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1화 (11/248)

EP.11 라인하르트-6

오늘은 머리가 복잡하다.

[레오나르도.]

그러니 머리가 비워질 때까지 훈련한다.

[이봐. 고자승부충.]

저딴 하찮은 욕이 안 들릴 정도로 집중한다. 머리가 비워질 때까지...

[...농담 살해자.]

“으아아아아아!!!”

검을 계속 내려치게 된다. 절규 같은 목청이 입 밖으로 계속으로 튀어나온다.

[농담 살인술의 비기...크큭...!]

얼굴이 붉어지며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빨라진다.

“닥쳐!! 닥치라고!!”

[용언을 뛰어넘는 농담 암살기법...크큭...!]

모든 것에 분노가 생긴다. 기자도, 신문도, 농담도, 저 ‘크큭’이라는 추임새조차.

“죽여버리겠어!! 노친네가!!”

이 분노로 뒤덮인 흑역사의 전말은 5분 전으로 돌아간다.

***

[‘정말 죄송합니다. 알프레드 집사장님.’]

오늘은 어제 못했던 사과를 하러, 아침 일찍 집사장실에 찾아가게 되었다.

경위야 어찌됐든 레오 본인에게도 책임은 있었으니 사과할 필요는 있었다.

너무 일찍 찾아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알프레드는 언제나 새벽 정시에 일어나니 상관없을테지.

[‘대화 주제는 홍차나 과자 종류 같은 게 괜찮겠어. 농담은 절대 하면 안 되고...’]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하며 레오는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레오는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알프레드 집사장님.]

[오, 레오나르도 군이로군요. 좋은 아침입니다.]

알프레드는 어제 실신했던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하게 신문을 읽고 있었다. 옆에 홍차까지 곁들이는 건 덤이었다.

[그 차는 다즐링이로군요. 상당히 고급인 것 같고요.]

[오오, 이걸 눈치채시다니... 다도에 조예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은 견문이 많이 부족합니다. 정말 조예가 깊은 사람은 냄새만으로 찻잎이 익은 개월 수까지 맞힐 수 있다죠.]

그 사람이 바로 알프레드였다. 자신의 칭찬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상대를 높이는, 고도의 화술이었다.

[그래도 그 나이에 홍차의 종류를 아는 건 어렵죠. 유머 말고도 다른 교양 부분에서도 출중하시군요.]

그 말에 심장이 찔리는 것 같다. 역시 화가 나 있을 것이다.

[...그 건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용병으로 산 지라 교양있는 농에는 재능이 없었습니다.]

[아뇨. 아닙니다. 정말 훌륭한 농담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폭소했죠.]

심장이 찔리다 못해 해집어지고 있다. 사과하다 못해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신문을 읽고 계시는군요. 세 종류나 읽으면 피곤하시지 않으신가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레오는 주제를 눈앞의 신문으로 옮겼다. 특징적인 주제 전환이니 그리 어색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늘 신문은 정말 재밌거든요. 특히 1면이 말이죠. 레오나르도 군도 한번 보시겠습니까?]

[네? 네, 무슨 내용인지...]

레오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13살의 소년, 농담 살해자가 되다.】

때때로 충격적인 진실은

「농담 살인술의 비기, 집사장 실신」

사람의 언어능력을

《용언을 뛰어넘는 농담 암살기법》

마비시키니까.

[어떻습니까? 경제 불황이나 사고사보다야 훨씬 유쾌한 기사 아닙니까?]

***

그리고 현재

“으아아아아아아아!!”

마비된 언어 능력은 현재 분출해 폭발하고 있었다.

[용언을 뛰어넘는 농담 살해자...크큿...]

“닥쳐!! 아가리 닥치라고!! 미친 영감탱이야!!”

검을 미친듯이 휘두르며 레오는 외친다. 유령인 현자가 검에 맞을 리가 없지만,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했다.

[이봐이봐,내 농담을 듣지 말라고... 아직제어가 안 되니까...크큿...]

저 웃음이 인내심의 동아줄을 자른다.

“죽여버리겠어!! 다 죽여버릴 거야!!”

되려 흥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각이다.

그래야만 했다.

“아리아, 레오나르도가 왜 저러지?”

새벽이 조금 지나고 연무장에 온 크리스는 미쳐 날뛰고 있는 레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건 레오나르도의 수련법이에요. 저번에도 마구 화내고 소리 지르면서 수련하더라고요.”

“흠... 아무래도 감정의 분노를 이끌어내 몸의 힘을 이끌어내는 훈련법인 것 같군.”

그런 거 아니다.

“어린 나이에 분노를 통제해 힘의 자양분으로 삼으려고 하다니... 대단한 걸 넘어서 무섭군.”

“역시 레오나르도네요...”

전혀 아니다.

“하지만 위험할 수 있겠어. 저러다간 분노의 노예가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냥 아니다. 아니라면 아닌 거다.

“레오나르도, 아침부터 훈련 중인가?”

아마도 분노의 노예가 될 수도 있는 레오를 말리기 위해 크리스는 어른으로서 기꺼이 조언해주러 갔다.

“죽여...! 아? 크리스 님?”

크리스를 보자 흥분이 가라앉혀졌다. 상사 앞에서는 아무리 굴욕적인 사건이 있어도 마음을 진정할 필요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크리스 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부터 훈련을 하는 것은 좋다만, 조금은 냉정해져라. 이런 상황일수록 머리를 식혀야할 때지.”

부끄럽지만 맞는 말이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냉정하게 대처해야 마땅했다.

“죄송합니다. 종자로서 못 미더운 꼴을 보였군요.”

“아니, 그 격정에 맡기는 힘은 충분히 강했다. 아직 취하기엔 이른 힘이기에 말리는 것일 뿐이지.”

...뭔가 말이 이상했지만, 크리스이니 이해하도록 했다.

“그러고 보니 아리아에게 들은 것인데, 너에겐 또다른 특수한 수련법이 있다고 들었다.”

이 미친 짓은 수련법이 아니지만, 크리스이니 그러려니 했다.

“다른 수련법... 마나체련술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나체련술, 음... 그런 이름인가?”

“예, 보여드려도 될까요?”

“아무래도 만든 본인에게 시연시키는 것이 낫겠지.”

마나체련술을 위해 자세를 잡으려던 순간,

그 순간

“너 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하늘과 같은 선배님들이 땅바닥을 통해 터벅거리며 달려왔다. 얼굴이 무척이나 붉은 것이 한 눈에 봐도 화가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 선배님들. 절 찾으셨습니까?”

그 태연하고 능글한 한마디에 그들의 붉은 얼굴에 더욱이 타올랐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무슨 일이지?”

앞에 있는 크리스는 그 행동에 의문을 느낀 듯 종자들을 바라보았다.

“...크리스 님...!”

“너흰 아마... 로쉬아의 종자들이었지? 레오나르도에게는 무슨 일이지?”

크리스가 질문을 던진 순간, 또다른 발소리와 목소리가 울렸다.

“죄송합니다. 크리스 님, 이 녀석들! 이게 무슨 무례냐?!”

로쉬아였다. 로쉬아가 나타나 본인들의 종자를 붙잡기 시작했다. 직속 상관이 나타나자 그들 얼굴에 긴장이 돌았다.

“괜찮다. 종자들의 불만을 듣는 것또한 기사의 덕목이지.”

그 아량에 긴장했던 종자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리고 그 안심은,

“그래서 무슨 일이지?”

만용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저 레오나르도라는 후배가 무례가 지나쳐 그 건에 대해 문책하러 왔습니다.”

이 종자 무리 중 제일 똑똑한 벡터가 나섰다. 이 무리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 중에서도 벡터는 화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무례가 지나치다?”

“예, 선배인 저희를 공경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극상으로 저희를 공격하더군요.”

그들은 증거로 옷을 들어 맞은 부위를 내보였다. 얼굴을 맞은 사람은 굳이 옷을 들지 않아도 멍이 훤히 보였다.

“...사실인가? 레오나르도?”

이렇게 나온다 이건가? 이건 너무...

<이득이네요.>

이득이었다.

“예, 저 부상은 제가 입힌 것이 맞습니다.”

그 대답에 앞에 있는 종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극상은 기사단에서도 강하게 엄벌하는 죄목, 저 멍청한 평민이 어떤 처벌을 받을 정말 기대되었다.

“어째서지?”

“선배님들께서 크리스 님과 아리아스필 님을 모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속으로 부르던 쾌재의 노래가 갑자기 불협화음으로 뒤바뀌었다.

“...날 모독했다고?”

“우리가 언제 그랬어?! 우리가 언제...!?”

“어제 분명 제 태도를 보고 미친 새끼라고 하셨죠?”

그 말에 떨떠름하긴 했지만 우선 종자들은 대답했다.

“그래! 했어! 하지만 그건 니가 하극상을...!”

“그리고 동시에 ‘크리스 님이 데리고 온 녀석이잖아. 미친 놈인 게 당연하지.’라고도 말씀하셨죠?”

그것도 사실이었다. 종자들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어느샌가 그들은 레오나르도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그건...”

“그 말은 절 종자로 고르신 크리스 님을 모독하는 발언이자 크리스 님의 안목을 신뢰하지 않는 불충한 언행이었습니다.”

조금 과장한 것은 있었지만, 전부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말이었다. 그 증거로 저 종자들은 제대로 된 항변도 못 한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아리아스필 님마저도 모욕하더군요.”

“우리가 언제...!!”

“아리아스필 님을 존칭 없이 부른 것도 모자라, 제가 가문의 영애님을 유혹했고 넘어갔다고 말했습니다.”

“...”

불현듯 그들이 얻어맞을 때,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아리아스필!! 그 가주님 딸 좀 꼬셨다고!! 뭐가 좀 되나 본데! 넌 평...]

갑작스러운 주먹질에 제대로 사리분별도 못하고 나온 말이다. 하지만 언변의 싸움에선 그런 실언조차 패착이 될 수 있었다.

“선배로서 공경하기 이전에, 제 은인을, 가문의 영애를 욕보인 죄가 무겁다고 생각해 손이 먼저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설명에 종자들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애초에 레오와 그들 간의 화술의 격은 이미 10년은 넘게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손속이 너무 과하지 않나? 저들은 너의 선배이자 귀족이시란...”

로쉬아의 발언을 더는 들어줄 수 없다는 듯 레오는 타이밍에 맞춰 말을 끊었다.

“그 이전에 저의 선배님들은 저에게 대련을 요청했습니다.”

“대련...?”

“일종의 신고식 형태더군요. 한 명인 저를 상대로 네 명이 동시에 돌진, 무기로 준 검은 이미 금이 간 지 오래였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제 방에 그 부러진 검이 있으니 직접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게다가 굳이 언변이 없어도 상황만 놓고 봤을 때, 과실이 어느 쪽에 있을지는 너무나 명백했다.

“이에 대해 손속이 덜하다면 덜하다고 생각되지, 과하다고는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이 생각과 행동이 옳지 못하다면 부디 정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로쉬아마저 성대가 멀쩡한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이게 다 사실인가? 로쉬아?”

“그게 저도 잘...”

“모른다면 더 큰 문제로군. 라인하르트의 기사가 일개 종자조차 관리 못 한다니 말이야.”

변명은 필요없었다. 아니, 하면 제하드와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교육시키겠습니다!”

“노력하게나. 라인하르트는 실수가 반복되면 실수라 생각하지 않으니.”

“알겠습니다!!”

로쉬아는 큰 목청과 함께 최대한 반성하는 의지를 보였다. 동시에 철없는 종자들을 노려보며 이글거리는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눈가의 열기에 레오를 제외한 종자들의 낯빛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무례를 범해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를 마치고 로쉬아와 그의 종자들은 연무장을 나갔다. 종자들의 얼굴빛은 이미 잿빛을 넘어 흙빛으로 타버리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너에겐 라인하르트의 치부만 보이게 되는군. 면목 없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했으면 너무 아득한 나머지 종자를 그만뒀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니까요.”

“재밌는 농담이로군. 역시 농담 살해자라는 이명이 어울려.”

...

.....

........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어이어이... 내 농담을 들으면 반으로 갈라져 죽지. 부디 내 장.난.기를 깨우지 말라고... 큭큭...]

아니, 죽고 싶었다.

농담으로 자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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