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 마탑-1
마탑
마법사들이 모인 연합이자, 마법을 연구하는 학회, 또는 불법적인 마법과 마법 개발을 감독하는 관리국으로.
현재는 각 분야마다 청탑, 적탑, 백탑, 흑탑으로 나뉘어있다.
이는 분야에 따라 효율적으로 분업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각각의 마탑이 탈선치 않도록 견제하고 협력하는 권력의 분할이었다...
<...라는 게 표면적으로 말하는 형태죠.>
그런데 사실 속알맹이는 차라리 비어있는 게 나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마법 연구는 대부분 특허 쟁탈전으로 바뀌었고, 이젠 몇몇 마법사는 마법을 감독하는 수준이 아니라 독점하려고 있어요.>
현자가 살던 시대에도 당연히 순수한 의도로만 마법을 연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 때에는 사업과 권력의 수단보다는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더 높게 두었다.
그것만큼은 현자 본인이 자부할 수 있었다.
[하... 그리고? 흑마법에 손댄 마법사 말종들은 누구냐?]
그런 자부심이 짓밟히는 것에 착잡함을 느끼며 현자는 물었다. 그 한숨에 레오는 더욱 더 나락으로 떨어진 현실을 직시시킬 물건을 꺼냈다.
[...왠 노트?]
<원래라면 직접 펼치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체가 없는 유령인지라 너무 어려운 요구인 것 같았다.
<목차만 넘겨드릴게요.>
[...근데 무슨 노트가 소설책만 해?]
현자의 말대로 레오가 든 노트는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 마탑의 교과서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목차는 10페이지나 되었는데, 이건 마치 작은 사전을 연상케 만들었다.
[1순위, 2순위, 3순위... 사람에 무슨 등급을 매겼냐? 게다가 한둘도 아니고.]
<저라고 좋아서 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정보 정리는 체계적인 편이 낫잖아요.>
대략적으로는 죽인 사람의 수를 중점적으로 계산했다. 그 외에도 위험도나 성격, 행적 등을 사람마다 일일이 기록해뒀으니 노트는 두꺼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제일 먼저 죽여야할 놈은 누군데?]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당장은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죽이는 것은 자신도 의심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처리 방식은 이걸로 해야죠.>
[이번엔 뭐냐?]
페이지를 넘겨 뒷부분으로 향하자, 「즉결 처분 가능 대상」이라는 페이지가 나왔다.
<아까 그 페도 새끼처럼 지금 당장 마탑에서 뒷공작을 벌이고 있는 놈들도 있어요. 개중엔 흑마법에 이미 접근한 말종도 있고요.>
[...오호라...]
현자가 흡족하게 썩은 미소를 내보였다. 하긴 개짓거리를 한 후배를 갈구고 팰 기회가 있다면 자신도 저런 표정을 지을 것이다.
“도착했어! 저기지?”
아리아가 크게 손짓하며 레오를 불렀다. 저렇게 들뜰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아하는데 굳이 초를 칠 필요는 없었다.
“네, 맞네요.”
아리아가 가리킨 곳에는 높은 탑이 네 채 세워져 있었다. 사실 탑보다는 색색별의 기둥 같기도 했는데, 그 탑들을 이어서 사각형 형태의 건물도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시절 땐 저런 네모난 건 없었는데?]
<마탑에서 인원이 너무 늘어난 나머지, 수용 인원을 늘리기 위해 건물 추가로 축조했대요.>
[오, 그건 조금 괜찮은데? 얘들도 융통성이라는 게 생겼구만.>
그 방안이 괜찮다는 것에는 레오나르도도 동의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법과 마탑에 대한 사람들의 거리감도 준 편이었으니까.
“들어가죠.”
레오나르도의 말에 아리아도 고갤 끄덕이며, 마탑으로 향했다.
“리오스...?”
그때, 한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한 여성은 아리아 일행을 바라보며 물었다. 표족한 귀가 그녀의 종족을 은유적으로 알리는 것 같았다.
“네?”
“아... 아니네. 죄송합니다. 착각했어요.”
그녀는 연신 하품을 하며, 다크서클이 진한 눈을 연거푸 비볐다. 척 봐도 며칠은 넘게 잠을 못 잔 것 같았다.
“제 오빠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오빠...? 리오스 동생이에요...?”
기운빠진 목소리로 꾀죄죄한 여자는 물었다. 살짝 치면 바로 기절할 것 같았다.
“네...? 그런데요...?”
“제프리 씨가 배웅을 가셨는데... 못 만나셨나요...?”
레오나르도는 자초지종을 가볍게 설명했다.
열차에서의 소동과 제프리가 해주는 안내의 거절까지 말이다.
“...그렇군요... 많이 힘드시겠어요오...”
사실 힘들어 보이는 건 그녀 쪽이었다.
[...쟤 왜 저래? 무슨 리치야?]
<말이 너무 심하네요. 저렇게 봐도 하프 엘프입니다.>
저 뾰족한 귀가 그 사실을 현자에게도 이해시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납득되지 않는 점도 여전히 있었다.
[그럼 왜 저렇게 죽을상이야?]
<대학원생입니다.>
[다른 의미로 인간을 포기했구만.]
<인정합니다.>
“소개가 늦었네요오... 전 아메리 에스프라고 해요. 흑색 마탑 대학원생에... 하프 엘프에 4서클 마법사죠오오...”
그녀는 반쯤 풀린 눈으로 자기 소개를 했다. 아리아스필은 조금 걱정스러운 눈치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기 괜찮으세요?”
“아하하하... 괜찮답니다. 잠을 못 자서 그래요오...”
그녀는 힘겹게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다섯 손가락을 폈다.
“아... 다섯 시간이나...”
“5일 동안 철야해서... 커피 마시면 나아질 거에요...”
그녀는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거기에 호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싸늘하고 안쓰러운 공기가 주변에 감돌았다.
[하루만 더 지나면 리치 되겠네.]
차마 부정하지 못하는 레오나르도였다.
“...혹시 저희를 안내해주실 수 있나요?”
행여나 길가다가 졸도할까 걱정된 레오나르도는 나름대로 배려를 넣은 채 부탁했다.
“예에...? 괜찮을까요...?”
평소 아리아스필이라면 조금 질투했을지도 모르지만, 상대가 어지간히 안쓰러운지라 그녀도 차마 거절하지 않았다.
“예... 그럼 최선을 다해서... 안내를 하겠습니다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구부정한 허리를 기지개로 피며 레오나르도 일행을 안내하러 갔다.
“그러면...바로... 마탑주실로 안내할까요오...?”
“네,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원래라면 조금은 안내해달라고 할 생각도 있었지만, 저 안쓰러운 대학원생에게 그런 노동마저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그럼... 바로 안내하겠습니다아...”
그녀는 낡은 종이를 꺼내 펼쳤다.
“...어?”
그 순간 바로 일행들은 어느 건물 앞으로 전이되었다. 마법진도 없이 순식간에 이동하자 아리아스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순간이동 마법입니다아... 최대한 빠르게 왔어요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떻게 마법진 없이...”
정령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초고속으로 마법진을 형상한 것 같지도 않았다.
“마법진은... 바닥에 있습니다아.... 그리고...”
아메리는 자신의 펼친 허름한 종이를 내보였다.
“이 지도에는.... 그 마법진과 좌표가 연결되어 있어요오... 언제 어디서는 바로 순간이동이 가능하죠오...”
[이건 대단한데? 내 시대에도 이런 마도구를 만드는 놈은 드물었다고.]
현자가 호평한 만큼 레오도 제법 경악했다. 레오도 마법에 발을 담근 만큼, 저 지도의 유용성과 가치에는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만드신 건가요? 정말 대단한데요?”
“에헤헤... 저도 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사실은 교수님들이 새벽에 자주 부르셨는데... 교통비도 없고... 마차도 없을 때가 많아서요... 그래서... 만들었어요... 헤헤...”
왜 분명 본인은 웃고 있는데, 다들 안쓰러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까.
짚이는 구석이 너무 크고 많은지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리오스 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오... 순간이동은... 리오스님이 잘하시거든요...”
분명 의도는 좋았을테지만, 결과가 저런 지라 선뜻 칭찬이나 호응이 나오지 않았다.
광산용 폭파 마법을 개발했다가 테러로 악용된 사례를 본 현자가 옆에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럼 흑탑주님을 부르겠습니다아...”
아메리는 빌빌거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어...?”
노크에도 대답이 없자, 아메리는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문 근처로 바라보았다.
“아... 지금은... 안 계시네요오... 아마도 점심을 드시는 것 같아요오...”
“그러면 괜찮습니다. 잠시 뒤에 오겠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안내를...”
그건 허락하기 몹시 힘들었다.
윤리와 양심적인 문제로 도저히 허락할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안내는 괜찮으니... 적당히 쉴 곳을 알려주시겠어요? 도서관이라던가...?”
“아아... 알겠습니다아...”
그녀는 다시 노력과 고통의 산물인 순간이동 지도를 꺼냈다.
눈을 한번 깜빡하자, 바로 도서관 입구로 이동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책이라도 추천해드릴까요오...? 제가 최선을 다해서...”
“아뇨. 괜찮아요. 덕분에 편하게 돌아다녔네요.”
그녀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시선이 맛이라도 간 것처럼 양눈의 시선이 정반대를 보고 있는 것이 보기 불안했을 뿐이었다.
“그럼 사러가려던 커피를...”
“그냥 주무세요.”
“...예에...?”
“저희를 안내해준다고 핑계를 대면 될 겁니다. 숙소나 집에 가서 주무시면 되겠죠.”
“아아...”
그녀는 사시가 됐었던 눈이 또렷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잘 수...”
그 순간, 그녀의 손목에 있는 시계가 빛났다.
“어? 그건 뭐에요?”
“잠시만요오...”
그녀는 시계를 얼굴에 가까이 댄 채 대화를 시작했다. 몇 번을 ‘예’와 ‘네’로 대답한 끝에 그녀는 침울하게 ‘알겠습니다아...’라고 답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아... 교수님께 갔다올게요오...”
수면이라는 염원했던 꿈이 깨부서지자, 다들 속으로나마 애도를 표했다.
[...쟨 솔직히 흑마법사 돼도 이해한다.]
<그래도 전생에는 계속 백마법사로 일해요. 대학원은 다행히 졸업하니까요.>
[...인간 승리다. 진짜 인간 승리야.]
인간에 대한 찬가를 논하자면, 아마 레오나르도는 바로 저 여인의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단순한 농이 아닌, 경외를 담은 진심이었다.
“...근데.. 이건...”
아리아스필은 떨어진 허름한 지갑을 들었다. 넝마가 된 상태로 봐선 주인이 누군지 추측을 넘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떨어뜨린 것 같네요. 제가 돌려드릴게요.”
“아, 근데 어디 갔는지 알아?”
“사용한 마법식이면 보면, 대강 위치는 알겠더라고요. 근처니까 금방 다녀올게요. 그동안 간단한 책이라도 읽어주세요.”
아리아스필은 별 이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피곤한 것도 사실이었고, 독서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갔다올게요.”
“응, 빨리 와야 돼.”
레오는 지갑을 돌려주기 위해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근데 무슨 책을 읽지?”
아리아는 마탑이 아니더라도, 마법에는 상식과 지식이 얕은 사람이었다. 그런 아리아에게 마탑의 책들은 전부 어려운 암호문이나 다름없었다.
《고등 마법 융합을 위한 원소 기호》
【안정적인 마법진 구성을 위한 마방진】
“전부 어려운 것들뿐이네...”
그렇게 책장을 흝던 사이, 아리아의 눈에 그나마 익숙한 용어가 있는 책이 들어왔다.
「인체와 생명의 신비」
“이건 조금 쉬워보이는데...”
인체와 생명이라면 분명 검술이나 체술에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론적인 지식을 보충하기 위해 아리아는 책을 폈다.
그리고 아리아스필은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한 지식을 레오가 오기 전까지 습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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