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49화 (49/248)
  • EP.49 아리아는 배운다-3

    아리아의 눈이 점차 질투심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을 때, 에일린은 무릎을 꿇은 레오나르도를 보며 어른의 미소를 내보였다.

    “날 알고 있나?”

    레오는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아래로 향하게 하며 대답했다.

    “마법에 몸을 담근 자가 어찌 템페리우스 가문의 마법사를 모르겠습니까.”

    템페리우스 가문

    마법계의 정상에 위치한, 용사 가문인 라인하르트와 비등하다 불리는 마도 가계.

    가문 전체가 일으킨 위업만 놓고 보자면 현자와 동등하다 말할 수 있었다.

    [템페리우스?]

    <예예. 마법사 계열의 용사 가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흠... 나도 아는 가문이야. 그 녀석, 그래도 자손을 낳긴 했구만.]

    현자의 인맥은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있는 것일까. ‘아마 하늘에서 신이 인간을 만들 적에도 현자는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근데 이상하네. 아무리 그래도 그 녀석이?]

    <왜요? 이번에도 비리가 있습니까?>

    [비리까지는 아니고. 그냥 템페리우스 가문의 마법사가 내 친구였어. 이름은... 칼렌이었지.]

    칼렌 템페리우스

    마법사라면, 그것도 마탑의 정식 교과서를 한 줄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현자가 마법의 초석을 쌓았다면, 칼렌은 마법의 비석을 쌓았다고 말해도 무방하니까.

    <그게 이상한가요? 유명한 마법사니까 후계는 당연히 남겼겠죠.>

    [근데 그 새끼 나한테 고백 때렸어.]

    <.........예?>

    내가 알기로는 칼렌 템페리우스는...

    [그거 맞다. 그 새끼 남잔데 나한테 고백한 거야.]

    <...아...어...음...>

    뭔가 알아서는 안 될... 인류사의 드러나선 안 될 검은 역사를 억지로 들추어낸 것 같았다.

    [아이는 여자로 변신해서 낳으면 그만이라나? 뭔가 소름 끼쳐서 거절했지.]

    <아...예...>

    현자의 존재를 감추어야 할 이유가 안타깝게도 더 늘어버렸다.

    이 비밀은 저 가문의 영광과 긍지를 지닌 영애를 위해서라도 감추어야 마땅했다.

    “무슨 일 있나? 안색이 창백하군.”

    한 명문가의 출생에 이런 비밀이 있는 걸 안 이상, 태연한 표정을 짓는 것은 레오로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이었다.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대련이라는 것은...?”

    우선 지금은 화제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아까의 일은 잊을 필요가 있었다.

    “엿들을 의도는 없었으나, 대련이라는 말은 나에게도 흥미가 깊어서 말이네.”

    화제가 전환되자 레오는 자리에서 일어난 채, 그녀를 마주 보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내 먼저 너와 대련을 청해도 되겠는가?”

    그걸 바라보고 있는 아리아는 입으로 조심히 뻐끔거렸다.

    ‘받아주지 마... 거절해! 레오! 거절하라...!’

    “이런 영광을 거절할 이유는 없죠. 좋습니다.”

    아리아의 염원은 그렇게 깨부숴졌다.

    ***

    [근데 진짜 싸우게? 대강 6서클은 되는 것 같던데.]

    현자의 말대로 에일린 템페리우스는 6서클, 라인하르트 가의 가주이자 6성인 글라디오와 동급의 힘을 지닌 마법사라는 의미였다.

    그것도 나이 차를 고려하면 에일린의 실력은 현자로서도 그리 무시할만한 것은 못 되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거죠. 지금 제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는 알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위협적인 사실은 레오나르도의 호승심을 자극할 뿐이었다. 본디 레오의 성격 또한 전투와 대련을 즐기는 호전적인 성질에 가까웠다.

    [그래. 칼렌의 후손이 어떤지도 한번 보고 싶기도 하네.]

    <...아...음...네...>

    평소라면 그냥 대답할 격려였으나, 아까 들은 충격적인 비밀에 레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잡념을 지우기 위해 레오는 대련용 장비를 착용했다.

    “준비되셨습니까?”

    대련장을 감독하는 관리인은 레오가 착용한 장비를 보며 확인삼아 물었다.

    “네, 됐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나오세요.”

    관리인의 말에 따라 레오는 팔찌 형태인 검은 돌을 검으로 바꾸며 결투장으로 걸어갔다.

    “준비는 된 것 같군.”

    결투장에 서있는 것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여성, 들고 있는 커다란 지팡이는 그녀의 마법사로서의 격을 시각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었다.

    “난 예전에 마검사라 자칭하는 자들을 몇 번 상대해본 적은 있었다.”

    “어땠습니까?”

    “형편없었다. 검사로서도, 마법사로서도 말이지.”

    본디 마검사란 그런 존재였다.

    무술에 충실하면 마법에 소홀해지기 마련이고,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적절히 노력을 배분한다고 해도 결국 마검사의 실력은 별 볼 일 없었다. 결과적으로 한쪽에 쏟아야할 노력을 나눴기에 어중간해지기 때문이다.

    “자네는 달랐으면 좋겠군.”

    “부응해보죠.”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달랐다.

    “경기 시작!!”

    심판의 외침과 함께 레오나르도가 돌진했다. 정면으로 돌진했지만 그 공격은 기습적이라 표해야 알맞았다.

    “큭...!”

    카앙!

    레오나르도의 찌르기를 가로막은 것은 마력의 방패, 소년의 돌진이 1초도채 안 된 것을 계산했을 때 그녀의 대응 속도 또한 만만치 않았다.

    콰앙!!

    하지만 레오의 일격은 급조한 마력의 벽으론 막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레오는 다음 연격을 이어갔다.

    [템페스트 블래스트]

    그 연격을 저지하기 위해 에일린은 바람의 포탄을 날렸다. 정면으로 추돌하면 망가지는 건 레오, 그렇다고 바람을 검으로 잘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방어다...!’

    레오도 마찬가지로 마법으로 방어막을 전개시켰다. 그렇지만 바람의 대포는 그 방어막을 우습게 깨부셨다.

    “읍...!!”

    3서클 마법인데도 불구하고 위력은 레오의 것 이상이었다. 아마 검은 돌을 급히 방패로 변환시키지 않았다면 골절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대응이 빠르군. 대단해. 넌 검사로서도, 마법사로서도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

    에일린은 레오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아까의 찌르기에 반응도 못하고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까 날린 바람 마법도 보통이라면 막더라도 충격 때문에 서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 더 시험해보도록 하지.”

    에일린은 피식 웃음을 내었다. 오랜만에 전력을 다해도 괜찮을 것 같은 상대를 만난 기쁨에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실력을 발휘해나갔다.

    <라이트닝 랜스>

    <윈드 버스트>

    <헬 플레임>

    연이어 날아오는 트리플 캐스팅, 과부하를 막기 위해 약한 마법과 강한 마법을 섞는 정석의 방식, 그리고 그 섞는 과정에서도 마법 간의 상성을 적절히 배합시켰다.

    이건 마법만으로도, 무술만으로도 반격할 수 없다.

    [스톤 스킨]

    그렇기에 레오는 자신의 최선을 다해 반격을 계산했다. 발현한 암석 마법은 피부를 덮으며 전격과 열기에 대항할 수 있는 체질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준비한 자세는, 공격을 가르기에 최선의 형태.

    •베기 제2형 참(斬) 수직베기

    풍압과 함께 내리쳐진 검격, 고화력의 마법은 반으로 갈라져 좌우로 흩어졌다. 물론 갈라진 마법의 일부도 위험했지만, 스톤 스킨의 보호로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하아...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레오는 검을 고쳐 잡았다.

    “굉장하군. 그 공격을 막아내는 건 3서클 마법사 중엔 아무도 없었다.”

    “전 마법사만이 다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레오는 주저 앉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검을 지팡이 삼으며 말했다.

    “...완전히 막은 건 아닙니다.”

    방어력이 높은 아이언 스킨이라면 충격을 완전히 받아낼 수 있었지만, 전격 마법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택한 차선책, 스톤 스킨은 공격에 버틸 수 있게는 해주었지만 완벽하게 방어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괜찮냐?]

    <아뇨... 비슷한 걸로 한 방 더 맞으면 같은 방식으론 못 막아요.>

    그전에 마나와 체력의 탈진으로 쓰러질 테지.

    “널 더 시험하고 싶어졌어.”

    그녀는 공격으로 준비한 마법진을 해제했다. 그 의문스러운 행동에 레오와 관중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에도 봤었지만, 네 검술은 동방의 삼재검법과 유사하더군.”

    삼재검법(三才劍法)

    세 초식으로 만들어진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최하급 무공.

    그렇기에 모든 무술의 바탕이 될 수 있는 근본이기도 했다.

    그녀의 말대로 기본의 심화는 삼재검법의 묘리를 본뜬 레오만의 기술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세 번째의 기술이 있을 터, 그 기술을 보여다오. 이대로 끝내는 건 너무 아쉽군.”

    시험, 그 표현이 제일 적절했다.

    공격할 기회를 줄 테니 최선을 다한 전력을 다하라는 뜻이겠지.

    “...기회를 준 이상,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레오는 몸을 낮추며 마치 한 마리의 표범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라이트닝 엑셀>

    전신 구석구석으로 낙뢰가 떨어진다. 3서클에서 라이트닝을 개량한 육체 강화용 마법.

    지금 레오의 운동 및 반사신경은 아리아스필조차 뛰어넘는다.

    “...삼재검법이라 하셨습니까? 그 이상을 각오하십시오.”

    지금 보여줄 것은 검술에 한정되지 않는다.

    “호오...!”

    이윽고 자세를 취한 레오는 준비한 기술을 시전한다.

    •던지기 제10형 투(投) 조준 투척

    그건 찌르기도, 막는 것도, 하물며 휘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일순 몸에 뻗은 낙뢰가 투창의 형태로 뻗어나갔다.

    “...이건...!!”

    에일린은 급히 방어막의 형태를 일점으로 축소시켰다. 그녀가 예상했던 건 검술, 돌진을 통한 근거리 공격이었다.

    하지만 레오가 뽑아든 건 창술, 그것도 원거리에서 투창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못 막을 정도는 아니군.’

    예상 외이긴 했으나 투창은 의외로 위협적이지 못했다. 여러 겹의 방어막을 집중시키니 투창된 창은...

    ‘....창이 없어...?’

    아직 깨질 예상은 더 남아있었다. 날아온 창은 변형된 검은 돌이 아닌, 라이트닝의 잔여로 남은 전격 덩어리였다는 사실이 그 예였다.

    “그럼...!”

    에일린은 대응을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전방에도, 후방에도 레오가 없자 그녀는 남은 방향으로 고개를 올렸다.

    ‘...위쪽에서...!’

    공중으로 뛰어든 레오가 든 것은 검은색 활, 활시위에는 암석 마법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걸려져 있었다.

    “일격이라 한 적은 없습니다...!!”

    •쏘기 제9형 사(射) 조준 발사

    체공하는 찰나, 공중에서 화살비가 쏟아진다. 위력은 약했으나 하나라도 제대로 적중한다면 에일린으로서는 굴욕이나 다름없었다.

    “맹랑하군.”

    [템페스트 블래스트]

    화살비가 폭풍 앞에 흩어진다. 그리고 그 바람의 충격은 레오에게로 향했다.

    “...아직...!”

    검은 돌을 다시 방패로 바꾸며 레오는 바람 앞으로 뛰어들었다.

    •치기 제7형 타(打) 정권 치기

    7형의 타(打), 본래라면 주먹을 사용한 정권 기술, 하지만 방패를 그 위에 덧씌운다면 패링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기술이었다.

    바람의 위력이 되받아쳐지며 레오는 낙하에 박차를 가했다.

    “...이걸로...!”

    반대손의 손날에 오러를 집중한다. 창이나 검으로 찌르는 것보단 못하지만, 지금은 강철도 관통할 수 있는 수도(手刀)나 다름없었다.

    •찌르기 제6형 척(刺) 손날 찌르기

    방어막이 차례 격파돼간다. 철두철미한 그녀답게 몸 주변에도 최소 다섯 겹의 방어벽을 감싸놓은 뒤였다.

    카가가가각!

    한겹, 두겹, 차례로 방어벽이 손날 앞에 무너져간다. 남은 거리는 두뼘조차 되지 못했다.

    “...하아...허억...!”

    그런 필살의 노력에도 레오의 공격은 닿지 못했다.

    “훌륭했다.”

    확실히 손날 공격은 방어벽은 전부 다 깨부섰다.

    다만 겹쳐진 방어막은 각도를 차례로 기울게 하는 것으로 공격 방향을 완전히 비껴가게 만들었다.

    “다만 패인이 있다면 마나 부족으로 마법을 쓰지 않은 것과...”

    에일린은 반격으로 지팡이를 휘둘러 레오의 공격을 받아쳤다.

    “내가 마법사라는 이유로 근거리전에서 방심했다는 점이겠군.”

    크고 무거운 지팡이는 둔기로서도 유용했다. 그녀의 봉술은 탈진으로 지친 레오에게 반격할 만큼 충분히 숙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너의 기량은 우리 가문의 마법사들에게도, 라인하르트의 기사들에게도 드문 편이다. 네 나이대를 생각하면 이런 재능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테지.”

    그녀는 쓰러지는 레오를 한팔로 안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었다. 충분하겠어.”

    정신을 잃어가는 레오를 붙잡으며 그녀는 말했다.

    “이제부턴 내 사람이 되어줬으면 좋겠군. 여긴 사람이 많으니, 우선 장소를 옮기지.”

    에일린은 일순에 순간이동의 마법진을 구성하며, 레오와 자신을 이동시켰고.

    아리아스필이라는 존재는 그 광경을 보며 흉흉한 살기가 담긴 검을 뽑아들었다.

    다행이며 안타깝게도 에일린의 공간이동이 더 빨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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