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33화 (33/248)

EP.33 3주간의 휴가-4

“하... 그러니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 레오는 편지로 여태까지의 일과 가문에서 일하게 된 후의 일을 설명했다.]

[2. 근데 아리아에 대한 소개를 할 때, 오해가 소지가 있는 구절이 좀 있었다.]

[3. 그래서 레오와 아리아는 도론 마을에서 연인 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라는 거지?”

“그지. 지금 마을 사람들 다 그렇게 알고 있어.”

생각해보면 1년 전에도 하는 말이 조금씩 이상하긴 했다. 당시 딘하고 촌장이 말하면서 묘하게 히죽거렸던 건 그 탓일 것이다.

[너... 눈치가 너무 밑바닥 아니야? 보통은 1년 전에 찾아갔을 때 눈치채잖아.]

<...저만 잘못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때는 그것 말고도 할 얘기가 많았다고요.>

아리아와의 오해도 제법 큰 화젯거리였지만, 그 이상으로 몇 년은 넘게 마을을 떠났다가 환향한 것은 대략 10년은 길게 우려 먹어도 부족하지 않은 안줏거리였다.

그리고 고작 2시간 정도에만 마을에 있었으니 회포를 풀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았고.

“아가씨께서도 뭐라고 말씀해보세요. 아가씨도 곤란하시잖아요.”

아리아스필은 항상 무표정으로 기본으로 생활해왔다. 회귀 뒤에는 제법 웃는 상이 되었지만, 딱히 기쁜 일이 없으면 그녀의 입꼬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헤? 뭐...라고? 흐...”

그런데 지금은 너무 웃고 있었다. 말에 중간마다 입바람 소리가 울릴 정도로 말이다.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는 표현은 아마 지금 아리아를 위해 있는 어법일 것이다.

워낙 아름답기는 했지만, 전생의 괴리감 때문에 몸에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저렇게 웃는데요...?>

[...몰라. 네가 농담암살술이라도 썼나 보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으휴...]

왜 당황스러운 건 자신인데 현자가 답답하게 한숨을 내쉬는 건지 모르겠다.

이젠 세상이 미쳐돌아가는 건지, 자신이 미친 건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걸 가서 확실히 정정해야겠네요.”

더 늦기 전에 사실을 알려야했다.

“근데 진짜 사귀는 게 아니야?”

“아니라니까. 그보다 내가 무슨 수로 영애님하고 사귀는데?”

레오의 신분은 평민.

그것도 부농층도 아닌, 일개의 용병에서 간신히 기사가 된 몸이다.

그런 자신이 아리아스필이라는 용사 가문의 영애와 연인이라니, 아마 가주님이고 마르켄이고 간에 온 세상 사람이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우리도 네가 모시는 아가씨가 용사 가문인 줄은 몰랐다고.”

딘마저 그렇게 납득하자, 헤실거리던 아리아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세상의 많은 것을 봐왔던 현자조차 저렇게 희비가 교차하는 게 확실히 육안에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정작 두 눈치 없는 놈팡이 형제는 눈치 못 챘지만 말이다.

“근데 어떡하냐... 촌장님은 그 말을 들으면 다시 앓아눕는 거 아니야?”

“...다시 앓아눕는다고? 그냥 감기 정도 아니었어?”

딘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털이 부숭부숭한 볼을 긁었다.

“그러니까... 편지를 쓴 날은 그랬는데, 다음날에 가뭄 때문에 무리하게 님부스한테 기우제 부탁하다가... 이니스한테 미움 사서 벼락 맞았어.”

“으휴... 주책맞은 할망구, 감기 걸릴 때는 좀 쉬라니까. 그래서 지금은?”

“골골대다가 네가 온다고 하니까 벌떡 일어났어. 그래도 빌빌대는 건, 여전하지만.”

“촌장님답네.”

아리아는 놀란 나머지, 연거푸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벼락을 맞았다고 했는데, 태연히 넘겼기 때문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딘과도 처음 만났는데, 님부스니 이니스라는 처음 듣는 인물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전부...

‘...전부 여자 이름이잖아...’

‘님부스’나 ‘이니스’와 같은 이름을 남자가 쓸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도론과 같은 촌에서 그런 열린 문화를 가지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되었다.

“...저기 님부스하고 이니스는 어떤 ‘여성’분이셔?”

일부러 여성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물었다. 아니라면 웃으면서 남자라고 정정하며 설명해줄 것이다.

“여자? 레오, 걔들을 여자라고 봐야할까?”

“글쎄... 걔들이 생긴 건 예뻐도, 하는 짓은 오크 뺨을 후려갈기는 수준이여서... 근데 걔들한테 그런 게 의미가 있어? 형?”

“내 말이.”

별거 없는 험담, 뒷담화에 가까웠다.

대화의 의미는 결국 얼굴값을 전혀 못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쿠웅

그 순간 무언가 내리 앉는 굉음이 울렸다.

눈치가 없는 레오나, 딘, 심지어 현자조차 그 폭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직 아리아만이 그 폭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게 정신의 폭음인 것은 그녀 본인도 깨닫지 못했다.

‘...글쎄... 걔들이 생긴 건 예뻐도...’

‘...걔들이 생긴 건 예뻐도...’

‘...생긴 건 예뻐도...’

‘예뻐도’라는 말이 굉음과 함께 메아리쳤다. 눈엔 생기가 빠지고, 어째서인지 손은 검 손잡이에 다가가고 있었다.

“도착했네.”

살기가 점차 흉흉하게 흘러나올 무렵, 마을의 인영이 나무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여기도.”

언제 와도 익숙한 풀내음과 욕지거리가 진동하는 장소.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이었다.

“얘들아!! 레오 왔다!! 퍼뜩 나와!!”

구수한 사투리를 외치자, 집가에 있는 사람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흡사 전쟁통에 뛰쳐나오는 피난민 같기까지 했다.

“레오나르도!!”

아니, 정정해야겠다.

저런 기세로 달려오는 피난민은 너무나 과소한 평가였다. 하늘을 찌르고 남을 기운은 마치 정예 의병단을 불방케했다.

“왜 이렇게 늦었냐?!”

우락부락한 얼굴을 한 채, 남성은 도끼칼을 들었다. 핏기가 뭍은 칼날은 피가 흘러내리자 제법 섬뜩했다.

“사정이 있었어요. 제프 아저씨.”

그러나 제프가 저러는 흥분하는 모습을 한두 번 본 레오가 아니었다. 저 정도면 생각보다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밥 다 식었다고! 어!? 뜨거울 때 먹어야지!!”

애초에 저런 이유로 화내는데 무서워할 일은 없었다.

“여보, 애가 힘들게 왔는데 좀 살갑게 대해줘요.”

도축업자 겸 요리사인 제프의 아내, 수자는 그런 난폭한 남편을 다독이며 화사한 인상을 보였다.

“잘 왔어. 레오. 1년 만이지?”

“네, 자주 왔어야 했는데, 일이 바쁘다 보니 늦게 오게 되네요.”

“우리 사이에 뭘~ 그보다 준비한 물건은?”

“물론 준비해놨죠. 사모님.”

레오는 마치 암거래를 하는 검은 시장의 큰손처럼 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라? 왜 없지?”

하지만 이내 그 암상인의 표정은 얼빠지게 변해갔다.

“레오?”

“...초콜릿 세트를 기차에 두고 내렸나...?”

분명 휴가를 내고 집을 쌀 때는 챙겨두었다. 하지만 기차에서 급하게 내릴 때, 준비해두었던 초콜릿 세트를 두고 내린 것 같았다.

“여보~ 다시 들어도 돼.”

스릉

사랑하는 아내의 부탁에 제프는 핏기어린 도축 칼을 들어올렸다. 그 긴박한 순간, 레오의 손에 무언가가 집혔다.

“찾았다!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어뒀네요!”

고급스럽게 포장된 검은색 상자가 가방에서 당당히 드러났다. 그러자 자연히 칼날도 내려갔다.

“근데 뭐라고 하셨나요? 아주 상처받을 말을...”

“아니~ 우리 레오~! 아줌마 생각도 해주고! 아주 기특해!!”

수자는 명령을 철회한 채, 살갑게 맞이했다. 행여나 레오가 명령에 관해 캐물을까 걱정돼, 양볼을 잡는 것은 퍽 활기를 갖다주었다.

“촌장님은요?”

“촌장님은 지금 회관에 계셔. 아무래도 아프시기도 하고... 조금 솔직하지 못한 분이시잖니.”

“그냥 무뚝뚝하신 거죠.”

그렇게 서로 1년 동안 밀린 인사를 나누는 사이, 인사를 끝낸 몇몇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한 아리따운 소녀에게로 향했다.

“저 애는...”

“소개할게요. 제가 모시는 영애님이신....”

“레오 여친이구나!!”

소개할 때 정정한다는, 레오의 원대한 첫 계획은 첫단추부터 어그러졌다.

여친이라는 말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아리아와 레오를 한 시선으로 모아놓았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그러네! 레오 여친이야!!”

“편지에 쓴 거랑 똑같은데!?”

“경사네!! 제프! 얼른 닭 한 마리 더 잡아!!”

레오의 말은 마치 소귀에 경을 읽듯 하등 의미가 없었다. 꼭 주책맞은 친척처럼 마을 사람들은 자기네 멋대로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그게 아니라..!!

“이럴 게 아니지! 얼른 촌장님께 데려가지!!”

“그래!! 그러자고!!”

정정이고 뭐고 마을 사람들은 이미 막무가내로 레오와 아리아를 붙잡은 채, 마을 회관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저들의 머릿속에는 레오와 아리아가 연인이라는 공식에 진리로서 박혀 입력돼있었다.

“그러니까...! 사람 얘기 좀...!”

뭐라 지적할 기회도 없었다.

이미 커플로 확정된 기사와 아가씨는 마을 회관에 밀어 넣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촌장과 얘기하라는 의미에서 마을 회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배려에 레오는 복장이 터지고 있었다.

[너무 막무가내인데?]

고향 사람들을 보고 늘상 지적하는 현자가 선녀처럼 보였다. 아마 바퀴벌레를 보고, 쥐를 보니 조금 귀여워 보이는 거와 같은 이치였을 것이다.

“레오냐...?”

조금 어두운 회관의 안, 한 노파가 원형 테이블 앞에 앉아있었다. 새치가 덥수룩한 머리를 자랑하며 촌장은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가 많이 쉬셨네요. 아누스 촌장님.”

아누스는 기침을 연거푸 뱉으며 오랜만에 돌아온 레오를 노려보았다.

“묻는 말엔 대답 안 하고 딴소리하는 거로 봐선 레오가 맞구나.”

“기껏 걱정해줬더니 욕부터 박는 거로 봐선 건강하신 것 같네요.”

훈훈한 악담이 오가며 촌장과 레오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아마 300년은 넘게 묵은 현자과의 언쟁에서 밀리지 않는 건, 촌장의 덕이 컸다.

“이 늙은이가 벼락에 맞았는데 잘도 건강하겠구나.”

“어디 이니스가 그런 게 한두 번입니까? 그러니까 아플 땐 쉬셔야죠.”

이니스라는 이름에 다시 아리아의 눈이 흉흉해졌다. 그 기운은 눈치챈 아누스 촌장은 손가락으로 아리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서? 저 여자애가 너 같은 멍청이를 연인으로 삼은 안타까운 아가씨냐?”

“그니까 아까부터 말하는데...! 그게...”

“레오는 멍청이가 아니에요.”

이번에는 아리아가 레오의 말을 잘랐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아리아는 단호한 어투로 촌장으로 노려다 보았다. 연장자에게, 그것도 마을 촌장에게는 분명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기개가 마음에 들었는지, 마을의 노파는 슬며시 눈을 기울이며 아리아스필에 맞서 노려봤다.

“허... 용사 가문의 온실 속 화초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지?”

아리아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성도 말하지 않았는데, 바로 용사 가문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레오는 매일 마법하고 검술을 단련해요. 가문 기사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지금은 마탑으로 중급 마법 허가서를...”

“결국 할 줄 아는 게 싸우는 거밖에 모르는 거겠지. 마법도 운 좋게 기회가 생겨 얻어걸린 거일 뿐이야.”

그 말에 현자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때릴 수만 있다면 고개째로 뺨을 쳐날렸을 것이다.

“그리고 저한테 여러 가지를 알려주고...”

“용병이 얻은 지식 따윈 믿을 게 못 돼. 해봤자 자신의 경험에 매몰될 테지.”

아리아의 눈빛에 점차 독기가 서렸다. 어떻게든 저 노파의 말을 논파하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지. 아마 너보다도 많이 알 게다.”

그 말에는 반론하지 못했다.

레오의 곁에 있는 시간의 총량은 촌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니 묻겠다. 너한테 있어 레오나르도는 어떤 존재지?”

“...그...건...”

아리아스필은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전속 기사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운 존재였고,

친구라고 하기엔 공적으로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으며,

연인이라고 하기엔 자신에게도, 레오의 마음에도 확신이 없었다.

“거봐라.어차피 연인이라고 해도, 철없는 꼬마 아가씨가 추억거리 따위라도 필요한 거겠지. 정말 결혼이라도 할...”

하지만 저 모욕에는 도저히 입을 다물 수는 없었다.

“결혼할 거예요!!”

정적이 흐를 틈도 없었다.

“스무 살 되면 바로 결혼할 거고!! 아이는 아들딸 둘로 낳을 거예요!! 이름까지 정해뒀다고요!!”

기차에서의 망상은 이미 신혼 생활로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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