가 일시적으로 열린 상태지. 하지만 편법인 만큼 상태는 심각해. 아마 방치하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할 거다.”
죽는 것보다 끔찍한 게 여기에 있었다.
“...방법은 있습니까?”
“있다. 있기에 데려온 거다.”
“그럼 그 방법을...”
“그전에.”
크리스는 검을 거두며 다시 벽에 기대었다.
“내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라. 방법은 그 뒤에 생각해볼 문제다.”
위압이 느껴졌다. 여태까지 싸워왔던 적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한 살기가 흘러내렸다.
“본의 아니게 너에 대해 조사하게 되었다.”
크리스는 용병패를 들었다. 레오의 낡은 용병패였다.
“신분을 조회해본 결과, 레오나르도, 넌 확실히 길드에 소속된 용병이더군. 근데...”
그녀는 용병패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13살의 소년이 도적단 토벌 의뢰나, 인신매매단 퇴치 의뢰를 받을 수 있는 거지?”
사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었다. 여기가 사실 흑마법사 의식장이라 할지라도, 인신매매범조차 어린 나이의 용병이 할 수준의 일은 아니었다.
“...이유를 설명해야나요? 아니면 방법을 설명해야 합니까?”
“먼저 방법부터 설명해라.”
“그 길드장과는 연이 있었고, 일종의 시험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레오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퇴직 및 사망 시 보험, 그리고 혜택을 몇 가지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모든 종류 및 등급의 의뢰를 할 수 있도록 계약을 했죠.”
크리스는 조금 당황한 나머지, 들려고 한 시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나?”
아마 레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예, 전 길드로서의 이점을 의뢰 이외에는 전부 포기한 거죠.”
“...길드장은 지인 아니었나? 그런 걸 허락했다는 건가?”
“제가 부탁한 겁니다.”
오히려 길드장은 자신을 걱정하며, 이 계약 형태를 언제든 종료할 수 있게 설정해놓았다.
위약금도, 통보 기간도 고려할 필요 없이 말이다.
“...가족은 있나?”
“...아마 있습니다. 그 가족을 찾기 위해 그런 조건으로 용병으로 일하는 것이니까요.”
크리스의 눈빛이 변했다.
레오는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저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전부터 하고 싶을 어른이 필요했는지.
레오는 애써 아는 답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거죠.”
“결국 어머니는 못 찾은 건가...?”
“유품이라도 찾으면 그나마 속이라도 시원하겠는데... 시체도 안 나오고, 그렇다고 살아 돌아오지도 않더군요.”
레오는 쓴 웃음을 내었다.
“...괜찮은가?”
“다... 그런 거죠. 용병을 하면서 알게 된 건 세상엔 시체도 못 남길 정도로 죽을 일이 많다는 거였어요.”
불로 재가 될 때까지 타는 것도, 무거운 물체에 묶여 바다에 집어 던져지는 것도, 아니면 마물한테 뼈째 뜯어 먹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
엄마의 죽음은.
“애가 할 말은 아니군.”
“...애라고 하기엔 죽인 사람이...”
그 순간, 크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아니, 숙인 정도가 아니었다.
아예 바닥에 무릎을 대고 손바닥마저 아래로 댄 채, 머리를 숙였다.
“미안하다.”
“...예? 갑자기 왜...? 일어나세요!”
너무 진중하고 무게 있는 사과였기에 오히려 레오 쪽에서 당황해버렸다.
“난 너에 대해 알지 못하고 한달 전 아리아의 이야기만 듣고, 널 멋대로 폄하했다. 이건 그에 대한 사과다.”
그녀는 검은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넌 내 조카인 아리아와 피해자 전원을 구했다. 이건 그에 대한 감사다.”
크리스는 레오의 몸을 살짝 만지더니 약간의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마비된 부위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돌아왔다.
“움직일 수 있어...”
“이건 일시적인 거다. 편법으로 생긴 마나를 통제하기 위해선 정석적인 방법으로 마나를 수행해야지.”
그 말에 레오는 조금 침울해졌다.
“그건... 조금 안타깝네요. 마나수련법은 엄청나게 희귀한 기술이잖아요. 그러니...”
“그러니 가르쳐주지. 라인하르트 마나수련법을 알려주겠다.”
“...예...예!?”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아니면 너무 희망사항에 간절한 나머지 멋대로 들은 것인가.
“라인하르트 가의 마나수련법을 알려주겠다 말했다. 본디그게 제일 효율적일 테니까.”
“...예? 왜 그렇게까지...”
“머리를 박으며 사과나 감사를 말하는 건 누구나 하지. 난 어른으로서 나름 책임을 져야할 의무가 있어.”
그리곤 이내 문 쪽으로 그녀는 걸어가며 말했다.
“그리고 넌 아이로서 의지할 권리도 있고, 다만...”
끼이익, 쿠당탕
크리스가 조용히 문을 여는 순간, 아리아가 방 안으로 넘어졌다.
“...윽...!”
“아리아, 여기서 뭘하는 거지?”
“아...그게... 그런 게 아니고요. 고모...”
침대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레오는 약간 식은 눈빛으로 물었다.
“내 이름이 뭔데?”
“레오나르도, 아.”
너무 어이없게 들켜버렸다.
“너 다 들었지?”
“응.”
빠른 대답, 그래도 그녀도 나름으로 부끄럽긴 했는지 눈을 못 마주쳤다.
“저기, 그 마나수련법 배우면 몸도 고쳐지고 강해지는 거죠?”
“그건 네 노력 여하에 다르겠지. 난 방법만 가르쳐줄 뿐, 깨치는 건 너에게 달렸다.”
그 정도면 괜찮은 조건이었다.
“그럼 만약 한 달 안에 익히면 아리아랑 다시 붙어봐도 됩니까?”
“...진심인가?”
“농담으로 이런 말하면 저 죽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크리스는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의외로 자신에겐 농담 쪽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레오였다.
“하하, 재밌군. 아리아, 넌 어떻게 생각하지?”
“...예...뭐....네...”
아직도 엿들은 게 부끄러웠는지, 그녀는 영 시원치 않은 긍정만을 남겼다.
“그럼 된 건가요?”
“...그래. 좋은 눈을 하게 됐어.”
그 눈을 바라보며 크리스는 한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너의 눈은 의지와 열정으로 차있군. 당장 승리를 잡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아리아에겐 큰 도움이 될 테지.”
“그건 해봐야지 알죠.”
그녀는 피식 웃었다. 단순히 비웃은 게 아니라, 이제야 저 소년에게 아이다운 호기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 가문의 종자가 되지 않겠나?”
***
“그렇게 해서 전 라인하르트에서 일하게 된 거죠.”
“뭔가 빠진 게 있지 않냐?”
“...역시, 알고 계셨군요.”
레오는 의도적으로 전생의 이야기를 맨 앞부분만을 말했다. 현자가 알고 싶은 건 분명...
“...아리아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래서 사랑의 교미는 언제 하는데?”
새삼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레오는 왜 이 인간이 현자라고 불리는지 역사적으로 참 의심이 들었다.
“...그런 건 됐고, 시험은 어떻게 됐는데요?”
“검은 돌부터 봐봐.”
레오나르도는 팔찌로 찬 검은 돌을 바라보았다. 검은 돌에는 붉은 선이 팔찌의 중심으로 그려져 있었다.
빛나는 것은 보석처럼 영롱했지만, 색의 질감은 마치 흐르는 피 같았다.
“내가 말했잖아. 그거 네 마나를 먹고 성장할 거라고.”
“...이렇게 변하는 거라고요?”
“아마 계기는 그때 번개를 맞아서 그런 거야. 능력의 변화는 나도 모르고.”
왜 모르냐고 따지기는 조금 무안했다. 따지고 보면 현자도 이렇게 변화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어쨌든 그래서 여기로 데려온 거야. 무기가 변화했으니, 잇따른 폭주를 걱정해서 데리고 온 거거든.”
“그럼 시험은요?”
점수나 통과 같은 개념이 아닌 것인가?
“그건 그냥 무기를 안정시키는 데 필요할 것 같아서. 감정에 영향을 받기가 쉬우니까.뭐 실패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었겠지만.”
저런 말을 태연히 말하는 거에 화를 내야할지, 다행이라 여겨야할지 의문이었다. 어쨌든 팔찌가 안정되었다는 의미에서는 안심해도 되는 부분이었다.
“...그럼 어떡해요?”
“얘기하고 싶으면 더하고, 아니다 싶으면 동굴 밖으로 나가면 돼. 그러면...”
주르륵...
“...야...”
어째서인지 하반신의 감각이 축축했다. 기묘하게 뜨거운 것이 몹시 신경쓰였다. 흘러내리는 따뜻한 액체가 몹시 불쾌했다.
“...저 현자님... 혹시 현실의 일도 여기로 영향이 옵니까?”
“어. 오줌 지리는 것 같은 건 확실히 반응이 온다.”
수치감이 온몸을 감쌌다. 설마하니 하지만... 병실에서 그대로 한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나갈게요!!”
“그래, 나가면 팬티부터 빨아라.”
너무 수치스러운 나머지 욕도 못하고, 레오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이 번뜩이며 레오는 소리쳤다.
“안돼애...!!”
“...어.....?”
침대 앞에는, 정확히 침대 앞의 옆에서 한 소녀가 자신의 바지춤을 잡아내리고 있었다.
바지의 사타구니 방향에는 오줌이라 생각할 수 없는 진하고 검은 액체가 따뜻하고 진하게 묻어있었고.
흰 머리와 푸른 눈의 소녀는 레오의 바지를 허리춤 아래로 내려 골반을 걸쳐진 채로 붙잡고 있었다.
“...그...그게...히끕...?”
오랜만에 아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표정은 환자인 자신보다도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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