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 마탑-2
아리아가 ‘인체와 성’이라는 목차를 보는 사이, 레오나르도는 마탑의 강의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근데 너무 강의실이 많은데? 찾을 수 있겠어?]
<저쪽에 있네요.>
레오가 손가락으로 작은 점을 가리켰다. 너무 멀찍이 떨어져있지라 현자는 간신히 시력을 집중해야 그나마 보일락말락했다.
[...너 유목민족이었니?]
<이미 제 고향 보셨잖아요.>
[아닌데 저게 보여?]
<노력하면 다 보입니다.>
옛 분들이 좋아하는 근성론을 들먹이며, 레오는 강의실 입구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한 대학원생에게로 걸어갔다.
“...어딨지...? 분명 여기에...”
“아메리 씨, 이걸 떨어뜨리셨어요.”
주머니를 뒤집으며 당황하고 있는 그녀에게 레오는 주운 지갑을 내밀었다.
“아...! 여깄었군요오...! 감사합니다아...!”
그녀는 거의 울먹이는 기색으로 지갑을 받으며,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고마워요오... 거기에... 식비로 산 식권들이 다 들어있어서... 없었으면... 이번 달에도 숙주나물만 먹을 뻔했어요오...”
‘이번 달에도’라는 단어에서 저번달에는 그 고생을 겪었다는 걸, 간접적으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타까운 나머지, 레오나르도는 동정의 의사조차 표하지 못했다.
“...아, 혹시이... 레오나르도 군도... 강의를 들어보시겠어요오...?”
“예? 그래도 되나요?”
“예에...! 가끔 견학을 오시는 분들도... 강의를 듣고 하거든요오...”
레오나르도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마탑의 교육 수준도 알 수 있을테니, 오히려 환영해야 마땅했지.
“그럼 사양 안 하겠습니다.”
[어디 후배놈들이 잘하는지 볼까?]
강의실의 문을 열자, 넓은 강당과 같은 형태로 학생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그 중심에는 교탁에 선 교수가 있었다.
뚱뚱한 체격에 기름기 있는 콧수염과 머릿결은 안타깝게도 썩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아, 레오나르도 군. 이 강의는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오...”
“예? 왜요?”
그녀의 조언에 레오나르도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아메리는 설명에 복잡함을 느낀 것일까 드물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럼 딱 10분만 들어보세요.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오...”
그런 기묘한 당부에 의문을 풀기 위해 레오와 현자는 묵묵히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대략 7분이 지나자 레오와 현자는 또다시 의견이 일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딴 게 강의냐?]
“이런 게 강의야?”
기가 막히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물론 현자와 비교하면 못할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너무나 한심한 강의였다.
[이정도면 강의가 아니라 그냥 주입식 세뇌잖아.]
지금까지 나온 강의는 단순히 고위 마법진의 암기, 그리고 그에 대한 사용법과 의의 정도밖에 없었다.
단순히 단시간에 가르친 마법진이 많은 것 이외에는 하등 가치가 없는 주입식 강의였다.
현자가 아니라, 리오스조차도 이런 무가치한 강의를 하지는 않았다.
웃기는 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더 빠르고 더 정확히 마법진의 형태와 정의를 말하는가를 평가할 뿐, 그에 대한 의의나 응용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스피드 퀴즈를 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하... 왜 안 들어야하는지 알겠네요. 얼른...”
“...저기... 레오나르도 군...?”
식은땀을 흥건히 흘리며 아메리는 당황스러운 눈치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이내 레오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메리 뿐만 아니라, 학생이 레오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가르치고 있는 교수도 말이다.
[...아마도 교수가 제일 먼저 본 것 같은데? 그래서 다같이 널 바라본 거고.]
한숨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아메리의 조언을 빨리 듣지 않은 것이 회귀하고 싶을 정도로 후회스러웠다.
“거기, 누구지? 내려와라.”
거만하고도 강압적인 어조, 차마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던 레오는 아무 말 없이 교탁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걸아가는 동안, 몸을 흝는 학생들의 시선은 레오의 발걸음을 무겁게만 만들었다.
“...아까 내 강의에 평가를 내렸던데, 다시 말할 수 있겠나?”
“그게 그건...”
갑자기 그는 육중한 손으로 교탁을 내려쳤다.
“그게 아닐텐데? 똑같이 말해보라고.”
이젠 남아있는 교양마저 없어졌다. 의심할 것도 없는 문책을 위한 명령이었다.
“...‘이게 강의냐’와 ‘왜 안 들어야하는지 알겠네요.’리고 말했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야, 그냥 사과해?! 넌 자존심도 없냐?]
현자의 말을 듣고 싶긴 했지만, 지금은 머리를 숙이고 참아야했다. 행여나 중급 마법 허가서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게 더 큰 손해였다.
“아니.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내 기꺼이 기회를 주도록 하지.”
어설프게 내는 위선적 자비, 솔직히 사람만 없었더라면 면상에 토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강의가 불만스러우니 자네가 직접 강의해보게. 정식 대학을 졸업한 교수보다 자네가 더 나은 강의를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누가 봐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겠다는 의미였다. 마탑의 학생들에게 치욕을 안겨주겠다는 의사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럼 난 앉아있도록 하지. 기대하도록 하겠네.”
몇몇 학생들은 조소를, 다른 학생들은 교수의 유치한 처벌에 한숨을 소폭 내쉬었다.
하지만
<...하는 수 없네요.>
[잘됐네. 교실을 완전히 뒤집어놓으라고.]
현자의 제자는 전혀 불안한 기색이 없었다. 같이 있는 현자도 마찬가지였다.
타닥타닥
레오나르도는 아무 말 없이 칠판에 마법진을 세 종류 정도 적었다.
“이 마법들은 모두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1서클의 기초마법이니까요.”
그 말대로 전부 레오나르도가 처음으로 배운 마법들이었다.
[파이어볼]
[라이트닝]
[매직 미사일]
“그런 기초적인 걸 가르치려고 합니까? 초등생 아카데미는 아닐 텐데요?”
교수는 레오나르도의 서클을 대강 파악한 것일까, 조롱을 던져대었다.
“...그럼 이 기초적인 것에 대해 하나 묻도록 하죠.”
레오나르도는 그런 조롱이 무의미하다고 느낀 건지, 건조한 목소리로 주변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이 마법들은 공통점과 차이점은 뭘까요?”
“그건 간단...”
“참고로 서클과 원소에 대한 질문은 아닙니다. 그보다 원초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니 부디 잘 고민하시고 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니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레오의 강의를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으로 그것 이외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대답이 없는 것 같으니, 제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마법진에 차례로 점선을 그렸다. 파이어볼은 수직으로 점선을, 라이트닝은 가로로 점선을, 매직 미사일은 옆쪽에 180도로 반전된 형태의 마법진을 그려내었다.
“이 마법진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칭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차이는 그 대칭이 상하, 좌우, 점 대칭의 형태로 나뉜다는 것에 있죠.”
그 말에 다들 조금씩 호응을 시작했다. 뚱보 교수가 눈치를 줬기에 다시 사그라들었지만, 몇몇 학생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법진들은 단순한 예시일뿐, 사실 모든 마법진에는 대칭이 있습니다. 단지 고위 마법으로 갈수록 복잡해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 뿐이죠.”
다시 질문은 이어졌다.
“그럼 어째서 우린 대칭을 마법진에 넣을까요?”
그 질문에도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암담한 교육 현장에 슬픔을 감추기 힘들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주의 균형을 이루는 근간은 대칭이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눈치이자 레오는 간단한 예시를 들기 위해 테이블에 놓은 구슬을 들어 회전시켰다.
“이 구슬은 아무리 돌려도 같은 모양을 유지하죠. 변화해도 같게 측정되는 것, 이게 대칭성의 간단한 예시입니다.”
이제 몇몇 학생들은 슬며시 필기구를 꺼내들었다. 오랜 시간 교육의 현장에 있었던 학습의 프로들의 감각이 이 강의를 조금이라도 문자로 남기려는 본능을 자극했다.
“마법진이 대칭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주를 이루는 소재인, 불, 물, 바람... 그런 원소를 마나로 끄집어내기 위해선 대칭이 가장 효율적인 형태라고 말할 수 있죠.”
우주가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마법진도 대칭이다.
상식과 마법의 기초만 있다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논리와 강의였다.
그 순간, 한 학생이 조심히 손을 들었다.
“네, 질문해주시죠.”
“...그럼... 대칭의 종류에 차이점을 두는 이유는 뭔가요?”
눈치를 보며 그녀는 쭈뼛거렸다. 이유는 교수의 따가운 시선에서 알 수 있었다.
“그것 또한 간단합니다. 인간이 마법을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조율하기 위해섭니다.”
대칭의 형태를 조절하는 건, 일종의 가공 작업이었다. 불에도 요리에 쓰는 불꽃과 철을 녹이는데 사용하는 불이 다르듯, 마법에도 가공 수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마법진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이런 것 또한 가능하죠.”
레오는 손 위로 마법진을 형상화시켰다. 파이어볼의 형태였지만, 상하 대칭이 아닌 점을 기준으로 180도 대칭의 형태였다.
마법이 발현되며 화살과 같은 불꽃이 발사되었다.
“...이건...”
“이는 파이어볼과 매직 미사일의 융합 형태로, 마법을 조합하는 기초적 방식입니다. 이해와 응용, 이를 통해 무수히 많은 마법을 개발할 수 있죠.”
레오는 칠판에 그려진 마법진들에 손을 대며 말했다.
“물론 이 마법진들은 기초이자 정석입니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죠.”
그리고 그 마법진을 지우개로 지워나갔다.
“하지만 마법 사용자가 아닌, 마법사로 살아가기 위해선 그 이상의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석을 기억하되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학자와 마법사의 본질이니까요.”
교수는 할 말을 잃고, 학생들은 급히 필기하기 바빴다.
퍽 만족스러운 풍경에 레오는 짧게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걸 끝으로 레오는 말을 멈췄다.
강의가 끝났다는 의미였다.
짝...짝짝짝짝!!
약했던 손뼉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이어졌다.
모든 학생들은 이견없이 레오나르도의 강의에 환호했다.
<근데 이제 어쩐다...>
[왜? 이 정도면 잘한 거야. 나보단 모자르지만, 저 인면수심 돼지보다야 몇배는 낫다고.]
<그건 그런데... 저 돼지가 교수인 이상, 제 중급 마법 허가서에 이견을 제기할 수도 있어요.>
해그만 퍼그넌 교수
즉결 처분 대상도, 흑마법사도 아니지만 레오나르도는 개인적으로 그에 대한 좋은 감정은 없었다.
아까도 보았듯 그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교수인 주제에, 거만하고 오만하기 그지 없었으니까.
[하... 설마 쪼잔하게 이의를 제기하겠어?]
<그거 왠지 복선 같으니까 그 이상은 말하지 말죠.>
복선에 바로 응하기라도 한 건지, 해그만 교수는 레오나르도에게 달려왔다.
“자네...! 학번하고 이름이 뭐지!?”
목소리만으로 칭찬할 의도가 아닌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게... 전... 레오나르도라고 합니다. 학생은 아닌지라, 학번은 없습니다.”
그 말에 학생들은 다들 의문스러운 기색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설마 자네... 마법 허가서를 따러온 건가?”
“...그렇습니다.”
그러자 육중한 교수의 얼굴에 썩은 미소가 걸렸다. 아무래도 복선이 제대로 걸린 것 같았다.
“흐...그럼...”
짝, 짝, 짝
짧고도 균일한 박자의 박수, 마치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박자에 손을 맞춘 것 같았다.
“훌륭한 강의였네. 레오나르도 군.”
걸어온 것은 검은 옷차림을 한 남성이었다. 레오와 마찬가지로 검은 머리와 붉은 눈을 한 남성, 그에 비해 몹시 창백한지라 닮았다는 인상은 들지 않았다.
[...쟤...설마...]
그 설마였다.
“마...마탑주님...!!”
흑색 마탑의 마탑주, 베르난 베르데인이었다.
“과찬이십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도 이걸 받을 자격은 충분하군.”
흑색 마탑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중급 마법 허가서》
〔대상: 레오나르도〕
옆에는 마탑주 허가의 증거인 특수 인장이 찍혀있었다.
“...이렇게 바로... 주시는 건가요?”
“그럼 미룰 이유는 어딨지? 난 불필요한 절차는 생략하네. 시간 낭비거든.”
[얘는 그래도 말이 통하네. 다 꼴통은 아니구만.]
레오나르도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그가 내민 허가서를 받으며 레오는 감사히 허가서를 받들었다.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흑탑의 대학원에서...”
“그건 싫어요.”
[아니네. 쟨 악마야.]
이 생각도 서로가 동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