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전속 기사-5
“근데 다른 사람은 안 오셨나요?”
어째서인지 리오스 이외에는 레오를 마중하러 온 사람이 없었다. 딱히 사고를 안 쳤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이 정도로 삭막한 대우를 받을 줄은 몰랐다.
“왜? 아리아가 안 와서 섭섭해?”
능글거리는 실눈 사이에 벽안으로 레오의 얼굴이 비쳐졌다.
“...섭섭할 것도 없습니다. 제 불찰로 피해를 보신 거니까요.”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섭섭한 것은 맞았다. 회귀한 뒤론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이런 냉담한 반응을 내보일 줄은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 애가 어찌나 울고 불고 난리던지~”
“...예? 아가씨께서요?”
전생에도 눈물은커녕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녀였다. 실제로도 공격하려고 해도 한 대도 안 맞아서 안 나오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이 울며 불며 난리를 피운다니, 상상도 가지 않았다.
“내가 걔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어~ 옹알이할때도 내 얼굴 보고 정색하던 앤데.”
[그건 너여서 그런 거고.]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현인의 말씀은 뒤로 한 채, 리오스에게 말했다.
“많이 힘들어하셨나요...?”
“...뭐 제법. 감방으로 간 사랑하는 기사를 두고 마음이 편할 리가 없지. 지금 방에 계속 박혀있어.”
묘사가 거지 같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아리아 입장에선 자신이 거의 처음으로 생긴 친구이니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저기... 리오스님, 바쁘시지 않다면 잠시 어딜 들렀다 가도 되겠습니까?”
레오도 친구로서 도리를 다해야만 했다.
***
전부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패배했다.
처음으로 배웠고,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으며.
그리고,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그 소년은 자신에게 많은 처음을 선물해줬다.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은 채,
그게 본인의 행복이라는 듯, 당연하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그에게 뭘 해주었을까.
“...아가씨.”
알프레드는 아리아의 방문을 두드린다.
“...”
노크 소리는 분명 들렸을 것이다. 다만 그 소리가 그녀의 닫힌 무언가를 열기에 부족했을 뿐.
“...오늘도 안 나올 생각이십니까?”
“...”
부정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나르도 군이 무죄 처분 받고 출소했다고 합니다. 마중 안 가셔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을까? 알프레드...”
장고의 정적 끝에 나온 말이었다.
처음 대답이 나온 만큼 알프레드는 최대한 대화를 이끌어갔다.
“괜찮을 겁니다. 아가씨. 레오나르도 군이라면 분명 좋아하실...”
“...알아. 레오는 착하니까... 근데...”
아리아의 목소리는 그날따라 낮게 들렸다. 음색 자체는 그대로였으나 말투의 깊이는 유례없이 바닥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
흐느끼는 소리가 조금 울렸다. 알프레드는 방문의 손잡이를 만졌다 놓는 것을 연거푸 반복했다.
“...레오는 가문에 온 뒤로... 아니, 나랑 만나고 나서 항상 사고를 겪었어.”
자신하고 만나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록과 만나 격전을 벌이고 다쳐야만 했다.
“그건 사고였지 않습니까...! 아가씨...!”
“알아... 하지만... 그 뒤에는...?”
사건 사고는 끝없이 일어났다.
농담 한번 쳤다고 사람이 실신해 잡혀가고,
거슬린다는 이유로 종자들한테 괴롭힘 받고,
그리고 지금은 암살자에게 습격당하기까지 했다.
“...그때 레오 봤어?”
급하게 체포되고 잡혀갔기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레오의 몸은 피로 뒤덮여있었다.
아무리 강한 레오더라도 그런 암살자들 상대로 상처 하나 안 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만약에...내가 가문 사람들 더 먼저 불렀다면 어땠을까...? 아니, 애초에 가문에 안 왔다면...”
의미 없는 후회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리아는 인간관계에는 천재이지 못했다. 거기에 13살의 어린 나이는 소녀의 미숙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
알프레드는 대답이 없었다. 아무리 관록 있고 연륜을 겸비한 집사더라도 제3자인 이상, 해결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역시...내가 잘못...’
그러니
“아리아 아가씨.”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것이 제일 적절했다. 레오가 나타나자 알프레드는 신사로서 자리를 비킨지 오래였다.
“...레오나르도...?”
아리아는 급히 문쪽으로 달려가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도 마찬가지로 문손잡이를 만지작거리기만 했을 뿐, 문을 열지 못했다.
“...무슨 일이야.”
딱딱하게 말이 나온다. 사과를 하고 싶은데, 입은 마치 다른 인격을 지닌 것처럼 차게 말이 꺼내진다.
“아가씨가 걱정돼서요. 제대로 안전한 지도 확인 못 했으니까요.”
저 상냥함이 아프다. 만약 저 온기를 받아들여 사과한다면,
“...그래? 넌 어떤데?”
저 소년에게 더 미련이 생길 것 같기에, 더욱 덤덤히 말이 나온다.
“전 괜찮아요. 딱히 다친 곳도 없어서요.”
“...그렇구나.”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 피범벅이 됐는데 안 다쳤다고 말하는 건, 단순히 걱정하지 말라는 허세일 테니까.
“...레오.”
“네, 아가씨.”
“...전속 기사는 그만두는게 어떻겠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제안을 꺼낸 아리아마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기엔 자신의 전속 기사가 할 답변이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두려웠다.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저 정중함은 모질다. 결국 이유를 말하면 더욱 보내기 싫어질 테니까.
“...서로한테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그 배려를 모질게 내쫓는다. 바보 같지만 레오에게 본인이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배려였다.
“...그런가요?”
현 켠 내려간 목소리, 아무리 레오라도 이런 대우는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금 너무하네요.”
그러니 저런 반응은 당연했다.
그니까...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막는다.
고이는 눈가의 물이 흐르지 않도록, 고여가는 목의 슬픔이 새지 않도록.
...참아낸다.
“전 같이 있는 게 좋은데요. 서로라는 표현은 조금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좋다...고...?”
슬픔을 누르지 못하고 말이 새어나왔다.
“네, 좋았어요. 지금도 좋고요.”
“...왜...?”
자신이라면 몰라도 레오는 자신에게 얻을 것이 없다. 가문이라면 몰라도 온전히 자신에게서는 아무것도.
“이유는 많은데, 큰 것부터 하나씩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절의 의미가 아닌, 단지 당황스러웠고, 그 이상으로 기뻤으니까.
“...사실 아리아 아가씨께서 절 친구라고 해주셨을 때, 내색은 안 했지만 뛸 듯이 기뻤어요.”
거짓 하나 없는 진솔한 이야기,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진심이었다.
“용병, 그것도 방랑 용병은 동료를 만들기 힘들어요. 친구라면 더 어렵고요.”
고향에 있었을 때라도 다를 건 없었다. 도론은 낙후된 마을로 노인들이나 중장년층 이외에는 사는 사람이 드물었으니까.
또래의 동료나 친구를 찾기는 게이트의 마물을 찾는 것보다도 어려웠다.
“그래서 기뻤어요. 저한테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으니까요.”
그 토로에 아리아가 느꼈던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리아 본인도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으...읏...”
지금 그녀에게 닫힌 감정은 확실히 열렸다는 것이다.
레오는 문에 기댄 채로 좋은 이유를 계속해서 꺼내기 시작했다.
부모도 없어진 자신이 처음으로 있을 곳이 생긴 것,
자신이 목표할 만큼 강한 상대가 생겼다는 것,
함께 수련을 즐길 동료가 생긴 것도,
같이 시내에 나가 실없는 말이나 주고받으며 선물을 사는 것마저,
레오에겐 충분한 행복이었다.
그 감사를 들을 때마다 아리아의 표정은 붉어지고 있었다. 하나 확실한 점은 그녀가 방금처럼 분한 슬픔을 누르는 건 절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레오나르도.”
하지만
“나랑 있으면 넌 계속 다칠 거야.”
아직 아리아에게 잔류한 죄악감은 그녀를 옥죄고 있었다.
이번으로 끝이 아닐 거야. 가문에 있으면 이런 일이...”
“아리아스필.”
단호한 어조, 죄악감 정도는 간단히 잘라낼 예리한 단호함이었다.
“그 말은 그냥 넘길 수 없겠는데.”
처음 봤을 때의 건방진 말투도, 지금까지의 정중한 말투와도 거리가 멀었다.
“...뭐, 갑자기 왜...?”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껏 해.”
“...그런 적 없어! 난... 그저...!”
“내 몸 본 적 있지?”
갑작스러운 질문, 부끄러운 나머지 말문이 막힌다.
그 몸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동갑임에도 야성적인 피부, 그리고 탄탄한 근육, 그리고 특히 복근의 형태는 한번이라도 만져보면... 정말...
“내 몸의 흉터도 봤을 거야.”
아리아는 급히 자신의 볼을 잡아 꼬집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삿된 기억과 상상을 떠올린 최소한의 벌이었다.
“...봤어.”
진정하며 다시 낮은 목소리로 그녀는 답했다.
“칼에 찔린 흉터도 있고, 몽둥이 맞아서 생긴 자국도 있어. 마수의 잇자국을 찾는 건 일도 아닐 거야.”
전부 기억난다. 고작 13살의 나이에 생긴 상처라고 하기엔 잔인하다 못해 가혹한 삶이었을 거다.
“죽는 건 무섭지. 하지만 그건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
추측을 넘어선 확신,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이미 레오는 죽음을 겪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니까 네 멋대로 내 삶의 안전을 결정하지 마. 나도 충분히 아니까 너의 기사를 택한 거야.”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왜 이 질문을 한 건지도,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지도 전부 모르겠다.
“이미 말했잖아.”
그러나 레오는 망설이지 않았다.
전부 아는 것처럼
“넌 내 목표니까.”
시야가 흐려진다. 천장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물 한방울씩 볼을 타고 내려온다.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난 울고 있었구나.
“혹시... 이제 문 열어도 될까요?”
“...안...으...안 돼.”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레오였기에 더욱 보이면 안 되었다.
“조금 섭섭한데요.”
레오는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서운한 이유을 설명했다.
“그럼 문밖을 봐주실래요? 열쇠구멍이라도 괜찮으니까요.”
레오의 부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정도면 괜찮을 거라는 안심 때문이었을까, 눈물로 불어오른 그녀의 시선은 열쇠구멍으로 향해있었다.
“아직 약속한 일이 남았잖아요?”
레오는 밝게 미소를 내보이며 백장미와 염료가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 상처 하나 없는 얼굴은 어째서인지 상쾌하게만 느껴졌다.
“...싫다면 나중에라도 찾아올테니...”
벌컥
레오가 돌아서 가려던 순간, 문이 열렸다.
“...가지 마.”
소년은 안은 것은 자신의 기사를 곁에 두고 싶은 소녀였다.
“...절대 가지 마...”
눈물이 흐른다. 부끄럽고 보이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내 곁에도 있어줘... 평생 내 전속 기사로 있어줘...“
그럼에도 목소리는 쉬지 않는다. 저 소년을, 기사를 놓치고 싶지 않기에.
나도... 너랑 있어서... 좋아...! 그러니까...!”
소녀는 용기를 낸다.
“...네, 영광입니다.”
그녀의 기사는 허리에 감싸쥔 소녀의 손을 잡은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최선을 다해 모실게. 아리아.”
이는 불변하지 않을 마음의 뜻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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