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9 외전-만남
“어이, 처음 보는 얼굴이시네?”
험성궃은 남성은 여관문을 걷어차더니, 건들거리는 눈치로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가 언제 꼬맹이 새끼 놀이방이 됐지? 주인장?”
남성은 털 한 올 없는 머리를 만지며 입구 앞에 선 소년을 비웃어보았다. 소년은 남자와 머리 하나가 차이 날 정도로 어린 남자아이였다.
소년의 방을 안내해주려던 여관 주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대머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그게 아니고요.”
“댁은 술주정이 심한 거야? 아니면 눈깔이나 대가리 쪽에 문제가 있는 거냐?”
싸늘해진 분위기, 여관 주인의 얼굴에 식은 땀이 깊게 흘러내렸다.
“...야, 꼬맹이. 뭐라고 했냐?”
“이젠 고막에도 문제가 있나?”
“이 애새끼가...!”
다른 불량배가 나서려던 순간, 대머리가 가로막았다.
“애새끼니까 한 번만 봐주지. 죽기 싫으면 통행세를 내.”
“돈은 이미 여관에 냈는데?”
여관주인은 떨리는 손으로 소년이 낸 돈 주머니를 쥐고 있었다. 여차하면 이것도 뺏길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하하! 어이가 없네.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는 알고 온 거냐?”
“데칼인가 쌍칼인가 하는 거렁뱅이잖아.”
“...뭐라 했냐?”
자신의 두목이 모욕을 당하자, 일행 전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 들었으면서 왜 쳐묻는 거지? 머리카락을 밀면서 대가리 국수사리도 같이 밀으셨냐?”
그 말에 몇몇 똘마니들은 웃음을 참았지만, 본인에게는 정말 간악한 도발이었다.
“잡아 죽...!!”
레오나르도는 여관주인의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집어들었다.
촤악!
“아아악!!”
뜨거운 차가 대머리의 얼굴에 부어졌다. 막 끓어 김이 모락거리는 차였기에 화상을 입고 눈을 뜰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형님?!”
쨍그랑
알뜰하게도 레오는 빈 잔마저 던져 다른 한패에게 집어던졌다.
“끄아아아악!!”
눈을 포함한 안면에 고르게 찻잔 조각이 박혔다. 차에 의한 화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비켜! 저 꼬마는 내가...!”
푹
이번에는 검으로 달려든 건달의 목을 찔렀다. 성인보다 작은 체구였기에 오히려 기습에는 소년이 더 유리했다.
“상대는 애라고!! 왜 애 한 명을...!”
휘익, 퍽
소년은 검으로 찌른 건달의 몽둥이를 들었다. 그리고 회전력을 더해 목청을 높인 건달에게 집어던졌다.
“크악!!”
몽둥이라고 해도 철심을 듬성듬성 박아, 위력과 공격성을 높인 무기였다. 얼굴에 제대로 던지자마자 건달의 얼굴은 함몰되며 두개골이 찌그러졌다.
“으아아!!”
소년이 얼굴을 다친 건달의 목을 찌를 무렵, 남은 멀쩡한 건달은 갑작스러운 반전에 비명을 질렀다.
“닥쳐 좀.”
던진 건, 단검.
주머니에 넣어둔 사냥용 단검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지르던 건달마저 쓰러졌다.
“...넌...! 넌 도대체...!”
화상을 이겨낸 것일까, 대머리 건달은 쓰라린 눈을 비비며 소년을 불같이 노려보았다.
“드디어 두목님이 납셨나? 거참 보기도 힘드네. 데칼.”
소년은 그런 살기에도 태연히 웃으며 뒤쪽을
“두...두목?!”
급히 대머리는 고개를 돌린다.
퍼억
가슴팍에 검이 꽂힌다. 고개를 돌린 사이 소년이 꽂은 것이었다.
“병신.”
검으로 가슴팍을 헤집으며 소년은 말했다. 건달이라는 놈이 이렇게 쉽게 죽을 줄은 몰랐다.
“...아...으...그게...”
여관 주인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 폭력과 피가 난무한 자리를 바라보았다.
“미안하게 됐어. 아저씨. 어쩌다보니 너무 어질러버렸네.”
“...자네...자네 도대체...! 무...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정신을 차린 건지, 여관 주인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 거리를 잡고 있는 도적단인 데칼 일당들은 부하가 죽으면 죽인 사람과 연관된 사람은 다 몰살시키는 잔악한 도적들이었다.
“아저씨가 해달라며. 애당초 난 이럴려고 온 건데?”
“무슨 개소리인가?! 나는...! 이런 걸...!!”
소년은 태연히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사슬줄에 연결된 금속패를 꺼내들었다.
“며칠 전 용병 길드에 도적단 토벌 의뢰했잖아. 댁이 의뢰자라고 들었는데?”
용병패에는 등급과 이름, 그리고 확인용 특수 날인이 똑똑히 새겨있었다.
“...그...그럼 미리 말씀을...”
“미리 말하면 왜 애새끼가 왔냐면서 지랄했겠지, 두 팔 벌리면서 ‘우린 당신 같은 용병을 기다렸소.’라고 말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소년은 죽어있는 데칼의 부하를 발로 밀면서 말했다.
“뭐, 지금 봤다시피 제법 유능한 편이니까 불만은 내가 뒤지고 말해도 늦지 않아.”
용병패에 찍혀있는 이름은 이와 같았다.
【레오나르도】
***
“...그러니까 데칼놈들이 여기 온 건, 반년 전쯤이고 경비대 쪽에선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말이 없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말로는 지원이나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하지만...”
“아마 1년 지나도 안 도와줄 거야.”
레오나르도는 얘기를 끊으며 확신했다.
“예...?”
“이 여관이나 다른 가게들은 다 뒷골목에 있잖아. 솔직히 말해 실적만 생각하는 경비대 자식들이 도와주지 않아도 아무런 손해가 없어.”
애당초 경비대의 필요 이유는, 이 마을에 주민으로서 제대로 인정받은 양지의 인간들에게만 있었으니까.
“오히려 여기 경비 상태를 보니까, 데칼 일당한테 뒷돈을 먹어도 이상할 건 없어. 사실 나 같아도 그럴 테고.”
“그런... 경비대랑 도적단이 유착관계라니...”
레오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착? 뭐야 그게? 어려운 말 쓰지 마. 애새끼한테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해.”
그런 말에 여관 주인은 새삼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용병의 나이가 짐작되었다.
“그러면...”
“데칼 일당은 아까 죽인 놈들 말고 더 있어?”
“네, 지금 수금 중일 겁니다. 데칼은 지금 본거지에...”
“그럼 거기로 가야겠네.”
레오는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대장 목을 따는 게 제일 쉽잖아. 그럼 도적굴 가는 게 제일 빠르지.”
“...아니, 이렇게 급히 가는 가도 됩니까?!”
“기습은 원래 급히 가는 거지. 위치는 대강 알아뒀어.”
그렇게 말하며 아까 죽인 시체의 주머니에서 꺼낸 지도와 열쇠를 보여보았다. 지도의 길에 펜으로 그어진 옅은 선은 이 도적들의 수준을 어림으로나마 짐작시켜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 멍청이들이 그리 똑똑해보이지는 않아서 말이야.”
“...하...하지만... 그럼...”
“착수금은 이걸로 가져갈게.”
레오나르도는 태연히 여관비로 낸 돈 주머니를 챙겼다.
“...그건 원래...”
“여관비랑 착수금 별개지. 낼 건 낼 거고, 가져갈 건 가져갈 거야. 어려도 상도의는 안다고.”
그리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여관 문을 잡아 열었다.
“참고로 밥은 좀 제대로 된 거로 준비해둬. 개고생하고 꿀꿀이죽 먹는 것만큼 서러울 일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뭔가 말하는 것은 묘하게 변주가 있었지만, 따지기도 전에 레오나르도는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지나고, 하늘의 색이 붉은 황혼에 저물 때까지 레오는 들어오지 않았다.
긴장했던 여관 주인도 어느샌가 피투성이였던 여관 내부를 청소하며 태연히 볼 일을 보게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설마 죽은 건...’
문득 그런 생각을 품을 무렵, 문이 열렸다.
뚝...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는 사람의 얼굴, 얼굴이 조금 부어오른 데칼의 얼굴이었다.
“...데...데칼...!?”
“나야. 다행히 얼굴 상태는 괜찮은가 보네.”
이윽고 들어온 건, 데칼의 머리를 든 소년 용병.
부상이 심한 건지, 소년의 양팔도 발진이라도 난 것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그...그건...”
여관 주인은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한 표정으로 반년 동안 자신이 상납금을 냈던 도적단 두목의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데칼의 머리통이야. 의뢰한대로 잘 죽였지.”
“...혼자서... 데칼을...”
“운이 좋았지. 사람도 마침 데칼하고 측근들 밖에 없었고, 정면으로 잡은 것도 아니야.”
레오나르도는 태연히 한 도적단의 수장을 잡은 방식을 알려주었다.
먼저 레오는 근처에 벌집이 있는 숲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약초와 꽃들을 꺾어 몸에 이곳저곳에 묻혔다.
“그래야 벌들이 덜 쏘거든. 싫어하는 향이 나서 그런가봐.”
그런 뒤, 벌통을 통째로 뜯어 천으로 감쌌다. 당연히 쏘이긴 하겠지만, 몸에 바른 약초 덕분에 물리는 것도, 물려도 통증이나 붓기는 덜했다.
“그리고 데칼이 있는 곳에 벌통을 집어던졌어. 아무리 잘 싸우는 놈도 살충제 없인 몇백 마리의 벌을 다 잡을 순 없을 테니까.”
나머지는 간단했다. 벌에 쫒기고 물린 데칼이 급하게 문으로 나온 틈을 타, 머리를 벤다.
그리고 측근들도 출구마다 준비해둔 함정으로 죽이거나, 발목을 묶은 후 죽인다.
그걸로 의뢰는 종결됐다.
“...그...그렇습니까...?”
어느새 극존칭으로 여관주인의 말투는 바뀌었다. 저 용병 소년의 솜씨와 책략은 어른이나 다른 용병을 한심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나고 능숙했다.
“그런 셈이지. 머리통은 확인용을 챙겨온 거야. 아저씨도 그냥 죽였다고 하는 것보단 이게 확실하잖아.”
그건 맞는 말이었지만, 테이블 옆쪽에 머리통을 놓은 것은 너무나 소름이 끼쳤다.
“그럼 밥하고 후불 준비해둬. 잠시 나갔다올테니까.”
“...예? 나갔다 온다고요?”
“그래야지. 이거 좀 들면서 죽였다고 광고하려고.”
“...예...?!”
너무 덤덤히도 어린 소년이 미친 짓을 하겠다고 말하자 여관 주인은 놀라며 말리기 시작했다.
“위...! 위험해요!! 그런 짓을 했다간 잔당들이...!!”
“잔당들이 보라고 하는 건데?”
“예?”
“아예 마을 사람들이 다 보라고 하는 거야. 그래야 이 마을에 도적질이 덜해지지.”
데칼은 이 마을의 뒷골목을 꽉 잡고 있는 대두목, 처음 레오가 추측한 대로 경비대와도 유착 관계에 있는 도적단의 우두머리였다.
“근데 만약 일개 애놈이 그 데칼을 죽이고, 대가리를 든 채 마을 전체를 돌아다니면 어떻게 될까?”
“...경고하는 건가요? 다른 도적들한테.”
“그것도 있고,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도 안심할 수 있겠지. ‘그 데칼도 별 거 없구나.’하면서 말이야.”
그 행동을 통해 데칼 도적단의 위상은 바닥을 칠 테고, 덤으로 경비대와 잡배들한테도 좋은 본보기가 될테지.
게다가 사람들은 안심하며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레오가 머리통을 들고 다니는 동안은 아니겠지만.
“..그러다가... 잔당이 복수라도 하면...”
“괜찮아. 본거지에 돈이 될만한 건 다 남겨뒀으니까. 제대로 된 도적이면 복수보단 다른 녀석들보다 먼저 그걸 챙기려고 하겠지.”
덤으로 내부 분열로 싸워 죽이면 만만세였고.
“...그렇...군요...”
“이래서 사람은 머릴 써야돼. 머리 빼면 시체라니까. 이런 식으로.”
그런 웃지도 못할 농담을 던지며, 레오는 데칼의 머리를 든 채 여관 문턱에 섰다.
“아. 참고로 묻고 싶은데.”
여관주인은 눈치를 보며 나올 질문을 미리 살폈다.
“이 동네에서 제일 센 놈은 누구야?”
“...거기...”
여관 주인은 떨리는 손으로 데칼의 머리를 가리켰다. 우연이였을까, 레오의 입에서 혀를 찬 소리가 난 것 같았다.
“그럼 소문 같은 건 없어? 협객이 왔다든가, 방랑 기사 같은 거.”
“...그러고 보니... 용사 가문의 영애가 이곳에 왔답니다.”
“용사 가문?”
들어본 적은 있었다. 용사 루벤 라인하르트에게서부터 내려온 가문, 세상 구한 영웅의 가문이라고 말이다.
“그 영애가 그렇게 세?”
“소문으로는 10살 때 오크를 잡고, 13살 때는 와이번을 죽였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레오는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돼. 사람이, 그것도 애가 어떻게 그래?”
여관 주인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차마 목에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말은 있었으나, 눈치가 보여 입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어쨌든 알겠어. 만나보면 재밌긴 하겠네.”
그러곤 13살의 소년 용병은 여관 밖으로 나갔다. 100명은 족히 죽인 도적단 두목의 머리를 든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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