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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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의 군대가 율 대륙의 동쪽에서 스랑 제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는 두 개다.
하나는 트리아 왕국에서 접근하는 남쪽.
다른 하나는 게르 왕국 연합이 있는 북쪽.
스랑 제국군은 병력을 돌려 북쪽으로 이동했다.
“폐하.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스랑 제국군이 이동하는 동안 끝없이 괴롭히는 여진 기병들.
그들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어김없이 치고 빠졌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것들을…….”
율 대륙에 저런 군대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아무리 창의적인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너폴레옹이라 할지라도 저런 건 상식 밖이었다.
“걱정할 것 없다. 저놈들은 그저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벌레 놈들일 뿐이다.”
기병들도 스랑 제국이 진형을 갖추면, 피해가 커진다는 것을 알기에 적당히 치고 빠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피해가 아주 적은 것은 아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스랑 제국군은 계속해서 피해와 피로가 누적이 되었다.
“저기만 넘으면 본국이다. 재정비만 한다면 복수를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어라!”
너폴레옹은 병사들을 다독거렸다.
복수를 한다는 것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전력만 갖추어진다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폐… 폐하!! 저기!”
그때 그들을 막아서는 대군이 보였다.
펄럭!
“저건…….”
노르망 공왕의 깃발.
한때 해적왕으로 이름이 높던 자였다.
“이거였나? 우리를 순순히 보내 준 것이.”
첫 번째 전투에서 계속해서 몰아붙였다면, 스랑 제국군은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여진 기병도 무사하진 못했겠지만.
공멸에 가깝겠지만, 그곳에서 결판이 날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보내 준 것은.
모루와 망치.
한쪽이 버텨 주면 한쪽이 강하게 몰아붙이는 전술.
보병의 가장 기본적인 전투 교리다.
“최대한 버티며 우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다만, 막아선 병력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모루의 역할을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정도.
물론 저곳에는 소드 마스터인 전직 해적왕 거프가 있었다.
“폐하. 소신이 남아서 버티겠나이다.”
그는 다름 아닌 대륙 제일검 가문의 노더 튜더.
수많은 혁명군의 목숨을 앗아 간 인물.
결국 그도 사람이었고 끝없이 밀려오는 적들로 인해 지쳐서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결과 황제를 지키지 못했다.
이후 황제는 처형당했고. 분노한 그를 거둬 준 것은 너폴레옹이었다.
너폴레옹은 혁명군 중 황제의 처형을 반대하는 진영이었기에.
“저를 거둬 주신 것은 이럴 때를 대비한 것이 아닙니까?”
“부탁드립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십시오.”
“어차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갈 땐 가더라도 저놈은 데려가야 스랑 제국을 위해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 말하고는 의 깃발이 달린 창을 어깨에 짊어졌다.
“그대의 이름은 스랑 제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가문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아마 가장 활약한 스랑 제국의 마지막 소드마스터로 기억될 것이다.
전군이 마총으로 무장한 시대가 도래했고. 앞으로는 소드마스터가 활약하기 팍팍할 것이다.
“이노옴~ 해적 나부랭이야. 어디서 왕 행세를 하더냐!”
노더 튜더는 병력을 이끌고 선봉에 섰다.
“아이고. 아직도 안 죽으셨소.”
전직 해적왕 거프는 그를 반겨 줬다.
당연히 속으로는 아쉬움이 생겼다.
‘스랑 제국의 황제는 보내 줘야겠군.’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노더 튜더가 작정하고 군사를 몰아 측면을 치면 길이 열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둑이 터지듯 스랑 제국의 병력이 막을 수 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래. 오늘 신명 나게 한번 놀아 보자.”
“아주 세상 하직하려고 그러오. 그냥 적당히 합시다. 적당히.”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겠구먼. 하하하.”
그렇게 노르망의 군대와 스랑 제국의 선봉이 부딪혔다.
진형에 소드마스터의 진심이 섞이자 엄청난 기파가 형성되었다.
병사들의 개개인이 차고 있는 목걸이가 진동을 했다.
콰아아아앙!!!
역시나 예상대로 노르망의 군대가 망치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찌그러져 들어갔다.
순간적인 충격에 수백 명의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물론 스랑 제국의 선봉들도 그만큼 죽어 나갔다.
상식을 벗어난 초인들의 싸움.
타다다다다당!!!
충돌 이후 서로를 향해 마총을 갈겼다.
소드마스터라 할지라도 정면으로 나서지 못할 정도다.
몇 발의 총알 따위는 무시할 수 있겠지만, 수백 수천 발이 오가는 전장이다.
쓸데없이 총알을 막느라 힘을 빼었다간, 상대의 소드마스터를 상대할 때는 지쳐 버릴지도 모른다.
“노더 영감님을 앞으로 보내자!!! 밀어붙여라!!”
스랑 제국군의 선봉대는 백병전을 이끌어 내기 위해 사격을 하며 노르망 군을 밀어붙였다.
노더 튜더는 묵묵하게 보병들의 뒤를 따랐다.
타다다다당!!!
격전이 벌어지고 모루의 역할을 해야 하는 노르망 군은 한쪽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빠르게 이동한다!!”
스랑의 본대는 그 공간을 따라 빠르게 전장을 이탈해 갔다.
물론 뒤에서는 여진족의 기병들이 폭풍처럼 덮쳤다.
우르르르!!!
전장은 완전히 서로 엉켜 개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상당수의 스랑 제국군이 희생되었다.
“착검!!”
이내 백병전에 돌입했고. 근접전이 펼쳐지며 마총으로 화망을 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초인들의 시간이 되었다.
사가가각!!
대륙 제일검 노더가 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대여섯 명씩 썰려 나갔다.
그러면서도 달리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
꼿꼿하게 거프를 향해 나아갔다.
“이노오옴~ 해적 놈아. 어서 내 창을 받아라.”
“거참. 다 죽어 가는 노인네가 목청은 크구려.”
쿵!!!
노더가 거프를 발견하자 그대로 날아오른 뒤 활공하며 창을 휘둘렀다.
“어이쿠!”
거프는 뒤로 물러나며 창을 받아냈다.
같은 소드마스터라지만, 실력 차가 상당히 많이 났다.
특히나 해적왕은 바다에서 평생을 보내 왔으니 전장의 환경 자체가 달랐다.
육상에서 이런 식으로 대결을 하는 것은 그가 확실히 불리했다.
그러나.
휘리리릭!!
노더의 옆구리를 향해 거대한 검이 날아왔다.
분명 소드마스터의 검.
거대한 검의 주인은 소드마스터라 하기엔 너무도 젊어 보였다.
스각!
놀란 노더는 몸을 비틀며 가까스로 피해 냈다.
“웬 놈이냐!”
노더는 슬쩍 베인 옆구리를 잡으며 물었다.
“율 대륙 제일검의 실력을 견식하러 왔소이다.”
“그럼 기다려라. 조금 있다가 상대해 주지. 치사하게 싸우는 도중에 기습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전쟁에 치사한 게 어디 있소. 나는 무인이 아니라 무장이외다.”
난입한 소드 마스터는 가순신이었다.
노더 튜더를 의식했기에 리안이 따로 보내온 것이다.
“쯧. 어린 황제에게 선물을 보내진 못하겠군.”
적국의 소드 마스터인 노르망 대공을 죽인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듯싶었다.
그래도 황제가 멀리 도망칠 동안 시간은 벌 수 있을 것 같다.
“오냐. 둘 다 덤벼라.”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리안.
리안에게 합류한 트리아-헝국 왕국의 국왕 레오폴트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저러다 너폴레옹을 놓이겠습니다. 형님.”
“예상 한 일이다.”
“곤란합니다. 지금 스랑 제국에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벌써 30만의 예비대가 모였다는 첩보가…….”
율 대륙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는?
당연히 스랑 제국이다. 율 대륙의 1/4이 몰려 있다.
롬 제국을 계승하지 않았음에도 감히 황제를 칭할 수 있는 이유였다.
율 대륙에서 가장 공업력이 발전한 국가는?
워낙 인구가 많다보니 부패가 심함에도 막대한 내수시장으로 인해 거둬들이는 세금이 엄청났다.
그 세금으로 공업을 발전시켰기에 율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율 대륙에서 국뽕이 가장 강력한 국가는?
어찌 보면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세계가 장신들의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자들이 바로 스랑 제국의 시민들이었다.
위 세 가지와 너폴레옹이 만나면?
참으로 위험한 시너지다.
마총으로 무장한 30만의 국뽕 어린 국민군이 강력한 카리스마와 실력을 가진 너폴레옹의 지휘를 받는 다?
대적하기 심히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30만이 예비대이지 주력은 아니다.
살아 돌아간 병력도 10만에 가까웠다.
“그것 참 큰일이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형님.”
“어찌 되겠지. 걱정하지 마. 처남.”
리안은 휘말리지 않게 멀리서 소드 마스터들의 전투를 구경했다.
정말이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광경이다.
* * *
너폴레옹의 군대는 또다시 멈춰야 했다.
진지를 구축한 군대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에.
“나는 레온 황제 폐하의 제1 시녀장이다! 이곳은 청소 중이니 지나갈 수 없다.”
“무슨 개…….”
너폴레옹은 어이가 없었다.
전쟁터에 시녀복을 입은 붉은 머리의 소녀가 창을 들고 외쳤기 때문.
그녀의 뒤에 있는 군대의 숫자도 적은 것이 아니었다.
“레온 황제의 애첩인 샤로트로 추정됩니다. 들리는 바로는 대기사 상급이으로…….”
“저 어린 것이 상급이라고?!”
“최근까지 남신대륙에서 군대를 이끌고 반란군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그럼. 저 군대가?”
보아하니 피부가 검은 이들이 많았다.
“검은 대륙의 노예들로 두려움을 모른다고 합니다.”
스랑 제국의 군대가 강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긍심이다.
자긍심이나 애국심은 두려움을 마비시킨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저 검은 피부의 군인들도 용맹하다는 소문이 퍼졌다.
다른 나라에서도 시도를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곤란하군.”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 안 됩니다. 그나마 길이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니니 굳이 저곳을 뚫지 않아도 됩니다.”
가장 큰 길을 막아섰지만, 여기서부터는 샛길도 많았다.
후방을 막고 있는 노더 튜더가 얼마나 버텨 줄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군대를 뚫느라 따라 잡힌다면 이번에는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본국에 30만의 정병이 징집되었을 겁니다. 돌아만 간다면 우리 제국의 승리입니다.”
“나도 그리 생각한다. 병력을 나눈다!!”
“완전히 퇴각할 때까지 제가 남겠습니다.”
“부탁한다. 적당한 시기에 너도 퇴각하도록.”
첫 전투 때부터 너폴레옹을 보좌하던 부관이 남았다.
그도 군재가 나쁘지 않아 일군을 믿고 맡길 만했다.
“가자!! 우리 스랑 제국군의 무서움을 보여 주자!”
와아아아아!!
그가 진지가 구축된 샤로트의 군대를 향해 돌격했다.
뚫을 기세로 나아갔지만, 어디까지나 병력이 쪼개져 퇴각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타다다다당!!
교전이 시작되었고 스랑 제국군은 빠르게 쪼개져 사방의 샛길로 빠져나갔다.
다만, 샛길은 더 작은 샛길들로 분화되고 그 작은 샛길은 또다시 더 작은 샛길로 갈라졌다.
“다시 군대를 나눈다!”
병력을 나누고 또 나누다 보니 어느새 너폴레옹의 주변에는 대대급 병력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정예 중의 정예들이라 걱정은 없었다.
같은 규모의 적들이 막아서거나 매복을 하고 있을지라도 충분히 뚫고 지나갈 수 있으리라.
척척척!!
그들은 거침없이 좁은 길을 행군했다.
다행이라면 더는 막아서는 병력도 매복도 없었다.
모세혈관처럼 펼쳐진 샛길들 모두에 매복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후… 저기서 쉬어간다.”
걷고 한참을 걸어서 병사들이 굼뜨기 시작했다.
아무리 정예라도 무리한 산길 행군은 쉽지 않았다.
“사방이 트여 있어 경계를 하기에 좋은 곳이다.”
좁은 길들만 이어지다가 간만에 공터가 나왔다.
공터 주변은 가팔랐기에 매복의 걱정도 없었다.
“모시겠습니다. 폐하.”
장교 중 하나가 오토호스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고맙군.”
공터의 중심에는 제법 큰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오토호스를 타는 것도 체력소모가 꽤 크다.
저 나무 아래라면 그림자가 있어 햇볕을 피해 기대어 쉬기 딱 좋았다.
“먼저 가서 조사해 보겠나이다.”
“알겠네.”
장교는 기감이 뛰어난 자로 숨은 적들을 찾아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혹시나 나무에 숨어 있을 암살자를 수색했다.
“이상이 없습니다. 폐하.”
장교와 병사들은 너폴레옹이 편해 쉴 수 있게 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펼쳐 주었다.
오랜 시간 행군을 한 터라 앉으니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목이 마르구나.”
“여기 물이 있습니다.”
너폴레옹에게 수통을 건네주었다.
원래라면 포도주를 마셨겠지만, 적에게 쫓긴 뒤로는 그런 사치품을 버린 지 오래였다.
꿀꺽꿀꺽!
목이 말라서 그런지 시원한 물이 참으로 맛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안은 시원한데 목 아래가 뜨끈뜨끈했다.
“폐… 폐하!!”
그때 장교가 급히 너폴레옹을 불렀다.
목에서 피하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컥!!”
너폴레옹도 뒤늦게 목이 베였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엇에 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통증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매우 날카로웠을 것이라 추측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