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4 마탑-6
“으...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레오나르도는 책으로 만든 관에서 기상했다.
[일어났냐? 금방도 일어나네.]
<원체 이런 류의 공격에 많이 당해서요. 내성도 생겼고, 아예 파훼법도 만들어뒀죠.>
몽마와 상대할 때도, 흑마법사와 상대한 것도, 심지어 환각제 및 수면제에도 하도 당해서 레오는 내성을 포함한 각종 파훼법을 만들었다.
꿈 속에서 쓴 방법 이외에도 서너 가지 방법은 더 남아있었다. 다만 그 방법은 전부 위험도가 높아 자제했을 뿐이지.
[그래도 충격인데, 적어도 5분은 버틸 줄 알았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땐, 현자 말대로 5분은 족히 넘게 걸리는 시험이긴 했다.
꿈 속에서 자신은 아예 현자의 존재도 잊고, 시험에 대한 기억마저도 제거당했으니까.
아마 회귀한 경험마저 없었더라면 레오나르도조차 꿈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었다.
<어지간히 당했으니까요. 그것보다 다른 사람들은요?>
현자는 주변에 누워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자고 있는데, 한 사람이라도 성공하면 다 일어나니까 걱정하지 마. 그것보다 물건이나 잘 챙겨.]
물건이라는 말에 레오나르도는 주변을 돌아보며 시험의 보상을 찾았다.
<근데 유산은 어디에...>
[이미 손에 잡고 있으면서 뭔소리야?]
그 말에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에는 은색 쇠사슬로 연결된 목걸이가 쥐어져 있었다. 가운데 있는 보석은 중심에 있는 검은 덩어리 때문에 눈의 홍채처럼 보였다.
[원래 클리어하면 손에 바로 직행해서 줘. 잃어버릴까봐.]
왜 저런 쓸데없이 세심한 배려심은 첫 시험에서 발휘되지 않은 것일까, 그건 아마 몇 세기의 연구를 걸쳐도 밝혀지지 않을 난제일 것이다.
“...으...어...?”
뭔가 좀비와 같은 자세로 관에서 아메리가 일어났다. 아직 치료의 효과가 덜 된 것인지, 골병의 고통이 몸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언데드 아니지?]
<대학원생인 이상 이미 인간이 아니긴 하죠.>
그리고 졸업하면 초월체가 되기는 한다. 어디까지나 졸업한다면 말이다.
“어...?! 성공했어요?!”
연해진 다크서클을 비비며 그녀는 레오가 든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예, 운이 좋았어요.”
“그건...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이네요!!”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서 노린 거니까.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
그 목장식을 차면 상대하는 거짓을 파훼할 수 있다. 하급 환각이나 환영, 그리고 변장을 간파하는데도 유용한 도구, 그랬기에 레오나르도도 이 마도구를 우선 순위에 둔 것이었다.
“어디 한번 써볼까요?”
“괜찮을까요...? 그것도 이 반지처럼...”
아메리는 자신의 연애를 방해하고 있는 반지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그것과는 결이 다른 것 같거든요.”
[...애초에 그것도 저주 마도구는 아니거든.]
현자가 만든 평복과 평유의 반지는 저주 물품처럼 영원히 차고 다니는 도구가 아니었다.
다만 치유 기능 중 한 가지가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일 뿐이었다.
[마약 중독 수준이 아니면, 저 반지는 빠진다고. 혹시나 해서 나을 때까진 고정되는 기능을 추가한 것일 뿐이지.]
<대학원생이 걸리는 수면 부족, 관절 부위마다 디스크, 안구건조증, 카페인 중독하고 비교하면 비등비등할걸요. 저 사람이 극단적인 것도 있겠지만요.>
그것들까지 다 나을려면 적어도 1년을 소요될 것이다. 그것도 저걸 착용한 채, 건강한 생활을 하는 게 전제지만 말이다.
“...어떤가요? 뭔가 효과가 있나요?”
“잠시만요.”
레오나르도는 목에 목장식을 잘 찬 뒤, 먼저 사용자인 현자를 바라보았다.
<어디...>
[아, 그거 참고로 나한테는 안 된다.]
<아...>
제일 중요한 이유가 사라졌다. 아쉬움에 땅을 치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시험 대상은 다른 이에게 시도하기로 했다.
“아메리 씨.”
“네?”
“지금 어때요? 괜찮으세요?”
[그런 질문은 애매해서 잘 안 돼. 거짓이면 목걸이에서 붉은빛이 나오는데, 괜찮다는 건 기준이 애매해서...]
현자의 지적대로 레오도 자신의 질문이 잘못됐었다고는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모르는 일이었으니 한번 정도는 묻고 싶을 뿐이었다.
“네, 괜찮아요.”
지잉
갑자기 목걸이에서 적색 광선이 다각도로 산란해왔다. 불꽃의 빛이나 하늘의 태양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섬광이었다.
[...어...원래는 잘 안 되는데... 게다가 이정도 빛은 어지간한 거짓말이 아니면...]
<반지 주길 잘했죠?>
현자는 저 안쓰러운 마탑의 노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원래 이런 건가요?”
“아무래도요. 반응은 확실하네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아메리는 의문스러운 걱정으로 아리아스필을 바라보았다.
“아리아스필 양이 계속 안 일어나요. 아까도 그렇게 강한 빛이 있었는데...”
그 말대로 아리아스필은 여전히 미동도 안한 채로, 잠에 빠져있었다.
<뭐예요? 왜 안 일어나요?>
[이상하네. 원래는 늦어도 지금 정도면 일어나. 어지간히 꿈에 집착하지 않는 이상... 야... 설마...]
어째 뒷말이 불길했다.
<...설마 그건 아니겠죠?>
[음... 미안한데...그게 맞는 것 같다.]
아메리는 아리아스필을 붙잡아 흔들어보지만 소녀는 괴이쩍은 미소를 지을 뿐 깨지는 않았다.
“...어떡하죠? 더 세게 깨울...?”
[그건 안돼. 억지로 깨우면 정신에도 악영향도 가고, 확실히 일어나지도 확신할 수 없어.]
그 말을 듣자 레오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아메리를 아리아에게서 떨어뜨려놓았다.
<왜 이렇게 위험한 걸 만들었어요?>
[나한테 뭐라 그러지 마. 나도 안전장치는 만들어뒀다고.]
현자의 말은 놀랍게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만약에 실패하거나, 다른 이가 먼저 성공하면 꿈 속에는 거대한 대문이 튀어나온다.
대놓고 ‘시험 끝났으니 나와.’라고 적혀있으니, 이게 꿈인 걸 바로 눈치챌 수 있고 탈출 수단도 간단했으니 바로 나갈 수 있었다.
아메리도 그런 식으로 탈출한 것이었다.
<근데 아리아는 왜 안 나오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꿈에 집착하는 거라니까!]
<아리아가 무슨 바보에요? 꿈하고 현실도 비교 못 하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말 그대로인 시궁창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돼요? 기다리는 걸로는 안 돼요?>
[운이 좋으면 그걸로 해결되겠지만... 기대하긴 어려워. 오히려 꿈에 더 몰입할 가능성도 있고.]
레오나르도도 동의했다. 악몽이나 환각 계열에 자주 당해본 레오였기에 이해할 수 있는 조언이었다.
<...그럼 깨울 방법은 없습니까?>
[있긴 한데... 생각보다 까다로워. 하면 너도 멀쩡하진 않을텐데... 괜찮겠냐?]
<상관없어요. 저대로 두는 게 더 위험하니까요.>
그러자 현자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방법을 읊었다.
[...그거인데... 괜찮겠냐? 아까도 봤겠지만, 이 꿈에선 난 널 못 도와줘. 그렇게 설정해둬서...]
<그래도 해봐야죠. 이런 마법엔 내성이 있어요.>
레오나르도는 각오를 다지며 아메리를 불렀다.
“아메리 씨, 부탁할 게 있습니다.”
***
“...정...정말 이렇게 하면 될까요?”
레오의 머리와 아리아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걱정스레 물었다.
“네, 텔레파시 마법이라면 정신... 무의식인 꿈에도 연결할 수 있을 거예요.”
4서클 마법인 텔레파시, 이 마법은 정보 전달 및 통신 마법으로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현자의 조언대로 술식을 조금만 손보면 무의식인 꿈과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이렇게 개변하면 가능은 하겠지만... 레오나르도 군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게다가 전 텔레파시도 잘 못하는 편여서...”
“괜찮아요. 그건 제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요.”
“하...하지만...”
아메리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원체 죄책감이 많고, 순한 성격인지라 이런 부담스러운 직책에는 선뜻 도전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부탁을 해서 죄송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아메리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하지만 부탁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리아를 다시 잃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단지 전속 기사로서의 책임감이었을까, 아니면 그녀를 쫒았던 2인자의 오기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단지 소녀가 죽는 것조차 보지 못한 소년의 죄악이 이를 이끈 것일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알겠어요. 저도 노력해볼게요.”
아메리도 의지를 되새기며 마법진을 양손에 펼쳤다. 텔레파시의 더블 캐스팅을 천천히 조율하며 그녀는 말했다.
“시작할게요. 꼭 성공해주세요.”
마법식의 조율이 끝나자, 레오나르도의 눈이 감겼다.
...
......
..........
짹짹거리는 산새 소리가 울렸다.
자연히 레오의 감긴 눈도 점차 떨리며 떠졌다.
“...여긴...?”
성공한 것 같았다. 자신없다는 발언과는 달리 텔레파시의 조율이 제법 깔끔했는지 접속 전의 기억까지도 멀쩡히 남아있었다.
“...자, 이제... 아리아를...”
카앙!!
찾으려던 순간, 충격음이 울려퍼졌다. 소리로 봐선 검이 부딪치는 음파, 그것도 자신과 아리아가 검투를 할 때 나는 소리와 똑같았다.
“...설마...”
레오는 급히 검격이 울리는 결투의 현장으로 뛰어갔다.
카앙!!
“으앗!”
검격을 맞붙는 장소엔 두 흑백의 기사가 서있었다. 우위를 점하는 건, 레오나르도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왜 그래? 허릿심이 없다고!!”
연격에 난격을 가하는 건, 레오 자신.
그걸 힘겹게 막아내는 건 아리아 그녀였다.
“...이제... 그만... 난 더는...”
현재 자신이 아리아에게 이길 힘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저 정도로 압도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하는 말이 아닌, 현실에 근거한 진심이었다.
‘...왜... 왜 이렇게... 밀리는...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고고하고 도도했던 그녀였다.
자신에겐 아리아는 그런 존재였고, 그런 존재였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카앙!!
“흐앗...!”
그 순간 아리아의 검이 공중으로 튕겨져 올라갔다.
저 장면을 보자 레오나르도도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랑 비슷해...’
자신이 몽마에게 당했을 때와 비슷했다.
그 몽마는 달콤한 음몽 대신 절망적인 악몽을 보여주었다.
그 편이 몰입이 강한 것을, 그 영악한 악마는 눈치채고 있었다.
사람은 희망보다 절망에 더 깊게 빠져든다는 것을.
‘...내가 이겼기 때문이야...’
레오나르도가 꾸었던 꿈은 계속해서 아리아에게 패배하는 악몽, 부자연스러움의 연속이었지만 절망이 깊게 베인 고통은 그곳이 꿈인 것조차 잊게 만들었다.
아마 스스로 자결하지 않았더라면 탈출은 영원히 불가능했을 정도로.
그만큼 열등감은 자극하기도, 증폭하기도 쉬운 감정이었다.
‘내가 그때 결투에서 이겼기에...’
아리아스필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실질적으로도 전생에는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자신이 그 믿음과 자존심을 깨부쉈다.
고작 승리하고 싶다는 이유로.
아리아의 인성과는 별개로 그건 열등감을 탄생시키는 촉매가 되었을 것이다.
그건 한번도 패배해본 적이 없는 천재에겐 느껴본 적 없는 굴욕적인 자극이었기에.
‘...내가... 원인이었어...’
이런 마음을 눈치채진 못한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나왔다.
누구보다 이런 심리를 잘 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곁에 있는 자신이 눈치채지 못했다니...
“...아직 안 늦었어. 지금이라도...!”
레오가 뛰어들려는 순간, 또다른 레오나르도는 그녀의 목에 칼을 겨눴다.
“내가 이긴 거지?”
“응... 내가 졌어...”
굴욕적인 패배감, 그녀의 표정에는 그 심리가 깊게 녹아있었다.
“그럼...”
갑자기 가짜 레오는 검을 집어던졌다.
‘...뭐지...? 갑자기 왜..?’
그러고는 가짜 레오는 그녀의 양손을 붙잡았다.
“잠깐... 뭐하는... 레오...! 흐앗...!”
짐승처럼 그녀를 눕혀 양손을 붙잡아 눌러 아리아의 몸을 결박했다. 그러곤 그녀의 허리와 하반신 사이에 몸을 올려 벗어나기 점점 어렵게 만들었다.
“레...! 레오...! 이...! 이게...! 무슨...!”
“왜? 하기 싫어?”
뭐가 하기 싫다는 건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아니여야 했다.
“...시...싫은 건... 아닌데... 이건 뭐랄까아... 그게... 사귀는...게... 먼저...하윽...!”
가짜는 아리아의 목덜미를 살며시 깨물며 소녀의 감각을 뜨겁게 깨우기 시작했다. 말할 때마다 느껴지는 뜨거운 혀의 감각은 순결한 소녀에겐 지나치게 자극적인 촉감이었다.
“선택은 승자에게만 있는 거야. 자기야.”
“...자...자기...?! 하...익...!”
아리아는 그대로 그 거짓된 짐승 아래에 점차 빠져들며 숨겨두었던 본능을 한 꺼풀씩 벗기 시작했다.
‘시발...미친...’
그게 이 반전을 본 진짜의 감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