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1 외전-우연
시간은 지나간다.
하루하루가 모이며 일주일이 되고, 주일이 나열되고 나열되며, 한달을 이룬다.
이건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레오의 기억에서 소녀라는 존재가 희미해질 무렵의 일이었다.
“여긴가?”
말의 고삐를 쥔 채로 레오는 지도를 살폈다. 현상금 수배서, 그리고 의뢰서까지 펼치니 여기가 확실했다.
“...쯧... 할 짓이 없다고 애나 사고 팔아?”
이번 일은 인신매매범을 잡는 것, 자신의 아들을 납치당한 한 농부가 전 재산을 털어 의뢰한 내용이었다.
거기에 마침 그 인신매매범은 암살자 조직의 ‘히드라’로 알려져 현상금까지 매겨졌기에, 부상으로 이번달 수입이 줄은 레오에겐 더할나위 없는 좋은 의뢰였다.
‘그런 녀석은 내 손으로 직접 패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레오는 도시로 말을 몰았다.
***
“...멈춰, 잠시 검문이 있겠다.”
말을 타던 도중, 경비병이 레오를 멈춰세웠다. 한 달 전에 두들겨 팼던 경비병과는 사뭇 다른 눈치였다.
레오는 무표정하게 용병패를 내밀며, 검문을 받았다.
“어려보이는데... 용병인가?”
“...사정이 있었다고... 해두죠.”
어머니와 관련된 사정인 만큼 설명하기엔 복잡했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겐 말하기 싫었다.
“그런가? 알겠다. 가도 좋다.”
“요즘 애들은 뭐 저렇게 큰 거야.”
옆쪽에 경비병이 투덜거리는 걸 들으면서도 레오는 별말 없이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제법 괜찮네.”
도시는 나름 활기가 차있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상인들은 팽팽히 흥정을 하고, 연인이나 가족들은 같이 음식을 먹거나 구경거리를 보며 웃음을 짓는다.
인신매매만 없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다.
“레온!”
“...엄...?”
레오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아!!”
그리고 자신의 옆에 있던 ‘레온’이라는 아이는 자신의 엄마에게 안겼다. 당연하게 ‘레오’를 부른 것도 아니었고, 자신을 부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 갔었어? 찾았잖니!”
레온의 어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몸을 살폈다. 행여나 아이의 몸에 생채기가 나지 않았나 살피는 것이었다.
새삼스럽지만 가슴에 난 흉터가 욱신거렸다. 아무래도 불로 소작하는 건 너무 무모했던 것 같았다.
“그게... 길에서 엄청 예쁜 누나를 봐서... 잠깐 딴생각하느라...”
“예쁜 누나?”
“흰 머리에 파란 눈을 했는데, 꼭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 같았어!”
그 말에 레오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헛웃음을 내었다.
‘세상에 백발 벽안이 한두 명도 아니고... 너무 과민한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레오는 두 모자에게서 떨어졌다. 왠지 모르게 거기에 있으면 일에 집중이 안 될 것 같았다.
“아리아스필 님!! 아니, 도대체... 어디로 가셨지!?”
시내에선 미아를 찾는 건지, 덩치 큰 기사가 소리를 지르며 찾는 아이를 찾으러 다녔다.
‘역시 인신매매는 있는 것 같군.’
미아가 사라진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연관이 아예 없진 않겠지.
‘...조금은 뒷거리로 가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레오는 자리를 옮겼다.
***
도시의 뒷골목은 빛 때문에 생긴 그림자보단, 심연에 가까웠다.
병든 환자에, 구걸하는 거지들,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 그리고 자식에게 버려진 노인들까지.
사람의 고통을 종류별로 모아둔 박물관을 꼽자면 항상 레오는 뒷골목을 말할 것이다.
‘...그래도 제법 양호한 편이지. 사람 고기 먹는 놈 없는 게 어디야.’
그렇게 레오가 뒷골목을 살피던 도중, 한 노파가 외쳤다.
“밀가루 사려...!”
작은 포대 자루를 든 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거리에서 홀로 밀가루를 사달라고 말하는 노파.
‘...저러다간 아마도...’
괜한 생각이 든 걸까, 레오는 노파에게 다가갔다.
“밀가루는 얼마나 있습니까?”
“...이게... 다여...!”
노파는 떨리는 손으로 밀가루 포대 한 자루를 건넸다. 마치 레오에게 딱 이정도 양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는 것처럼 말이다.
“...적당하네요. 곱기도 하고. 얼마죠?”
“동화... 1잎...”
뒷골목 밀가루라고 해도 너무 싼 가격이었다. 하물며 모래가 섞였거나 싸구려 약이더라도 그보단 비쌀 것이었다.
“너무 싼 거 아닙니까?”
동화 한 잎을 내밀면서도 레오는 슬며시 물었다.
“...그 밀가루가 네 운명의 키를 잡고 있을테니... 아무래도 비싼 값을 치를 수가 없구나.”
“...점쟁이입니까?”
은근히 속셈을 들킨 것에 당황했는지, 레오는 말을 떨었다.
“...점이라, 그럴 수도 있게...만은... 난 운명이니... 그런 건... 싫어한다네... 보고 싶진... 않아...”
“그럼 밀가루를 안 주시면 되잖습니까?”
“...그건 안 되네... 설사... 키가 없어도... 자네는... 돛을 피거나 노를 저어서라도 나아갈 테니까...”
조금 머리가 이상한 노파인가 싶어, 그냥 가려던 순간, 노파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가고자 하는 곳은... 네가 포기하는 순간 사라질 거라네... 운명은 공기로 만든 바다와 같아... 보이지도 않은 파도에 계속 떠밀리게 되거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레오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노파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공기는 사실 노파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할 일이나 해야지.”
그렇게 산 밀가루 자루를 들며 레오는 생각했다.
***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뒷골목을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오는 아이 얼굴을 포대 자루에 씌운 채 들고 있는 남성들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발버둥치지 않는 걸로 봐선, 독에 의한 기절 때문인 것 같았다.
‘보통내기가 아닌 건... 확실하군.’
저런 정밀한 독을 쓰는 암살자는 경험이 많은 베테랑 용병들도 잘 제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최대한 들키지 않게 추격한다. 그렇게 되면 본거지도 알 수 있을 터였다. 예상대로 남자들은 아이를 통 속에 넣은 채,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냥으로 미행이나 추적은 익숙했기에, 들키지 않고 녀석들의 아지트로 가는데는 성공했다.
‘...뭔가 이상하네.’
인신매매 조직치고는 무언가가 묘했다. 보통이라면 돈을 받고 팔기 위해, 팔기 위한 루트도 제대로 준비하는데...
‘...이 녀석들은 고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눈치란 말이지.’
암상인이여도 상인은 상인, 결국은 팔 고객도 생각해야 된다. 하지만 이런 외지고 깊은 숲속에서 인신매매를 할 바에는 뒷골목에서 사람 시켜 납치하는 것이 훨씬 빠른 게 자명했다.
‘...다른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찰나, 아이가 담긴 통을 챙긴 납치범들이 아지트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저 자물쇠 형태의 단순한 잠금이었다.
‘...생각보단 잠입이 쉽겠군.’
아지트로 들어간 일행들, 귀를 기울어보니 지하 같은 비밀공간으로 들어간 눈치였다.
“...그럼...”
레오는 돌팔매를 쥔 채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가장 적당해 보이는 대상에는 나무의 가지 위에서 태연히 지저귀고 있었다.
휘익, 짹!
새는 돌에 맞자 그대로 발목이 부러자 울기 시작했다. 죽이거나 기절시키는 않는다.
저렇게 요란하게 우는 새가 제일 좋았다.
‘...거리는 제법 있으니 틈은 있어.’
“...뭔소리야, 도대체.”
이윽고 정찰을 위해 한 사람이 나온다. 죽이면 안 된다. 저 인간이 돌아오지 않으면 분명 대대적으로 침입을 눈치챌테니.
그러니.
끼익...
문이 열리고 닫히는 틈에 들어간다. 발걸음은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적당히 숨을 곳은... 여기가 좋겠네.’
그리고 지금 숨는 빈 통 같은 곳에 숨는다. 여차할 때 반격으로 쓸 암기를 소매에 넣은 채 레오는 통 속에 들어갔다.
소년의 체구이기에 가능한 작전이기도 했다.
“...왠 새가 쓰러져있어? 밥이라도 먹으라는 계시인가?”
생각 외로 암살자는 멍청이였는지, 다리가 부러진 새를 주우며 오늘 저녁의 만찬을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은 오늘 저녁 안으로 죽거나 잡힐 것이다.
‘...아니면 내가 죽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레오는 조심히 통 속에서 나왔다. 잠입에는 성공했으니,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것이었다.
‘...아예 불을 지를까.’
사실 그러려고 밀가루를 가져온 것이었다. 아예 아지트째로 태워버리고 살아오는 놈들만 족족 죽인다는 편리한 전략.
‘...하지만 지금은 상황을 봐야겠지.’
아까 데려온 아이도 그렇고, 이곳에는 납치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편하다고 통째로 태우는 건, 꿈자리에 재수 없는 짓이었다.
‘...들어가볼까?’
우선 지하실을 바라본다. 다행히 보초나 그런 녀석은 없어보였고, 좁은 길이었기에 빨리만 간다면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불 지르면 그만이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당연히 자기보신부터 하는 게 맞았다. 그걸로 뭐라하는 놈이 위선자지.
‘...왜...이렇게 넓어?’
이정도면 납치 정도가 아니라, 무슨 도살장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고깃간에 가축을 넣어놓는 장소를 만든 것 같았다.
‘...납치가 맞긴 한 거야...?’
“으아아...아아아...”
누군가가 비명을 힘겹게 짜냈다. 이윽고 들리는 채찍소리, 우선 들키지 않게 표식을 남긴 채. 레오는 채찍와 비명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으아아아...아아아...”
“닥치고 먹어...! 먹으라고!!”
한 사람은 확실히 언어능력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언어능력은커녕, 비명에 말 한 마디도 섞여있지 않다.
‘...마치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처럼.’
혹시나 하는 심정에 레오는 미리 두건에 수통 물을 적신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
그 순간, 레오는 골목의 끝지점에서 멈춰섰다. 그 각도에서 보인 것은 두 가지였다.
‘...뭐야 이건...’
정말 가축처럼 사육되고 있는 어린 아이들, 여물통에서 준 사료를 아무생각도 없이 먹으며 철창에 갇혀있는 아이들, 마치 동물처럼 울음소리까지 내고 있다.
“아우...어으...”
“컹...크헝...”
그리고 코너의 옆에서 검을 쥔 채, 부들거리고 있는 한 소녀가 보였다. 이 일당과는 한패라고 하기 어렸고, 처음 본다고 하기엔 백발과 벽안이 지나치게 인상적이었다.
‘...네가 왜 여깄는 건데...!?’
자신의 가슴팍에 구멍을 낸 소녀였다.
“이...!”
참다못한 소녀가 검을 뽑고 가려던 순간,
턱
“...!?”
레오는 그녀의 입과 검을 잡아눌렀다. 그리고 입으로 뻐금거리며 간신히 소리없이 말을 전한다.
(나가면 죽어.)
소녀도 자신을 기억한 것일까,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보자고. 이젠 잘 쳐먹네.”
채찍에도 맞아도 꾸역꾸역 먹는 아이를 보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은 가버렸다. 간수의 열쇠가 잘그락거리는 소리와 가축 아이들이 쩝쩝거리는 소리가 괴이한 화음을 내고 있었다.
(너 왜 여기 있어?)
레오가 손에서 입을 떼자마자 소녀는 말했다. 그나마 눈치는 있었는지 뻐금거리는 걸 따라하는 게 다행이었다.
레오는 아무 말 없이 용병패를 내밀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까운 소모품도 하나 꺼내야했다.
[난 용병이고 이 일을 처리하러 왔어.]
꺼낸 것은 끈으로 엮은 수첩과 천으로 둘러싼 목탄, 필담으론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지금부턴 글자로 써서 말해. 최대한 쉽게 써야돼. 아는 단어가 많이 없어.]
사실 글자를 배운 것 자체도 용병 입장에선 대단한 것이었다. 계약이나 함정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한 레오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왜 말린 거야?]
소녀는 아까운 종이와 목탄에 가장 쓸데없는 걸, 제일 먼저 낭비해 물었다.
[나가면 너도 죽고, 나도 죽었을 테니까. 살아도 저렇게 되겠지.]
침입자가 있는 걸, 안다는 시점에서 비상보가 울릴 것이다. 그게 하물며 애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곳에선 그 괴물 같은 소녀조차 뚫고 나가기는 버거울 것이다.
‘...게다가 사람도 못 죽이는 녀석한테는 더욱...’
그 사이 소녀는 계속 글을 썼다.
[그럼 저 애들은 어떻게 하는데?]
이제야 나온 의미 있는 질문이었다.
[구할 거야. 그럴려고 온 거니까.]
[어떻게 구할 건데?]
[우리 사이가 안 좋은 건 알지만, 우선 같이 헤쳐나가야겠어. 같이 살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잠시 멈칫하던 소녀는 입을 다문 채, 수첩을 적었다.
[저 애들을 구해준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남걱정인가, 용사 가문 아니랄까 봐 이런 상황에서도 정의의 사도 흉내다.
[그래. 그럼 우선 쟤들을 철창에서 꺼내야 해.]
[어떻게 꺼낼 건데? 열쇠는 아까 그녀석들이 가지고 있었잖아.]
[그럴 필요는 없어.]
레오는 아리아의 검을 잡아 뽑으며 적었다.
[철창보다 단단한 철검을 과일칼로도 조각낸 사람이 있잖아.]
물론 레오 자신을 말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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