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성장-6
마나체련술
회귀한 직후, 현자의 가르침과 레오 자신의 경험을 접목해 만든 기술로
단순하고도 빠르게 얻은 것과는 별개로 그 단련술의 가치는 역대 기사단과 가문들의 무공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크리스님이 괜히 호들갑을 떤 게 아니지.’
마나 단련과 육체 단련의 결합은 가히 혁명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 납치하는 건...”
이런 식으로 납치를 벌이는 건, 솔직히 말해 완벽히 이해되지 않았다.
마나체련술을 익힌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가문의 기사를 습격하는 것도 썩 안전한 선택은 아니었다.
“...가주의 영애를 납치하는 것보다야 현명한 판단이었지.”
그것도 맞는 말이긴 했다. 가문의 영애보다야 기사를 납치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인 선택지였다.
“영애를 지키다가 죽는 기사는 흔하지. 아마 핏빛 그림자는 그런 전개로 널 납치하려고 했을 거다.”
뻔한 레퍼토리였다.
아리아스필을 납치하려다가 실패한 암살자들은 입막음이라도 하기 위해 기사를 잡아 죽였다.
조금 이상할지라도 이의를 제기할 정도의 사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너에게서 무공을 빼내려고 했겠지. 회유든, 고문이든 전부 동원해서 말이야.”
회유나 고문 쯤이야 수없이 당했기에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상급 마법을 사용해 기억을 빼내거나, 약물과 최면을 다 동원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약물하고 최면은 좀...]
<뭔 상상을 하든, 그건 아닐 겁니다.>
경험도 없는 분이 왜 저러실까.
“그러니 보험으로 무기를 주신 거군요.”
이런 암습 정도야 몇 번이고 더 반복될 것이다. 대처는 할 수 있겠지만, 현재 레오의 실력으론 불안한 감이 있을 테지.
레오 본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착각하지 마라. 널 걱정해서가 아니니까. 불순한 자들이 그런 능력을 지니게 되면 곤란해서 주었을 뿐이야.”
[아까부터 가만히 있는데 지멋대로 착각했대.]
<그러게요.>
이젠 마르켄을 감싸는 것도 힘드니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장단 한번 맞추자 10년 묵은 체증이 찬물에 씻기듯 내려갔다.
“하지만 무기를 준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건 변하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이 포기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테지.”
그건 정확한 예측이었다. 오히려 레오의 무구를 탐내고 습격이 늘어날 가능성도 고려해야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래서 난 생각했다. 그러던 도중, 크리스티나가 제안했던 안건이 떠올랐지.”
크리스(티나)가 제안했던 안건, 그건 레오가 처음으로 마나체련술을 시연했을 때의 몇 번이고 강조했던 제안이었다.
“설마 마나체련술을...”
“...그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만, 네 마나수련법을 라인하르트 가의 수련법에 편입시킬 거다.”
불쾌함을 드러남과는 별개로 이건 큰소리로 비명을 지른다 할지라도 이해할 제안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거냐?]
대단한 정도가 아니었다. 몇백 년은 족히 넘긴 한 기사단의 유파, 그것도 용사 가문에 열 살배기 소년의 기술을 정식으로 넣어준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못해 아예 유례가 없었다.
[마탑으로 치자면 어린이가 만든 마법을 성인들이 배우는 정식 교과목에 편입시켜주는 수준이군.]
어투에 비해 정확한 비유였다.
“...그러셔도 괜찮습니까? 라인하르트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라인하르트가 고작 햇병아리 한 명에게 누가 끼쳐질 것 같나?”
딱딱한 말투인 것치곤 결과적으로 레오를 위해주는 행동이었다. 현재 레오가 얻은 건 있을지라도, 잃은 것만큼은 전무했다.
“...그리고 인정하기는 싫다만, 크리스티나가 한 말대로 마나체련술을 정식으로 가르칠 가치가 충분해. 다듬기만 하면 역대 수련법들조차 뛰어넘겠지.”
[그럼 인정하겠다고 해. 왜 자기 인격하고 갈등하고 지랄이야.]
“크흡...”
너무 상쾌한 한 마디에 레오는 입술이 파랗게 변할 때까지 깨물며 웃음을 참아내었다.
[근데 그렇게 넣어주면 뭐가 달라지나? 결국은 암살은 가능하잖아.]
그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걸로 뭐가 달라지냐고 묻고 싶은 표정인가보군.”
간신히 웃음을 인내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오해해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이제 그 훈련법을 훔치게 되면, 네 개인의 비급을 훔친 것이 아닌, 라인하르트의 무술을 훔친 것이 된다.”
일개 기사를 납치한 것에는 대응하는데 있어 한계가 생긴다. 용사 가문이라 할지라도 다른 대가문들과 국가 쪽에서 견제 또는 압력을 넣게 되면 힘을 쓰기는 어려워질 테니까.
<하지만 무공을 같이 훔치게 되면 판도는 달라져요.>
한 무공의 유파를 훔치는 것, 그건 기술 하나라 할지라도 조직 전체를 공격할 명분이 생긴다.
그 행동은 라인하르트에 대한 모욕과 선전포고라고 간주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위협을 이용한 수단으론 널 협박할 수는 없게 되겠지. 아무리 멍청해도 라인하르트 전체를 적으로 지는 얼간이는 없을 테니까.”
그건 다르게 말하면 레오 자신을 단지 라인하르트의 기사가 아닌, 가문의 한 일원으로 받아준다는 뜻이었다.
이정도의 취급은 결혼이나 입양을 하지 않는 이상, 받을 수 없는 대우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놈한테 감사 받으려고 한 판단은 아니다. 감사를 표하고 싶다면 내가 준 보험을 잘 사용해라.”
그 말의 숨은 뜻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막아낼지 몰라도, 음지에 있는 습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 있을 리는 없지.’
마인이나 흑마법사와 같이 상식에서 벗어난 놈들이라면, 그런 안전책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선 어떤 선을 넘어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보험 이상으로 사용해보죠.”
그러니 그런 적들은 레오 스스로가 해결해라.
지금 준 무구는 그런 의미였을 거다.
“아, 참고로.”
마르켄이 다시 동굴의 출입구에 도착했을 무렵, 그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눈에는 수라가 깃들어있었다.
“인정받았다는 핑계로 아리아에게 손을 대면, 무기와 함께 목숨을 가져가도록 하지.”
“...예?”
“얼빠진 대답은 듣지 않는다. 그러니...”
“아... 그게 분명 무기고 들어올 땐, 인정 안 했다고 하셨잖습니까.”
하도 진지하게 박은 독설인지라 잊어버리기가 어려웠다.
“...그...그건 멋대로 생각해라.”
[여자가 저랬으면 모르겠는데, 쭈그렁 할아뭉탱이가 저러니까 역하네.]
“푸흡...!”
이건 도저히 못 참았다.
웃음을 듣자 쭈그렁 할아뭉탱이 수라가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편안히 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와~ 그래도 할아버지가 인정할 줄은 몰랐네요.”
결투를 보며 먹다남은 팝콘을 입에 털어넣으며 리오스는 말했다.
“전 분명 어떻게 안 주려고 억지를 부릴 줄 알았거든요.”
“집행기사단장님은 딱딱하게 말할지언정, 한번 말한 약속은 꼭 이행하지. 다들 오해하는 것 중 하나야.”
“그렇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크리스티...!”
퍽
갑자기 흑암이 그림자와 함께 사라졌다. 그녀의 그림자는 이미 자신의 조카를 목째로 붙잡아 올리고 있었다.
“호칭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가? 내 이름이 뭐였지?”
“아빠...! 아부지!! 살려주...세요...!”
“거기까지만 하게. 크리스. 아리아가 배우면 어떡하나.”
크리스라고 다시 말한 것 덕분일까, 크리스는 리오스를 내려놓았다.
“감사함다...! 아버지...! 꼭 효도할게요...!”
“그럼 효도를 위해 한 달 동안 순정 소설은 금하도록 하지. 그에 관련 발언도 금지고.”
“불 속성으로 효도해도 될까요?”
“안 돼.”
단호한 발언에 리오스의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누웠다.
“근데 레오나르도 군은 뭘 고를까요?”
시리카는 화제라도 돌릴 겸, 무인들이 좋아할 만 주제를 꺼내들었다.
“흠... 내 생각엔 용암검 화청이라고 생각하네만. 아무래도 화력이 좋은 것이 레오나르도의 성격과 맞아.”
“제 생각엔 거울의 방패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공격을 반사하는 거로 전략적인 전투도 가능할 테니까요.”
“아니, 이번 전투를 생각하면 낙뢰창 풀고르도 나쁘지 않아. 전격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방식은 마법보단 풀고르가 안정적인 편이지.”
서로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하지만 그중 출중한 재능을 지닌 어린 무인은 유일하게 입을 닫고 있었다.
“아리아, 넌 어떻게 생각해?”
“...어째서...”
아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리오스의 말이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리아? 듣고 있니?”
“...네? 네, 죄송해요. 집중하고 있는 게 있어서.”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지? 어려운 문제라도 조금 도와주도록 하지.”
크리스의 말에 아리아는 깊게 품고 있는 고민을 꺼내었다.
“...그게 어떻게 제 검보다 레오의 검이 먼저 닿은 건지 잘 모르겠어서요.”
단순히 레오가 강하다는 걸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정확히 ‘어떻게’ 레오나르도가 자신을 이겼는지 분석해 대처하기 위한, 연구와 고민이라고 봐야 마땅했다.
“...분명 속도도, 힘도 비슷했을 텐데... 어째서...”
그런 고민이 기특했는지 크리스는 흑암의 연륜을 자랑하며 전투에 대한 분석을 설명해주었다.
“그건 신장의 문제 때문이지.”
“신장... 키요?”
“그래. 레오나르도는 체격이 아리아, 너보다 크니까.”
전투에 있어서, 그것도 1대1의 접전에서 중요한 건 신장 또한 포함되었다. 근거리전에서 있어서 체격이 크다는 점은 리치, 즉 사정거리가 길다는 뜻도 되었다.
“너와 레오나르도는 대략 6~7cm 정도 차이가 나니, 리치를 통해 승부가 갈려도 이상하지 않아.”
그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신장 차이는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잘 먹고, 잘 자면 잘 클 거다. 아리아. 그 나이대는 눈 깜박이는 사이에 크는 법이니까.”
“근데 그만큼 레오도 크지...”
아버지인 가주가 노려보자, 푼수인 리오스마저 입을 다물었다. 저러다간 음유시인에게 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마저 금지될 판이었다.
“...그래도... 뭔가 극복할 방법이...”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 아리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그건 레오나르도와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결투를 하기 전까지 같이 훈련하며 들은 정보였다.
“레오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아요!”
“레오라르도가?”
“확실히 레오나르도라면 방랑하는 동안, 여러 정보를 얻었을 테니... 성장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나 훈련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 과대평가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게 성장 비법을 잘 알았다면 레오나르도는 커진 체격으로 승부했을 것이다.
“저기! 레오나르도 아니에요?”
그렇게 말이 오가던 사이, 산에서 내려오는 두 기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근데... 왜 이렇게 너덜너덜하지?”
중상은 아니었지만, 얼굴과 몸에는 생채기 투성이였고 옷도 제법 헐어서 넝마가 되어있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별거 아니다. 저 애송이가 받은 무기를 잘 소화했는지 확인했을 뿐이지.”
레오도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얇은 형태의 곁가지로 붙어있는 이유일테지만,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덜 억울했다.
“그래서 무슨 무기를 받았습니까?”
레오는 자신있게 팔을 들었다. 팔에는 검은 팔찌가 차져있었다.
“...그건 처음 보는구나. 원정 때 새로 얻은 무구입니까? 아버지?”
“잘 봐라. 나도 저게 저렇게 변할 줄은 몰랐으니까.”
마르켄이 턱짓을 하자, 레오는 팔찌의 형상을 변환시켰다. 검은 팔찌는 구슬처럼 변하는가 싶더니 한손검, 장창, 방패로 차례로 변해갔다.
“...오오, 가변형 무기로군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성검과 같이 주인을 택하는 무구인 것 같다. 그러니 크리스티나.”
마르켄은 입을 떡 벌린 채, 검은 돌을 지그시 노려보고 있는 크리스티나에게 주의했다.
“탐내지는 말아라.”
“...제가 무슨 애입니까?”
“때론 애보다 더 심하지.”
크리스티나는 그 말에 수치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고, 리오스는 웃기도 전에 다시 크리스에게 다시 목을 졸렸다.
“저기...! 레오...!!”
그런 난장판 속, 아리아는 간신히 떠올린 기억에 의지한 채 레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러 다가갔다.
“네, 아리아 아가씨.”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에 아리아는 밝게 웃으며 고대했던 부탁을 했다.
“날... 키잡해줄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예?”
레오의 목뒷덜미도 싸늘해졌다.
이유는 뒤에 있는 두 가장 때문일 것이다.
확신할 수 있다.
“저번에 말했던 그거, 처음 훈련할 때 말했던 거 있잖아. 불량배들의 은어라면서...!”
레오의 목숨도 싸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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