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8 탈선의 광란-6
“꽤나 화끈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네. 동생?”
아리아는 당황하다 못해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아리아스필의 붉어진 얼굴은 오빠인 리오스의 눈에 톡톡히 새겨두고 있었다.
“늦게 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나머지 나한테 맡겨.”
그렇게 말하며 리오스는 손가락을 튕겼다.
“어?”
아리아와 레오나르도가 동시에 전이되었다. 좌표값은 마탑이었으니,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눈을 팔아...!?”
그 사이에 점토사는 리오스에게 돌진했다.
“팔기는, 계속 보면 시신경이 썩을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린 거지.”
얼음으로 만든 냉병기들이 점토사의 살점에 꽂혀들었다. 그대로 점토사는 충격에 다시 나가떨어졌다.
“...하...하하핫...!”
그렇지만 나가떨어진 점토사는 어째서인지 광소를 내고 있었다.
“그래... 들어본 적 있지. 리오스... 라인하르트 가의 장남이랬나?”
점토사는 다시 큰 목청으로 괴성을 내질렀다.
“이러고도 네가 이길 수 있을까!?”
돌진해오는 괴인들, 아직도 점토사의 재료가 된 피해자들은 많았다.
“...난 참 게으르단 말이지.”
얼음의 무기들이 소나기처럼 괴인들을 꿰뚫었다. 리오스는 눈동자에는 고요한 분노가 차있었다.
“미안합니다.”
얼음이 박히자 괴인들의 전신이 폭발했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못할 정도로 빠른 폭발이었다.
“너...”
“왜 그래? 항상 웃는 게 네 특기 아니었나? 리오스 라인하르트?”
그렇게 말하며 점토사는 터져버린 육편을 빨아들였다. 흡수를 하자마자 몸의 근육과 골격이 다시 복구되었다.
피해자들은 시체도 남지 않은 채, 그대로 약한 비명만을 내지르며 점토사와 융합했다.
“하...! 너희들은 너무 뻔해. 목숨이 중요하다느니, 한번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느니... 그런...!”
리오스는 실눈을 뜨며 미소를 지었다.
“사랑을 본 적이 있어?”
살육이 오가며, 혈향이 비 사이에서 짙게 피어오르는 전장에서.
“내가 처음으로 사랑을 본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셨어.”
리오스는 생글거리며 사랑 이야기를 꺼낸다.
“이미 새치가 검은 머리보다 많을 정도로 지긋하신 두 분은, 젊으신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금실이 좋으셨지.”
“갑자기 뭔 헛...”
말을 끊자마자 리오스는 바로 수압의 칼날을 날렸다.
“당시에는 사랑이 아름답게만 보이더라고. 어려도 그때 난 제법 조숙했거든.”
그러면서 물의 무기를 기화시켜 증기로 폭발시켰다.
“크악!!”
“근데 아리아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돌아가셨어. 너희 같은 흑마법사가 음식에 장난질을 쳤거든.”
증기의 열기가 연쇄적으로 빗방울을 폭발시킨다. 폭발의 충격으로 점토사의 살점이 온 방향으로 튀여나간다.
“할아버지는 분노했지. 거의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흑마법사나 인물, 그리고 조직 전부를 몰살시켰어.”
점토사는 그런 살점을 다시 뭉치며 몸을 복구시켰다. 그러곤 그 공격을 비웃듯 리오스에게 달려갔다.
“그제서야 난 안 거야. 사랑이란 건 가장 아름답기에 안타깝다고.”
그러고는 전방향으로 팔을 생성시켜 리오스에게 고유 마법을 날렸다.
“일격에 즉사시켜주마...!!”
“그런 사랑을, 너 같은 쓰레기가 멋대로 짓밟아도 되는 걸까?”
우드득
고유 마법이 담긴 팔들은 뼈가 꺾이면서 각도가 전부 틀어졌다. 외부에서 마법이 작용한 것도, 그렇다고 점토사가 고의적으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특히나 내 동생들이 하는 사랑이라면 더.”
뼈 뿐만이 아니었다. 근육, 혈관, 신경까지도,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점토사의 몸을 스스로 파괴시키고 있었다.
“어떻게...? 우욱...! 몸이 왜...?”
“즉사시키는 기술을 왜 너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리오스는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퍼억, 퍽
살점에서 얼음의 날붙이들이 튀어나왔다. 날아와서 박힌 것이 아닌, 체내에서 얼음이 형성돼서 살점을 뚫은 것이었다.
“크아아악!!”
“네가 고유 마법이 있듯, 나한테도 고유 마법은 있어.”
“...고유... 마법...? 너 같은 게...?!”
리오스는 다시 손가락을 튕긴다. 이번에는 전신의 혈관이 터져오른다.
“아아아악!! 그만...! 제발 그만....!!”
“왜 그래? 아직 고체 형태밖에 안 했다고.”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몸에 있는 모든 체액들은 고형화되어 전신을 뒤틀고 있었다. 본디 수분은 고체가 되면 부피가 팽창하기에 수분이 지니가는 통로들을 전부 찢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내 고유 마법은 물의 상태를 완벽히 조종하는 거야. 내 마나가 들어있는 수분을 완전히 조절할 수 있지.”
이제야 점토사는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날렸던 얼음 무기들은 그 마나를 주입하기 위한 촉매였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다시 내지른 괴성, 마지막이지만 괴인들은 더 남아...
퍼엉! 퍽석!
“남아있어야... 할텐데...”
“그리고 비가 내렸다는 시점에서 넌 절대 날 못 이겨. 이 비구름 자체에도 이미 내 마력을 심어둔 뒤거든.”
그렇기에 이 비를 맞은 괴인들은 전부 터져버린 지 오래였다.
“물론 비가 없으면 위력도 급감하니까, 이런 걸 하늘이 도왔다고 하지?”
점토사는 비 오는 날, 물 속에서 질식하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리오스의 고유 마법이 담긴 수분이 몸을 튀틀어놓아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지만, 점토사에겐 그런 걸 판단할 여력도 없었다.
“아까 피해자들이 터진 건, 몸의 수분이 기체가 됐기 때문이야.”
“...으...아... 제발...”
점토사의 등가죽에서 검날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이미 점토사의 모든 세포에는 리오스의 고유 마법이 스며들어있었다.
“왜 그래? 나라고 그렇게 무정한 인간은 아니야. 사죄할 기회는 당연히 주지.”
그 말에 점토사는 형체도 유지하지 못한 손을 모으며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빌기 시작했다.
“자...잘못 했스...읍니아....! 다시는 이러언... 짓 안 하게엤...습니다아...!”
“...참 이상하단 말이야. 너희들은 그렇게 창의적으로 사람들 인생을 망쳐놓고는... 사과하라고 하면 다 이런 식으로 한단 말이지.”
리오스는 검지와 엄지를 붙여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사죄는 보통 ‘죽이는 사람’보단 ‘죽였던 사람’한테 하지 않나?”
“아...아아...!”
그 의미를 이해한 순간, 리오스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리오스으으!!”
그 순간, 한 여자가 전속력을 다해 뛰어오고 있었다.
“오, 학점의 노예구나.”
아메리 에스프였다.
“닥쳐. 뺀질이가.”
평소와는 무척 다른 아메리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친구야, 무슨 일로 불렀니? 급한 일 아니면 잠깐만 쓰레기만 죽이고 얘기하자.”
그렇게 말하며 리오스는 다시 손가락을 튕기려고 했다.
“그거 막으려고 온 거야.”
“...뭐?”
“터뜨리지 마. 그러면 진짜 돌이킬 수 없어.”
점토사는 조금 미소를 지었다. 저런 무른 생각에 목숨이 빼앗긴다.
“내 동생들은 이놈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이 미친놈을 그렇게 도덕적으로 배려해야해?”
설사 리오스가 말을 듣지 않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여차하면 이 여자를...
[프로즌 블리자드]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메리는 얕은 수작을 부리는 점토사의 손을 팔째로 얼려버렸다.
“너 이번 사건 보고서 쓸 때하고 치료제를 생각해서 말하는 거야.”
“끄아아아아악!”
얼려진 팔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지르는 점토사를 보지도 않은 채 아메리는 말했다.
“원래 사건 보고서는 시체를 남겨둬야 쓰기가 쉽고, 고유 마법의 전용 치료 마법을 개발하는 것도 흑마법사 본인의 시체가 있으면 더 편할 거야.”
“...그래서 살려두라고?”
“아니. 그냥 이렇게 통째로 얼리자. 원한다면 머리만 남기고 다 터뜨려도 되고.”
그 말에 점토사는 식은 땀조차 흘리지 못했다. 그러기엔 주변의 공기가 너무 냉랭했기에.
“아, 그러면 되겠네.”
딱
머리 이외에 전신이 폭발하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점토사의 머리는 세포 단위로 얼음에 갇히게 되었다.
“으아... 지쳤어어~”
그렇게 얼려진 점토사의 머리를 바라보며 리오스는 그대로 흙바닥에 누웠다.
“여기 네 집 안방이냐? 돌아가서 침대에 잘 누워. 그러다가 진짜 병 걸린다.”
“너무해~ 내 마법도 광역기 수준으로 쓰면 지친다고.”
아메리는 한숨을 쉬면서 리오스를 업었다. 그러곤 점토사의 머리는 아공간 가방에 집어넣었다.
“역시 내 친구에요오~ 너무 고마워요오~”
“따라하지 마. 길바닥에 던져버린다.”
“너무해요오~ 자기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런 말투로 말하면서요오~”
꼬집
“아아악! 거기 힘줄이야! 힘줄!!”
“그때는 피곤했고, 친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렇지. 8년지기랑은 그렇게 말하는 게 더 힘들어.”
손가락의 힘이 줄어들자, 리오스는 다시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난 특별한 거네.”
“하... 그렇게 생각하든지.”
“원래 그런 거 몰라? 요즘은 순애 소설에선 소꿉친구물이 인기잖아.”
리오스가 뒤에서 킥킥대자 아메리는 붉은 얼굴을 지푸렸다.
“지랄. 소꿉친구는 결국 진 히로인한테 밀리잖아.”
“야, 아메리.”
갑자기 리오스의 손힘이 세진다. 순간적으로 아메리는 당황해한다.
“그건 아니지. 너 말이 좀 심하다.”
정색하는 리오스에게 조금 밀린 것인지 아메리는 떨리는 말투로 물었다. 어째서인지 얼굴이 조금 더 붉었다.
“...그...그런가? 그럼...”
“하렘은 순애가 아니야!”
파악
헛소리에 참다 못한 아메리는 리오스를 집어던졌다.
“혼자 걸어와. 난 먼저 갈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순간이동의 지도를 펼쳐 몸을 전이시켰다.
“...조금은 솔직해질 걸 그랬나?”
그 말은 다르게 말하면 리오스는 소꿉친구로만 이루어지는 순정 소설이 좋다는 뜻이었다는 걸, 아메리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리오스도 아메리가 바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었음에도, 어째서 업어준 것인지 눈치채지 못했고 말이다.
***
테러의 여파는 꽤나 무겁게 퍼지고 작용했다.
세간에선 테러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마탑과 마탑주들의 무능함에 지탄을 금치 못했고, 그 이유가 마탑 내부의 비리 처리라는 걸 알자 그에 대한 비판은 더 거세졌다.
그리고 이 사태의 피해자들도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새기게 되었다. 가족에서 유족이 된 사람들은 그 원망을 다른 사람에게조차 퍼뜨리기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서 이 사태를 종결시킨 어린 영웅은 병실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레오나르도.”
“네?”
레오가 눈을 뜬 곳은 병실이 아니었다.
습기가 있는 동굴 안, 그곳에 자신은 바닥에 앉아있었다.
눈앞에는 현자가 서있었다. 반투명한 영체의 모습이 아닌, 실체가 있는 사람의 형상을 한 현자였다.
“일어났냐?”
“...여긴 수호자가 있던...”
수호자와 맞붙으며 우연치 않게 현자의 돌을 얻은 장소였다.
“실제로 이동한 건 아니야. 정확히는 네 정신 속, 신체적으로는 심장에 박혀있는 현자의 돌 속이지.”
그 말대로 갑자기 동굴로 이동하는 건 이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현실에서 자신은 어떻게 되어있는가.
“밖에서 저는...?”
“기절해있어. 걱정 마. 그냥 과로로 기절한 거야. 제때 포션도 잘 먹였고, 병실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후유증 없이 몸은 잘 회복할 테지.”
그렇다면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자신은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럼 왜...”
[너는 지금부터 시험을 마주할 거다. 네 과거, 혹은 너 자신과 마주한다고 생각해도 좋겠지.]
“마주한다는 건...”
분명 이런 회귀와는 다른 개념일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우선 좀 앉아.”
“앉으라고 해도 앉을 데는...”
어느샌가 자신은 앉아있었다. 그것도 제법 익숙한 나무 의자에 말이다.
“그래서?”
“...네?”
“그냥. 하고 싶은 걸 해. 평소에 하던 수련을 해도 좋고, 아까 만든 의자처럼 음식을 만들어 먹어도 좋겠지. 어렵게 생각하면 진짜로 어려워질 거야.”
그 말에 잠시 의자를 몸을 기댄 레오는 입을 열었다.
“...좀 긴 이야기를 해도 되나요?”
“300년보다 짧다면.”
300년, 저 노인에게는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아리아를 만난 건, 그날 용병일을 마치고 올 무렵이었어요.”
다행히도 과거의 회포는 300년보다 짧은 단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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