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친구-1
냉정해지자. 아직 농담 살해자라는 이명은 그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봐라. 아리아스필도...
“혹시 그럼 그것도 새로 개발한 농담 암살술이야...? 레오나르도...?”
“......”
...어디 근처에 예쁜 다리 없나? 낙사나 추락사하기 좋은 다리면 좋을 텐데.
“...뭐가요?”
이젠 부정할 수 없는 농담 살해자가 된 레오는 우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하는 거...”
“지금 하는 거요?”
“나한테 존댓말하는 거... 말이야.”
그 말에 레오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존댓말은 당연히 해야죠. 전 종자잖아요.”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는 반말했잖아.”
그거야...
“그때 전 종자가 아니었잖아요. 지금은 종자니까 예의를 갖춰야죠.”
“그래도...”
그녀는 어울리지 않게 다리와 손을 꼬며 조심히 말을 꺼냈다. 전생에도 잘 보이지 않던 행동에 레오의 의문이 증폭되었다.
“그걸 정하기 이전에, 레오나르도, 내가 부탁한 걸 먼저 보여줬으면 한다만?”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크리스가 자신의 부탁을 먼저 상기시켰다. 그러고 보니 마나체련술을 시연하기로 했었지.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하지.”
이때 레오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리아스필의 표정에는 음영이 지어 있었다. 크리스에게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럼 우선...”
레오나르도는 웃옷을 벗으며 맨살을 들어내었다.
“갑자기 옷은 왜 벗나?”
“체련술은 피부가 노출될수록 좋습니다. 옷을 입는다고 효과가 극단적으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실한 게 좋겠죠.”
[난 또 농담 암살술 비기 1장, 노출 코미디인줄...]
으아아아, 아무 말도 안 들린다.
늙디 늙은 노친네가 지랄하는 건 아마 내가 피곤해서 들리는 환청일 것이다. 그럴 것이며 그래야만 했다.
“훌륭한 몸이로군. 13살에 이 정도로 단련하다니...”
몸에 대한 칭찬은 조금 부끄러웠지만, 레오 자신도 육체에 있어서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몸에 있는 단단한 근육과 아물어있는 흉터들은 일면으로나마 저 소년의 수련들을 시각화시키고 있었다.
“...읏...”
어째서인지 아리아스필은 정면이 아닌, 눈으로 조금씩 힐끗거리며 레오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확실하고 명확히 근육과 속살을 눈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건 말건 레오는 본인 주변의 마나에 감각을 집중시키는데 바빴지만 말이다.
“후...”
숨을 내쉼과 동시에 레오는 마나체련술을 시전했다.
[오, 실력 좋아졌는데. 이게 바로 농담 암살가의 비술, 마나체련술...]
<진짜 죽여버립니다.>
지랄과 농담과는 별개로 레오의 수련 실력은 한 층 더 성장해있었다.
쪼개진 마나 입자도 한 층 고와졌고, 체련을 통해 피부의 기공을 여는 것도 더 능숙해졌다.
“...이런...말도 안 되는...”
그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 크리스는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턱에 힘을 주고 싶어도 턱근육은 마치 마비라도 된 채 중력에 이끌려 내려가고 있었다.
“어떻게...!! 한 거지!?”
간신히 근육의 마비를 풀고 크리스는 레오에게 달려가 물었다.
“예?”
너무나 흥분한 반응에, 시연했던 레오가 오히려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아까 그 기술 말이다!! 마나를 쪼개고 피부의 기공에 입자를 집어넣는 방식 말이야!!”
저렇게 과하게 흥분한 건, 붉은 눈의 검은색 와이번을 봤을 때와 오드아이인 마법사를 만났을 때뿐이었다.
“우선...! 우선... 진정하시고...!”
“진정?! 아직 견문이 좁은지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모르나보군!!”
속 알맹이는 20대 중반을 넘긴지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으나, 우선은 알겠다고 말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라고 말하기엔 눈앞의 흥분한 중년 여성이 너무나 무서웠다.
“크...크리스 님, 우선 진정하시고...”
“...미...미안하군. 으흠...”
아리아스필의 말에 간신히 이성의 줄을 붙잡은 크리스는 헛기침을 통해 자신을 진정시켰다.
“...레오나르도, 혹시 기본적인 마나호흡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예, 폐에 마나가 섞인 공기를 넣어 체내에 입자를 부착시키는 방식이죠.”
라인하르트의 마나수련법도 호흡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라인하르트 가문의 호흡법은 가장 일품에 위치해있었지.
“그렇지. 우리는 마나를 단련시키는 데는 호흡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지.”
좀 많이 과장적인 말투긴 했지만, 그에 대한 단점이 얼추 감이 잡혔다.
““마나호흡을 하는 시간에는 육체 단련을 할 수가 없죠.(없지.)””
동시에 같은 말, 같은 내용을 말하자 현자가 감탄했다.
[의외로 죽이 잘 맞는다. 이명을 가진 녀석들은 뭔가 통하는 게 있나봐.]
현명하다 정평 난 현자가 한 몰상식한 말은 무시한 채, 레오는 크리스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래, 마나 호흡을 하는 시간에는 육체 단련을 할 수가 없지. 동시에 하면 호흡도 어그러지고, 육체 단련도 어설퍼져.”
호흡법과 육체 단련을 접목해보려는 연구는 뜨거운 감자로서, 레오가 태어나기 전부터 진행되던 연구였다.
하지만 섬세함이 중요시되는 마나호흡법에 육체 단련은 독이나 다름없었다.
마나 호흡법의 기본과 근육 사용의 호흡은 엄연히 형태와 박자가 달랐다.
숨을 들이쉬는 양부터 참는 시간까지 전부 미묘하게 다르며 자세에 따라 차이가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니 마나 호흡을 집중하면, 육체가 빠르게 지쳐 체력훈련의 의미가 없어지고.
체력훈련에 중점을 두면, 마나 호흡이 불규칙해져 마나 흡수량도 줄며,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효율성을 위해 마나호흡법과 육체 단련을 별도로 진행해왔다.
“하지만 그건 라인하르트 특유의 체질과 단련법으로 극복했잖습니까?”
라인하르트는 용사의 피와 영혼이 흐르는 체질, 마나를 흡수시키는 것만으로도 육체 단련 부럽지 않게 몸을 성장시킬 수 있었고, 300년 동안 이어진 전통 단련법은 통상 수련법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확실히 그렇지. 하지만... 잠깐.”
그 순간, 잘 이어지던 흐름이 끊겼다.
“...무슨 문제...”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체질과 수련법에 관한 내용은 그리 쉽게 얻을 정보가 아닐 텐데.”
아차 싶었다. 전생에 자신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자신은 이 사실을 알 수도 없었고, 알아서도 안 됐다.
“그건... 저도 당연히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그러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만 짧은 용병 생활을 하면서 얻은 소문을 들었을 뿐이죠. 확신이 들었던 건 아리아스필 님이 제가 알려주신 수련법을 완벽히 소화해냈을 때죠.”
말을 짜맞출 필요가 있었다.
“흠... 역시 이또한 무인의 운명이란 말인가.”
자연스럽게 말은 나오지만, 저런 말을 들으니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지는 것 같다. 참아야 한다.
“어쨌든 그런 라인하르트의 비전에도 그런 아쉬운 점이 있다는 거다. 총체적인 시간으로 육체 단련 시간과 마나 수련 시간이 나뉜다는 점이지.”
이제야 전체적인 의미가 이해가 되었다.
“...마나체련법은 동시에 할 수 있죠.”
“그게 경이로운 점이지! 결과적으로 시간 단축도 가능하고,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마나호흡법이나 육체단련법보다도 질 자체가 올라갈 것이다!”
확실히 혁명적이긴 했다.
레오 본인이 직접 만들어낸 거긴 했으나, 이 업적의 위상은 솔직히 당시에는 감이 오지 않았다.
[내가 가르쳐서 그래. 알지?]
<압니다.>
[알면 마나체련법에 내 이름도 넣어. 스승 명령이다.]
<진심이십니까? 크리스 님도 계신데?>
[...당연히 농담이지. 농담 암살자가 거 센스하고는.]
농담으로 죽여버릴까.
“내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수련법은 가주님께 꼭 건의드리지. 아마 추진만 잘 된다면 마나수련법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거야! 흑암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흑암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무게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보도록 하지! 당장이라도 이 내용을 보고하겠네!!”
“아... 네...”
[온도 차가 너무 심한데.]
현자님, 이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는 암흑 속 그림자가 사라지듯 연무장 밖으로 나갔다.
“...아...네...뭐...그렇게 됐네요.”
덩그러니 남은 아리아스필에게 레오는 그렇게 말했다.
“옷...”
“네?”
“옷부터 입어줘...”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상의를 주워주며 내밀어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내밀어준 옷을 주섬주섬 받아입으며 레오는 감사를 표했다. 어리더라도 이성의 몸을, 그것도 흉터가 제법 있는 몸을 보는 건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해... 그거...”
“뭘요?”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
태연한 레오의 눈동자에 아리아스필의 얼굴이 비쳐졌다.
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슬퍼보였다.
***
처음 레오나르도가 가문으로 오겠다고 했을 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리아스필은 펄쩍거리며 뛸 듯이 기뻤다.
‘레오나르도가 우리 집에 온다고? 내일? 당장?’
생각만 해도 인형 같은 그녀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그려졌다.
‘매일 이렇게 같이 수련할 수 있어. 매일 같이 얘기하고, 같이 대련하고, 같이 웃을 수 있어.’
그뿐이었을까, 원할 때면 언제든 레오나르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목소리도, 검술도, 그리고... 따뜻한 손길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헤헤...”
소녀 같은 웃음, 여태까지 한 번도 짓지 않은 웃음과 함께 소녀는 다음날을 고대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오렌지가 먹고 싶군요.
“푸아칵하하하하하...!! 아히!! 아히! 이히힉!! 꼬르륵...”
갑자기 레오나르도가 알프레드를 기절시킨 뒤로 무언가 꼬인 느낌이 들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쓰러진 알프레드도 걱정되었다.
아버지 나이의 두 배는 족히 넘는데도 항상 건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알프레드가 쓰러졌으니, 마음으론 걱정이 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 이상으로 걱정된 것은...
“어떡하죠!? 레오나르도가...! 레오나르도가...!”
심문실에 들어간 레오나르도였다.
심문실에 들어가 안 나온 지 2시간이나 지났다.
만약 이상한 고문 같은 걸 받고 있는 거라면 어떡하지?
문득 할아버지나 알프레드가 나쁜 짓을 하면 심문실의 괴물에게 잡아먹힌다는 이야기도 떠오른 참이었다.
레오나르도라면 그런 괴물쯤은 멋지게 해치우겠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오나르도는 풀려났다.
그렇지만
‘왜 본가가 아닌, 먼 별채로 가지?’
레오나르도와의 생활은 그리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같은 본가가 아닌 별채로 가는 것도 불만이었고,
레오나르도가 제하드 같은 호위기사가 아닌 단순한 종자인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이래선 매일매일 보고 싶어도 보기가 어렵지 않은가.
무엇보다.
“아리아스필 님.”
“...존댓말은 당연히 해야죠. 전 종자잖아요.”
저 존대는 듣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왜 존댓말하지...?’
오자마자 심문실에 잡혀들어온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보상해줄 수 있었다.
아니면 다른 종자들이 괴롭힌 것 때문일까?
그런 거라면 그깟 종자 놈들 따위 자르면 그만이었다.
아니면... 설마 내가?
내가 싫은 것일까?
“...왜 존댓말 하는 거야?”
정말 그거라면, 어떡해야지?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우린 친구 아니였어...?”
처음 생긴 친구니까, 처음 생긴 친구이기에
제대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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