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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37화 (37/248)

EP.37 열차에서-2

그대로 나가떨어진 소녀를 보며 아리아는 충격에 금치 못해 입을 벌렸다. 차마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폭력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당히 일어나니 비명을 지를 새도, 긴장도 하지 못했다.

“레...! 레오!!”

“네. 아가씨.”

구타한 주먹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레오나르도는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왜...? 왜 갑자기 때린 거야?! 속은 시원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경악스러운 나머지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표출했지만, 레오는 별 표정 변화 없이 손가락으로 쓰러진 사람을 가르켰다.

“잘 보세요. 아무리 세게 때려도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역변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 말에 아리아는 조심히 레오의 어깨 너머로 쓰러진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연히 경악한 얼굴이 불쾌감으로 일그러졌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남자...?”

소녀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수염이 더럽게 난 중년의 남성이 안면이 반 정도 으스러진 채 쓰러져 있었다.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하기엔, 그 남성이 입은 하늘하늘한 드레스가 불쾌하게도 단서를 남겨주고 있었다.

“폴리모프, 일종의 변신 마법이에요.”

다른 존재나 생물로 변신하는 마법, 최소 4서클은 돼야 쓸 수 있는 중급 마법으로 마나가 남아있는 이상 변한 외모는 계속 유지된다.

[...얘가 그정도라고?]

현자는 한심하게 널부러진 여장 남자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현명한 현자더라도 바로 납득하기는 힘들 것이다.

“당연히 4서클은 아닐 거예요. 그러면 바로 변신 풀고 마법으로 반격했겠죠.”

하지만 폴리모프라는 마법에는 다양한 응용법이 있었다. 개중에는 하위 등급 마법사도 사용할 수 있는 응용술이 있지.

“아마 중급이나 상급 마법사가 폴리모프를 먼저 걸어준 겁니다. 그리고 유지 시간은 자기 마나로 보충한 거고요.”

그렇게 하면 굳이 4서클의 마나와 폴리모프의 술식을 몰라도 변신할 수 있고, 다수 사람들 또한 장시간 동안 외모를 바꿀 수도 있었다.

“...어떻게... 안 거야?”

“굳이 따지면 한두가지는 아니죠.”

처음 의심을 한 건, 캐리어를 들어올려줬을 때였다.

“무겁더군요. 저런 체구의 사람이 들기엔 힘들 정도로요.”

단순히 캐리어는 밀어 옮기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인간은 캐리어를 ‘들어올려’ 선반에 캐리어를 올려놓으려고 했다. 키가 낮아서 실패했을 뿐, 들어올릴 힘은 충분했다는 뜻이었다.

“...그것만으로...?”

“당연히 더 있죠.”

그 다음에 의심을 활성화한 건, 그 캐리어를 든 손이었다.

“소녀의 손이 아니더군요.”

“흉터는 없었는데...”

“아뇨. 팔과 손의 크기가 안 맞았어요.”

팔과 손의 비율이 어설펐다. 흉터를 지우는데 급급해 폴리모프의 마법을 두껍게 덮으면 손이 부어오른 것처럼 커지게 된다.

집중하지 않으면 모르지만, 인체에 대한 지식이 박식하다면 그 위화감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확신하긴 힘들죠. 신체적 특성일 수도 있고, 일종의 병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레오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꿀 증거를 찾으려고 했다.

“아까 머리에 잎을 뗐을 때 있죠?”

“어? 어어...”

잊을 리가 없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화가 치미는 장면이었으니까.

“그때 얼굴을 오러를 두른 손톱으로 살짝 그었습니다. 크고 깊지도 않지만, 피와 통증은 생길 정도로요.”

그리고 그다음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완전히 그었는데도 피는커녕 아프다는 말도 않더군요. 눈썹 정도는 찌푸릴 만도 한데.”

이 또한 폴리모프의 맹점이었다. 얼굴을 마법적 점토로 뒤덮은 것이니, 변신 부위에는 감각과 통증이 무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때렸습니다. 원래 폴리모프는 강한 충격을 받아도 풀리거든요.”

덕분에 결과의 흑백은 확실히 갈렸다.

단시간에 화려하고도 섬세한 추리를 말하자, 다들 경탄으로 경악을 내보였다.

[너 예전에 흥신소 했냐?]

<용병일 중엔 추리가 필요한 일도 있으니까요. 현상금 사냥꾼하고 같이 다니다가 배웠습니다.>

[어쩐지 고자 같은 놈이 이상하게 여자를 잘 꼬신다 했어.]

<예? 이게 어떻게 꼬시는 겁니까?>

현자는 말이 없었다. 레오는 단순히 뻔뻔한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저런 말을 한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저걸 진짜로 모르는 것도 능력이야... 능력...’>

어찌되었든 지금은 이런 추리를 선보였으니, 남은 건 범인의 의도와 내막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레오는 기절한 남자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 그래도 지금은 차장이나 승무원에게 말하는 게 먼저...”

“저도 그러고는 싶지만, 그 선택지는 위험 요인이 있어요.”

레오나르도는 드레스의 차림에 숨겨진 암기와 소지품을 빼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차장이나 승무원 중에도 패거리가 있을지도 몰라요.”

“...직원 중에...?”

가방에 든 것은 직접 봐야 알겠지만, 무게나 정황을 봐서는 테러용 폭탄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현자님은 그걸 확인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유령은 몸은 이런 일에 제일 적합하고 편리했다. 어디든 통과가 가능하니까.

현자는 바로 가방에서 머리를 박으며 가방 속을 확인했다. 조금 소름끼치지만 저 방식이 제일 확실할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그 중에 회중시계와 같은 작은 은장식을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자 주변을 비추는 거울이 드러났다.

“여깄군.”

생긴 형태가 거울일 뿐, 이건 통신용 마도구였다. 그것도 마탑 기념품 상점에서 파는 장난감 따위가 아닌, 군인들이나 사용하는 전문 통신기였다.

[...미친 놈들...]

가방에서 얼굴을 빼낸 현자는 욕설을 연거푸 입에 담았다.

<왜 그러는데요?>

[...이 새끼들, 이 열차를 의식진으로 삼을 생각이야. ]

“...의식진...?!”

[처음 보지만 알겠어. 유독가스형 폭탄이야. 열차를 아예 독가스로 채울 생각이라고. 이 새끼들.]

급히 레오는 남자의 옷을 벗겨 등을 보였다.

“씨발... 왜... 하필...”

아리아가 있는 걸 감안해도, 욕설이 나왔다.

등에 있는 아홉 개의 머리가 달려있는 뱀의 문신.

그건 흑마법사 조직 하나인, [히드라]의 상징이었으니까.

“...흑마법사라고...?”

“예. 이 문신, 전에도 본 적이 있어요.”

물론 전생의 일이었지만, 출처를 일일이 설명해줄 순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우리에게 유리한 점을 이용해야죠.”

레오는 통신 마도구를 만지며, 목을 가다듬었다. 오러가 성대 주위에 둘러지며 점차 목소리를 본래의 성질에서 변화시켰다.

***

그 상황, 다른 객실들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 다만 이리도 조용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미 괴한들의 흑마법이 이런 테러 작업에 특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은 어때? 다란?”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은 공포에 질린 승객을 힐끗거리며 물었다. 그들은 정신 공격계의 마법에 실성한 나머지 반항할 의지도 없어졌다.

“괜찮은 것 같아. 일등석만 점령하면 의식을 시작해도 되겠어.”

두꺼운 로브를 입은 다른 남성의 설명에, 정장의 남성은 눈썹을 찌푸리며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모안, 그 변태 자식은 뭐하는 거야? 빨리 좀 할 것이지.”

“돈으로 들어온 변태놈이 그렇지 뭐.”

그러던 와중, 통신기가 진동하며 수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뭐야?”

“모안인 것 같은데?”

“하... 빨리도 연락하네.”

퉁명스러운 반응으로 정장의 남성은 연락을 받았다.

“어, 나다. 무슨 일이지?”

[...빨리... 지원을 불러... 쿨럭...!]

음질은 떨렸지만, 모안의 목소리는 확실했다. 저런 걸걸하게 간드러진 목소리는 흉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무슨 일인데?”

[일등석 내에 기사와 마법사가 있어...! 지금 계속 대치 중인데 지원이 필요해. 최소 3성에 2서클이야...!]

“...하 씨발... 넌 지금 어딨는데?”

[지금 복도에서 대치 중이야...! 부상도 조금 입었어. 최대한 지원이 많이 필요해. 지금 다른 곳은 상황이 어때...?]

“너 빼고 다 점령했어. 제물들은 전부 준비됐다고.”

[그럼 일등석으로 와줘... 어차피 의식은 한곳에서 모여서 시작하는 게 낫잖아...!]

“알았으니까 좀 닥쳐. 폭탄만 설치하고 바로 간다고.”

그러고 통신은 일방적으로 끊겼다.

“다른 애들도 다 불러야겠어.”

“뭐? 우리만 가도 되지 않아?”

“3성 기사에 2서클 마법사는 까다로운 조합이야. 기관실을 지키는 사람만 빼고, 다 불러야겠어. 여차하면 원격으로 폭탄 터트리고 방독면 쓰면 그만이잖아.”

저들로선 이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선택지였다.

현재 정신 계열 흑마법에 걸린 승객 중엔 폭탄을 해체할 만 인재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 독은 최근에 만들어진 신형이었다.

‘설사 폭탄을 떼도 바로 자폭시키면 그만이야. 독을 중화시키는 법은 모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로브를 입은 남자는 열차에 잠입한 모든 흑마법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

연락을 들은 조직 단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모여 일등석 너머의 칸 앞에 섰다.

열차의 레일과 화통 소리 때문에 정확히 칸 너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방심할 수는 없었다.

“모두 준비해라.”

대장으로 보이는 흑마법사는 문손잡이는 붙잡으며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었다.

한 손가락씩 내려가고, 이내 손이 완전히 오므려지자 대장이 발로 문을 차며 돌입했다.

“...?”

하지만 객실 복도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

한 사람은 쓰러진 자신들의 동료였고, 다른 한 명은 푸른 눈과 흰 생머리를 지닌 소녀였다.

다른 일등칸 전용실들은 명령이라도 받은 듯 일제히 문을 굳게 잠근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뭐야? 설마 저 애한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리아는 돌진했다. 좁은 통로의 이점은 혼자인 아리아스필만이 누릴 수 있었다.

파앙!!

검집째 들어있는 칼에 맞은 선두의 흑마법사는 그대로 제압되었다.

아무리 강한 마법사이더라도 이런 밀폐된 장소에선 광역이나 범위 공격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이야!! 모두 방독면 쓰고 독 뿌려!!”

하지만 저들에게도 당연히 믿는 구석은 있었다.

마법사들은 단체로 방독면을 쓴 채, 흑마법으로 만들어낸 독극물을 살포했다.

자신들이 가진 방독면이 없는 이상, 저 가스를 마시면 심하면 즉사, 적어도 기절할 것이다.

“끄아악...!”

“해치워...으악?!”

독가스가 연막이 된 탓일까, 흑마법사들은 오히려 독안개 속에 숨은 아리아를 찾지 못하고 차례로 당해갔다.

“...어...떻게...?”

마지막으로 남은 흑마법사는 조금 걷힌 독구름 속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의 얼굴에는 이미 방독면이 둘러 있었다. 그게 자신의 동료에게 뺏은 것이란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불완전하더라도 지금 의식을 감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는 승객을 대부분 몰살시키고 작게나마 의식진을 펼친다면 지금보단 확실히 강해질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

억지로 마나와 마기를 짜내며 그는 손에 보랏빛 마법진을 펼쳤다.

“둘 것 같아...!”

아리아는 급히 달려가 그 손모가지째로 검으로 부러뜨렸다.

“지금이다!! 폭발시켜!!”

하지만 독안개 때문에 아리아도 뒤에 쓰러진 남자가 발동한 마법을 눈치채진 못했다

“이겼다!! 고귀한 악이여!! 바친 제물로 우리에게 힘을...!!”

광신적인 외침과 함께 그는 양손으로 마기를 끌어모았다.

“...어...?”

하지만 기이했다. 폭탄의 폭음도, 폭파에 휘말린승객들의 비명도, 죽음의고통에 몸부림치는 원혼들도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행이다. 레오가 훨씬 빨랐어.”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남은 적을 내리쳐 기절시켰다.

남은 독가스들은 천장에 뚫린 구멍 사이로 전부 빠져나갔다. 레오가 몰래 앞칸으로 접근하기 위해 뚫은 통로였다.

그 사이, 레오는 다른 칸에서 마지막 폭탄을 만지며 말했다. 해체된 폭탄은 그대로 작동을 정지했다.

[근데 어떻게 이걸 해체할 줄 아냐?]

<이때는 신형 폭탄이긴 한데, 제 시대에는 10년도 더 된 구형이에요. 맨손으로도 잘했는데, 이젠 마법까지 있으니 해체하는 건 더 쉽죠.>

새삼스럽지만 회귀자의 지식은 만만히 봐선 안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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