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 3주간의 휴가-6
이상한 기분이었다.
분명 피곤해서 일어날 수 없는데, 힘든 것은 체감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로 덕분에 취하는 휴식이 편안하고, 심지어는 행복마저 느낄 정도였다.
레오나르도가 느껴졌다.
기이한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그 설명이 적절하다 말할 수 있었다.
지금 누워있는 장소에도, 몸을 덮어감싸고 있는 것도, 온도와 공기마저도 레오나르도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음...”
그 행복감에 못 이겨 아리아스필은 조금씩 감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낯선 천장이었고, 잠에서 깨자 느낀 건 익숙한 내음이었다.
모순적인 조화에 아리아는 침대에서 조심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낡은 책상, 허름한 벽과 벽지, 빛바랜 커튼까지.
모두 오래됐다고 생각했지만, 역설적으로 가문의 저택보다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낡았음에도 먼지나 때 하나 없는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남기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천천히 아담한 집안을 살필 무렵, 옆쪽을 보자 이 편안함을 만든 상냥한 기사가 보였다.
“...레오...?”
의자에 기대 졸고 있는 레오나르도였다. 옷차림은 흙투성이에 해져있었고, 옷깃이나 소매는 난폭하게 찢어지고 넝마가 되어있었다.
그런 가여운 옷차림으로 가린 몸은 더 지독했다. 손바닥부터 손가락까지 전부 굳은살째 까지고 찢어져 있었으며, 딱지가 겨우 굳은 손에는 붕대가 어설프게 감겨있을 뿐이었다.
“...나 때문에...”
미안한 감정에 레오를 깨우려던 순간, 옆 서랍 쪽 위엔 빵 한 덩이와 우유 한 컵이 담긴 쟁반이 놓여 있었다. 쟁반 옆에는 작은 쪽지가 적혀있었다.
[촌장님 일은 죄송합니다. 워낙 융통성 없는 사람이어서요. 깨시고 허기가 지시면 빵과 우유를 드셔주세요. 가문에서 먹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영양 보충에는 도움이 될 겁니다.]
아리아는 아무 말없이 레오에게 떨어졌다. 이미 결계를 뚫은 것만으로 충분히 피로했을 테니, 조금이라도 자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아리아는 빵과 우유를 들어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레오 말대로 그리 맛있는 맛은 아니었다. 빵은 퍼석하고 우유는 고소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 맛이 좋았다.
맛있는 거와는 별개로 이 음식은 좋았다.
영양 보충을 끝내자 아리아는 레오를 조심히 들었다. 무겁고 탄탄한 몸이었지만, 자신의 기사가 해준 일에 비하면 이런 배려는 대수롭지 않았다.
레오를 조심히 침대에 내려놓으려던 순간,
끼이익
문의 낡은 경첩 소리가 울리며 한 노파가 걸어들어왔다.
“레오나르도, 애 상태는 어떻...”
아누스의 눈은 침대로 고정되었다. 침대보다는 한 남자를 껴안은 채 들어올린 소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게 중요했다.
“...”
“...아...그게...”
“나중에 말하도록 하지. 하는 건 말리지 않겠다만 피임은 잊지 말아라.”
그렇게 말하며 아누스는 문을 닫아 나가려고 했다. 의외로 아리아는 당황하지 않은 채 레오를 침대를 눕혀놓고, 문 쪽으로 걸어나갔다.
“괜찮아요. 지금 얘기해도 돼요.”
“...의외로 당황하지 않는군. 그런 단어가 익숙한가?”
“...무슨 단어요?”
아리아는 의아한 듯 아누스에게 되물었다. 그 반응에 아누스는 아리아의 상식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그런 계획을 짠 건가...”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누스는 침대에서 자고 있는 레오를 보며 다시 아리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염치는 없다만, 밖으로 나가서 얘기해도 되겠나?”
아리아도 졸고 있는 레오를 힐끔 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도론의 밤은 아침과 달리 고요했다. 안개처럼 내리앉은 어둠이 주변의 소리를 전부 삼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두운 숲을 걸은 것은 노년과 유년의 길에 선 두 여성이었다.
어두운 적막이 흐르고 있을 때, 아누스는 짚고 있는 지팡이를 그대로 바닥에 지그시 눌렀다.
“...몸은 어떻지?”
그녀의 질문은 딱딱했지만 단호하지는 않았다. 무뚝뚝함에 가려진 상냥함은 친분이 없는 아리아조차 눈치챌 수 있었다.
“...네, 괜찮아요. 덕분에...”
“나 때문에 쓰러진 거지. 레오 덕분에 괜찮아진 걸 게다.”
아리아는 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화가 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누스가 한 말을 전부 용서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밉나?”
그 앙금을 눈치챈 걸까, 노인은 두서없이 아리아의 마음에 흙발로 다가갔다.
“...네?”
“밉다면 미워하고, 안 밉다면 지금이라도 미워했으면 좋겠군. 이런 늙은이는 빨리 죽는 게 젊은이들한테 편하거든.”
자조적인 발언에 아리아는 무슨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갑자기 동조하거나 감싸줄 말을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그런 건...”
“...그리고 미안하다. 사실 사과가 먼저겠지.”
그런 망설임을 주는 것조차 사죄하는 것처럼, 아누스는 아리아에게 고개와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 반응에 아리아는 더더욱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
“난 약속했지. 내가 진다면 한 말들은 취소하고 사과하기로.”
아누스는 고개를 들며 아리아의 눈을 마주보았다.
“미안하다. 너의 마음을 가벼이 여기고, 레오와의 관계를 업신여겼다. 늦게나마 사죄하마.”
아누스는 고개와 허리를 다시 숙였다.
평소 거친 말만을 일삼은 까닭일까, 저 사죄는 다른 이와의 사과는 무게가 달랐다.
“아...아니에요...! 저도 갑작스레 그런 얘기를 했으니...! 보호자인 아누스 씨께서 화날 실만도 하죠...!”
그런 사죄의 깊은 무게가 느껴지자, 아리아는 급히 아누스의 사죄를 받아내려고 했다. 사실 실질적으로 레오를 기른 것은 그녀였기에 아리아는 더욱 그녀의 체면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라... 확실히 맞는 말이지. 난 레오나르도의 부모도 아니니, 생각해보면 너희의 관계에 간섭할 자격도 없어.”
이어지는 자조적인 발언에 아리아는 눈을 떨었다. 애초에 결혼은커녕, 연인도 아닌 그녀였기에 아리아는 양심이 죄악감으로 찔리는 걸 체감했다.
“...저... 그게... 사실은...”
“여기로 널 부른 건, 어릴 적의 레오나르도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그 말에 진실을 고백하려던 아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아마 그 목석은 물어도 대답 하나 안 할 테니, 이럴 땐 노파심 많은 노인네가 주책을 부려야겠지.”
레오나르도의 과거.
그 내용은 설사 죄책감에 짓눌린다고 할지라도, 꼭 들어야만 하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호기심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이 숲의 공기가, 아누스의 진심이 아리아에게 속일 각오와 들을 다짐을 불어넣었다.
“레오의 애미에 대한 얘기는 들었나?”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레오가 10살 즈음 돌아가셨다고...”
“...돌아갔다라, 분명 레오가 그렇게 말한 거겠지.”
아누스는 쓰게 웃었다. 웃지도 않으면 이야기의 쓴맛은 더 농후하게 입가에 남을 것이다.
“레오가 마을 떠난 이유를 알고 있나?”
아리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모르는 것은 지어내지 않는 이상, 대답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레오나르도는 스스로에 대한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과거에 대해선 더욱 철저히 숨기고 감추었다.
“모르겠지. 레오는 그런 애니까.”
아누스는 숲의 으슥한 곳으로 걸어갔다. 어둡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어둠에 대한 공포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람은 밝은 퇴악볕보단 얕게 깔린 그늘에 안심을 얻는 법이었다.
“레오는 자신의 어머니를 찾으러 마을을 떠났다. 10살 무렵에 사라진 어머니를 찾으러 말이야.”
“하지만... 분명 레오는...”
자신의 어머니가 3개월 동안 안 돌아왔기에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내 아리아는 아누스의 말의 진의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건 단지 ‘그렇게 말했다’일 뿐인 것을.
“레오나르도가 이 마을에 온 건, 1살도 되기 전 무렵이었지.”
아누스는 그날이 어젯밤처럼 생생했다. 기묘하게도 몸이 낡아질수록 오래된 기억을 꺼내는 건 젊은 적보다 쉬워졌다.
폭우가 내리는 날, 물의 정령조차 매서운 비에 두려워 자리를 피한 밤.
그 폭우를 뚫고 걸어온 바보가 있었다.
누군가의 어미가 되기엔 충분해도, 좋은 어머니가 되기엔 조금 모자라 보이는 여성이었다.
남편도 없이, 아기를 가슴팍에 멘 채 이런 폭우를 홀몸으로 뚫은 게 그 판단의 날인이었다.
“그게 레오의 어미, 렌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마을에 찾아온 렌은 난데없이 살 집을 요구했다.
“...예? 여기가 고향 아니었어요?”
“레오에겐 고향이겠지만, 렌은 아니야.”
렌은 어쩌다 마을에 몇 번 머무른 이방인일 뿐, 마을의 출신은 아니었다.
“어쨌든 몇 번 마을을 지켜준 적도 있고 하니, 난 근처에 빈 집을 내어주었다. 창고로 쓰긴 아까우니 차라리 잘됐다고도 생각했지.”
불평을 하면서도 아누스는 살 곳과 가벼운 음식과 돈을 내주었다.
그러면서도 아기는 어떻게 된 거이냐 물었지만, 마치 렌은 침묵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레오는 자기 애비를 몰라. 우리도 레오 아비는 모른다.”
그때, 레오가 했던 자기소개가 기억났다.
‘그러니까 난 그냥 레오나르도다. 없는 애비 만들어줄 거 아니면 토 달지 말고요.’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레오 본인이 가볍게 얘기했으니까.
하지만 그 무게가 가볍게 보일 때까지 걸린 시간은 가볍지 않으리라, 그녀는 추측했다.
“레오는 특이한 아이였어.”
“...좋은 쪽으로요?”
“좋은 쪽도, 나쁜 쪽도 아니었다. 굳이 덧붙이자면... 안타까웠지.”
레오나르도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욕망에 광기가 있듯. 무욕에도 광기가 존재했다.
마치 산타의 캐롤에 나오는 착한 아이와 똑같았다.
“울지도 않았고, 짜증을 내지도 않았어. 하물며 장난도 치지 않았지.”
현재의 레오나르도와는 동일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우는 건 그렇다 쳐도 짜증이나 장난이 없는 건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걱정했지. 단순히 먹이고 재우는 건 편했지만, 그건 애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가축을 먹여 재우는 거랑 다를 게 없으니까.”
극단적 비유였지만, 아누스에겐 여전히 생생했다. 그때 소년은 죽지 않은 것일 뿐, 살아있다는 표현은 쓸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 심히 걱정하지 않았어. 제 어미한테는 제법 사람 같았으니까.”
렌과 같이 있을 때 레오는 같이 웃기도 하고, 귀여운 짜증을 부리도 하며, 때로는 마을 사람 모두가 웃을 장난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레오 어머니는...”
“그래, 10살 무렵으로는 아예 사라졌지.”
그 후였다.
레오가 무욕을 넘어 무심을 깨달은 건.
“그나마 웃기라도 하던 녀석은 그것마저 잃어버렸지.”
소년은 희망을 잃었기에 모든 것에 무심해졌다.
그 뒤로 대략 한달이 더 지나서였을까, 레오나르도는 마을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마을 안은 지루해서라고 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는 않았어. 제 엄마를 찾으러 간 거겠지.”
모두 렌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렌이 좋은 어머니가 되진 못해도, 어머니의 자격을 포기할 만큼의 썩은 위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레오를 말리기 위해 딘이 막아섰다. 열살배기 애가 저런 상태로 나가면 어떨지는 뻔했으니까.”
“...그래서 이기고 나갔군요.”
“아니, 처음에는 졌다.”
아리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첫 만남에도 마나 없이 자신을 압도한 레오였다. 그런 레오가 아무리 어리다 할지라도 패배하는 건 납득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엔 딘을 이겼지. 고작 애 한 명이 늑대인간을 쓰러뜨린 거야.”
단순히 힘이나 기술로 이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리아와의 상상과는 정반대의 방식을 썼다.
“처음엔 동물의 피를 이곳저곳에 뿌려 냄새를 교란했다. 그렇게 견제 공격만 하다가 마지막엔 미리 깊이 칼집을 낸 나무들을 부러뜨려 딘을 잡았지. 정정당당하고는 거리가 멀었어.”
그럼에도 아무도 레오를 붙잡지 않았다.
“...그 이상으로 붙잡으면 애가 정말 선을 넘을 것 같았다. 아이로서든, 사람으로서든.”
그렇게 레오는 마을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그 여행을 내막은 몰랐지만, 고작 3년만에 몸에 여실히 남은 흉터는 그 여정이 결코 녹록치 않았다는 건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가출한 애가 대뜸 편지를 보냈더군.”
그때 아리아는 떠올렸다. 딘이 보여준 레오의 편지를.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왜 그런 인형 같은 아이가 기사 가문에 들어간 건지, 아가씨를 모시는 것에 그렇게 보람을 느끼는 건지도 말이야.”
그렇게 마을 사람이 머리를 맞댄 결론은 간단했다.
“레오도 사랑을 알았다고 생각했지.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은 그렇게 변할 수 없다고 말이야.”
아리아의 볼이 조금 붉어졌다. 확실히 그런 의미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1년 전에 왔을 때 즈음에는 난 확신했다.”
아마 레오와 친분이 있다면 알만한 사실이었다.
“그 앤, 사랑에 있어선 목석이나 다름없더군. 사랑이 뭔지도 몰라.”
그 말에 아리아가 다시 침울해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당황스럽게 바뀌었다.
“...왜 그러지? 설마 내가 진짜로 너희들이 연인 사이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나?”
갑자기 태풍과 해일 몰아치듯 수치가 밀려왔다.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흑역사는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을 사람들은 멋대로 속은 것 같지만, 난 그렇게 낭만주의자가 아닌지라... 속기가 더 어렵더군.”
“...죄...죄송합...”
“사과는 괜찮다. 오히려 애를 목석 같이 키운 내가 사과해야겠지.”
아누스는 주름진 입꼬리를 피식 웃어보였다. 조소나 조롱이 아닌, 안도와 안심의 미소였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그런 레오를 부탁해도 되겠나?”
“...네...네?”
아누스의 눈이 맑고, 시선은 반듯했다. 아마 저런 눈은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진심에서만 흘러나올 것이다.
“너희가 사귀지도, 결혼할 걸 정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너에게 내 손주를 맡기고 싶더구나.”
아누스는 아리아를 머리를 쓸어넘겼다. 주름진 손임에도 부드러운 온기가 머리에 지그시 스며들었다.
“...하지만 전 레오보다...”
“레오를 지킬 필요는 없다. 아가씨가 기사를 지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으니.”
잠시 뜸이 들여지더니 아누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너 스스로를 지켰으면 한다. 부디 레오보다 먼저 죽지 말아라.”
그제서야 아리아는 아누스의 시험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저는...”
“연애를 건너뛰고 결혼할 정도의 의지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된다만... 내가 너무 성급히 생각했나?”
그 말에 아리아의 표정은 완전히 익어버렸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아누스는 그런 소녀의 심성에 만족했다.
“다행이군. 그럼 먼저 가보지. 잘 시간을 빌려줘서 고맙네.”
아리아는 한참을 대답을 못한 채, 붉게 물든 얼굴을 식히는데 여념이 없었다.
***
“...다녀왔...”
돌아온 아리아는 말을 멈추고 침대 방향을 바라보았다.
피로가 심했던 탓일까, 레오나르도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많이... 힘들겠지.”
걱정되는 마음에 아리아는 레오가 누운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레오는 침대에서 평온한 표정을 지은 고운 숨을 내쉬고 있었다.
‘...무표정한 레오라...’
사실 지금도 촌장님의 말씀은 여러의미에서 믿기지 않았다.
항상 다채로웠던 레오였기에, 아리아에게는 더더욱 상상이 어려운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근데 난 어디서...’
잠시 둘러보던 아리아는 그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집... 잘 데가 하나밖에 없어.’
보통은 소파라도 하나 더 있기 마련인데, 이 허름한 집에 침구는 침대 하나밖에 없었다. 남은 건 춥고 딱딱한 마룻바닥 뿐이었으니까.
...침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아리아는 조심히 레오가 덮은 이불을 잡아올렸다.
이건 절대 그런 게 아니었다.
불가항력 아닌가, 누가 봐도 불가항력이었다.
레오나르도도 추울 테고, 자신도 마룻바닥에 자는 건 힘들었으니.
서로한테도 이득인, 그래! 상호이익이었다.
이불 속에 같이 들어가도 떨어져 있으면 그만이다.
아무 문제도 아니다.
촌장님도 자신에게 부탁한다고 하셨으니 찔릴 필요도 없었다.
“...하...”
하지만 한숨과 함께 아리아는 결국 반쯤 넣은 몸을 침대에서 빼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차라리 마룻바닥에서 자는 것이 스스로의 양심에...
털썩...
그 순간 레오의 팔이 반 정도 들어온 아리아의 허리를 감쌌다. 의도한 것이 아닌, 정말 우연한 잠꼬대였다.
“...레...레오...나...”
아리아는 극한의 정신적 갈등에 놓였다. 이성과 본능이 극단적으로 갈등하며 아리아의 흥분을 고조시켰다.
“...잘못했어요...”
그 순간, 레오가 작게 말했다.
“...레오...?”
“잘못했어요... 가지 마요... 제가... 더... 잘할테니까...”
그 순간, 이성과 본능은 하나로 일치했다.
침대에 누워 아리아는 레오를 감싸 몸에 품었다.
흑심이든, 상호이득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이 소년에게 ‘괜찮다’는 걸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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