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56화 (56/248)

EP.56 탈선의 광란-4

토가 나올 것만 같다.

눈앞의 소녀가 3초 만에 즉사당했기 때문인가.

소녀의 말로가 저렇게 괴기스럽게 뭉쳐진 괴물이었기 때문이었는가.

아니. 아리아스필은 가장 역겨운 답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걸 인정하면 메스꺼운 감정에 스스로가 죽어버리기에.

“...”

아리아스필은 침묵한다.

“이런 감상이 없나? 아니면 아직 퍼포먼스가 부족해서 그런가?”

점토사는 레오나르도의 얼굴로 미소를 지은 채, 그 개조된 소녀를 밀쳐내었다.

“같이 놀아보면 감상이 조금은 바뀌려나? 여자애니까 소꿉놀이라도 해봐.”

“...쿠르러럭...!”

개조인간은 괴성을 내지르며 아리아에게 돌진했다.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후웅

지금의 아리아스필에겐 반격할 수 없었다.

“반격하지 않네? 내가 준 찰흙 인형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속도도, 위력도 아리아가 우위였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태세만 전환한다면 즉식 목을 벨 수 있었다.

“쿠르르어어...!!”

하지만 아리아스필은 공격하지 않았다. 모든 자세와 행동을 방어와 회피에 집중했다.

“크...살려...어어...”

이 괴인의 정체들이 전부 사람이라는 게 확정이 난 순간, 아리아스필은 목을 벨 수 없었다.

[...아리아... 그러면 죽어...]

<하지만... 사람을... 그것도...>

아리아 자신이 직접 오빠를 죽인 소녀였다. 그런 소녀를 자신의 손으로 벨 수는 없었다.

이 이상 벤다면, 그 이상의 죄악을 쌓는다면.

아리아스필 자신이 버틸 수가 없었다.

[알았어. 아리아.]

이번에는 지면에서 덩굴이 튀어나왔다. 흙과 식물의 정령은 그 덩굴을 성장시켜 괴인을 포박해 제압했다.

“이야, 정령술이라~ 나랑은 상성이 안 좋은데~”

“...넌... 너만큼은...!!”

아리아는 진심으로 분노하며 점토사에게 돌진했다. 저런 녀석을 죽이는데 죄책감은 필요 없었다.

“왜 그래? 내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

“입 닥쳐...!!”

아리아의 검격은 격정에도 빠르고 정확했다. 암살과 살육에 능했던 점토사마저 아리아의 검술을 피하지 못하고 상처가 났다.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놓고...! 그런 말이 나와...?!”

“하하, 이거 참 너무하네.”

점토사는 그런 상처를 다시 복구시키며 손을 칼날처럼 변형시켰다.

“너도 죽였잖아? 왜 영웅인 마냥 떳떳하게 말하지?”

그 순간 아리아의 사고가 정지했다. 처음에 베었던 괴인과 저 소녀의 오빠가 사고를 마비시킨다.

“너도 살인자면서.”

아까 그 소녀도 그 생각을 하고 자신을 본 것이었다.

“하핫! 약점이 너무 뻔하잖아. 반전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며 점토사는 아리아의 배를 붙잡았다.

“반전이란 이런 거야.”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통증, 세포 하나하나를 핀셋으로 집어 다시 엮는 것 같은 감각.

“크악!”

일순 아리아 주변의 오러가 폭발했다. 풍압과 함께 마나의 압력이 점토사의 고유 마법을 밀어낸다.

“용케 본능적으로 방어했네.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방어했다한들, 그건 충격을 이겨낸 거지 무효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통증은 여전히 배에 잔류해있었다.

평소보다 과한 양으로 오러를 뿜어낸 것도 한몫했다.

“그럼 전략을 바꿀까?”

점토사는 다시 양팔을 늘려 고유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변형된 길이가 긴만큼 궤적이 보여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말했잖아? 중요한 반전이라고.”

늘어난 손이 붙잡은 건은 제압당한 두 괴인, 포박당한 채 목숨만은 붙어있는 괴인들이었다.

“난 재료는 안 남기는 주의여서.”

두 괴인은 다시 불에 쬔 밀랍처럼 녹아내렸다. 괴기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 두 덩어리는 하나로 뭉쳐지며 거대한 거인을 완성시켰다.

“오빠 앞에서 외간 남자와 몸을 섞는 여동생이라, 문장형 제목도 나쁘지 않은데?”

“...이... 악마 같은...!”

구역질이 나오는 사악함이었다.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인간 따위가 아니었다.

저 살인귀는 진심으로 저 살아있는 시체를 융합시키는 것에 예술적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상을 즐기는 가학에 더욱 희열을 느끼는 광마(狂魔)라고.

아리아는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악취를 느꼈다.

“왜 그래? 따지고 보면 죽이지 않은 네 책임도 있잖아.”

그 순간, 이성의 무언가가 팽팽해졌다. 분노나 증오와 같은 공격적 격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야...!! 난...!”

“그래? 정말 저 사람들을 걱정해서 죽이지 않은 거야?”

거인이 주먹을 날린다. 몸통에 연결된 두 머리통이 내는 화음은 가히 오열이라고 봐야만 했다.

“넌 그저 네 손을 더럽히기 싫었던 거야. 살인이라는 죄를 짊어질 용기조차 없었던 거지.”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야!!”

강한 부정이 속절없이 긍정으로 대답해준다. 저자가 내뿜는 광기에 아리아도 점차 물든 것인지 검술이 미친 것처럼 거칠고 빨라진다.

“그런데 한 가지 알려줄까?”

거인이 다시 공격한다. 그 괴력이 담긴 공격은 피했지만, 문제는 협공으로 나오는 점토사의 손이었다.

이번에 닿는다면 확실히 당한다. 정령을 불러 막는다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것이다.

<불을...>

“너도 결국 살인자야. 나랑 똑같이 평생 지울 수 없는 죄를 진 거라고.”

소통할 언어 능력마저 상실한다. 팽팽했던 정신의 실이 끓긴다.

그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아리아스필은 찰나의 빈틈을 메꾸지 못했다.

“좋은 재료가 되...”

•쏘기 제9형 사(射) 조준 발사

그 더러운 팔이 화살째로 뜯겨 날아간다.

“당연히 다르지. 개자식아.”

그 화살만이 끝이 아니었다. 연속해서 날아가는 화살의 연사.

“지랄맞게 누구랑 누구를 비교해?”

네 발의 화살이 동시에 거인의 두 머리, 그리고 심장의 위치를 정확히 적중시킨다.

“넌 무관계한 사람을 쳐죽인 쾌락 살인범이고, 아가씨는 그걸 막으려고 노력하는 영웅이야. 그걸 말해야 알겠냐?”

화살을 날린 것은 저 점토사가 따라했던 가짜, 그리고 아리아스필의 기사.

“그리고 더 죽이기 싫은 게 뭐가 나쁜데? 저렇게 된 사람이더라도 난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는 아가씨가 좋아. 그런 아리아스필이 정말 좋다고.”

연속해서 레오나르도는 화염구를 던진다. 세 발의 화염구가 점토사에게 그대로 적중한다.

콰앙, 콰아앙

점토사는 폭발의 충격으로 약간이나마 날아갔다. 단지 충격으로 밀려갔을 뿐, 죽지도 살점이 날아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연막으로는 충분했다. 폭발의 열기와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그러니까 이미 죽였든, 죽일 거든 상관없어. 설사 아가씨의 죄가 평생 간다고 해도 그만큼 내가 평생 같이 짊어질 테니까.”

그렇게 선언하며 레오나르도는 연막이 퍼진 현장으로 뛰어갔다. 그러곤 아리아의 손을 잡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꽉 잡아요. 날 겁니다.”

“어...어?!”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건물을 향해 검은 돌의 와이어를 날렸다.

늘어난 와이어가 수축하며 레오를 공중으로 끌어당겼다.

“...레오... 어디서...? 아니, 그보다 어떻게...!”

“대답은 거리가 멀어지면 하죠.”

짧은 대답과 함께 레오는 건물의 옥상과 지붕을 뛰어다니며 최대한 그 자리에서 거리를 벌렸다.

그 동안 아리아스필은 보았다. 아니, 곁에 있었기에 볼 수밖에 없었다.

레오나르도의 몸에 군데군데 난 상처들을, 경상부터 시작해 중상, 거기에 만약 지혈이나 소작하지 않았더라면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치명상들까지도.

고작 죄악감에 무너진 자신이 한심해보일 정도였다.

“...여기라면... 바로 찾지 못할 겁니다.”

“레오... 상처가...”

간신히 지혈시킨 상처는 아까의 도약으로 벌어진지 오래였다. 옷에 점점 늘어나는 핏자국은 그 고통의 양을 알리는 것 같았다.

“아가씨, 정령술로 우선 절 치료해주세요. 치료만 한다면 괜찮을 겁니다.”

“...어...알았어...”

아리아스필은 주변의 정령을 마나로 부르기 시작했다. 최대한 많이 모을 수 있는대로, 세계를 이루는 마나의 개념들은 레오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레오를... 치료해줘.”

[알았어.]

[도와줄게.]

[노력해보마.]

여러 정령들은 대답하며 레오의 몸에 원기의 치유력을 부여했다. 으스러지고 부러진 뼈는 다시 제자리를 잡고, 찢어지고 갈라진 상처는 다시금 아물었다.

‘...혈액 자체는 복구되지 않았지만... 이정도면 좋은 편이야.’

오히려 단기간에 배운 정령술로 고속 치료를 했다는 점은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괜찮아?”

“덕분에요. 아마 아가씨가 없었더라면 위험했을 겁니다.”

거짓말일 것이다. 정말 안전을 택했더라면 마탑과 같은 큰 건물로 대피해 마법사들에게 치료를 부탁했을 것이다.

“그... 녀석은 어떡하지? 베어도 다시 아물고, 손에 닿으면 바로 죽을 거야.”

“...작전은 있어요. 아마 성공하면 저희들도 살아남을 수 있겠죠.”

역시 레오였다. 언제든 침착하고 냉정히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다.

“어떤 작전...”

파직

목부위를 살짝 치면서 레오는 전기 마법을 사용했다.

“죄송합니다.”

긴장을 풀었던 아리아에게는 강한 위력, 그대로 그녀는 기절했다.

“...난 너희들이 보이지 않아.”

그러곤 주변의 보이지 않는 정령들에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부탁한다. 아리아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 최대한 멀고 안전한 곳으로.”

그 말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아리아가 공중을 뜨며 이동하는 걸로 봐선 의미는 전달된 것 같았다.

“...그럼...”

레오나르도는 다시 무기를 들었다.

[...야.]

“...”

레오나르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다시 그 현장으로 달려갔을 뿐.

[대답해.]

“...”

[대답하라고.]

현자는 대답을 요구했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침묵했다.

[뭘 할 생각이냐?]

“...시간을 벌 겁니다.”

아리아스필이 도망칠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을.

[죽을 생각이냐?]

“...”

침묵은 긍정이었다.

[그 녀석, 제하드하고는 사는 세계가 달라. 아까 상처가 아문 것도 재생이 아니라 복구라는 시점에서 승산은 없고, 네 몸도 상처만 치료됐을 뿐이지 마나는 거의 회복되지도 않았어.]

신랄하면서도 냉철한 평가.

전부 다 사실이었고, 암담했다.

그럼에도 레오나르도는 달려간다.

이윽고 나온 것은 점토사의 괴인들, 도망치는 사이 이미 다른 사람들을 재료로 삼았다.

“그러니까 시간을 더 벌어야해요.”

적들을 벤다. 피가 튀며 살점이 잘려나간다. 울리는 비명과 절규를 검으로 찢으며 레오는 괴인들을 처리해나간다.

[...그럼 뭐가 되는데.]

“...적어도 아리아는 살 수 있겠죠.”

자신이 사는 것은 전제에 없었다.

죽는 걸 전제로 한 계획이었기에.

[그래.]

체념한 현자의 말.

[죄책감은 없어졌냐?]

일순 검이 떨렸다. 현자를 노려보는 것조차 못하고 적을 죽인다.

[어차피 죽을 거면 이건 알고 죽어.]

토막을 내 죽인다.

[네가 한 건 아리아를 위한 희생 같은 게 아니야.]

목을 베 죽인다.

[아리아는 너랑 같이 싸우다 죽었으면 죽었지 이런 식으로 살아남고 싶지 않을 테니까.]

심장을 꿰뚫어 죽인다.

[넌 그냥 네 기분이 편하려고 아리아를 살려 보낸 거야. 곁에서 죽기라도 하면 넌 정말 미쳐버릴 테니까.]

죽이고 죽인다.

[이건 희생이 아니라, 아집이야. 자기연민에 빠져선 자기위안을 얻을려는 고집이라고.]

이윽고 소년은 폭발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데요!!”

이윽고 후방에서 괴인이 나왔다. 예상했던 바였다.

“아리아를 확실히 살릴려면 이 방법 밖에...!!”

[그래, 목숨은 부지시킬 수 있겠지. 근데,]

하지만 베인 괴인의 내부에서 점토사가 튀어나왔다. 허물을 탈피한 뱀처럼 점토사는 레오의 안면에 손을 짚었다.

[아리아 기분은 생각해봤냐?]

반격은 늦었다. 한계 이상의 오러를 방출시킨다고 해도, 부위는 머리의 뇌.

방어에 성공해도 내상으로 두뇌에 충격이 가고 손상될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살 방도는 없었다.

<...미안합니다.>

사과이자 유언이었다.

[사과는 나 말고, 쟤한테나 해.]

현자의 말을 끝으로 점토사가 날아갔다.

그 점토사를 날린 건 검의 바람, 정령과 기사의 검격이 섞인 검풍이었다.

“...레오, 나 진짜 화났어.”

그렇게 말한 아리아는 옥상에 올라와 옥상에 섰다.

“왜 거짓말을 했어?”

이윽고 레오에게 포션이 던져진다. 아마도 근처 마탑의 물약 상점에서 가져온 고급 상품인 것 같았다.

“...죄...죄송...”

“평생 내 곁에 있을 거라며.”

“...예?”

이해할 수 없는 말. 레오는 되묻는다.

“...그게 무슨....”

아리아는 섬뜩하고 찬란한 시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생 내 곁에 있어. 넌 선택하지 마. 레오 네가 어떤 수를 써서 떨쳐놔도 난 너를 내 곁에 붙잡아놓을 거야. 반항해도 소용없어. 네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어떤 수를 써서라도, 죽음조차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

“넌 내 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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