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20화 (20/248)

EP.20 전속 기사-2

한 달

하루의 30번이 모이고, 1년을 12번 쪼갠 시간이 흘렀다.

그 길고도 짧은 시간을 흐르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레오 자신의 변화였다.

[이젠 썩 봐줄만 해졌는데?]

이 한달 동안, 레오는 마법에 대한 기초를 제대로 다져놓았다. 쌍욕을 입달던 현자마저 호평할 정도였으니 그 업적은 괄목하다 말할 만했다.

1서클의 마법 또한 분야별로 익혀놨으니 실전에서 사용해도 무리는 없었다.

두 번째는 가문에서 받는 대우의 변화였다.

처음 왔을 때는 마치 운 좋게 얻어걸린 시골 얼뜨기 정도의 시선과 경멸을 받았지만, 현재는 적어도 본인 앞에서는 그런 일은 없어졌다.

그 이유는 앞서 있었던 일들에서 상상해본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고마워! 레오!”

아리아스필의 성격 및 태도의 변화였다.

전생의 아리아스필은 항상 아랫것으로 자신을 내려보았으나… 지금은 뭐랄까, 같은 인격체로 바라봐주는 것 같았다.

소위 말하는 친구의 정도로 말이다.

[예전에는 어땠길래?]

<사람이 개미 보는 시선 정도요?>

현자님은 아리아와 레오를 번갈아보며 되물었다.

[질투심 때문에 눈이 어지간히 삐었구만.]

<부정은 안 하겠지만, 과장한 것도 아니에요.>

질투심 때문에 왜곡하거나 예단한 것도 있을 테지만, 당시 아리아스필은 정말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단순한 ‘동일한 종족’으로 놓을 뿐, 그 이상의 가치도, 그 이하의 차별도 두지 않았다.

마치 용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처럼.

[그건 좀 무서운데.]

<그러니까요. 지금은 아직 어려서 그런 거겠죠.>

아직 세월의 풍파를 맞지 않았기에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일 거다.

“...레오?”

“네?”

어느샌가 그녀의 얼굴은 레오의 정면에 다다라있었다.

“괜찮아? 아까부터 불렀는데...”

“예? 예예. 생각을 좀 하느라요.”

“훈련 끝났으니까 이제 내려가자. 선물 사러 가야지.”

레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버린 아리아스필을 따라갔다.

[선물? 뭔 선물?]

<시리카 부인님께 살 선물이요.>

시라카 라인하르트, 그녀는 가주인 글라디오의 아내로 다르게 말하면...

[아, 아리아 엄마?]

<...맞긴 한데, 현자가 원래 그렇게 격조 없게 말해요?>

마법사가 아닌지라 현자에 대한 환상은 없었지만, 인간으로서의 상식은 이미 깨지고 찌부러진지 오래였다.

[내가 여기 초대 용사랑 밥도 먹고! 목욕도 같이하고! 뭐 할 거 다 했어!]

그리 알고 싶지 않은 인맥이었다.

근데 그렇게 친밀한 관계였으면 왜 용사 가문에서 초상화 하나 걸리지 않은 것일까.

[...뭐냐? 못 믿겠어? 내가 지금 조금 힘들어져서 그렇지...! 예전엔 막...! 엄청났어!]

현자는 동태눈으로 코를 파며 레오를 노려보았다. 어째서인지 저 추태가 용사 가문의 대우와 행동을 이해시켜주고 있었다.

<...쯧.>

[혀 차지 마.]

<죄송해요. 이에 뭐가 낀지라...>

[넌 오러로 이빨 닦냐?]

아, 이걸 안 낚이네.

“레오! 얼른 와!”

저택 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갑옷을 벗은 소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네! 갑니다!”

그런 아가씨를 따라 레오도 저택 밖을 나섰다.

***

[300년 뒤의 시장도 제법 괜찮은데?]

현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휘파람을 내며 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300년 전 시장의 형태도 조금 궁금해졌으나, 주변 상가의 풍요와 활기 앞에선 그런 말을 쉽사리 꺼낼 수 없었다.

골목의 가장자리에 있는 상인들은 각자 준비해두었던 상품을 자랑하기 바빴고, 도보에 있는 사람들은 그 상품의 가치를 보고 가격을 흥정하는 것에 사력을 다했다.

[근데 귀족 영애가 이런 누추한 곳에 올 필요가 있어?]

<세상 물정 정도는 알 필요도 있고, 기분 전환도 되니까요.>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리아는 시장의 생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레오!! 이거 좀 봐봐!”

그 생기를 같이 즐기고 싶다는 듯 그녀는 손을 흔들며 자신의 기사를 부르기까지 했다.

“...이건...”

아리아스필이 본 것은 푸른 꽃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꽃이 아닌, 푸른색 장미였다.

“파란색 장미야! 이런 장미는 처음 봤어!”

“오호호! 아가씨께선 정말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남자인데도 묘하게 간드러진 말투를 구사하는 꽃장수는 자신있게 푸른 장미를 내밀었다.

“이 장미로 말할

것 같으면 저 높은 고원, 엘림 산맥에서 모험가가 채취해온 장미로, 얼음 근처에서 자라는 꽃이기에 프로스트 플라워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답니다! 원래는 2골드는 받아야 마땅합니다만… 선남선녀를 위해 실버 9장으로 깎아드리겠습니다!”

휘황찬란하고 현란한 언변이었지만, 아리아를 사로잡은 것은 오직 하나의 단어뿐이었다

‘선남선녀...’

제법 어울리는 울림 아닌가.

그 말 한마디로도 충분히 용사 가문의 영애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럼 하나...”

“아저씨.”

레오가 그 꽃장수의 손목을 잡아들었다.

“어디서 사기치냐?”

“...사기?”

하지만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용병 놈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다.

“...무슨 말이시죠? 이건...”

“첫째, 엘림 산맥은 아직 꽃이 필 계절이 아니다. 그러기엔 아직 덥거든.”

하지만 이 꽃은 아직 싱싱했다. 만약 조화라면 당연히 앞에서 한 말은 사기가 될테지.

“그건... 저희 꽃집의 특별 보관방식으로

“둘째, 말뜻은 똑바로 쓰자. 프로스트 플라워는 푸른 꽃을 마법으로 얼린 장식에나 쓰는 말이야. 이건 누가 봐도 생화인데?”

“그건 네가 어리니까...!”

반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레오는 장미를 잡아들었다.

“셋째, 이건 애초에 푸른 장미가 아니다.”

레오는 푸른 장미의 줄기를 꺾었다. 그러자 속 안에 옅은 청색의 진액이 흘러나왔다.

“겉에 염료를 안 바른다고 눈치 못 챌 줄 알았냐? 사기도 사람 봐가면서 쳐야지.”

“이...! 꼬맹이가...!!”

꽃장수가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팍!

아리아가 빠르게 그 주먹을 손목째로 내리쳤다.

“끄아악!!”

“...거짓말을 해? 감히...!”

살기등등한 눈, 칼만 안 들었을 뿐, 언제라도 저 건장한 남성을 죽일 수 있는 기세였다.

[...오우...]

<이게 제가 봐온 아리아입니다.>

물론 이 정도로까지 살기를 띄우지는 않았지만, 태반은 냉소로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으...아...!”

“일단 진정하시죠. 기왕이면 평화적으로 해결해보죠.”

레오는 흰색 장미를 몇 개 잡아들었다.

“아니면 손모가지하고 같이 장사판 날아가고 싶으세요?”

용병의 경험은 협상에서도 유용했다.

***

“굉장해! 레오! 어떻게 안 거야?!”

“그냥 말하는 것부터가 수상했습니다. 말이 많으면 의심부터 해보는 게 맞거든요.”

떳떳한 장사꾼은 설명을 최대한 간결히 하는 편이다. 그래야 손님이 상품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고, 추가적인 질문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럼! 그럼 어떻게 꽃이 색칠된 걸 안 거야?!”

아리아는 반짝이는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싸움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두뇌까지 명석하니 그녀 입장에서도 충분히 놀랄 만했다.

“그건 그냥 잡지식입니다. 색이 담긴 물에 흰 꽃의 줄기를 담으면 그 색으로 물든다고 하더군요.”

무사 수행의 성취는 단지 전투 기술이나 힘뿐만이 아니었다. 여행을 통해 이런 가벼운 잡상식부터 마법 같은 고급 정보까지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1서클 마법식을 금방 익힐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어쩐지 배우는 게 빠르더니만.]

<칭찬하는 목소리가 어째 그럽니까?>

원래 목소리가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비꼬는 느낌이 지나치게 강했다.

[아니, 진짜 잘한 건 맞아. 마탑에 박혀서 글씨나 종이가 끄적이는 것보단 여행을 하는 게 더 실전에 쓸모 있어.]

저렇게 말하니 칭찬은 맞았다.

이젠 조리돌림 자체가 칭찬에 전염된 것 같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의를 표하자.

“...그럼 그 흰꽃은?”

“선물이에요. 이게 왠지 좋을 것 같아서요.”

“엄마는 흰색 꽃 그다지 안 좋아하셔. 예전에 좋다고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전부 백합을 보내왔거든.”

그건 레오도 전생을 통해 알고 있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선물할 건, 무지개색 꽃이거든요.”

레오는 씩 웃어보이며 물감과 염색약을 판매하는 상점을 가리켰다. 그 간판을 보자 조각조각으로 떨어진 정보가 연결되며 아리아에게 답을 내주었다.

“아...! 그러면 우리도 만들 수 있겠구나!”

“그런 셈이죠. 일주일이면 충분히 만들고도 남아요.”

그렇게 말하며 아가씨와 전속 기사는 가게 내부로 들어갔다.

물론 용병으로서 흥정은 기본이었다.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날은 점차 저물고 있었다. 해는 저물면서 푸른 하늘을 붉게 익히고 있었다.

“너무 흥정을 길게 끌어나봐요.”

“아니야. 덕분에 좋은 걸 많이 살 수 있었는 걸.”

그녀는 그렇게 웃어 보이며 레오가 산 염료들을 보았다. 사실 용사 가문씩이나 되면 흥정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경제 관념은 어릴때부터 가르쳐야 효과가 컸다.

[야, 근데 뒤쪽에 누가....?]

현자의 반응은 끝까지 듣지 못했다.

“어...?”

뒤쪽으로 달려든 한 남자가 레오 일행의 짐을 낚아챘으니까.

“도둑...?!”

의문을 품은 질문은 아니었다. 본인의 정체는 이미 달려가는 소매치기가 달려가면 충분히 증명하고 있었다.

“...이...!!”

“아가씨 잠깐...!!”

아리아는 이미 달려뛰고 쫒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레오도 그녀를 쫒아 함께 소매치기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냐?]

<이상하죠.>

현자가 눈치챘듯 레오 또한 그 이질감에 눈치챘다.

[왜 소매치기 새끼가 더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 거지?]

그 이유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레오와 아리아 모두 모르는 골목길이 있다던가.

두 번째는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 레오! 막다른 골목이야! 잡을 수 있어!”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아리아 아가씨.”

레오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일개 소매치기를 대응하는 것치곤 지나치게 느껴지기도 했다.

“레오...?!”

“기사로서 죄송하지만...”

검 손잡이에 힘을 주며 레오는 말했다.

“잡은 게 아니라 잡힌 것 같습니다.”

레오의 반응에 소매치기는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아니, ‘소매치기가 아니었기’에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표현이 올바를 것이다.

“...꼬맹이치곤 눈치가 좋은데?”

골목의 입구, 그리고 주변의 외벽 너머로 복면을 쓴 자들이 튀어나왔다.

생각하기도 싫었던 두 번째 상황.

그건 매복이었다.

“...뒤로 계세요.”

레오는 다른 손으로 자신의 아가씨를 지키려고 했다. 아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검을 잡은 두 소년소녀를 보자 암살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거 너무 무서운데. 항복이라도 해야할까?”

“해주면야 고맙겠지만... 그럴 생각은 없잖아.”

소매치기로 나섰던 암살자가 크게 웃었다.

그래, 저놈이 두목일테지.

“그래, 항복할 생각은 없지. 하지만 협상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야.”

두목은 단검으로 레오를 겨누며 말했다.

“검 내려놓고, 양손 들어. 그러면 여자친구는 보내줄게.”

“어떻게 믿고?”

두목은 턱짓으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부하들은 일제히 골목 밖으로 길을 비켰다.

“이러면 믿겠어?”

“다 나가면 믿겠다. 골목 밖으로 나가서 500m 거리가 떨어지면.”

“300m.”

“400m, 그 이하는 안 돼.”

“애새끼가...”

“꼬우면 뒤지든가.”

두목은 한숨을 내쉬더니 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보내주지.”

“하지만 두목...!”

두목은 자신의 부하를 노려보았다. 부하는 반론 하나 내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가세요. 아가씨.”

“....하지만...! 레오...!”

레오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강해도 상대는 실력자에 한둘이 아니었다.

“괜찮아. 아리아.”

레오는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사람을 불러줘. 네가 나보다 빠르잖아.”

그 속삭임에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아리아는 결심을 굳히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레오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기사를 믿기에, 그의 실력을 믿기에 아리아는 앞으로 달릴 수 있었다.

“이제 칼 내려놔.”

“좋아.”

레오는 주저없이 검을 놓았다.

“야, 묶어.”

레오에게 가까이 있는 부하는 급히 밧줄을 갔고 와, 레오의 양팔을 묶었다.

“인질로 잡게? 일개 기사를?”

“...아까부터 말이 짧다?”

“글쎄다. 너희들 이제 다 죽은 목숨인데 상관없지 않나?”

그 말에 다들 일제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자신을 묶은 남성을 포함해 두목까지도, 전부.

“크핫...너, 아까 그 여자친구가 살아서 갔을 거로 생각해? 그리고 속삭인 대로 사람을 불러주고?”

다들 폭소하기 바빴다. 1년치 웃음을 한꺼번에 몰아서 웃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이미 추격자를 보내놨다고. 이미 그년은 잡혔어.”

거기에 나오는 건 깊은 한숨 뿐이었다.

“...하...”

레오의 한숨에 다들 더욱 비웃기 바빴다. 저들 눈에는 레오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일 것이다.

“왜 다들 처웃고 지랄이지?”

그 순간에 폭발이 일었다.

폭발음과 함께 타닥거리는 소리가 밧줄을 잡고 있는 사람에게로 옮겨붙는다.

“끄아아아악!!”

[파이어볼]

연속되는 1서클의 화염마법, 폭발음을 끝으로 그 자객의 비명이 멈췄다.

“야, 10초 줄게.”

이미 불꽃으로 밧줄은 탄 지 오래였다.

“양심적으로난 안 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적어도 레오 앞에서는

“나머진 다 죽일 테니까.”

폭소는 참아야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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