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32화 (32/248)

EP.32 3주간의 휴가-3

기차가 출발에 비해 격하게 덜컹대기 시작했다.

그 진동은 열차가 깊은 시골로 향하고 있다고, 스스로 불평하고 투덜거리는 것 같았다.

“...으...음...?”

그 까탈스러운 기관차의 토로에, 레오의 고개가 떨리며 동시에 눈꺼풀도 떨렸다.

이내 더 크게 진동하자 미동만 하던 눈꺼풀이 활짝 열렸다.

“일어났어? 레오?”

“...예...예?”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있던 레오는 조금 당황한 듯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머리를 기대고 자버렸네요.”

“아,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레오도 많이 피곤할테니까...!!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대고 자도 돼!!”

고마운 말씀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명색의 기사인데 아가씨에게 폐를 끼쳐서 쓰겠나.

“지금 어느 역이죠? 아직 멀었나요?”

“지금은 다빈스 역이라고 했으니까, 아직 도론까지는...”

“예? 다빈스요?”

역사의 이름을 듣자 레오는 급히 되물었다. 급한 반응에 아리아는 당황했는지 의문스러운 어투로 대답했다

“어. 다빈스역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문제...”

확인이 끝나자 레오는 속히 가방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얼른 내려야 해요!”

“어...? 왜...”

“도론으로 가려면 다빈스역에서 내려야해요. 도론으로 직행하는 열차는 아예 없어요!”

도론은 시골 중에서도 가장 깊숙이 있는 깡촌이었다. 어설프게 지은 집과 건물이라도 없었더라면 숲속 안이라 해도 이상할 게 아니었다.

<현자님!! 얼른 오세요!!>

[어? 왜? 지금이 중요한 장면 보고 있다고.]

열차 안에서 중요한 장면이고 아니고 할 게 있는가. 새삼 현자가 어떤 인물인지 되새길 수 있었다.

<됐고, 얼른 오세요. 내려야 한다고요.>

[아직 도론역이라는 곳은 안 나왔는데?]

아까도 말했던 설명을 2초 이내로 해결하자, 현자도 따라 내릴 수 있었다.

중간에 열차가 출발한 뻔한 걸, 간신히 역무원에게 붙잡고 부탁해 곤란하게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죄송함이 스멀거렸다.

“겨우... 내렸네요...”

플랫폼으로 간신히 내리게 되자, 레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자칫 늦기라도 했다면 3km 이상이나 되는 선로를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러게 좀 잘 체크하지 그랬어.]

<...그건 죄송하네요.>

이것만큼은 아리아는 물론, 현자조차 탓할 수 없었다. 도론까지 바로 도착하는 기차역이 없다는 걸, 아는 건 레오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근데 열차에 뭐 볼게 있다고 그렇게 늦게 왔어요?>

설마 진짜 특허랑 저작권 가지고 소송을 걸만한 것을 찾는 것일까.

[막장 소설 좀 보고 왔어. 다른 일등석에 봤는데, 내가 삼각이나 사각 관계는 봤어도 300년 넘도록 오각 관계는 처음 봐서...]

<...그냥 안 들을래요.>

아무리 현자의 돌을 버틸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도, 치정극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레오였다.

“그럼... 어디로 가야해?”

들뜬 기세로 눈을 반짝이는 아리아는 그 나이대에 맞는 소녀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긴 이런 외진 시골은 아리아에겐 처음 보는 풍경일테니, 나름대로 흥미가 깊을 것이다.

“마차는 못 타고, 직접 걸어가야 해요.”

레오는 그렇게 설명하며 검지 손가락 끝으로 푸른 초목과 연결된 산을 가리켰다.

“마차는 못 타?”

앞장선 레오를 따라 걷는 아리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시골이긴 해도 다빈스 역에는 수십대 이상의 마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에 질문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물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길이 험하다 보니 마차는 가기가 힘들죠. 마부들도 보수를 곱절로 받아도 안 가려고 해요.”

포장되지도 않은 울퉁불퉁한 흙길에, 듬성듬성하게 나있는 돌부리와 나무뿌리, 그리고 덤으로 구덩이와 진흙탕 투성이가 기다리고 있으니, 보수보다 마차 바퀴 수리값이 더 나올 것이다.

“그럼 출발하죠.”

레오는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마을로 향했다. 1년 만에 돌아가는 고향이니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

[근데 말이다, 너 따지고 보면 촌장이 아파서 가는 거잖아.]

<그렇죠.>

[그런데 왜 그렇게 낄낄거리냐? 촌장님 고려장하고 싶었냐?]

이 양반은 말해도 항상 이따위로 말한다 말이지.

실실거린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낄낄거린다는 표현은 처음 들어봤다.

<제가 무슨 현자님입니까?>

[그럼 뭔데?]

<촌장님은 어차피 건강하세요. 전생에도 이렇게 안 돌아가셨어요.>

[...뭐?]

촌장님은 레오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정정히 살아계셨다. 물론 잔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편지 중 5할은 감기 정도의 가벼운 병 정도였다.

[그럼 왜 가는데?]

<그거야 성묘도 해야하고, 오랜만에 고향 사람도 뵙고 싶으니까요.>

전생에는 거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리아와 만난 뒤로는 성묘를 가는 횟수조차 줄였지.

[은근 패륜아였구만.]

<패륜이든, 불효막심이든 간에 욕하세요. 사실이긴 하니까.>

레오는 아리아에게 승리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가린다고 해봐야 흑마법이나 마인이 되는 수단 정도였을까.

부모님의 성묘도 줄이고, 고향 간에 연락은 거의 끊어버렸다. 전생에 마지막으로 고향에 들렀을 때는 고향 사람들은 내가 죽은 걸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회귀한 지금은 그런 후회를 없애기 위해 반성하는 거지.

[...거기서 인정해버리면 내가 쓰레기가 되잖아.]

<어라? 아니었어요?>

[그래, 내가 만악의 근원이지. 아주 그냥.]

<이제라도 알면 됐어요. 앞으로 착하게 사세요. 아, 이미 죽었구나.>

현자는 극한의 언어 공격에 충격을 받은 듯 아예 입을 다물었다.

“근데 어디까지 가야 해? 레오?”

아리아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언덕을 오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아마 피곤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고,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다보니 지루해서 물어본 까닭이 클 것이다.

“이 정도면 마을도 나올 거에요. 그러니...”

바스락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유사했지만, 확연히 다른 성질의 음색.

그 소리에 레오가 검을 들었다. 팔찌였던 검은 돌이 검으로 변환되었다.

“레오...!?”

카앙!

날아오는 단도가 레오의 검 앞에 튕겨졌다.

“습격...!?”

아리아가 경악하기도 전에, 수풀에서 검은 인영이 튀어나왔다. 마치 숲속의 맹수와 같은 몸체, 검은 털로 뒤덮인 사냥꾼이 튀어올라 돌진했다.

타앙!!

날과 발톱이 맞부딪쳤다.

아까 날아온 단도가 아닌, 짐승과 맹수의 전유물이라 불린 발톱이 검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사람...이...늑대...?”

사냥꾼은 늑대의 형상을 한 인간.

“이게 누구신가...! 마을을 버리고 상경한 개자식이잖아!”

웨어울프였다.

“그 면상으로 용케 개자식이라고 말하나 보네?!”

그 웨어울프의 압살을 받아내며 레오는 소리를 질렀다.

흰 발톱과 검은 칼날이 서로 떨리며 밀리고 미는 것이 반복되었다. 아마 더 힘을 준다면 둘 중 하나는 다칠 거다.

파앙!!

“레오한테서 손 떼...!”

그 순간 아리아가 돌진해 각력을 자랑했다. 그 발차기에 검은 야수 사냥꾼을 날려버려 바위에 꽂히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괜찮아? 레...!”

“딘 형!!”

아리아가 다행스러운 눈치로 바라볼 때, 레오는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의 동료이자 형을 바라보았다.

“형...?”

[죽은 거 아냐?!]

레오는 급히 딘에게로 뛰어갔다.

웨어울프 딘 하운즈.

그는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동시에 레오의 친한 형이었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생각도 없이 발차기를 날려서...!”

“괜찮아... 아가씨... 턱뼈가 조금 나간 것 같지만... 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아...”

딘이 말하는 거로 봐선, 조금이 아닌 것 같았지만 레오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웨어울프의 생명력이라면 금방 뼈가 붙고 아물 것이다.

“반응으로 봐선... 아가씨, 수인은 처음 보지?”

아리아는 방금부터 고개를 숙인 채, 눈으로 딘의 몸을 힐끔거렸다. 아무래도 유난히 특징적인 외모를 지녔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네...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 정도면 양호한 반응이거든. 애초에 싸움을 건 것도 나니까 그렇게 저자세로 나올 것도 없어.”

“그래요, 따지고 보면 형하고 제가 멋대로 싸워서 그렇죠.”

딱!

“악! 왜 때려?!”

딘은 부러진 턱뼈를 붙잡으며 레오의 머리를 내리쳤다.

“넌 좀 반성해! 네가 미리 설명했으면 내 얼굴이 이 꼴이 났겠어?”

“상관없잖아. 어차피 멀리서 봤을 땐 차이 없어.”

퍽!

주먹이 다시 떨어졌다. 같은데로 연타로 맞으니 충격이 뇌에 전달되는 것 같았다.

“걸 지금 말이라고!”

딘하고 레오는 항상 마을에 들어올 때마다, 서로 주먹다짐이든 칼날다짐이든 간에 몇 합은 겨루고 들어간다.

일종의 신고식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솔직히 아리아가 피해자고, 너희 둘이 가해자야. 그러니까 정도껏 했어야지.]

머리가 띵한지라 반박할 여유도 없었다. 머리를 몇 번 어루만진 끝에 레오는 다시 언어 능력을 되찾았다.

“어쨌든 도론에 잘 왔어. 이름이... 그게...”

아리아는 예의를 지키며 조신한 방식의 인사를 보였다. 아름다운 아리아의 미모가 예법을 중심으로 더욱 밝게 빛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리아스필 라인하르트라고 합니다.”

“아, 그랬지. 잘 부탁해. 아리아스필...라인...?”

악수를 하려던 딘은 손이 땀으로 흥건해지는 걸 체감했다.

“...라인하르트?”

두꺼운 모피가 축축해져 늘어질 정도로, 극심한 수분이었다.

“...그 용사 가문...?”

“...아, 예.”

“그니까 마왕을 죽인 용사 가문?”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초대 용사셨던 루벤 라인하르트님이 마왕을 퇴치하셨죠.”

“...아...”

딘은 잠시 손을 거두고 아리아에게서 떨어졌다.

“잘못했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

그러고는 90도 자세로 허리를 꺾어 사과했다.

대략 90도로 90번 정도 고속으로 말이다. 아마 아리아가 도중에 말리지 않았더라면, 180도로 180번 사과하는 진기명기를 구경할 수 있었을 거다.

조금 아쉽구만.

***

“근데 왜 말 안 한 거야!? 편지에는 분명 기사 가문의 영애라고 했잖아!!”

“기사 가문은 맞지.”

“용사 가문이 그냥 기사랑 같냐?!”

분명 딘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는, 단순히 기사 가문이라고 했을 뿐, 라인하르트는 고사하고 용사 가문이라고 언질도 주지 않았다.

“그럼 이따위로 안 하고, 현수막도 걸고 막 잔치도 벌였을...!”

“용사 가문보다 화려하게 벌일 자신은 있고?”

“...야,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마음이 중요한 거지! 마음이!”

맞는 말이긴 했지만, 아까 보였던 90도 90회 사과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피식거리게 되었다.

“전... 괜찮아요. 원래부터 그런 건 부담스럽다고 생각해서요.”

“...레오랑은 다르게 상냥하네. 하긴 그러니까 레오랑 사귀겠지.”

“앞말은 빼지? 나도 착하니까 사귀... 잠깐...?”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았다.

사귄다? 아리아와 자신이?

아, 친구로서 사귀게 되었다는 뜻이겠...

“너희 연인 사이 아니었어? 편지에 그렇게 보내서 마을 사람들 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확인사살이었다.

여태까지 편지에는 연인이라는 단어는커녕, 그와 관련되거나 유사한 언어가 한 줌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게...무슨...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기가 차다 못해 역류하는 바람에 고함을 치고 말았다.

“아니, 니가 그렇게 보냈으면서 뭔 소리야?!”

“내가 언제!”

딘은 나이프를 넣는 주머니에서 편지 몇 장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큰소리로 몇 구절씩 읽기 시작했다.

“‘목숨을 맡겨도 좋을 상대다.’”

호적수로서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기사다.’”

자신이 모시는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있기에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라며!! 니가 편지에!!”

...그건 맞는데,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오해가 소지가 조금 있긴 하지만, 그런 뜻은 전혀 없었단 말이야!

“아리아 아가씨! 그런 의미가 아닌 거 아시잖아요! 뭐라도 해명을...!”

“...흐...”

“아리아...?”

아리아의 표정은 이상했다.

“...히힛...흐으...흐...”

아니.

그냥 다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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