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친구-4
[장인어른!! 따님을 제게 주세요!!]
<아가리 닥치시고, 아리아는 물건 아니니까 그딴 표현 쓰지 마세요.>
안 그래도 머리가 어지러워서 깨질 것 같은데, 저 늙은이는 지랄을 숨 쉬듯 내뱉는다. 유령만 아니었으면 배트로 얼굴을 난타시켜 붓기로 입을 꿰매버렸을 것이다.
“...그 질문은 너무 포괄적이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우선 냉정히 이성적으로 묻는다. 이것도 아마도 레오 자신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일테니, 침착하게, 냉정히, 풀어나가야 했다.
“글쎄, 어떤 의미인 것 같나? 레오나르도 군.”
역시 강적이다. 간을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군.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는 아리아스필 님은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정공법으로 나서는 수밖에.
“오호, 그런가?”
유연하고도 우직한 답변에 글라디오는 조금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요약이라도 해보겠나?”
“건방지다 말할 수 있겠지만, 아리아스필 님은...”
진심으로 답하는 것, 그것만이 답이었다.
“제 목표입니다.”
그 대답에 식사 중이던 모두가 멈췄다. 단순히 말을 멈춘 것이 아닌, 식사도, 심지어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멈춰졌다.
그럴 만도 했다. 들리기에 따라서는 당신의 딸을 꺾어버리는 것이 내 목표라는 뜻도 될 테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이렇게 나오면 조금 장난기가 생기지.
“글쎄요, 어떤 의미인 것 같습니까? 가주님?”
“...흐, 흐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렇게 도발적으로 반문하자 가주는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이젠 웃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넌 어째 말하는 사람마다 조증을 만든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내 팔자가 어찌 되려고...>
레오는 농담으로 꼬여버린 기구한 인생을 되새기며 웃고 있는 글라디오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고정시키는 이유는 중간에 호흡곤란이 오면 아예 직접 응급처치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재밌는 식사 시간이었네. 다들 식사가 끝난 것 같으니 먼저 일어나보도록 하지.”
웃음을 가라앉히며 글라디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주가 일어나자 다른 식구들도 식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있어 보이던데... 맛이 어땠냐?]
확실히 식사는 군침으로 탈수될 만큼 먹음직스러웠다. 그런 식사를 맛없다고 표현하는 건 미각이 없는 거나 다름없겠지.
<모르겠어요. 코로 들어가는 건지 눈으로 들어가는 건질 모르겠어서... 그것보단...>
이 식사가 최후의 만찬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 말이 나왔을 때, 레오와 마찬가지로 아리아스필 또한 사고가 정지했다.
딸이라는 게 누구였지? 여기 아버지 딸이 한 명 더 있었나? 아니라면...
그건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으니까.
동공이 떨리며, 먹는 음식이 목에 걸릴 것만 같다. 간신히 음식을 삼켜도 더 식사를 이어갈 자신은 없었다.
그것보다 걱정되는 건 레오나르도의 대답이었으니까.
괜스레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런 지독하고 이상한 질문을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다른 마음 한편으로는...
‘...뭐라고 대답할까?’
레오나르도의 답이 너무나 궁금했다. 최대한 고개를 숙이며 관심 없는 척, 대화를 관전했다. 조금 붉게 물든 귓가를 활짝 열어둔 건 덤이었다.
그리고 나온 답변은,
【아리아스필 님은 제 목표입니다.】
그 대답은 귓가의 열기가 귓바퀴를 넘어 얼굴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데 성공시켰다.
‘목표...!?’
목표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단순한 라이벌? 아니면 호적수? 그것도 아니면...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볼과 뺨 너머가 뜨겁게 물들었다.
아버지가 처음 했던 질문처럼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기에,
점점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흥분을 주체못한 아리아는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듣기 위해 귀를 더 열었지만,
【글쎄요, 어떤 의미인 것 같습니까? 가주님?】
안타깝게도 그 의미까지 정확히 알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으으...’
달아오른 얼굴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호한 말의 의미가 소녀의 감정에 기름을 붓는 것 같았다.
오늘 그녀의 밤은 그리 편안치 못할 것 같았... 아니, 못 할 것이다.
***
그 만찬의 저녁 이후
레오는 현자를 마주 보며 의자에 앉았아 있었다. 앞에 있는 현자는 열띤 표정으로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암...”
[그러니까 그렇게 돼서...]
“하아아암...”
[마법의 기본은...]
“카하아아아아아암..!”
[아 좀 닥쳐!]
연속된 하품이 점점 길어지자 현자 그조차 역정을 내었다.
“하아아함...”
<죄송합니다.>
나른한 하품과 함께 레오의 오러로 대답했다.
[사과할 짓도, 사과를 동시에 하는 것도 능력이긴 하다.]
“하아아암...!”
<과찬이십니다.>
그 신묘한 테크닉에 현자의 안면 근육이 일그러지기 직전으로 다가갔다.
[비꼰 거야. 새끼야. 그리고 지금도 하품 처하고 있잖아.]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 새벽 3시에요.>
현재 시각은 정확히 새벽 3시 2분, 이렇게 야심한 밤에 갑자기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도저히 하품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말이야. 이런 가르침을 받으면 누구라도 눈 또랑또랑하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둔다고. 넌 이게 마법사로서 얼마나 가치있는 건지 몰라서 그래.]
확실히 지금의 레오로서는 현자의 가르침이 얼마나 지고한 것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수업을 이해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마법에 대한 관심이 처음부터 적었으니까.
<그럼 안 하도록 노력해보죠. 하아아아암...>
[야이 새끼야. 너 방금 오러로 하품했어.]
아, 들켰네.
[하... 왜 이런 자식을 후계자로...]
<현자님이 택한 후계자입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세요.>
[악으로 깡으로 패주랴?]
<그건 싫어요.>
어차피 유령인지라 서로를 공격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싫은 건 싫은 거였다.
[그럼 닥치고, 수업이나 들어.]
<노력하죠.>
현자는 헛기침하며 맥이 끊긴 수업을 이어서 시작했다.
[그러니까 마법의 기본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
[이건 대답해. 새꺄.]
<마법진이라고 하셨죠.>
시원치 않은 제자치곤 시원한 대답이었기에 현자는 언성을 줄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법의 기본은 마법진이지. 영창이나 수인이니 같은 건, 이후에 생긴 보조 기술 정도야.]
<그럼 마법진만 있으면 영창이나 수인은 필요 없습니까?>
[테크닉만 있다면, 부족하면 우선 그걸로 메꿔야 하지만.]
무술로 치자면 일종의 준비 과정이나 자세 정도로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쉬워졌다.
[그런 거로 놓고 보자면 넌 싹수는 괜찮은 편이야. 1서클 마법이라도 일주일 안에 익히는 건 쉽지 않거든.]
<현자님은 몇 번 만에 성공했는데요?>
[나? 바로.]
정말 새삼스러운 경악이지만 세상에는 괴이스러운 천재가 수두룩했다.
[낙심할 거 없어. 그 정도면 괜찮은 거지.]
<위로가 아프네요.>
[어쨌든 1서클을 배웠으니, 이제 뭘 해야겠냐?]
<글쎄요. 1서클을 더 잘해야겠죠?>
[...오...]
레오의 답변에 현자는 짧은 감탄을 내었다.
<...왜요? 혹시 틀린 답인가요?>
[너 생긴 거랑 다르게 싹수는 진짜 괜찮구나.]
저렇게 칭찬과 욕을 동시에 하는 테크닉은 지금 봐도 경이로웠다.
[솔직히 난 다른 등신들처럼 2서클에 목맬 줄 알았거든. 진짜 의외네.]
<의외일 것도 없죠. 배움에 기초만큼 중요한 게 어딨겠어요.>
[...그게 의외인데.]
욕과 칭찬이 한마디로 합일을 이루니 이보다 기묘한 감정이 요동칠 수 없었다.
이젠 불쾌하긴커녕 경이롭기까지 했다.
[어쨌든 네 말대로야. 지금은 어설프게 2서클을 익히느니, 1서클에 집중하는 게 나아. 심화 단계에 성급할 필요는 없지.]
<그럼 1서클 마법을 연습해야하나요?>
[그것도 방법이지만, 지금은 따로 생각해둔 훈련법이 있지.]
현자의 주변에 다시 마나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흡사 처음 마나수련법을 알려줬을 때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핫!]
기합과 함께 응집된 마나가 선의 형태로 엮어지기 시작했다. 줄기처럼 이어진 선을 곡선으로 이어지며 이내 원형으로 작도되었다.
[...자, 여기서...]
그 원 안에 또다른 원이 얇은 거리를 둔 채 다시 그려졌다. 그 원을 그리는 작업이 계속해서 반복되자 이내 속이 비어있던 원은 색을 칠한 듯 완전히 채워졌다.
[이런 느낌으로, 마나로 원 안에 계속 원을 그리면 돼.]
<그렇게 촘촘히 해야해요?>
[이렇게 해야 실력이 올라. 나 때는 말이야, 선생님이 시키면 고분고분...]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암.>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귓가를 활짝 열고 훈화를 듣기에는 너무나도 졸린 하루였다.
***
원을 그리는 것 자체는 그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이것조차 실력이 없었으면 발록과 싸울 때, 화염 마법이 발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으으으...!”
그 속을 원으로 다시 채우는 과정이었다.
[왜 이렇게 끙끙대? 머리에 딱 힘 주고! 시신경에 빡 감 잡아!]
“아, 좀 닥쳐요. 집중 안 되니까.”
말을 하는 동시에 선이 흐트러진다. 다시 마나를 불어넣으며 레오는 선의 중심을 고정시켰다.
[뭐 임마? 야, 난 몸뚱아리 없이도 바로 했어! 요즘 것들은 이래서 문제야... 열심히 해보지도 않고...]
“제 심장에 현자의 돌을 꽂아놨으니까 그런 거겠죠. 기생충마냥.”
[뭐...뭐? 기생충?]
“기생충 아닙니까? 따지고 보면 지금 유령으로 돌아다시는 것도 제 마력 덕분이잖아요.”
회귀의 여파일까,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현재 레오의 심장에 있는 현자의 돌에는 현자가 저장시켜놓은 마력은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술식으로 저장해둔 마법과 사념은 남아있었으니 이런 식으로 대화할 수는 있었으나, 레오가 마나가 고갈된다면 현자의 돌도 작동을 멈출 것이다.
[야야...! 내가 니 목숨을 구해주느라 그런 거 몰라!?]
“네, 구해주고 ‘기생’하셨네요.”
[그럴 거면 차라리 심장에서 뽑아내든가!]
“어이구, 그런 소름끼치는 걸 어떻게 합니까요? 무서워서 엄두가 안 납니다요.”
[하하... 시발... 왜 이딴 놈을...]
그렇게 총 5개의 원을 채워가던 와중,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시간이 제법 지났다고는 하나, 아직 야심한 시각인 건 분명했다.
[누구냐? 이 밤에?]
“글쎄요.”
레오는 원을 그리는 것을 멈추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십니까?”
문을 열기 전에 레오는 문구멍 너머를 보며 조심히 물었다.
“늦은 시각에 미안하다만,내동기들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 당장 얘기할 수 있겠나?”
구멍 너머로 보인 것은 흰색 벽과 같은 무언가였다. 몇 번 확인한 끝에 그게 사람의 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목소리도 전에 들어본 익숙한 음색이었기에 레오는 별 의심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고맙군.”
들어온 건은 거구의 남성이었다. 그는 견습 기사가 아니라 정식 기사라 믿을 정도로 육중한 근육을 자랑한 채 방으로 들어왔다.
“늦은 밤에 들어와서 미안하다.”
“그런 만큼 중요한 사안이겠죠.”
“그렇다.”
짧은 대답과 함께 그는 의자에 앉았다.
[뭐냐? 쟤는?]
그런 기묘한 견습 기사를 보며 현자는 눈을 찌푸린 채 물었다.
<제 선배님입니다.>
“소개가 늦었군.”
레오가 말한 걸, 이어 레오의 선배는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내 이름은 알폰스 암스트롱, 견습 기사이자 관계로 봤을 때는 너의 선배지.”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알폰스 암스트롱, 전생에도 인연이 있던 인물로 선배로서도, 전우로서도 그의 근육만큼이나 듬직한 인물이었다.
[그런 녀석이 왜 이런 시간에 오냐? 그것도 남자들끼리.]
<좋은 분이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전생에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종자는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
......
.........
[좋은 사람이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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