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 3주간의 휴가-1
시간이 참 빠르구나.
거울을 보자마자 나온 감상이었다.
[키도 제법 컸는데?]
레오의 키는 이미 청년의 것으로 성장해있었다. 적게 잡아도 180cm는 족히 넘었다. 마찬가지로 체격도 건장해져 성인 기사와 완력으로 승부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뭐, 2년이나 지났으니까 당연하죠.>
말은 그렇게 해도 레오도 자신의 괄목한 성장에는 놀라고 있었다. 전생에조차 이렇게 급격하게 성장한 적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역시 키잡의 힘은 대단하구먼. 나도 비법 좀 알려줘라.]
<키잡 소리는 하지도 마세요. 트라우마 있다고요.>
지금도 키잡 소리만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몸통에 얕게 난 흉터가 쓰라렸다.
[2년 전 일인데, 잊을 때도 됐잖아.]
<한 명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 몽둥이로 휘두르고, 다른 한 명은 바위를 망치 삼아 내리치는데 잘도 잊히겠네요.>
아마 그건 죽기 전 주마등에도 떠오를 기억이었다. 실제로 그 한 달 동안은 악몽으로 잠을 설쳤으니까.
“이제 가봐야겠네요.”
[그래, 어여 가봐라. 키잡은 자제하고.]
<현자님은 지랄 좀 자제하세요. 체할라.>
불지옥 같이 훈훈한 걱정을 주고 받으며, 레오는 방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레오가 향한 곳은 수련과 기합이 오고 가는 연무장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알폰스 선배.”
“괜찮다. 이른 아침에 매번 빼놓고 오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일테니까.”
수련과 기합이 오고 간다 할지라도 지금 연무장에 있는 건 알폰스 한 사람밖에 없었다. 레오까지 왔으니 이젠 두 사람이었다.
“선배가 부르면 바로 가는 게 후배의 도리죠.”
“선배라, 여러모로 스스로에게 무안해지는 호칭이로군.”
현재 레오나르도의 표면적 직책은 아리아스필의 전속 기사였지만, 가문의 일원들은 암묵적으로나마 레오의 가치를 높게 사고 있었다.
그 증거로 레오의 마나체련술은 라인하르트의 정식 수련법에 편입되어, 2년 사이에 가문 상급 기사들의 주류 수련법이 될 정도였으니까.
‘그 대가로 내가 만들었다는 건, 최대한 숨겨야했지만.’
그런 사실을 떠올리며 레오는 목창을 집었다.
“오늘은 창이군.”
“오늘따라 창술이 하고 싶거든요.”
“그럼 난 하던대로 하지.”
거구의 체격을 자랑한 알폰스 암스트롱은 비대한 대검을 손에 쥐었다. 목검이긴 했지만, 맞기라도 하면 뼈가 부러지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럼 시작하지.”
레오와 알폰스가 서로에게 돌진했다.
이어지는 충격음, 눈으로 쫒을 수 없는 연격이 서로 부딪쳤다. 속도뿐만이 아닌, 위력 면에서도 경악은 멈출 수 없었다.
맞부딪칠 때마다 검기의 풍압이 연무장 주변에 난무했다.
“...흡...!”
이어지는 대검의 수직 베기, 목창으로 방어한다면 분명 부러짐과 동시에 몸체에 검이 내리쳐질 것이다.
그렇기에
파앙!
레오는 창을 수직으로 내리찍은 채, 반동을 탄성 삼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대검을 회피하며, 동시에 반격의 기회를 내주는 기술이었다.
“...공중으로...?!”
경악에 응하듯 레오는 공중에서 창을 연속으로 찔러 알폰스의 대검을 튕겨내었다.
“윽...!”
그대로 착지한 레오는 알폰스에게 목창의 날을 겨누었다.
“제 승리입니다.”
“...그래, 이번에도 내 패배다.”
승복이 끝나자 레오는 창날을 치우며 목창을 내려놓았다.
“아직도 너에겐 못 당하겠군. 그런 움직임은 어떻게 한 건가?”
“그건 근육 덕분도 있지만, 아무래도 유연성을 단련한 까닭이 크죠. 단련된 근육의 응용력을 높여주거든요.”
“흠... 유연성이라, 확실히 내가 부족한 점일만 하군.”
남성의 몸이다 보면 자연히 여성보다 유연성이 떨어지게 된다. 아리아에게서 그 점을 깨달은 레오는 체조와 스트레칭으로 그 단점을 만회했고, 장점으로 승화해내었다.
“그래도 근육은 선배님이 저보다 위에요. 아까 수직 베기는 방어가 불가능할 정도였어요.”
“칭찬 고맙군. 말 나온 김에 오늘 같이 하체라도 조지는 게 어떤가?”
윤기가 흐르는 근육을 움직이며 알폰스는 교양있게 운동을 제안했다.
“그게... 오늘은 안 됩니다. 선배님. 오늘은...”
레오의 거절에 알폰스는 깨달았다는 듯, 제안을 도로 가져왔다.
“아, 오늘은 마법 훈련일이었지. 미안하군. 잊고 있었어.”
“아닙니다. 그럼.”
레오는 가볍게 목례하며 몸을 훈련하는 장소에서 마법을 훈련해가는 장소로 몸을 옮겼다.
***
“오~ 내가 너무 늦었나?”
라인하르트 가의 자랑스러운 장남, 리오스가 약속 시간에 8분 늦은 채 정원으로 달려왔다.
“늦긴 늦었습니다.”
“너무는 아니구나. 그러면 됐어~”
[저렇게 욕하기 애매한 시간에 정확히 오는 것도 능력이네.]
<그러게요. 텔레포트도 쓸 수도 있는 양반이.>
텔레포트를 쓸 수 있는 시점에서 시간만 잘 확인하면, 바로 장소로 도착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럴 것도 없이 이 마법 훈련장은 리오스 옆방에 있었다. 애당초 마법 훈련장은 리오스를 위해 만들어진 전용실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하, 그런 표정은 너무하다고! 아우!”
“하하, 그런 호칭은 너무하네요. 리오스 님.”
“너무하긴, 편하게 말하자고.”
리오스는 레오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2년 동안, 항상 레오를 아우라고 불렀다.
저 능글맞은 호칭이 마법을 가르치는 조건에 있었기에, 레오는 이 이상의 반항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숙제는 잘 해왔어?”
레오는 대답 대신에 양손을 펼치며 원형의 마나를 펼쳐내었다. 다른 속성의 두 마법이 둥글게 전개되며 차례로 화염과 냉기를 뿜어내었다.
“브라보! 백점 만점일세!”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그렇지~? 역시 내 덕분이라고, 나도 생각해!”
옆쪽에 계신 마법의 대부가 몹시 싱거운 시선으로 노려봤지만, 우선 시선은 피하도록 했다.
현자의 덕분에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는 것도 맞았지만, 솔직히 리오스의 덕도 많이 본 것은 사실이었다. 그 덕분에 현자의 부족한 현대 마법의 지식을 보충시킬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사실 이 정도로 잘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2년만에 2서클 달성, 그리고 더블 캐스팅까지. 이건 상급 마법사들 중에서도 드문 편이라고.”
싱거운 눈빛의 현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레오의 성장은 타인보다도 월등했다는 의미였다.
“이제 2서클에서 내가 가르칠 건 없어.”
“그럼 이제 3서클인가요?”
“아니.”
리오스는 드물게 단호한 어투로 외쳤다.
“...예?”
“이제 난 아우를 가르칠 수가 없거든.”
“...왜...왜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겨우 마법의 이치에 발을 담근 기분이었는데, 여기서 리오스가 가르치는 걸 중지하면 3서클을 익힐 명분이 사라진다.
“오해하지 마. 나도 아우를 무척 가르치고 싶은데...”
리오스는 서랍에서 흰 서류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마탑」중급 마법 허가서]
...라는 명제와 그와 관련된 사항들이 줄지어 항목대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마탑에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중급 마법인 3서클은 배울 수가 없어. 익히면 몇 년 전처럼 감방에서 소개팅해야 돼.”
그제야 레오는 리오스의 말이 이해되었다.
“중급 마법을 배우려면 마탑에 가서 허가를 받아야하는군요.”
“아무래도. 물론 정식 교사나 강사의 자격증을 얻는다면, 그런 절차는 생략할 수 있지만 난 야매인지라 그런 게 없어.”
“왜 없어요?”
“왜겠어?”
레오는 리오스를 눈으로 쓸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해하니까 좀 상처인데.”
리오스는 서류가 담긴 서류철을 내밀며 피식 웃어보였다.
“어쨌든 잘 다녀오라고. 꼰대들이야 많겠지만, 그만큼 재미진 것도 많거든.”
“리오스 님도 같이 가시는 게 아닌가요?”
“난 사양할게. 그리고 같이 가면 감점 요인만 되지 득이 되진 않을 거야.”
레오는 다시 리오스를 쓸어보았다.
“아, 그렇네요.”
“...그렇게 이해하는 거 상처라니까.”
리오스는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를 들어보였다.
“그래도 즐거웠어. 라인하르트는 무가 중심인지라 마법보다 무술이거든. 그래서 마법 얘기할 일이 많아서 즐거웠다고~ 아우~”
그건 전생에도 얘기한 적이 많았다.
전생에도 몇 번 정도는 마법을 가르쳐주겠다고 권유하기도 했었으니까.
[근데 왜 안 배웠냐?]
<왜 안 했겠어요?>
[아, 그러네.]
현자는 리오스를 1초 정도 보며 납득했다.
상처받는 이해 속도였다.
“근데 왜 리오스 님은 무술을 안 배우시고, 마법에 종사하시게 된 건가요?”
리오스는 아리아에 비하면 부족하긴 하지만, 무술에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검을 휘두르는 묘리 정도는 알 정도였으니 재능 자체는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음... 그건 마법이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머리를 살짝 긁적이던 리오스는 서재의 책 한 권을 뽑았다.
“음... 혹시 현자라는 사람 알아?”
“네?”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옆에서 지금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이 그 장본인이 아니더냐.
“하긴 들어본 적도 있을 거야. 현자에 관한 이야기는 민담이나 낭설, 동화는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테니까.”
전생의 삶에서도 그 이명을 ‘들어보기’는 했다. 그에 대한 전설과 민담은 용사와 비견될 정도로 넘쳐났다.
“근데 솔직히 아무도 현자가 실존한다고 믿지는 않지.”
그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자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너무 말도 안 되거든. 수명이고 하는 일이고 간에 말이야.”
인간의 위업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무맹랑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마법의
시초, 서클 마법의 창안만으로 말이 안 되거든. 뭐 혼자서 드래곤을 마법만으로 때려잡았다던가... 정령만으로 아예 군대를 꾸려서
언데드 천지가 된 섬을 정화했다던가, 뭐 그런 것도 있지만, 하여튼 허무맹랑하지.”
그 말에 레오는 다시 그 무용담을 넘어선 신화 속 인물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적도 있었지 참. 늙다보니 기억력이 퇴화한단 말이지.]
코와 귀를 동시에 파며 그 지혜의 영웅은 덜떨어지게 인정했다.
과거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화산이나 운석이라도 터져서 대격변이라도 일어난 건가.
“근데 난 현자가 실존한다고 믿어.”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심각한 문화 충격이긴 했지만, 실시간으로 그 믿음을 강제로 전도받고 있으니까.
“...어째서죠?”
“그건 이 책 때문이지.”
그렇게 말하며 리오스는 책장에서 뽑은 책을 내밀었다.
“이건...”
[현자와 용사]
해져있는 표지와 속지의 책, 두깨로 봐선 소설이나 사전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가문에 고서고에 있던 동화책이야. 내가 처음 발견했어.”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전생에조차 접하지 못한 정보였다.
“별 내용은 없어. 다른 신화랑 비슷한 느낌인데, 초대 용사였던 루벤 라인하르트님의 스승이 현자였다는 이야기지.”
그건 지나가듯 들은 적이 있다. 현자 장본인한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안 믿는 눈치였어. 용사님은 마법보단 무술 중심이었고, 현자에 대한 기록도 얼마 없었거든.”
“...리오스 님은 믿으시군요.”
“...뭐 사실은 반신반의지. 하지만 가진 근거는 제법 그럴듯해.”
리오스는 책을 테이블에 놓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이 책이 가문의 서고에 있었다는 점이 그래. 만약 상상으로 대충 엮은 책이었다면, 당시 가문 측에서 불경하다며 바로 소각했을테니까.”
맞는 반론이었다. 유서 깊은 가문일수록 정통성을 중시하기 마련이니까. 있지도 않은 스승의 존재를 논하는 것 또한 불경한 행동에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이거.”
리오스는 동화책을 펴 맨 마지막 장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이건...”
현자의 초상화였다. 동화풍도 아닌, 극화체에 현자와 완벽히 일치하는 그림이 책장 끝에 그려져 있었다.
“이 초상화야.”
“근데 이런 건 있을 법도 하잖아요.”
진짜로 있지만, 우선 모른 척한다.
“있을 법하지. 근데 이거랑 똑같이 일치하는 초상화는 마탑밖에 없어. 그것도 정상층에나 안치되어있지.”
그렇게 되면 신빙성은 더 올라간다.
음유시인과 화백이 장난삼아 꾸며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난 현자가 있을 것 같다. 이 말이야.”
“그럼 현자라는 존재를 밝혀내기 위해 마법을 연구하시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뭐 이유를 따지자면 재미가 8할, 현자가 2할이지만, 밝혀내면 그것대로 가문의 영광 아니겠어?”
지금 레오는 가문의 영광이 될 수도 있는 인간을 옆에 두고 있다.
[...뭐? 왜?]
때론 진실이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걸, 레오는 뼈 속 골수 내부가 저리도록 느낄 수 있었다.
“뭐 그냥 그렇다고. 기회 되면 마탑 구경 갈 때 봐봐. 잘하면 보여줄 수도 있어.”
“아...네...”
레오는 하얀 거짓말로 떡칠을 한 표정을 지으며 간신히 리오스에게서 떨어졌다.
어느 정도 떨어지자 레오는 입을 열었다.
“현자님.”
[엉? 왜?]
<300년 전에 도대체 뭘 한 겁니까?>
[...뭐? 드래곤 잡은 거?]
<아니 전부 다요. 그거 다 진짜에요?>
[이제와서 말하는 거지만, 너무 늦게 물어본 거 아니냐?]
레오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현자가 은근히 그런 이야기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감안해야했다.
[전부 다 맞아. 지금은 좀 이래도, 예전에는 좀 열정이 있었거든.]
<그게 아니라요. 왜 이런 식으로 사라졌냐고요.>
결국 사람들은 현자를 제대로 기억하지도 않고, 단지 신화 속의 인물로 치부해버렸다.
이래선 현자가 아니라, 은자라는 이명이 맞은가.
늦고, 화나고를 떠나서 이젠 물어볼 수밖에 없는 안건이었다.
[별거 없어. 현타가 온 거지.]
<...네?>
[신물이 난 거야. 세상살이에. 존나게.]
천박한 말투,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천박함은 씁쓸한 뒷맛을 지우기 위한 자극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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