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7화 (7/248)

EP.7 라인하르트-2

아리아스필은 주먹을 맞받아치며 말했다.

“일어날 수 있어?”

“...뭐?”

“언제 일어날 수 있냐고?!”

외침에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리며 말했다.

“8초만 더 있으면 돼!”

오러는 거의 다 모이고 있었다. 8초만 더 있다면 일어서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알았어.”

“우워어어어!!”

하지만 가능할까.

그녀의 실력으로, 발록을?

[지금은 믿어봐.]

“네...?”

[네가 목표로 한 여자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8초의 찰나, 현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네요.>

아리아스필, 자신이 목표로 했던 정점.

정점이 여기서 꺾일 리가 없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정점인 그녀에게 도달하기 위해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헉...헉...!”

하지만 버티기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발록이 내뿜는 열기만으로도 숨쉬는 것조차 벅찼다.

“크뤄어어어어!!”

접전이 이어지던 와중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레오나르도에 비하면...!’

검을 옆으로 비끼며 주먹을 흘려내었다. 하지만 그건 당장의 방어밖에 되지 않았다.

부웅!

이어지는 꼬리의 공격은 막지 못했다.

‘...이건 못 피해...!’

아직 8초까지 되지 않았다.

닿는다. 스친다. 맞는다.

죽는다.

서걱!!

“...빚은 갚았다.”

통보와 함께 소년은 꼬리를 검으로 잘라내었다. 그 참격에 발록은 당황해하며 뒤로 조금 뛰었다.

“...레오나르도...?”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하자.”

레오나르도는 이미 일어났다. 4초 만에.

“나랑 저 괴물 목 좀 따자. 나 혼자선 무리야.”

“...발록을...?”

발록을 이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와이번을 이긴 것도 해츨링도 아닌, 갓 깨어난 새끼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으니까.

‘...왜지?’

하지만 이번에도 가슴이 뛰었다.

“무리냐? 그럼...”

죽음의 무서움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큼 두근거렸다.

“...아니.”

아리아스필은 웃으며 검을 들었다.

“할 수 있어.”

“...고맙다.”

레오나르도도 어째서인지 웃고 있었다.

“작전은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발록이 돌진했다. 대응을 위해 아리아스필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자식 오른 손목은 내가 분질러놨어. 꼬리도 마찬가지고. 시선은 내가 끌테니까...”

“왼손을 잘라달라는 거지?”

천재답게 이해가 빨랐다.

“그럼 나머지는 내가 할게.”

“...알겠어.”

발록은 이미 100m 이내로 접근했다.

“이기자.”

“응.”

두 마디를 시작으로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두 기사는 각자 맡은 역할 따라 양방향으로 갈라졌다.

“크루어어어어!!”

발록은 두 기사를 쳐부수기 위해 포효했다. 남은 왼손으로 주먹을 내리치며 발록은 분노를 표출했다.

“이쪽이다. 타다 만 오크야.”

평소와 다른 공격적인 돌입, 그 테세의 전환에 발록의 주의는 레오나르도에게 향했다.

“어디 쳐봐! 새꺄! 찌그러진 면상 완전히 분질러놓을 테니까!”

[근데 발록이 도발을 알아듣냐? 보통은 그 정도 지능이 없을텐데.]

거 분위기 파악 못하시네.

이럴 땐 아무 말이냐 씨부려야 용기가 나는 법...

“우워어어어어!!”

왠지 도발을 알아들은 건 기분 탓일까?

[아, 알아들었네.]

알아들었구나. 망했네.

쿠웅!! 콰앙!!

연속적으로 공격이 일어나며 바닥에 구덩이가 패였다. 아마 한 대라도 맞으면 저 모양대로 찌그러지겠지.

하지만

‘하던대로. 공격의 궤적을 유도시킨다.’

레오는 이런 격전의 전문가였다. 한 팔과 갈비뼈가 부러진 채로 적에게 싸워 승리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지금!!”

왼팔의 움직임이 커진 순간, 레오는 외쳤다.

스릉

발도와 함께 그녀의 검이 휘둘러졌다. 왼팔이 발도의 시작으로 베여나갔다.

“우워어어어어!!”

고통으로 나오는 포효, 입가에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늦었어...! 브레스가...!‘

”우어어어!!“

발록과 같은 포효, 하지만 이 소리는 레오가 낸 것이었다.

목청을 감싼 돌진이 시작되었다. 검을 내민 채로 레오는 발록의 가슴팍을 찔렀다.

[그만둬!! 그거론 못 죽여!!]

그 말대로, 저런 찌르기로는 발록을 즉사시키는 못한다.

이대로 브레스가 나온다면 레오는 바로 재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레오의 검에서 마나가 뿜어졌다.

오러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부드럽고, 복잡한 형태의 진이 마나로 그려졌다.

[그건 안돼!! 지금 냉기 마법으론!!]

레오는 아직 마법의 재능이 개화되지 않았다.

일주일 사이에 간신히 1서클 마법 정도는 쓸 수 있게 됐지만, 그 수준으로는 화재에서 물컵을 붓는 것과 다름없었다.

[붉은색...?]

하지만 레오는 냉기 마법을 쓸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와 상반되는 마법, 화염계통의 마법을 전개시키고 있었다.

‘발록은 새끼 한정으로 약점이 하나 있지’

비집은 검날 틈으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새끼 발록의 약점, 그건...

‘어린 발록은 아직 전신에 화염 내성이 없어. 새끼 때 불꽃이 나오는 건, 호흡기, 목구멍 뿐이니까.’

성체 발록이라면 전신의 구멍으로 불을 뿜어내는 것도 가능했지만, 눈앞의 발록은 그게 불가능했다.

그 증거로 여태까지 발록은 입으로만 불을 내뿜었다.

‘그러니까 가슴팍에 있는 화염 주머니를 강제로 불을 대면...!’

설명의 답은 바로 나왔다. 폐 부위에 있는 발화 주머니에 불이 붙자 발록 전신에 불이 뿜어져 나왔다.

'특제 폭탄이 되지...!!'

발록의 입가에서 피와 함께 검은 연기가 토해져 나왔다.

”우웍!?“

”더럽게 뜨겁지? 터지도록 뜨거울 거다.“

마법이 완전히 전개되었다.

[파이어 볼]

화염구가 체내의 화염 주머니를 집어삼켰다. 그건 마치 화약통에 집어던져진 횃불이나 다름없었다.

”워...?!“

퍼어어어엉!!

성대한 폭발이었다. 발록의 살점이 전방향으로 튀며 폭발이 일었다.

”끄악!!“

폭발의 충격으로 레오도 함께 나가떨어졌다.

발록의 몸이 폭발을 감쌌기에 화염에 맞진 않았지만, 지금 레오는 충격을 완벽히 견딜 만큼 몸 상태가 건강하지는 않았다.

”레오나르도...!!“

그 폭발을 눈 앞에서 지켜본 아리아스필은 떨어진 레오에게로 뛰어갔다.

”괜찮아?! 안 죽었어!?“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 없다.

그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두근거렸던 가슴이 가라앉는다.

소년이 아무 말도 없이 누워있자 가슴이 떨린다. 권태로움도, 두근거림도 없었다.

단지 불안했을 뿐.

”제발...! 제발 죽지 마!! 정신 차려!!“

소녀는 소년을 깨우기 손바닥을 날렸다.

짜악!!

”우아악!!“

근데 레오는 안 죽었다. 그러니까 비명을 지르지.

”괜찮아!?“

”넌...사람... 면상에다가 싸다구 날리고 괜찮냐고 묻냐!?“

”다행이다... 괜찮았구나...“

”아니, 안 괜찮다고! 난 아까부터 안 죽었어! 기절하지도 않았고!“

단지 피로감 때문에 대답이 늦어졌을 뿐이었다.

[오해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에잉~ 쯧쯧!]

”당신은 좀 닥쳐!! 이것들이 다 죽어가는 사람한테 못하는 게 없어!“

“...미...미안. 닥칠게.”

윽박에 죄책감을 느낀 건지 아리아스필은 고개를 숙이며 눈을 내리깔았다.

“아...아니...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니고...”

[걱정해준 여자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구먼. 나때는 말이야. 여자한테...!]

<닥쳐. 책으로 여자 배운 양반아.>

[뭐 임마?!]

이젠 오러로도 말할 수도 없었다. 아까 쓴 화염 마법과 폭발을 방어하는 쓴 오러로 이미 마나는 동이 나버렸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래도 이 말은 하고 쓰러져야 했다.

“...어?”

“...너 덕분에 이길 수 있었어. 그러니까 안 미안해도 돼.”

“나도... 고마워.”

훈훈한 건 좋은데, 가슴이 훈훈하다 못해 타죽을 것 같네.

“...고마우면 의사 좀 불러주라. 지금 간신히 참고 있는데 갈비뼈 3개는 나간 것 같거든.”

“아, 알았어!”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며 의사를 찾으려고 했다.

그때,

‘...뭐지? 이 마나는...’

깊고도 농밀한 마나가 공기를 통해 폐부로 전해졌다. 예전에도 이 기운을 느낀 적이 있었다.

“설마...”

그 여자가 온 건가? 이곳에?

‘근데 왔으면 상식적으로는 도와줄 텐데.’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 인간이라면 안 도와줄 만도 하다. 워낙 상식이라는 게 없는 인간이여서.

“...고모?”

아, 왜 불길한 예상은...

“...고모라고 부르지 말라 했을텐데, 호칭에 대한 정리가 부족했나보군.”

빗나가질 않을까...

눈 앞에는 상복을 넘어서 그림자로 의심될 만큼 검은 옷으로 몸을 두른 여성이 걸어왔다.

[누구냐? 저 저승사자는?]

오러가 안 나오니 최대한 작게 입으로 대답한다.

“아리아스필 고모요. 그리고... 아 됐다. 직접 듣는 게 나을 겁니다.“

안 그래도 손가락에 골절 오기 직전인데,  그딴 말을 씨부리면 반대 방향으로 오그라들며 완전히 꺾여버릴 거다.

“훌륭한 전투였다. 소년. 같은 전사로서 경의를 표하지.”

그냥 ‘꼬마’ 정도로 말하면 될 걸, 굳이 ‘소년‘이라고 호칭을 정하는 여자는 한 사람밖에 못 봤다.

“...”

“내 소개가 늦었군. 난 라인하르트의 그림자 속에서 가문을 지탱하는 기사, 크리스 라인하르트다. 이명은 ’흑암’이지.”

안 그래도 출혈로 멀미가 나는데, 이젠 멀쩡한 정신마저 어질거리기 시작했다.

현자의 표정도 뒤통수를 방망이로 난타한 듯, 골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의 이름은 뭐지? 이명이 있다면 같은 전사로서 듣고 싶군.”

아, 대답은 해야되는데 진짜 대답하기 싫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니가 미쳐서 환각을 보는 거냐? 아니면 그냥 쟤가 미친 거냐?]

...아 몰라요. 그냥 싸대기 맞고 기절하래.

그대로 레오는 바닥에 널부러졌다.

가급적이면 정신에 혼란이 와서 착각한 거이길 바랬다.

***

[야...]

[레오나르도...]

[일어나... 제발...]

애 없는 늙은 홀아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오늘따라 너무 애절해서 차마 무시하기 미안하다.

“...무슨 일인데요...”

[저 여자, 3시간째야. 3시간째.]

현자는 손가락질로 크리스에게 가리켰다.

<대체 뭐가 세 시간째인데요?>

대강 감은 잡혔지만,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물었다.

[너에 대해서 니 라이벌한테 계속 물어보고 있는데, 질문 내용이 저세상 출신이여.]

이미 저세상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건 이상했지만, 왠지 모르게 크리스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뭐라고 물었는데요?>

[처음에는 이름이니, 나이니 그런 걸 묻다가 운명을 느낀 건지 이명은 있는 건지 그딴 지랄 맞은 걸 묻잖아.]

“하...”

깨어나자마자 개꿈 같은 소리를 들었다. 입 밖으로 무겁고 짙은 한숨이 튀어나온다.

“일어난 건가? 소년?”

거추장스러운 검은 망토를 굳이 실내를 휘두르며 크리스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네, 일어났습니다.”

가급적이면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강한 몸을 지녔군. 업화의 괴수를 상대로 치명상을 입었으면서 당일날 일어나다니.”

그냥 발록이라고 해줘요. 제발.

“...단련을 열심히 했으니까요.”

“음, 기본에 충실했군. 거대한 비석도 단단한 초석을 기초로 쌓아올리는 법이지.”

맞는 말인데 왜 맞장구가 치기 싫을까.

“...절 치료해주신 거죠? 감사합니다.”

우선 도와주긴 했으니까 감사 인사는 해야겠지.

“우리 가문의 혈육을 도왔으니까. 당연한 대우다. 그 이상으로 훌륭한 전사에게 경의를 표한 것도 크지만.”

어... 집은 없지만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어.

병실을 돌아보니 옆에는 크리스 말고도 아리아스필도 있었다. 아리아스필은 손에 물수건을 쥔 채로 침대 위에 곤히 자고 있었다.

“아리아는 지금까지 널 간호해줬다. 의사와 사제가 직접 하겠다고도 말했지만, 직접 해주고 싶다더군.”

그건 솔직히 감동이었다. 발록과 싸우다 쓰러진 게 그렇게 미안했나?

“...으음...? 레오나르도...?”

감긴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떠졌다.

“잘 잤냐? 몸은 어때?”

“레오나르도!”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다...”

“운이 좋았던 거지. 새끼여서 다행이었어.”

그런 그녀와 안심의 회포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아가씨!!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하드였다.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다 온 건진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감이 왔지만, 레오 본인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제하드로군.”

“...흐...흑! 흑암님!”

용케 저 호칭을 입에 담는군.

직접 하려고 하면 혀에 경련이 나던데.

“많이 늦었군. 안 그런가? ‘호위기사’?”

“죄...죄송합니다! 민간인 대피 때문에...!”

퍽!!

제하드의 얼굴에 정권이 날아갔다. 정권을 맞은 제하드도 날아갔다.

주먹을 날린 사람은 라인하르트를 지키는 어둠의 기사였다.

“닥쳐라. 넌 이제 라인하르트의 기사가 아니다. 우리 가문을 입에 올리기엔 너의 격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으니까.”

“그게... 그게...! 무슨...!”

너무 말뜻이 어렵죠? 간단히 해석해볼까요?

“해고됐네요.”

[그래도 나름 복지는 좋네. 저렇게 고급스럽게 해고 통보도 해주고.]

그래서 레오가 5년을 넘게 종자로 일했던 것이었다.

아님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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