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5 탈선의 광란-3
[지금 이해가 안 돼서 그런데, 아까 그 괴물...아니 괴인은 뭐냐? 내 시대엔 그런 마물은 없었어.]
넝마짝이 된 몸으로 자신의 아가씨를 찾고 있는 레오는 대답 대신에 또다른 괴인을 베어넘겼다.
“없는 게 당연하죠. 이 괴인들은 원래 무관계한 사람들이니까요.”
이 개조인간들은 태반이 이번 테러에 말려든 피해자들, 그리고 살해당한 실종자들일 것이다.
[...설마 개조당한 거냐? 누가 이런 식으로...]
“그 자식보다 먼저 아가씨한테 가야해요.”
괴인의 목을 떨구며 레오는 말했다.
“다 폴리모프시킨 거에요.”
[...폴리모프?]
정확히는 고유 마법으로 개조시킨 흑마법식 폴리모프였다.
“의태 마법을 아예 변신 마법으로 마개조시켰죠.”
통칭 점토사
사람은 물론, 어떤 생물이더라도 변신시키는 게 가능한 고유 마법을 지닌 흑마법사.
마인인 제하드의 외모가 자연스러웠던 까닭도 점토사의 힘이 컸을 것이다.
[그럼 그때 테러범들도... 그 녀석이...]
<아마 그때 열차의 흑마법사들은 미끼였을 거에요.>
점토사가 자주 쓰는 전략이었다.
일부러 기본적인 폴리모프를 걸은 뒤. 돈을 받고 덤으로 의뢰자가 성공하면 추가적으로 사람을 죽여 재료로 삼는다.
설사 의뢰인이 실패한다 해도, 오히려 본인에 대한 의심이 줄어들 테니 더 안전히 지역을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아리아도 폴리모프를 구별하는 법은 알잖아. 그러면...]
<저 괴인들의 신체능력이 왜 저런지 알아요?>
점토사의 폴리모프는 외모만 바꾸는 게 아니다.
골격, 근육, 혈관의 구조까지 뒤바꾸는 ‘변신’ 그 자체, 그렇기에 일반인이나 하급 마법사들이었던 사람들까지 저런 초인이자 괴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자기 얼굴도...]
폴리모프는 어디까지나 의태의 능력이기에 그런 방식으로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점토사의 폴리모프는 육체 자체가 변신하기에 때문에 레오가 말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구별할 수 없었다.
“제가 더 먼저 가야해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늑골은 움직일 때마다 점차 금이 벌어지고 폐를 찔러왔으나,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두 번 다시는 아리아를 잃을 수는 없었기에.
그는 지금도 달린다.
***
사태가 터지기 몇 시간 전.
레오와 이리나가 데이트를 하는 연기를 하는 상황, 그 뒤엔 한 소녀와 대학원생이 있었다.
“저기... 아리아스필 양, 아무래도 이건 개인적인 사생활인 것 같은데...”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그때 아메리는 봤다.
살인자의 눈을, 저 눈의 그림자는 냉철하게 인간성마저 버릴 수 있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메리 자신도 이 이상 막는다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자각했기에.
“네...네엡...”
순순히 아리아에게 순응했다.
‘...그래도 레오나르도 군이라면 적당히 장단만 맞혀주다가 가겠지.’
아메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홀로 안심했다. 도서관 사건 이외에도 레오가 템페리우스 가문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도 소문이 퍼진지 오래였다.
그런 레오가 그렇게 간단히 마음을...
-너무 몸을 떠시는데요? 이리나 씨, 혹시 많이 추우십니까?
그 안심은 레오가 직접 시도한 스킨십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레오는 이성적인 목적이 아닌, 오러로 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었지만.
“손... 레오가 직접 잡아주는 손...”
아리아와 아메리가 눈치챌 리가 없었다. 애초에 외부에 들리지 않는 대화가 목적이었기에 들킬 리가 만무했다.
“아리아스필...양...?”
스릉
아리아는 검집에서 검을 발도했다.
“지...! 진정하세요...!! 아리아스필 양...!?”
“괜찮아요. 레오의 성결한 손길이 닿은 저 더러운 손목만 잘라낼 테니까요. 아무 문제 없을 거에요.”
온통 문제였다. 아메리는 당황해하며 최대한 그 살육극을 막으려고 했다.
“일단...! 진정하세요!! 레오나르도 군도 그런 의도가...!”
그 사이
-겉옷을 덮어드릴까요? 손이 많이 차갑더군요.
레오는 겉옷을 덮어주는 것으로 아리아의 살인 욕구를 증폭시켰다.
“...아리아스필 야...양...? 전 살려...”
“아메리 씨.”
생각 외로 아리아스필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 고요한 표정에 아메리는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비키실래요? 거기 계시면 저 년을 죽일 수가 없잖아요.”
전혀 고요하지 않았다. 때때로 인간은 분노가 인계점에 넘어가면 정신적 해탈을 겪는다는 걸 아메리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진정하세요!! 제발!! 죽이면 진짜 돌이킬 수 없어요오...!!”
사랑으로서도, 범죄로서도 돌이킬 수가 없을 문제였다.
그걸 안 아메리는 가녀린 팔로 아리아를 붙잡고 있었다. 그 행동에 아리아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메리 씨도 레오랑 밤에 여자 화장실에 있었죠?”
“예...? 그건...?”
분명 그건 해명을 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건 아리아스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리아는 분노의 해탈을 겪고 폭주하는 중이었다. 논리성이라고는 전혀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아아...! 지금 갑자기 마탑에서 연락이 와...! 왔네요...!! 가보겠습니다아...!!”
이 살육극에서 도망치기 위해 아메리는 순간이동 지도를 펴서 몸을 피신시켰다. 지금 상황을 막는 것도 중요했지만, 자신의 목숨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죽일 년은 어디에...!”
방해꾼이 없어지자 아리아는 더욱 거리낌없이 칼을 빼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레오 일행은 달리며 골목 쪽으로 몸을 숨겼다.
아메리로 인해 시선이 돌아간 아리아는 그런 레오 일행이 어디로 갔는지 보지 못했다.
“정령들아.”
다만 그 점은 정령술을 익힌 아리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번 때처럼 정령들의 시야와 힘으로 추적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도망쳐야 돼...]
[사람들이 위험해...]
[너도 위험해질 거야...]
하지만 주변의 정령들은 무언가 안색이 이상했다. 공포에 빠진 것인지, 혼란스러운 것인지 정령들은 불안정한 형태로 떨고 있었다.
“...위험해진다고? 그게 무슨...”
콰아아아앙!!
그 순간 울리는 폭음.
“꺄아아악!!”
화음으로 이어지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
그 소리에 아리아도 당황해하며 그 방향으로 바라보았다.
“키에에에엑!!”
돌진해오는 의문의 괴물, 흉물스러운 턱을 벌리며 아리아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스릉.. 퍽석
분노한 아리아에게는 오히려 좋은 화풀이감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일순 괴물의 목은 베이며 바닥에 떨어졌다.
“...뭐지? 이런 마물은 본 적이...”
“도와주세요...!!”
다시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였다. 분노는 억누르며 아리아는 우선 도움을 청한 사람에게로 뛰어갔다.
가문의 피와 그녀가 배운 기사도는 일시적으로나마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엔 자신의 믿음에 상처를 입힌 내 레오에게는 확실히 교육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오빠아아아아...! 오빠아아...!!”
공격을 당하고 있는 건, 어린 소녀.
공격을 하는 것은 아까와 같은 괴인.
상황으로 봐선 오빠라는 사람은 이미 괴인에게 당하고, 이제는 동생까지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이미 괴인은 여자아이의 양팔을 눌러 머리를 뜯어먹을 준비를 마친 뒤였다. 조금이라도 늦거나 빠르면 저 사람은 확실히 죽는다.
서겅
각도, 위력, 모두를 고려한 최선의 공격이 아리아의 검에 의해 휘둘러졌다.
괴인의 목은 발도 한 번에 베여나가고, 여자아이에게는 최대한 검격이 닿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잘했어?]
<어, 고마워.>
그리고 혹시 몰라 바람의 정령으로 아이 근처에 보호벽을 쳐두었으니, 최악의 사태까지는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
“괜찮니? 다친 데는...”
“오빠아아아!!”
아리아는 조금 당황한 눈치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리아는 정령술을 익히며 타인의 마음을 감각적으로 눈치채는 것에 능숙해졌다.
지금 저 아이가 느끼고 있는 감정까지 여과없이 느껴진다.
혼란, 절망, 고통, 공포.
그리고 자신을 향한 증오까지.
그 증오에 아리아가 당황할 찰나, 소녀는 목이 잘린 괴인을 붙잡고 울부짖으며 울기 시작했다.
“오빠아아아...! 일어나봐아...!! 오빠아아...!”
아리아는 그 행동에 생각하기 싫은 추론을 떠올렸다. 저 괴인의 출처와 소녀의 오빠가 어떻게 죽은 것에 대한 추측이었다.
목죽지는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은 감각에 뜨거운 역함이 느껴졌고, 머리의 사고는 점차 또렷이 이성을 잃어간다.
자신의 검이 무엇을 베었고, 누구를 죽였는지 인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리아! 위험해!]
주변에 있는 정령의 말에 아리아는 급히 정신을 다잡는다. 불확실한 사실로 평정심을 잃으면 안 된다.
레오나르도처럼 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하게 다음 상황을 판단한다.
“크에에에엑!!”
어김없이 나오는 또다른 괴인 한 마리, 골목에서 튀어나 일순에 발톱을 날린다.
‘반격할 수 있어.’
아리아는 반격으로 검을 잡아 휘두르려고 했다.
“살려줘어...”
순간적으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도, 정령에게도 나온 목소리는 아니었다.
누가 말한 건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아리아의 예리한 청각은 누가 말했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죽이면...안돼...”
[알았어. 아리아.]
그 순간 주변에 있는 괴인을 향해 물의 수압이 날아가고, 그 수분을 찰나에 얼려내었다. 얼음과 물의 정령이 아리아의 마음을 읽고 스스로 괴인을 제압해준 것이었다.
“...그르르르...”
괴인은 몸의 대부분이 얼었음에도 낮은 목소리로 괴성을 내질렀다. 저 괴성이 단지 위협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 이상을 상상하면 아리아스필이라 할지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아가씨!!”
그 순간, 들린 익숙한 목소리.
그 소년만 있다면 이 상황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괜찮으세요? 지금 도대체...”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였다. 다행히 레오나르도는 안전하게 버틴 것 같았다.
“이 괴물은... 아가씨께서 그러신 건가요?”
얼린 괴인을 보며 레오나르도는 걱정스러운 눈치로 물었다.
“...이것들... 아무래도...”
이 상황과 고뇌를 토로하려던 순간, 또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위험해... 저 녀석...]
[분명 레오 같은데 뭔가 이상해...]
아까 도와주었던 물과 얼음의 정령이 말한 것이었다. 그 말에 아리아는 다시금 냉정히 판단하기 시작했다.
“...레오.”
“아가씨, 괜찮으세요? 어디에 상처는...”
아리아스필은 조금 물러나며 그 레오 같은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레오, 의심하는 건 미안한데 혹시 팔을 걷어서 상처를 내줄 수 있어?”
“아... 아아. 확실히 의심할 수 있죠. 저번 같은 상황이 또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는 그 부탁에 수긍하며 팔을 걷었다. 흉터투성이인 팔에 가볍게 나이프로 상처를 내자 피가 흘러나왔다.
“아시죠? 폴리모프는 피부에 상처가 나도 피가 안 나온다...”
서걱
아리아는 돌진하며 발도술을 내보였다. 상처가 난 팔은 그녀의 검격 아래에 잘려 떨어져나갔다.
“으악...! 끄아아아악!! 이게 뭐하는...!”
“너, 누구야. 진짜 레오는 어딨어.”
“아까부터 무슨...!!”
아리아는 계속해서 검을 날렸다. 이번에는 복부가 베였다. 몸을 급히 피해 그자는 피했지만 공격은 충분히 들어갔다.
“옷에 묻은 피가 이상하잖아.”
피 자체는 제법 뭍어있는 편이지만, 형태가 이상했다. 마치 사선으로 튄 게 아니라, 일부러 핏자국을 묻힌 것 같았다.
그때 예전에 레오가 말해준 것이 떠올랐다.
-추적이나 사냥을 할 때, 핏자국은 좋은 단서에요. 모양에 따라 정황이 파악되거든요.
“그리고 팔을 보여달라고 한 건, 상처에 나오는 피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야.”
아리아가 보고자 한 건 팔의 흉터였다. 흉터는 난도질하듯 많았지만 아리아는 알 수 있었다.
“팔의 흉터가 달라. 모양도, 위치도.”
잘려진 팔의 흉터를 다시 봐도 모양과 위치는 확실히 달랐다.
“...그걸 기억한다고?”
기억한다. 레오니까.
“무엇보다.”
그녀는 마무리 짓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레오라면 분명 피했을 거야. 그딴 공격 쯤은.”
내 레오나르도니까.
“...냉정하다 해야할지, 박정하다 해야할지.”
말투는 이미 바뀌어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선량한 역할을 맞았던 배우가 담배를 피며 극단 직원에게 욕설을 하는 것처럼, 신랄하다 느낄 정도의 극단적 변화였다.
가짜는 잘린 팔째로 양손을 들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어느샌가 멎고, 새로운 팔이 돋아났다.
“허당인 줄 알았는데, 천재라는 말이 허명은 아니었나봐.”
복부도 마찬가지였다. 재생이라기보단 복구에 가까웠다.
“비슷한 건 이미 한번 당했어.”
꿈에서 겪은 경험은 아리아의 성장에 큰 발판이 되어주었다.
“그래? 그럼 이런 것도 당해봤나 모르겠네?”
점토사는 패닉에 빠진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어...?! 아아악...!! 살려...주...!”
“꽤나 예술적이네. 남매가 똑같이 죽는다는 건.”
소녀의 몸은 수분이 가득 찬 점토처럼 녹아내렸다. 이내 비명은 사라지고 피부와 근육, 뼈마저도 다시 뭉쳐지며 하나의 새로운 인형이 완성되었다.
도살과 생명의 불쾌한 골짜기가 그 소녀의 사체에 고통스레 녹여 들어가 있었다.
“이런 건 관객이 감상이 중요하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가씨?”
불과 3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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