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회귀-4
“...괜찮냐?”
갑자기 아리아스필이 나무 뒤에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설마 아까했던 미친 짓도 다 봤나?
[그러게 누가 고자라고 하래?]
“알겠으니까 닥치세요! 좀!!”
고자여서 그런가? 무슨 현자라는 놈이 이해심이 지 손톱만도 못해?!
“...어어...? 미안...”
레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그녀는 사과를 했다. 아리아스필 눈에는 ‘괜찮냐’라고 묻고 바로 닥치라고 한 꼴이겠지.
“아, 미안. 너한테 한 말 아니야.”
“뭐...?”
“몸은 어때? 안 다쳤어?”
미친 행동을 숨기기 위해 최대한 태연히 물었다.
“어, 괜찮아.”
아리아스필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손목 너머로는 그녀의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저렇게 말해도 이렇게 강해도, 그녀는 13살 겨우 먹은 어린애였다.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며 레오는 그녀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미안, 너무 수련에 집중하느라.”
“수련...? 그게...?”
아련하게 아까 했던 행동이 떠오른다.
굳이 회상할 것도 없이 난장판이 된 주변만 돌아봐도 그 광기를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미친 놈이었지. 그건.]
누구 때문인데, 저 늙은이가
레오가 너무 과하게 흥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의 입장에서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늙은이 귀신이 자신의 몸을 본인 얼굴에다가 겹쳐놓은다고 생각해봐라.
그것도 통짜 형태가 아닌, 내부의 오밀조밀한 장기까지 완벽히 구현됐다면?
밥 먹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토는 쏠릴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으윽, 특히 콩팥이...’
그땐 하필 고기 콩 볶음을 먹고 있었다. 단백질 보충하려다가 오히려 다 토해버렸지.
“...그렇게 화를 내는 수련법은 처음 봤어.”
레오도 처음 해봤다. 다신 해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게... 그러니까 이건 사정이 있었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지가 존엄하지도 않으면서.]
진짜 죽여버릴까. 이미 죽은 놈인데.
“...어! 어쨌든 이럴 생각은 진짜 없었어! 정말 미안해!”
늙은이에게 받은 화를 삭이며 레오는 아리아스필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그녀였으니까.
“...괜찮아. 안 다쳤고, 멋대로 온 것 나니까.”
“근데... 왜 온 거냐?”
대련 날짜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약속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을 텐데, 그녀는 지금 찾아왔다.
“...그건...”
아리아스필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왜 왔지...?’
그녀 본인도 이유를 몰랐으니까.
심장의 고동에 이끌려 와보니 이곳이었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말하면 분명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그... 네가 한 특이한 수련법이 궁금해서...”
“...수련법? 설마 아까 그거?!”
레오는 아까의 광기를 떠올렸다. 그런 미친 짓에 관심을 두는 건 정신건강에 심히 위독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한 아리아스필은 고속으로 고개 저었다.
“그거 말고! 마나수련법!”
“아... 마나체련술 말하는 거였어?”
그 이름에 현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나체련술? 그렇게 이름 지었어?]
레오는 입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작명센스는 구리지만... 대충이라도 이름은 있으면 좋잖아요.”
[아니, 그런 것치곤 괜찮은데. 내가 가르친 거엔 체련은 없지만.]
“혼자서 뭐라고 하는 거야?”
그래도 중얼거린 만큼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은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야지, 이대로 가면 진짜 미친놈처럼 보일 것이다.
“...아니, 그냥. 난 혼잣말이 많아서.”
“그렇구나. 특이하네.”
다행히 그렇게 넘어가줬다.
“...그런 수련은 처음 봤어. 우리 가문에서도 그런 수련법은 없었어.”
그 말에 현자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역시 루벤의 후손이구만! 기껏 기회를 준 어떤 멍청이랑은 달라!]
기분 탓 아니네. 입꼬리가 올라가다 못해 수직으로 꺾여 상승하고 있었다.
“인성은 조금 모자라지만, 좋은 스승님을 뒀거든.”
[응, 아니야.]
아, 정말 아니네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모자라시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아리아스필은 레오가 든 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뭘 의미하는지, 레오는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기왕 온 김에 같이 수련이나 할래?”
“...수련?”
수련이라는 말에 무표정한 아리아스필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검이 없는데...”
“그럼 이거라도 받아.”
검이 없다는 말에 레오는 반대쪽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내밀었다.
“싸구려긴 하지만 쓸만해.”
평생 유명 대장장이가 만든 검만 써온 용사 가문의 영애님께는 시원치 않은 검일 테지만, 레오에게 있어서는 나름 괜찮은 축에 속하는 무기였다.
“...고마워.”
“뭐?”
이상한 기분이었다.
레오는 그녀 가문의 종자로 살면서 감사 인사를 그리 많이 듣지 않았다. 아마 손가락에 발가락까지 합산하면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지.
“...왜?”
하지만 감사 인사를 하는데,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실례였다.
“아...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잘 못 들었나 해서.”
레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며 검을 들었다.
“그럼 시작한다.”
“어. 알겠어.”
그녀도 낡은 검을 들며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저 애 뭐냐?]
그녀의 훈련법부터 보자마자 현자는 턱을 찢어져라 벌렸다.
“천재죠. 진짜 천재.”
아리아스필 라인하르트, 그녀는 레오의 수련을 보자마자 똑같이 마나 입자를 쪼개고 있었다.
아니, 똑같지도 않았다.
‘나보다 곱게 마나 입자를 쪼개고 있어.’
저 정도면 쪼개는 게 아닌, 입자를 갈아내는 수준이었다. 굳이 체련 방식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마나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하지만 그녀가 체련을 시작하자 위화감을 느꼈다.
“...뭐야...”
[뭐가? 왜? 잘하는 거 아닌가?]
잘하는 건 맞았다.
“일반인 수준에선요.”
천재의, 아리아스필의 재능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고작 ‘잘한다‘는 수준으로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싸울 때도 그랬지.'
처음 싸울 때는 어릴 때니까 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로 검술을 지켜보니 문제점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잠깐 스톱.”
“...왜?”
“그게 아니야.”
그 말에 아리아스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자는 잘 쪼갰는데.”
“그거 말고. 검술 쪽 말이야.”
레오는 그녀의 검을 잡았다.
“검술 쪽이 잘못됐어.”
그 지적에 아리아스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평소 자신의 검술에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그녀였다.
가문의 기사들도, 지도기사인 제하드도, 가주인 아버지마저 인정한 검술이었다.
“뭐가 잘못됐는데? 가르쳐준대로 한 거야.”
그런 자신의 검술에 지적하는 것에 화가 났다.
“누가? 그 호위기사가?”
“어, 제하드가 가르쳐준대로.”
인성은 그렇지만, 제하드는 라인하르트 가문에서 인정한 기사였다. 실력과 공적만큼은 다른 가문의 기사들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럼 그게 문제네.”
“...뭐?”
[...뭐?]
현자와 아리아스필은 똑같은 높낮이, 발성으로 물었다.
“...그게 문제라고?”
“어, 문제야.”
레오 눈엔 그건 의심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그게 왜 문제인데?”
“그럼 물어보겠는데, 그 제하드라는 양반하고 너하고 같은 점이 뭔데?”
그 질문에 아리아스필은 잠시 대답하는 걸 망설였다.
“같은....점?”
“그래, 신체적으로 같은 점이 있어?”
그녀는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건...'
아예 없었으니까.
제하드와 아리아스필은 성별, 체격, 신장, 유연성, 근육량, 그리고 재능마저도 달랐다.
“없지?”
“...어.”
“그런 면상부터 발톱 때까지 다른 자식 검술을 똑같이 베낀들 뭐가 의미가 있어? 전혀 다른 케이스의 검술인데.”
스승의 검술을 따라 하는 것, 그건 검술을 처음 배울 때 당연하게 거쳐야 하는 수업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검술에 막 시작한 초보일 경우고.'
검술에 익숙해졌다면 본인만의 요령을, 형태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게 재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말이다.
'하지만 아리아스필은 그러지 않았지.'
그건 아리아스필이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지.
'융통성 없는 건 여전하다니까.'
아리아스필은 너무 우직했다. 늘 규칙이나 규율을 우선시하는 녀석이었지.
그러니까 자신이 배운 지식도 늘 그대로 사용한다. 가르친 방향대로는 누구보다 높게 발전할 수는 있었지만,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 사용하지는 못하는.
[성장력은 미쳤는데, 응용력은 떨어지는구먼.]
절묘한 요약이었다.
'회귀 전에는 분명 그 등신 새끼 잘리고, 더 승승장구했지.'
하지만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자세 잡아봐.”
그 말에 아리아스필은 검을 잡으며 자세를 잡았다.
“...대강...”
레오는 한 손으로 가볍게 그녀의 다리를 잡아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쯤인가?”
“...?!”
갑작스러운 접촉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며 얼굴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다리와 몸만 보고 있는 레오는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막 만져도 돼?]
<괜찮아요. 몇 년 동안 싸우면서 이 녀석 근육이나 뼈 구조 정도는 다 파악해뒀거든요.>
그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레오가 탑이었다.
[그런 말이 아니고...좀 많이 변태 같은데.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어쩌라는 건지. 어차피 이게 흑심을 채우려고 한 거면 그녀 쪽에서 검을 휘두르든, 따귀를 날리든 할 것이다.
[잠깐, 근데 어떻게 입을 안 열었는데 말이 통하지?]
<아, 그거 지금 오러로 말하고 있거든요.>
[뭐? 오러로?]
<마나 보충도 되고, 코어도 어느정도 형성돼서요.>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정도 오러는 뿜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텔레파시가 돼? 오러에는 그런 기능이 없을 텐데?]
<텔레파시는 아니에요. 오러로 진동을 줘서 심장 부근에 작은 소리를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현자의 돌에 울림이 생겨서 소리가 들릴 거라고 생각했다.
반신반의였는데 진짜 성공할 줄은 몰랐네.
[...야, 이러고도 천재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뭐냐? 떨거지? 폐기물? 뭐 그런 거야?]
<지금 앞에 있는 녀석이나 보세요.>
레오는 자세 교정을 끝내고, 손을 뗐다.
“자, 이제 휘둘러봐.”
“...어?! 어어!”
왜 저리 당황해하지? 갑자기 너무 만져서 그런 건가? 근데 그런 거 신경 쓸 녀석이 아닐 텐데.
휘익!
당황해하던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
짧고도 날카로운 음색.
그 일격에 이어지는 길고도 굵은 풍압.
[미친...]
숲의 나무들이 흔들리고,
[뭐야...]
여름철 나뭇잎이 늦가을처럼 낙엽이 되어간다.
그 광경은 폭풍의 등장과 소멸 같았다.
이게 진짜 천재니까.
내가 평생 꺾지 못한
진정한 천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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