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60화 (60/248)

EP.60 외전-만남(2)

사람들의 시선은 의외로 따갑지 않았다.

그건 단순히 사람의 목을 벤 채 들고 다녔기 때문이 아닌, 그 목을 벤 대상의 인물이 누군지 알기 때문이었다.

레오에게서, 특히 레오가 멘 데칼의 눈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최대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시선을 피한다는 시점에서 이 상황이 어떤지는 이미 봤다는 뜻이었으니까.

지금 레오는 이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슬슬 냄새나는데, 적당하게 걸어둘 곳은 없나?’

그렇게 생각할 찰나, 근처에 높은 나무가 보였다.

“적당하네.”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머리통을 나무에 집어던져 걸었다. 대롱거리며 가지에 메달린 머리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잔혹한 장식 같았다.

“이봐!”

그렇게 경고를 끝내며 가려던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사슬갑옷을 입은 채 창을 든 기사였다.

‘...경비대인가?’

무기 상태가 좋은 걸로 봐선 그런 것 같았다.

“신고를 받고 왔다. 꼬맹이, 잠깐 나랑 가줘야겠어.”

“...싫다면?”

“즉결으로 처벌하는 방법도 있겠지.”

예리한 창이 날카롭게 햇빛에 빛났다. 아마 처벌은 저 창으로 이루어질 테지.

“죄명은 뭐냐? 뒷돈 먹여주는 돈줄 없앤 죄?”

갑자기 경비대의 표정이 굳는다. 떠본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것 같았다.

촤악

틈을 놓치지 않고 뿌려진 모래, 발길질로 날아간 거친 모래알이 동공을 찌른다.

“크악!”

틈을 놓치지 않고 레오는 검 손잡이를 잡는다.

부웅

눈은 못 떠도, 창은 휘두를 수 있었다. 경비병로서 그는 나름 괜찮은 창술을 선보일 수 있었다.

“춤을 춰라. 아주 그냥.”

문제는 시야가 안 보여 거리가 엉망진창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레오의 목소리를 듣고 경비병을 눈을 비비며 그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죽...!!”

그 순간, 레오는 검날로 햇빛을 반사시켰다. 그 반사빛은 모래 때문에 오랜 시간 어둠 속에 있는 눈에겐 치명적인 섬광이었다.

“너나 죽어라 씨발.”

터엉!

칼등의 충격으로 경비병이 나가떨어진다. 그리고 그대로 경비병의 배를 짓밟은 채 레오는 그의 안면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퍽, 퍼억

그런 소리가 두어번 정도 더 울리고 경비병이 완전히 쓰러진 걸 확인하자, 레오는 그의 창을 뺏어 나무 옆에 꽂아두었다.

“...이러면 적당하려나?”

레오는 그 경비병 갑옷 사이에 창을 끼워, 허수아비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놓았다.

한심한 도적단의 두목과 그걸 방관하는 무능한 경비대가 같이 있으니 이보다 어울리는 한 쌍은 없었다.

“칵... 퉷!”

마지막으로 얼굴 상처를 침으로 소독해주는 건 예의이자 덤이었다.

“...재수없게.”

딱히 후환이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쪽에선 경비병이 일개 꼬마에게 당한 것이나 뒷돈을 먹은 걸 은폐하느라 바쁠 테지.

“그럼 오랜만에 고기나 사볼까.”

의뢰 보수는 두둑이 얹어줄 테니, 레오는 그저 말린 육포라도 많이 챙겨놓아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레오는 시장 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너, 거기 서.”

또다시 시비에 맞붙게 된다.

“...오늘은 재수에 옴이 붙었나, 왜 시비가 계속 걸리고 지...”

뒤를 돌아보자 그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뒤에는 작은 태양이 서있었다.

인간에게 저런 광채가 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순간적으로 소년의 저 존재를 태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네가 그런 거지? 저 사람들?”

긴 백발을 지닌 벽안의 소녀는 물었다. 고급 재질의 팬던트가 수수해보일 정도의 미색이었다.

“...저 사람들이라고 하면 누군지 어떻게 알지?”

이내 레오는 다시 침착해졌다. 용병으로 생활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방법 쯤이야 익혀둔지 오래였다.

“나무에 목만 메달린 사람하고, 창에 묶인 사람 말이야.”

그 설명에 레오는 기가 찼는지 헛웃음을 내었다. 그 무례에 소녀는 눈을 부라렸다.

“...정의의 사도 놀이라도 하냐?”

“...뭐?”

“내가 사람 목을 따든, 두들겨 패든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저 두 놈이 가족이나 친구이면 모를까. 혹시 그런 거냐?”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말한 질문이었다.

“아니.”

역시나였다.

“그래도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짓이야.”

“니가 뭔데? 뭔데 용납하고 말아? 저 사람들이 뭘 했는지는 알아?”

“몰라. 그래도 그런 짓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아.”

계속해서 엇맞는 대화. 그런 촌극과도 같은 소통에 시장 사람들은 어느샌가 조용해졌다.

“...말이 안 통하는군. 좋게 말할 때, 가던 길이나...”

그 순간 레오의 눈에 그녀의 목에 멘 펜던트가 눈에 들어왔다. 성스러운 검을 중심으로 서있는 사자의 문양, 그 문양을 쓸 수 있는 건 한 가문밖에 없었다.

“...하...그렇게 된 건가?”

레오는 웃음을 내며 장갑을 벗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장갑을 집어던졌다.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거야?”

“니가 그렇게 대단한 기사라며? 길게 끌 것도 없어. 한번 붙어보자.”

격식도, 예의도 없었지만 결투는 성립되었다.

“그래. 좋아.”

소녀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하지만 그 검은 전장에서 쓰는 검이 아니었다.

“...무슨 뜻이냐?”

단검. 나쁘게 치면 과일, 좋게 보면 밧줄 정도는 자를 법한 단도였다.

“너 같은 녀석한테 제대로 된 검을 휘두르고 싶진 않아.”

“...허...그러셔?”

도발에도 레오는 불쾌감을 느낄 뿐, 격정에 휩싸이진 않았다. 이런 모욕 쯤은 수없이 당해봤기 때문이었다.

“근데 하나 알려줄까?”

레오도 허리춤의 검을 잡았다. 물론 그 검은 몇십 명의 사람을 죽인 장검이었다.

“머리가 잘린 놈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한 도적단 두목이야. 그리고 맞은 놈은 그걸 알고도 방관한 경비대지.”

순간적으로 소녀는 멈칫했다.

“...?!”

일부러 노리고 말한 사실이었다. 레오는 즉각적으로 돌진한다. 비겁하다고 말하기엔 말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챙!

일순 검이 멈췄다. 분명 궤적 상 레오 자신의 검이 저 소녀의 단검을 튕겨내야 마땅했다.

하지만 멈춘 것은 레오 자신의 검이었다. 선공도 자신, 무기가 유리했던 것도 자신이었다.

“...그건 몰랐네.”

그럼에도 소녀의 단검은 레오의 장검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었다. 일점으로 검끝을 검날로 누르면서 말이다.

기사나 용병보다는 곡예사가 선보일 법한 묘기였다.

“...칫...!”

예상되었다.

오러, 천한 자신으로는 도저히 배울 수도, 볼 수도 없는 기술이었다.

퍽!

이번에는 돌려차기를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녀는 발을 피하며 레오의 손목을 손잡이로 내리쳤다.

장검은 바닥으로 떨어지며 소리를 내었고, 레오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겨누어지는 건 소녀의 단도, 그녀는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사과하라고는 안 할게. 이해했으니까. 일어나.”

그녀는 단도를 거둔 채, 손을 내밀었다. 자비롭다 못해 자애롭게 보이는 장면, 그 광경을 보던 모든 이들은 그 자애에 감동하기에 이를 정도였다.

찰싹

오직 레오만이 그녀의 손길을 쳐냈다.

“씨발... 장난해? 다시 해. 이딴 식으로 사람 깔보지 마.”

레오는 부어오른 손목으로 다시 검을 쥐었다.

“왜 그래야 하는데? 오해는 풀렸어. 싸울 이유는 없다고.”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나 같은 천한 놈한테는 의미라는 게 있거든.”

그리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한손이 부어올랐음에도 검의 속력은 아까보다 빨랐다. 소녀는 그 빠른 쾌검을 피해 뒤로 물러나나 싶더니,

챙강!

이번에는 검 자체가 부러뜨렸다. 분명 공격을 밀어붙였던 건 레오였으나, 패배한 것도 레오였다.

“이젠 안 싸워도 되지?”

내려보는 그녀의 시선,

“적당히 하지 말라고...!!”

반대손에서 또다른 검이 뽑혔다. 기습적인 발도, 그 손은 부어오르지도 않았기에 더 빨랐다.

“했잖아아아!!”

검이 박혔다. 기습적이었기에 날 수 있는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피가 튀며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광경에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너, 이대로 가면 죽어.”

“알아... 꽤 깊네...!”

레오에게 단검이 박혔다. 가슴의 측면에 박힌 단검, 옷가지가 뚫리고 피의 색이 깊게 물든다.

“...물러서. 죽기 싫으면.”

레오는 한 발 더 앞세운다. 검날이 더 깊게 들어오며 고통이 죽음을 끌어온다.

“...왜 이러는데.”

“너 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몰라...! 너희들은 내일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겠지만... 난...”

피가 더 흐른다. 상처는 심장과 가장 가까운 부위, 출혈은 심각했다.

“...난...매일... 내일 어떻게 죽을까 고민한다고...!”

그럼에도 말은 멈추지 않는다.

단순히 저 소녀가 자신을 죽여줬으면 했기 때문이었을까.

이 말을 누군가는 들어줬으면 했기 때문일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난 말이야... 너 같이 대단한 위인도 아니고... 살 만 이유는 없어진 지 오래야...”

눈가를 스치는 건, 얄궂게도 시체도 찾지 못한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너 같은 녀석한테 죽으면... 조금은... 당당하게... 갈 수 있겠지...? 안 그래...?”

거의 광기에 찬 발언이었다. 타인에게 극도로 무심한 광기, 그게 차오른 손으로 소년은 소녀의 단도를 쥔다.

“...조금만 각도를 꺾으면 확실히...”

그 순간, 레오는 손을 멈췄다. 마치 자신의 죄와 마주한 죄인처럼.

“너...”

소년은 손을 떼었다.

“관둘란다.”

피가 흘러나오기에 레오는 소매를 뜯어 지혈을 시도했다.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됐어. 패배자는 신경 쓰지 마. 그게 더 굴욕이야.”

그러더니 지혈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자, 레오는 근처에 있는 램프를 바라보았다. 밤에도 장사를 하기 위해 시장 상인들이 걸어둔 것이었다.

“좀 쓸게. 아저씨.”

“...어? 어어?!”

대답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레오는 램프를 들었다.

치이이익!

그러곤 달궈진 램프를 가슴팍에 갖다대었다. 살갗이 익는 소리와 타는 냄새가 시장에 자욱히 퍼졌다.

소년이 할 짓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대담하고도 잔혹한 짓이었다.

“소독도 되겠네.”

살갗이 녹아, 지혈된 가슴의 상처를 보며 레오는 말했다.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충격에 입을 가리기 바빴다.

“잘 썼어. 아저씨. 닦으면 멀쩡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여관으로 걸어갔다. 레오가 자리를 떠나자 시장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미친놈이었냐니, 약을 빨은 거 아닌가.

그보다 저 녀석, 정말 데칼을 죽인 건가.

왜 자기가 싸움을 걸고선 죽으려고 한 건지.

다들 각자 그런 의문을 가십거리로 사용할 무렵, 레오는 여관 주인과 가슴팍의 상처로 실랑이를 나누다가 그대로 방 안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 젠장...”

정말 끝까지 찔렀다면 다 끝났을 문제였다. 이딴 시궁창같이 같잖은 삶엔 더 미련은 없었다.

“...와이번도 죽였으면서... 왜 떨고 지랄이야...”

다만 그때 박힌 단검을 쥔, 자신이 만진소녀의 손이 너무 떨리고 있었기에.

“...하...씨... 쪽팔리게...”

레오는 죽음 대신 패배를 택했다.

그게 레오가 아리아에게 겪은 첫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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