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3화 (3/248)

EP.3 회귀-3

“...저게...저게 뭐죠...? 아가씨?”

그 말에 아리아스필은 답답한 마음까지 들었다.

호위기사이자 지도기사인 제하드가 모른다면, 아리아스필 자신도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저런 마나수련법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원리는...’

그렇지만 그녀는 침착히 저 소년의 검술과 마나를 살폈다. 차례로 침착히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뜯어보기 시작했다.

“...마나 입자를 쪼개고 있어.”

“네?”

“자기 주변의 마나 입자를 쪼개서... 자기 몸에 흡수시키고 있어.”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 시원치 않은 소리에 아리아스필은 자신의 목구멍에 깊은 앙금이 묻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하... 우선 내가 말을 걸어볼게.”

“아닙니다. 아가씨!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허락을 받기도 전에 제하드는 레오가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저 조급한 행동이 자신의 무능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는 건, 어린 아리아스필마저 눈치챌 수 있었다.

***

달려간 제하드는 훈련하고 있는 레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보게.”

“...흡...!”

그러나 레오는 검만을 휘둘렀다.

“이보게!”

“핫...!”

대답은 여전히 없었다.

“이봐!!”

“...하...참...”

세 번 연속으로 자신을 부르자 하는 수 없다는 듯, 레오는 수련을 멈췄다.

“무슨 일이십니까?”

“너를 찾고 있는 귀한 손님이 있다. 얼른 따라와.”

“싫습니다.”

“...뭐?!”

거절과 동시에 레오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안 가도 되냐?]

옆에 있는 현자는 수염을 긁적이며 물었다.

레오는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그에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진짜 귀한 손님이면 직접 찾아오겠죠.”

[그건 그렇다만.]

“그보다 현자님은 안 숨어도 돼요?”

[괜찮아. 난 현자의 돌을 지닌 녀석만 볼 수 있거든.]

어쩐지 너무 당당히 있다 했더니 그런 것 때문이었나? 편리는 하겠네.

[근데 저 자식, 모양새로 봐선 평범한 기사 나부랭이는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그 말대로 제하드의 옷차림은 상류 귀족을 방불케했다. 깔끔하고 청결한 갑옷부터 장식까지 있는 검은 그가 소속된 가문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었다.

‘제하드, 예전에 아리아스필의 호위기사였지.’

레오 또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변변치 않은 실력과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가문에서 해고된 기사였지.

“네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보통 귀하든 천하든 손님이라면 본인이 직접 찾아오는 게 예의입니다. 본인이 직접 오라고 하세요.”

가문의 종자가 되었을 때, 그가 저지른 텃세를 생각하면 상당히 신사적인 거절이었다.

“네놈 따위가 상상도 못할 만큼 귀한 분이시다. 얼른 오지 못할까?!”

제하드는 레오의 팔을 붙잡으려고 했다. 아마 힘을 써서 위압을 주려는 수작이었겠지.

팍!

“끄아아악!!”

“손 치워.”

그 팔을 역으로 잡아쥐며 레오는 그를 노려보았다.

[팔을 잡아 조르는데 손을 치우라고 하는 건 어느 나라 방식이냐?]

아, 그건 인정.

레오는 현자의 조언을 받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 이...! 애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굴욕을 참지 못한 제하드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그만해. 제하드.”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리아스필은 그를 멈춰 세웠다.

“아...아가씨?”

“검 집어넣어.”

“하...하지만...”

“검 집어넣으라고.”

그 말에 제하드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집어넣었다.

“호위기사가 무례했어. 사과할게.”

저 사과에 제하드는 입을 벌렸다. 여태까지 아리아스필을 모시며 그녀의 사과를 본 것은 손을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알면 됐다. 애초에 바로 안 간 내 잘못도 있고.”

“이 자식...! 아가씨가 사과하면...!”

아리아스필은 제하드의 고함에 날카롭게 노려봤다.

“끼어들지 마. 제하드.”

“...아...알겠습니다. 아가씨.”

[저 새낀 왜 아까부터 지 혼자 열폭이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인성이라도 좋아야지.

“그래서 온 이유가 뭐야? 시간도 늦었는데.”

“다시 한 번 나랑 결투해. 제대로.”

그녀는 검집에 있는 장검을 잡았다. 필히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방심은 안 한다는 다짐이리라.

“...미안하지만 당장은 거절할게.”

그녀의 눈매가 날카롭게 움직인다.

“...왜 거절하는데?”

“새로운 훈련법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거든. 그걸 완성할 때까지는 대련하고 싶진 않아.”

그 말에 그녀의 관심은 대련에서 레오의 훈련법으로 돌려졌다.

“아까 그 마나수련법?”

“그래, 그거.”

“신기한 수련법이던데. 마나 입자를 쪼개서 피부에 흡수시킨 거야?”

즉답으로 나온 정답에 자연스레 입이 벌려졌다.

[확실히 질투가 날만 하네. 저걸 바로 알아냈어.]

그러니까, 저런 게 진퉁 천재지.

“마나수련법은 한 지 얼마 안 돼서 익숙지 않아. 몸엔 코어도 안 만들어졌고.”

“...뭐? 코어가... 없다고?”

아리아스필로서는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쾌속으로 움직였으면서 마나 코어조차 없다고?

“어쩌다보니. 이 훈련법을 만든 것도 너랑 싸운 뒤였고.”

[어째 훌륭한 스승이 가르쳤다는 건 빼먹은 것 같다?]

이미 죽은 사람 얘기 꺼내면 분위기 갑지기 싸늘해져요.

“...그러니까 당장은 못 싸워. 너 입장에서도 제대로 된 녀석하고 싸우는 게 낫잖아.”

“그건 그렇지만, 정확히 언제 싸울 수 있는데?”

거절을 표하자 그녀의 표정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아직 어린애긴 어린애구만.

“넌 언제 가는데?”

“...늦어도 일주일 뒤에는 돌아가야 해.”

“그럼 그때 싸우자. 마지막 날에. 그거라면 불만은 없겠지?”

레오의 제안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그때 올게.”

“그래. 이제 늦었으니까 가라.”

“아니, 그전에.”

아리아스필은 가기 전에 마지막 질문을 꺼냈다.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넌 이름이 뭐야?”

“...어? 몰라?”

“갑자기 와서 대련하자고 말했잖아. 자기소개도 없이.”

그 말에 옆쪽에 있는 유령의 눈빛이 어이없게 식는 건 기분 탓일까.

[꼬맹아, 넌 어째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남의 집 수호자 때려 부술 때도 그랬지]

아니네. 기분 탓 아니네

“으흠...! 내 이름은 레오나르도야.”

“건방 떨지 말고 성도 말해. 어디서 감히.”

저 양반은 왜 또 발광이야?

[저 정도면 호위기사가 아니 건달 끄나풀 아니냐?]

저 유령 건달 말을 저 호위 건달도 들어봐야하는데.

아, 아깝네.

“없는 성을 어떻게 말합니까?”

“성이 없어?”

“애비가 없어. 그러니까 성도 없고.”

[어머니 쪽은?]

어머니 쪽은 성을 물려주지 않았다. 그리 당당히 치켜들 성은 아니라나 뭐라나.

“그러니까 난 그냥 레오나르도다. 없는 애비 만들어줄 거 아니면 토 달지 말고요.”

“...그래, 알았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여관 터를 걸어나갔다.

“...내 소개를 안 했네. 난 아리아스필 라인하르트야.”

뒤를 잠깐 돌아보며 그녀는 말했다.

“아...! 아가씨! 여기서 성을 대시는 건...”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하드는 슬쩍 레오나르도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건방 떨던 꼬맹이가 용사 가문 앞에서 얼마나 비굴하게 굴지도 궁금해 참을 수 없었으니까.

“어, 그래. 라인하르트, 밤길 조심해서 가라.”

근데 그건 애저녁에 놀랐다. 10년도 더 전에.

그 말에 어안이고 어이마저 쓸개 빠지듯 빠진 제하드였다. 아리아스필은 개의치 않고 갈 길을 갔다.

[갔구만. 근데 라인하르트? 그 용사 가문이냐?]

“예, 그 용사 가문 맞습니다.”

[어쩐지 루벤 그 꼬맹이랑 닮았다 싶었는데, 후손이었구먼.]

“예?”

루벤 라인하르트, 300년 전, 초대 용사의 이름이었다.

설마 저 말은...

[아, 말 안 했나? 루벤 그 꼬맹이도 나한테 마법 배웠거든. 제법 똑소리는 났지.]

“...아...”

레오가 모시게 된 스승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이제야 이 현자님께 존경심이 생기냐? 그렇겠지! 난 존재 자체가 천연기념물이자 전설인...!]

“...사람이 어떻게 300년 동안 고자로 살 수 있지?”

어떻게 인간에게 그게 가능할 수가.

정말 대단했다.

[진짜 죽여버린다.]

안타깝게도 못 죽였다카더라.

***

이상했다.

분명 처음 봤을 때는 그저 그런 용병이었다.

못하면 삼류, 괜찮으면 이류 정도의 재능밖에 없는 그런 용병.

하지만 한 순간의 눈빛이 뒤바뀌었다.

전에도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

그녀의 조부.

마르켄 라인하르트의 눈과 비슷했다.

평소에는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운 기운만이 흘러나왔지만, 검을 잡을 때만큼은 수라를 연상케했다.

수라의 눈,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저 아이는 그 경지에 도달했다.

‘...분명 마나 코어도, 성이 없다고 했지...’

분명 그는 가문조차 이름없는 용병일 것이다. 관심이 가는 건 출신과 혈통에 상관없이 뛰어난 실력이었다.

아무 재산도 없이, 아무 환경도 없이,

어떤 가족도 없이, 어떤 스승도 없이,

레오나르도는 그 경지에 올랐다.

재능만 놓고 보자면 천재라고 불리는 자신보다도 뛰어날 것이다.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왜지...?”

그 소년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분, 여태까지의 모든 인생이 권태롭다고 느낄 정도로 뜨겁고 가슴 뛰는 감정이 흘러넘쳤다.

‘...제하드한테 물어볼까...‘

그 생각은 바로 접었다. 늘 느꼈던 거지만 제하드는 자신이 아는 기사 중 가장 믿음직하지 못한 기사였다.

’그럼 어떡하지?‘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

그녀의 발걸음은 이미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것도 마나로 발소리를 지우면서까지 조심히 여관을 나섰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런 행동도, 일탈을 부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가슴이 뛰고 있어...!‘

그 소년에게로, 그 소년이 있는 장소로 갈수록 가슴의 고동이 빨라졌다.

부웅!

가까이 갈수록 바람 소리가 거세진다.

분명 레오나르도 본인이 검을 휘두르는 소리일 것이다.

“야이! 영감탱이야!!”

그 뒤로 레오나르도의 목소리도 들렸다.

부웅!! 파앙!!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든다고!!”

레오나르도는 마치 미친 것처럼 허공을 검으로 휘둘러대었다.

“할 짓이 없어서 밥 먹을 때 사람 내장 구경시켜주냐?!”

알아먹지 못할 소리를 연발하며 레오는 검으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가 왜 당신 몸속을 봐야하는데?! 없는 돈으로 산 고기 다 토했잖아!!”

저렇게 노발대발하면서도 대단한 것은, 저러는 와중에도 마나수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장기자랑하고 싶으면 아예 반으로 갈라주랴!? 스승님아!?”

외침과 동시에 레오나르도의 검에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마나가 극한으로 압축된 검은 횡으로 베여졌다.

콰아아앙!!

눈앞에 있는 거목이 단숨에 베였다.

“...어?”

그 거목이 베이자 나무는 아리아스필 쪽으로 떨어졌다.

’빨리...!‘

그녀는 옆에 찬 검을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검이 없어?!‘

급히 나오느라 검조차 챙기지 않았다.

쿠웅!!

나무 몸통이 떨어지며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어...어어?”

아리아스필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천재라 할지라도 무기도, 자세도 없이 대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치지 않았다.

“...괜찮냐?”

레오가 그녀를 두 팔로 안은 채로 피했으니까.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빨라진다.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