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라인하르트-5
[...]
“...”
[...]
“...”
[...]
현자와 레오는 아무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봤다는 표현도 쓰지 못했다.
레오는 아예 현자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으니까.
[...하...]
깊은 한숨, 목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깊은 숨이었다.
[넌...하...]
“...”
[생각이... 하...]
말 반, 한숨 반이었다. 그보다 더 굴욕적이었던 건 저 태도가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이었다.
“저기 현자님...”
[싸물어. 그 셋바닥으로 나도 죽일 생각이냐?]
죽은 건 아니라고! 죽인 것도 아니고!
졸지에 살인마로 모함당한 레오였다.
아직 집사장 알프레드은 죽지 않았다. 다만 실신해서 급하게 실려갔을 뿐.
너무 어이없는 광경에 모두가 얼에 탄 나머지 얼어버렸다.
그 어안이고 어이고 증발할 것 같은 광경을 보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후에 온 사람이었다.
집사장이 쓰러졌고, 그 앞에는 처음 보는 용병이 있다.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는 사람이라면 체포부터 하고 볼 것이다.
[넌 농담으로 체포되냐? 어떻게 체포 사유가 농담이야?!]
<아니! 저도 이렇게 체포될 줄 알았겠어요?!>
고작 농담 두어번, 그것도 모욕적인 언행이 아닌 간단한 언어유희일 뿐이었다.
그걸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기사들은 도저히 그 말을 믿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농담을 친 레오도 믿기지 않으니까.
‘이때 알프레드 씨는 농담에 면역이 없었던 거겠지.’
처음 농담을 들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과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웃길 의도 자체가 없었으니 위력이 약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마 지금은 진심으로 웃기려고 했기에 웃음의 강도가 임계점을 넘긴 거겠죠.>
게다가 지금은 레오의 말장난에 대한 면역도 없을 테고 말이다.
[차라리 목사탕 먹다가 목에 걸려 뒤지는 게 더 신빙성 있겠다.]
그건 레오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래서 어떡할 건데? 이대로 감방에 썩어야해?]
<감방은 아니죠. 정확히는 심문실이라고요.>
지금 레오가 있는 방은 라인하르트 가문의 저택 지하, 심문실이었다.
아직 경위도 애매했고, 아리아스필과 크리스의 간곡한 변호 덕분에 콩밥을 먹는 것일 만큼은 면하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심문실이면... 뻔하죠.>
심문실에 왔으면...
벌컥
굳게 잠겨있는 철문이 열렸다.
“일어나.”
심문을, 그 이상으로 고문을 할 수밖에...
“석방이다.”
아니네?
***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우선 지하실에 가둔 레오를 뒤로 하고, 다들 집사장인 알프레드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그리고
‘아무 이상 없습니다.’
치료 결과, 알프레드에게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사제도, 의사도, 혹여나 마법사까지 불러 확인했으나 알프레드 집사장에게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알프레드의 발언.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웃음이 심하게 나온지라...’
그렇게 돼서 레오나르도는 무죄로 석방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착하게 살자. 응? 이렇게 살면 집에 계신 어머니께서 얼마 슬퍼...]
<저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실까.
[...애인은 있잖아. 이것아.]
<뭔 말 같지도 않은...>
평생 연애를 거부하고 거절한 레오였다. 그런 그에게 애인이 있을 리가...
“레오나르도!!”
그런 생각을 할 찰나, 한 소녀가 레오나르도에게로 뛰어들었다.
“아, 아리아스필.”
“다행이다...! 석방됐구나!”
근데 어째 다들 표현이 좀...
“훗, 난 믿고 있었다. 네가 그런 시간 따위는 가볍게 이겨내리라 말이지.”
왜 범죄자에 형량 채우고 나온 놈이 같이 돼버렸지.
[실제로 죽일 뻔했잖아.]
<아니라니까요.>
[범죄는 부정해선 안 돼. 중요한 건 그 잘못에서 무엇을 깨닫고 반성했나지.]
<그럼 현자님 없애고 좀 깨닫고 반성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싸움이 오가던 와중,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레오나르도, 너에겐 또 사과해야할 것이 있구나.”
“사과요?”
“왕국기사단이 직접 체포하는 걸 막느라 소란스러워졌어. 주변 기자들 귀에도 이 소식이 들어간 것 같다.”
그 말을 듣자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설마 제가 살인마로...”
“괜찮다. 그거에 대해선 잘 해명했으니까.”
크리스는 자신있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 말에 안심되긴커녕 조금 더 불안해졌다.
“...혹시... 해명을 누가 했나요?”
“내가 했다만.”
아, 인생 망했네.
참고로 다음 날,
각종 신문 1면의 헤드라인은 이 문장으로 장식되었다.
【13살의 소년, 농담 살해자가 되다.】
「농담 살인술의 비기, 집사장 실신」
《용언을 뛰어넘는 농담 암살기법》
아직
첫날이었다.
***
“우선 방은 이곳을 쓰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오해가 풀린 뒤, 레오는 종자로서 저택에 살게 되었다. 본가가 아닌 구석에 있는 별채였으나, 종자에겐 개인방이 있다는 것 자체가 호화스러웠다.
“자세한 건 내일 알려주도록 하마. 오늘은 일도 많으니 쉬도록.”
“감사히 쉬겠습니다.”
허리가 구부러져라 숙이며 레오는 크리스의 아량에 감사를 표했다. 크리스는 그런 인사를 받으며 가버렸다.
“...하...고단하다...”
오늘따라 하루가 너무 고단했다.
차라리 발록이랑 싸우다 쓰러지는 것이 몇 배는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제부턴 어떡할 거냐?]
<지금은 가문에서 종자로서 인정받아야겠는 게 먼저겠죠.>
집사장님의 실신으로 계획이 조금 어그러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바뀌는 건 없었다.
실력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자리를 쟁취하는 것
늘 해오던 방식이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아리아스필이 주는 자리를 받지 그랬어.]
<호위기사 자리요? 받는다고 누가 납득할까요?>
직위나 직책만 생각한다면 종자는 호위기사보다 아래의 아래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도, 가문도, 직위도 없는 일개 용병 따위가 호위기사를 꿰차면 아무도 곱게보지 않을 것이다.
[하긴, 낙하산 꼴이군.]
<지금도 낙하산이긴 해요. 라인하르트는 종자마저도 귀족 출신이 태반이거든요. 지금도 아마...>
그 순간 울리는 발소리,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뛰어오는 소리였다.
“오는군.”
집사장 실신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일만큼은 확실히 예상해두고 있었다.
콰앙
문을 열다보다 박차는 음성, 그 앞에는 고급 천옷을 입은 아이들이 있었다.
“니가 걔냐?”
맨 앞에 있는 소년이 말했다.
“글쎄요.”
“뭐가 글쎄요야?!”
“그렇잖아요. 이름을 물은 것도 아니고.”
“...아...”
그 말에 그 소년은 잠시 얼을 탔다. 어렸을 때 봤을 때는 조금 무서웠지만, 지금은 그럴 것도 없었다.
“네가 평민 주제에 종자로 들어온 새끼냐?”
이번에는 다른 아이 쪽에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만. 문제라도 있으신지?”
“문제? 허, 있고말고.”
레오는 그 아이들 앞에 서며 그들의 눈을 마주쳤다.
“넌 평민으로 들어온 주제에 선배 종자님들께 인사도 안 하냐!?”
“안녕하세요.”
받아주는 의미에서 허리를 숙였다. 어른으로서 이정도 예절 쯤이야.
“...뭐하는 거냐?”
“인사했잖습니까.”
“...장난쳐? 선배가 우습냐?!”
“딱히 우습진 않습니다. 그랬다면 경어를 사용하지도 않았겠죠.”
아이들의 얼굴이 울그락푸그락하게 물든다. 트집을 잡아서 혼을 내고 싶지만, 정작 트집을 잡을 게 애매하니까 발만 구를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이 야심한 밤엔 무슨 일이십니까?”
“...긴말할 것 없다. 밖으로 나와라.”
“안 됩니다.”
쾅
그러고는 레오는 문을 닫았다.
[이래도 되냐?]
<어차피 다시 열어야 해요.>
말 끝나기 무섭게 다시 문이 두들겨졌다. 기다렸다는 듯 레오는 다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너...! 갑자기 문을 왜...!!”
“나가는 건 안 됩니다. 크리스 님이 휴식을 명령하셨거든요.”
그 말에 현자도, 종자들도 어이없는 시선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저런 시선이야 말로 레오가 원하는 것인 줄도 모른 채로,
“...하...별 미친 새끼를 다 보겠네.”
“크리스 님이 데려온 녀석이잖아. 미친 놈인 게 당연하지.”
상사와 자신마저 동시에 욕하는 기술은 정말 대단했다. 대단한 나머지 면상에다가 박수갈채를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나와. 넌 좀 쳐맞자.”
“...어쩔 수 없군요.”
못 이기는 척, 레오는 그들을 따라 별관을 나왔다. 별관을 나와, 종자들을 따라 걷자 넓은 연무장이 있었다.
연무장은 밤인지라 고요하고 조용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죠? 이 질문만 세 번째인데.”
“니가 라인하르트에 들어와서 뵈는 게 없나본데, 여긴 선배를 하늘처럼 여기는 곳이야. 알아?!”
“아, 예. 낮은 곳에 계시지만 되도록 하늘처럼 모셔보도록 하죠.”
“...아...이 새끼...”
어이가 상실한 건지, 그는 광소를 내며 허리춤에서 칼을 던졌다. 레오는 어렵지 않게 그 칼을 받아잡았다.
“...뭡니까?”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덤벼.”
레오는 바닥에다가 검을 집어던졌다.
“...뭐하는...”
퍼억!!
주먹과 함께, 앞에 있는 남자 종자가 나가떨어졌다.
“끄아아아악!! 뼈가...!! 뼈가...!!”
“거 엄살은. 하늘 같은 선배가 뼈가 부러질 리가 없잖아요.”
“...이 비겁한...!”
다른 종자들도 달려들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덤비는 비겁한 13세 소년을 잡기 위해 평균 16세인 그들은 정정당당하게 검을 휘둘렀다.
짜악!! 타악!! 파악!!
세 종류의 타격음, 그리고 널부러지는 종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차례로 명치, 턱, 인중에 주먹이 꽂혔다.
“끄아아악!!”
“얼굴이...! 얼굴이...!!”
“이...! 이...!! 비겁한 놈아...!!”
바닥에 쓰러진 종자들은 억울하고 분노한 표정으로 원망을 뿜어냈다.
“비겁?”
비겁이라는 말에 레오나르도의 눈이 가늘어졌다.
“와~ 제가 비겁했군요. 몰랐네요. 한 명을 상대로 네 명으로 덤비는데 제가 비겁했네요.”
이번에는 그들이 든 검을 주으며 레오는 말했다.
“이렇게 비싼 칼 찬 상대로 전 맨손으로 덤볐네요. 어쩜 이리 비겁할 수가.”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받았던 검을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검집에서 칼날을 뽑았다.
“그리고 이 칼은...”
레오는 가볍게 칼을 휘둘렀다. 바닥에 살짝 부딪히자 칼이 부러졌다.
“이미 금이 간 칼이었는데, 제가 쓰지 않고 덤볐네요. 천하가 공노할 비겁함이다~ 그죠?”
“...이 개자식아...!! 너 이러고 멀쩡할 것 같아?!”
협박이라, 너무 전형적이여 이젠 웃기도 힘드네.
“아리아스필!! 그 가주님 딸 좀 꼬셨다고!! 뭐가 좀 되나 본데! 넌 평...”
한 문장, 단 한 문장에 공기가 뒤바뀐다. 어떤 욕에도 미소를 유지하던 레오였다.
하지만 그건,
“...야, 벡터, 헤럴드, 제이, 카시운.”
어디까지나 자신에 대한 욕 뿐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종자들의 표정색이 변했다. 모두 자신들의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우리 이름을...”
미소가 지워지고, 안면의 모든 것이 살기로 채워진다. 레오은 발은 맨 앞에 있는 벡터의 손을 짓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난 너희들이 날 낙하산이라 뒷담을 까든, 입방아로 떡을 치든 상관없어. 알 바도 아니고.”
아까의 태도와는 심히 상반되는 어투, 두려움이 엄습한다.
“근데 말이야.”
그건 아이의 눈이 아니었다.
“...선은 지키자? 언제, 어디서든 아리아스필 가지고 그딴 소리 하면...”
콰앙!!
레오의 주먹이 바닥이 꽂힌다. 얼굴에 조금 스쳤을 뿐인데 피부가 잘리듯 베이고, 충격으로 바닥이 파인다.
“내가 죽여버릴 테니까.”
하지만 레오의 경고에 종자들은 전신이 축축해지는 걸 폐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공포를 확인한 뒤, 레오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레오나르도.]
<알아요. 애들인데 과했다는 거. 그래도 가주의 딸을 욕했는데, 버르장머리는 고쳐...>
[너 진짜 마음 없는 거냐? 아니면 마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거냐?]
뭔소리지? 주어가 없으니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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