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 외전1
한 남자가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옷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으며, 자잘한 상처들도 보인다.
꼴은 그랬으나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의 존재감.
“내가 지시한 일은 끝냈더냐.”
“주인이시여. 지금 참가자들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경쟁하기 위해 모이고 있나이다.”
종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영광? 영광은 개뿔. 내가 외곽까지 직접 나서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너희가 일을 똑바로 했다면, 지금쯤 편히 쉬고 있을 텐데 말이야.”
“이번엔 믿어 주시옵소서. 변방의 땅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100명을 뽑았나이다.”
“그래. 참가자들은 직접 내가 보도록 하지.”
사내는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몇 발자국 걸어 나오자 덩치가 체감이 되었다.
저 아래에 엎드려 있던 종들은 겨우 무릎 근처에나 올까 말까.
쿵쿵쿵!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땅이 울린다.
사내가 밖으로 나와 거대한 홀로 나갔다.
드르르륵! 쿠우웅!
커다란 문이 열린다.
그곳에는 100여 명의 남녀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종들보다 더 작았다.
사내의 발가락 정도 크기.
우어어어!
모여 있던 사람들이 휘청거렸다.
꺼어어억!
거대한 사내를 바라보려던 사람은 존재감에 졸도를 했다.
사내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딴 놈들을 무슨 후보라고!”
한숨이 절로 나올 것 같다.
아마 여기서 뽑힌 후보도 얼마 버티지 못할 듯싶었다.
“왜 아직 시작하지 않고 있지?”
“그게…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주인이시여.”
종이 다가와 굽신거렸다.
사락사락.
종이를 넘기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종들.
“아아… 아직 한 명이 오지 않았나이다.”
“좋다. 기다리지.”
사내는 커다란 홀 한쪽에 있는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그는 팔을 턱에 괴고 무표정하게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히 엄지발가락만 한 사람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아직 인가?”
“주인이시여. 조금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길어도 10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옵니다.”
“10년이라. 차나 한 잔 하면서 기다려야겠어.”
“금방 대령하겠나이다.”
# <리안력 1년.>
율 대륙은 통일되었으며 모든 길은 롬으로 통했다.
“도대체 이 많은 물자를 어디에 쓰려고.”
“그러게 이제 우리 롬 제국을 상대할 국가가 없지 않나?”
“이놈들. 뭘 그렇게 뭉그적거리느냐!”
황제의 직송 상단의 상단주인 밀라노정은 직원들에게 호통쳤다.
황제의 명을 따라 각지의 물자들을 비축하는 중이었다.
# <리안력 2년>
이벨 왕국의 공주 므요와 레온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펼쳐졌다.
장소는 이벨 왕국의 수도로 리안이 직접 방문하였다.
징징징징~~ 지리리링~ 지징~
수도에는 요사스러운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노랫소리에 맞춰 신랑인 리안이 입장했다.
처음은 적응을 하지 못했던 시민들도 즐기며 환호했다.
와아아아!!!
“소리 질러~!”
흐리아 민이 기타를 치며 하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와아아아~!!!”
주례를 보는 교황은 리듬을 타며 신랑 신부를 기다린다.
다만, 조금 특이한 것이 교황이 어려 보인다는 것. 그리고 여자였다.
정체는 다름 아닌 전쟁 신 사제 세이나였다.
“두 분. 잘 어울리네요.”
신랑과 신부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누님도 교황복이 잘 어울립니다.”
“고마워요. 폐하가 아니었다면, 전쟁의 신 주교가 교황이 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아니. 전쟁의 신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겠죠.”
세이나는 리안에게 감사를 표했다.
“자. 얼른 해치우고. 신혼여행을 가야죠.”
전쟁의 신을 모시는 사제답게 결혼식도 속전속결이었다.
의식을 치르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마 모든 종교 중 가장 결혼 의식이 짧을 것이다.
펑펑펑!!!
신랑과 신부가 키스를 하자 군함들이 예포를 쐈다.
하늘에선 꽃가루가 내려왔다.
와아아아!
수십만의 하객들이 함성을 질렀고. 다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시작된 축제는 3일간 계속될 예정이란다.
슈아아아! 첨벙.
조선소 쪽에서 배 한 척이 바다에 빠진다.
일반적인 모양은 아니었고. 길고 납작한 모양이었다.
크기는 일반 전함의 열 배는 족히 넘을 듯 보였다.
우우우우웅~!
하늘에서 꽃가루를 뿌리던 비행기들이 배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특이하게도 프로펠러와 같은 엔진이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크기도 작았다.
“갈까요? 부인?”
“네에.”
신랑과 신부가 항공모함에 오르자 곧바로 출항했다.
열 척이 넘는 신형 전투함들이 호위로 따라나섰다.
# <리안력 4년>
율 대륙의 행정수도 보헴 왕국.
그곳에는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애~ 응애~
그런데, 한 명의 소리가 아니었다.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자세히 들어보면 세 명의 소리가 겹쳐 들렸다.
롬 제국의 황후가 이란성 세쌍둥이를 임신한 것이다.
“감축드립니다. 폐하!”
봄의 여신 이스터가 축복을 단단히 내려 준 모양.
후계자가 태어나자 율 대륙은 일주일간 축제를 벌이기로 했다.
# <리안력 5년>
남신대륙의 정글 아마존.
수인들로 우글거리는 곳. 발전한 문명의 힘으로도 그곳을 점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련님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가 있을까요?”
“여력이 없잖아.”
범행성적. 동시다발적인 개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력과 물자들이 분산된 상태.
율 대륙을 통일했기에 어찌 보면 쉬운 일이었지만, 어찌 보면 노가다에 가까운 인내가 필요했다.
개척이나 복속을 시켜 놓으면 반란을 일으키기 일쑤 또는 예기치 못한 재해나 재앙이 그들을 덮치기도 했다.
내정이 함께해야 하는 통치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저만 보내셔도 되는데.”
“너만 보내려고 해도 병력이 너무 적어.”
샤로트는 대기사 상급의 실력자다.
통솔력도 높고 전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일반적인 전장의 일반적인 전투라면 리안이 친정을 하나 그녀를 보내나 효율을 비슷하게 빠질 것이다.
오히려 총지휘관이 최전선에서 싸울 수 있기에 샤로트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이런 오지를 개척할 필요가 있나요?”
샤로트는 리안이 세계를 정복하겠노라 외쳤을 때 야호! 라고 외쳤지만, 막상 계획이 실천되자 실망했다.
대군이 강렬하게 세계를 휩쓸고 다닐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느리고 소소했으며 지루했다.
“점령지의 민심을 위해서지.”
가장 어려운 것은 점령을 유지하는 것.
종교, 사상, 철학, 각자의 욕심들.
“세상의 진귀한 약초의 30%가 여기에 있으니까.”
리안은 식민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하려는 것이다.
성동을 피하기 위해선 백성들의 삶의 질을 예전보다 높여야 한다.
의약품도 그중 일부다.
‘보상은 챙겨야지.’
아직 이 세계가 게임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매우 힘든 일도 아니고. 불이익이 오는 것도 아니니 일종의 보험.
세계인에게 문명의 혜택을 나눈다는 나름의 소소한 보람도 있다.
“그럼 진군한다.”
약 1,000여 명의 병력이 아마존으로 들어갔다.
롬 제국의 황제가 이끈다고 하기엔 너무도 조촐한 병력.
다만, 근위대에서 차출해 온 것이기에 정예 중의 정예였다.
“정말 이 병력으로 괜찮겠어요?”
“걱정하지 마. 야수왕만 잡으면 끝나. 그리고 이 근방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흉이기도 하지. 피해가 커지기 전에 그놈을 처리하는 것이 남신대륙의 백성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고.”
최초의 수인족 야수왕.
그 녀석의 나이는 추정이 불가하다.
“네? 원흉이요?”
“수인족과 수인족 사이에는 수태가 불가능하거든. 암컷은 남자 인간에게서. 수컷은 여자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지.”
수인족들은 종족 번식을 위해 남신대륙에서 사람들을 납치해 아마존으로 끌고 갔다.
그들을 토벌하고자 해도 열대우림의 기후 때문에 쉽지 않았다.
인간이 그들을 정글에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 계속된 남신대륙의 실종 사건은…….”
“경쟁에서 밀린 약한 수인놈들은 아마존 주변이 아니라 먼 곳까지 이동하지.”
남신대륙의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놈들이다.
워낙 조심성이 높아서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아. 그래서 병력이 적은 거군요. 그런데, 그게 사실이면 사태가 훨씬 심각한 것 아닌가요?”
“맞아. 시간을 주면 놈들의 개체 수가 급격하게 늘어 날 테니.”
수인족은 인간과 달리 성장하는데, 5년도 걸리지 않는다.
종류에 따라서는 3년 만에 성체가 되는 녀석들도 있고.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의 번식욕은 상상을 초월한다.
“겁이 많은 녀서들이라면서요.”
“수인왕의 저주 때문이야. 그놈만 사라지면, 수인들도 인간들처럼 생활이 가능해져.”
성장 기간도 훨씬 길어지고. 이성도 찾게 된다.
그렇다고 인간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저주로 인한 왕성한 성욕과 빠른 성장이 사라지는 대신 패널티도 사라진다.
인간과 공존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자체 번식도 가능해지고. 혼혈도 가능해진다.
“저한테 맡겨만 주세욧! 내 눈에 띄면 그냥!!”
“그래. 너만 믿는다.”
수인왕은 그다지 강한 녀석이 아니다.
샤로트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심성이 강하기에 끌어내는 것이 힘들어서 문제지.
척척척!!!
리안이 이끄는 병력은 아마존으로 진입했다.
병력의 숫자가 적은 터라 얕잡아 본 수인들이 무리를 지어 공격해 왔다.
타다다당!!
1,000여 명의 근위대 중에서도 정예와 샤로트가 있으니 별 어려움 없이 격파해 나갔다.
다만, 샤로트의 컨디션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목적지에 왔네.”
“뭐 하는 곳인가요? 불길하게 생겼는데.”
그렇게 진격해서 도착한 곳은 거대한 신단이었다.
“번식에 사용된 인간들을 폐기하는 장소.”
“완전 쓰레기 같은 놈들이네요. 수인왕만 잡을 것이 아니라 수인들 전체를 없애 버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들의 이성은 정상이 아니야. 수인왕만 잡으면 총기도 살아나기 시작할 거야.”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롯이 생존과 번식만이 가득하다.
10번 이상 번식과 인신 공양에 성공한 수인만이 이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곳을 100일간 지킨다.”
수인왕을 죽이지 않아도 아마존에 퍼져 있는 5개의 재단 모두를 무력화시킨다면, 수인족 전체에 내려진 저주는 풀린다.
샤샤샤샥!!
수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심성이 많은 녀석들이지만, 제단만큼은 내어 줄 수 없어 보였다.
그럴 것이 수인마다 정해진 제단이 있었기에 그들에겐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타다다당!!!
수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왔다.
전술도 전략도 없는 무분별한 전투.
휘이이잉~!
며칠이 지나자 정글의 축축한 공기는 수인들의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포기하지 않고 멀지 감시서 노려봤다.
“너희는 100일이 아니라 100년을 맞서 싸워도 내게 이길 수 없다!”
리안은 앞으로 나아가 그들에게 외쳤다.
“그러니 여흥을 위해 기회를 주도록 하지. 10명의 전사를 추려라. 이 신단의 규칙에 따라 10명의 전사를 모두 무찌르지 못한다면 물러나도록 하지.”
리안도 딱히 100일이나 이곳에서 밍기적거리고 싶지 않다.
편하고 안락한 궁전을 놔두고 이런 정글에서 보내겠는가.
더군다나 5곳이면 500일이다.
“크르르~ 그게 정말인가? 인간.”
수인중 제법 강력해 보이는 놈이 걸어 나왔다.
말을 또박또박 하는 걸 봐선 최소 30명 이상의 번식과 인신 공양을 성공한 놈일 것이다.
“어차피 너희의 전사 중 한 명의 대전사라도 이기면 1년의 시간은 버는 것이지 않더냐.”
1명이 이긴다면 1년 동안 공양을 하지 않아도 제단이 붕괴하지 않는다.
단. 인간 측 도전자는 100명의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
그 100명은 목숨으로 보증을 서는 것이다.
당연히 100명의 보증인은 타의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보증을 서야 한다는 것이 함정.
“제법 우리에 대해 잘 아는 인간이군. 크르르.”
검은 피부에 동그란 표범 귀를 한 거구의 사내가 의식에 응했다.
그 외에도 강력해 보이는 수인들이 참여했다.
당연하게도 수인 측도 보증인이 필요했다.
100명의 인간 보증인이 신단 한쪽에 섰다.
반대쪽에는 100명의 수인 보증인이 섰다.
“샤로트~ 화이팅!”
신단의 중심에는 당연하게도 샤로트가 섰다.
상대하는 수인은 처음 나섰던 그 흑표범 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