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아리아는 배운다-5
레오나르도의 어머니
렌은 레오가 9살에서 10살로 넘어갈 무렵, 한 의뢰를 받으며 마을 밖으로 나갔다.
이번 의뢰만 되면 몇 달은 두 다리 쭉 피고 살 수 있을 거라며 호언장담을 하는 그녀였기에,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믿었기에 레오는 묵묵히 집을 지켰다.
한 달이 지났을 때는 수당만큼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용병업은 듣는 것으로는 실감할 수 없는 고충이 있었으니까.
두 달이 지났을 때는 걱정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설마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다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버린 것일까.
세 달이 지나자 레오나르도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3개월 동안 연락이 아예 오지 않는다면 자신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그리니까 더 미련을 갖지 말라고.
그렇게 소년은 약속을 기억했고.
-다녀올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사라진 어머니를 찾으러 갔다.
아직 10살 무렵의 일이었다.
***
아리아스필은 질투도, 하물며 에일린에게 있는 분노마저 사그라들었다.
그건 용서니 관용과 같은 자비로운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부정할 수조차, 반박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의미, 절망만이 아리아에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레오의 부모...’
아누스 촌장에게 모든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레오가 무슨 이유로 마을 떠난 건지, 3년 동안 그런 몸이 되면서까지 무엇을 찾은 건지 말이다.
“멋대로 가정사와 사생활을 조사한 것은 사과하마. 하지만 이 제안만큼은 진심이다.”
레오는 살짝 경직된 표정으로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부모님을 가지고 거래를 하자는 뜻입니까?”
“네 매도와 경멸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이건 내 의도와 관계없이 그렇게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문제니까.”
하지만 에일린은 그에 맞는 각오를 다진 뒤였다. 그건 그녀가 야심가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진심으로 너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직 스무 살 도체 되지 못한 네가 그런 능력과 힘을 얻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으니 말이지.”
아리아스필은 레오의 힘과 노력이 단순히 대단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힘을 얻기까지 일구어낸 노력은 진심으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아는 지금 깨닫게 되었다.
힘과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예 사는 걸 허락할 수 없는 인간도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을 늘 상 곁에 두고도 자신은 사랑에 그저 히히덕거렸다는 것을.
“그렇기에 꼭 우리 가문과 연을 맺는 것을 전제로 두진 않았지. 난 어른으로서 네 선택을 존중하고 싶으니까.”
그렇기에 에일린에게서 레오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사랑이나 죄책감이라는 같잖은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이 일에 간섭할 자격은 처음부터 없었고, 레오나르도에게도 선택할 권리도 있었기에.
그녀는 절망스레 마음을 닫고 접었다.
듣는 것조차 두려웠기에 귀와 눈에 있는 오러마저 점차 사라져갔다.
그렇게 점차 소리가 희미해질 무렵,
“죄송하지만,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자신의 기사는 선택을 내렸다.
“역시...불쾌했나?”
“아뇨. 이런 은혜와 제안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제가 직접 말해 제 가정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를 제안해도 전 거절했을 것입니다.”
어느샌가 다시 감각은 집중되었다.
“...이유를 들어봐도 되겠나?”
레오나르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망설일 일이 아닌 것처럼.
“그게 제가 약속을 지키는 방식이니까요.”
“가문의 충의를 중시하는 건가?”
야심가와 같은 판단, 분명 냉정히 생각하면 그렇게 결론이 도출될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 사람들과의 약속도 지키기 위해서도 있습니다.”
하지만 레오는 지략가일 뿐, 야망에 불타는 야심가는 아니었다.
“가주님과의 약속, 크리스 님과의 약속, 설사 가문에서 일하는 사용인조차 제게 인덕을 주고 인연을 나눈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들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소년은 자신을 나로서 있게 해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긴다.
“부모를 찾는 건, 어떻게 생각하지? 원한다면 조건을 바꾸는 것 또한 고려...”
“그리고 어머니와의 약속도 지켜야하니까요.”
레오나르도의 어머니, 렌은 항상 용병으로 일을 나가기 전에 항상 하나의 약속을 했다.
-3개월, 아무리 길어도 사람이 죽는 걸 확인하는데는 딱 3개월이 걸려. 그러니까 3개월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난 죽었다고 생각해.
어린아이에게는 여과 없는 사실적인 통보, 그럼에도 레오나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을 했다.
렌은 언제나 일주일 안으로는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마을 밖을 나가서 1년 동안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죠,”
처음은 용병 길드에 가봤다. 사망 처리가 되어있다면 유족에게도 통보가 될 테니, 그에 대한 걸 묻기 위해서였다.
-...렌 님은 2개월 전부터 실종 처리가 되었습니다. 시체를 찾지는 못했지만...
당시에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시체라는 확답이 없는 이상, 희망을 걸만 했으니까.
“그렇게 2년째 되는 날, 전 포기했습니다. 세상은 차마 제가 화날 게 두려웠는지 확답 대신에 완곡어법을 즐기더군요.”
어머니의 시체는 계속 나오지 않았고, 그녀의 지인들은 먼저 렌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레오나르도는 그런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리기에는 너무 어렸고 지쳐있었다.
“그제서야 전 엄마와 약속을 지킬 수 있었죠. 받아드리는데까지 너무 오래 걸린 겁니다.”
“...”
에일린도, 아리아도, 하물며 현자조차, 그리고 말한 레오마저 잠시 침묵에 빠졌다.
“만약 템페리우스 가의 힘을 빌려 부모님의 시체라도 찾는다면 분명 그건 다행인 일일 겁니다. 저로서도 어머니를 무덤에 직접 모시고 싶거든요.”
레오의 눈은 무심한 슬픔에 적셔져 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다지만, 자식이라고 부모를 편히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소년은 슬픔에 잠겨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어머니께서 정말 살아계시다면...”
그 슬픔에 기포가 조금 끓어오른다. 잔잔한 무심의 수면이 기포에 의해 흔들린다.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겠군요. 만약 정말 저를 버린 게 사실이라면, 지금까지의 모든 힘든 세월과 사랑이 모두 원망으로 변해 도저히 용서가 안 될 것... 같거든요...”
회귀했기에 어머니가 죽은 것은 알고 있다. 그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었고.
다만 부모의 그리움과 미련은 속없이도 레오에게의 마음에 꽈리를 튼 지 오래였다.
“...미안하군. 어줍지 않은 방법으로 네 상처를 더 덧나게 만들었어.”
“괜찮아요. 어차피 전 템페리우스 가문에 안 들어갈 거고, 라인하르트에 뼈를 묻을 생각이거든요.”
괜찮다고 말하면서 날리는 돌직구, 그건 선을 긋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죄책감을 지워주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가문에 대한 충심이 지극하군. 자네와 같은 인재를 포섭할 수 없는 게 한이야.”
“가문의 충심이라,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레오나르도는 씨익 웃어보이며 말했다.
“아리아 아가씨를 혼자 둘 순 없거든요.”
아까와는 반전되고 상반되는 화사한 웃음.
“아가씨 곁엔 제가 있고 싶어요.”
걱정과 슬픔 하나 없는 해맑은 미소였다.
멀리 있는 아리아스필은 그 말에 얼굴을 붉혔다. 이윽고 시선이 겹치자 그녀는 황급히 얼굴을 숨겼다.
하지만 장거리에 있는 레오로서는 그 황급히 숨긴 홍조를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늘은 참 무심하시군. 내가 먼저 만났더라면 템페리우스는 분명 대성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전 하늘에게 감사해야겠군요. 아리아스필 님의 곁에 있을 천운을 주셨으니 말이죠.”
이젠 귀까지 붉어져 아리아는 황급히 귓가의 오러마저 빼내었다. 너무 사람이 사랑스러운 나머지, 아리아는 소년의 얼굴을 영접하는 걸 멈추었다.
“얄미운 남자로군.”
“그런 말은 많이 듣는 편이죠. 그럼 먼저 일어나보도록 하죠.”
“잠깐, 아직 할 말은 남았다.”
그 말에 레오나르도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아직도 남은 수단이 있는 것일까.
“걱정하지 마라. 설득하려는 말은 아니니.”
그녀도 식은 찻잔을 비우며 작은 당부를 남겼다.
“나와 마탑주들은 이 비리를 마법협회로 가 처리할 것이다. 물론 징계를 받는 마법사들도 마찬가지겠지. 이런 규모의 사태는 마탑에서도 처음이니까.”
비리과 범죄에 대한 징계는 셀수도 없이 많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범죄가 몇 년치로 한꺼번에 몰아서 신고됐으니 대규모적인 정리가 일어날 것이다.
가문과 마탑 입장에선 처리가 복잡하고 곤란할테지.
“제법 혼란스럽겠군요.”
“그래, 혼란스럽지. 그리고 이런 혼란에는 더한 광란이 더해지기 마련이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해주었다.
“최근 마탑 주변의 실종이 많이 늘고 있다. 아직 피해자는 적지만 당한 대상이 마법사인지라 조금 의심스럽더군.”
“...흑마법사입니까?”
빠른 추측과 예상에 에일린은 조금 놀란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더 놀랄 것도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내었다.
“그렇게 추측은 하고 있지. 원래라면 내가 수사해야 하지만, 이런 일이 터진 이상 바로 돌아올 수는 없을 거다.”
“그 사이에 흑마법사가 다시 날뛸 거라는 뜻입니까?”
“...확신이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징계 절차로 마탑주들이 자리를 비울 때, 범죄율이 올라는가는 건 당연한 현상이니까.”
그렇다고 다른 마탑주 중 한 명이 마탑을 지키기에는 사건의 규모가 너무나 컸다. 만약 자신이 관리하는 마탑에 문제가 생기고 변호나 해명이 늦는다면 그 책임은 자신이 온전히 떠안아야 했으니까.
“어디까지나 조심하라는 당부다. 너나 네 아가씨가 쉽게 당할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지.”
“걱정해주셔서 감사하군요. 혹시 짚이는 부분이 생긴다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얄밉도록 고맙군.”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카페 밖으로 나갔다.
[괜찮겠냐?]
<...시체가 남아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레오나르도라고 2년 만에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럴수록 죽었다는 증거만 명백해졌을 뿐이니 그만뒀을 뿐이지.
<이젠 극복할 때도 됐죠.>
[그러냐. 그러면 됐고.]
참 싱겁고 심심한 문답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편했다.
[저기 아리아 아니냐?]
“...어? 그러네요?”
근처 시내에서 걷고 있는 아리아스필, 아무래도 사라진 자신을 찾는 눈치였다.
“아가씨!!”
레오는 그런 아리아를 향해 반갑게 뛰어갔다.
“어? 레오...?”
하지만 아리아스필은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격전에 참여한 레오보다도 지친 눈치였다.
“...괘...괜찮으세요?”
“어...? 어어...”
척 봐도 괜찮지 않았다. 숨은 계속 헐떡이고 있었고, 시선도 고르지 못한 것이 마나 탈진 증상과 유사했다.
‘...설마 나 때문에...’
자신을 찾기 위해 그렇게 무리를 한 것인가. 이렇게 마나를 낭비하면서까지... 자신을 위해서...
“...아가씨, 업어드릴게요. 지금 상태로는...”
“아냐, 괜찮아. 너도 아까 무리했을 텐데...”
그리고 아리아가 지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까 대화에 집중하느라 마나를 너무 소비했어...’
아리아는 그저 더 확실하고 깔끔하게 훔쳐보기 위해 오러를 낭비시켰을 뿐이었다.
“그러지 마시고... 흣...?!”
그 소리에 아리아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명백한 신음.
고통으로 인한 곡소리라 하기엔 야릇하고,
공포로 인한 비명이라 하기엔 색정적인,
성욕에 의한 신음이었다.
“...레오...?”
“죄...죄송합니다. 무리하게 부축하다가 실수로...”
레오는 급히 손을 그녀의 흉부에서 치웠다. 아마 쓰러진 것 같은 그녀를 팔로 붙잡다가 우연치 않게 닿은 것 같았다.
“흐응~”
여유로운 미소가 절로 나온다. 항상 철저하고 여유로운 레오나르도의 당황한 표정을 보니 묵은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그래? 난 괜찮은데 말이지~”
소악마 같은 장난스럽고 요망한 미소,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는 레오의 팔을 잡았다.
“예? 그게 무슨...?”
그러고는 자신의 가슴골 사이에 단단한 팔뚝을 끼워 넣었다. 그러곤 팔짱을 끼어 레오의 팔을 완전히 결박시켰다.
부드러운 피부와 풍윤한 지방의 감촉, 당황스러운 걸 넘어 잠시 황홀하다 느낄 정도의 촉감이었다.
“자...! 잠깐만요...!! 이런 건...!!”
“왜? 나한테는 이런 부축도 못 해줘?”
태연하다 못해 능청스럽기까지 한 질문.
이건 부축보단... 부축이라 하기엔...
양팔을 압박해오는 태산 같은 존재들이 소년의 온 신경을 자극했다.
어린 소녀는 고작 몇 년 만에 숙녀와 비등한 몸매를 지니게 되었다.
목석같은 소년을 움직이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때 아리아는 배웠다.
이 둔감한 남자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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