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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즁제국 황제는 오랜만에 대전으로 들어왔다.
그의 아버지인 전대 황제가 죽고 황위를 물려받은 뒤 병을 얻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나중에 자신의 황위 즉위를 반대하는 파의 독살 시도로 밝혀졌다.
-저놈의 표정이 수상하다! 단장 목을 베어라!
죽다 살아난 그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다만, 그로 인해 폭군이 되었으나 폭정은 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궁에서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
“나를 부를 정도로 중요한 일이렷다?”
황제의 비아냥거림에 대신들은 고개를 처박고 감히 올려다보지 못했다.
눈이라도 잘못 마주쳤다가 운이 나쁘면 곧장 처형당할 테니.
그렇다고 벼슬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황제에게 찍히지만 않으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니.
-눈만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 눈만.
모든 대신들은 고개를 처박고 바들바들 떨었다.
-이번만 넘기자.
솔직히 황제를 마주치는 일은 잘 없다.
그가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저 위험한 날일 뿐.
“폐하. 서방의 오랑캐들이 도를 넘어섰습니다. 극단의 대책이 필요하옵니다.”
보고를 하는 이도 고개를 들지 않고 이마를 바닥에 바짝 붙였다.
“어떻게 도를 넘었기에 짐의 정신을 어지럽히는가!”
“그것이… 오랑캐의 공격을 받아 제1 수군이 전멸을 당했사옵니다.”
“지금 짐이 두문불출한다 하여 속이려 드는 것이더냐?!”
“그것이 아니오라.”
“당장 저놈의 목을 베어라.”
천자의 명령은 곧 하늘의 명령.
“폐… 폐하!! 살려 주시옵소서!!! 폐하~~!~!”
방금 읍을 하였던 신하는 그대로 목이 날아갔다.
다른 신하들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이런 걸 보고할 신하를 따로 배정해 놓았다.
실세들은 모두 뒤쪽에 가장 구석진 곳에서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폐하. 현장에 있던 제1 수군 대제독을 불러 올리겠나이다.”
“그래. 직접 들어나 보자.”
방금 고함을 지르느라 삐뚤어진 면류관을 고쳐 쓴 황제는 적당히 다리를 꼬며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누웠다.
“폐에하!! 죽우겨주시오쏘서!!”
몰골이 엉망인 대제독이 대전의 중앙에 넙죽 엎드렸다.
그나마 황제는 군인들에게 관대한 편이었는데, 자신의 행동이 도가 지나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황제는 처음부터 폭군은 아니었고. 나름 군왕학을 배운 인물이다.
삐뚤어지게 된 것은 암살 위협이 있은 뒤였기 때문에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그대의 꼴이 말이 아니구나. 어찌 된 일인지 소상히 말해 보거라.”
“급작스러운 공격을 받았사옵니다. 경계를 소홀히 한 소장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그대는 우리 즁 제국의 몇 없는 명장이다. 작은 실수로 함대를 잃었다고는 하나 쉽게 벌할 수 없는 노릇. 더 소상히 말하여라.”
오래간만에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국정을 돌보는 황제였다.
“그것이 요사스러운 기술을 쓰는 서구 오랑캐의 배 6척의 기습을 받았사옵니다.”
웅성웅성.
신하들은 고개를 처박은 채 주변의 다른 신하들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조심스럽고 조용했지만, 다들 작은 속삭임 한마디씩 내뱉었기에 삽시간에 대전이 시끄러워졌다.
평소 불안감에 살고 있던 황제는 인상을 찌푸렸다.
“닥쳐라!! 감히 누가 짐 앞에서 사소로히 잡담을 씹는가.”
“너냐?!! 너로구나!!”
불안감이 폭발한 황제는 황좌에서 내려와 신하 하나를 일으켜 세웠다.
신하는 순간적으로 황제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황제의 광증이 폭발하였다.
“이놈을 죽여라!!! 때려죽여라. 감히 짐과 눈이 마주쳤느니라!!”
“폐… 폐하!!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제발.”
“그럼 죽어!!!!”
그렇게 바람막이로 황제의 가장 가까이에 배치한 신하가 또다시 죽어 나갔다.
“하아…….”
황제는 아무 곳에 걸터앉아 잠시 기분을 전환시켰다.
스스로도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또 언제 자신을 죽이려 들지 모른다.
신하들도 눈치를 챘는지 죽여도 되는 이들을 자신과 앞쪽에 배치했다.
어찌 보면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물론 이것은 황제 자신에게 유리한 룰이다.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석에 있는 실세들을 죽여 버릴 수도 있다.
다만, 그런 일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된다면 정말로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아무래도 해군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겠구나.”
“폐하. 북방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신하 중 하나가 고했다.
그 역시나 실세의 꼭두각시.
평소 황제를 모시는 신하라며 목에 얼마나 힘을 주고 다녔던가.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었다.
“그럼 북방도 신경을 쓰도록 하여라.”
“폐하. 지금 전국 곳곳에 악독한 반란군들이…….”
“반란은 늘 있었던 일이다. 아직도 그것들을 진압하지 못한 그대들은 참으로 무능하다!! 이놈도 나가서 베어 버려라!”
그렇게 또 하나의 신하가 목이 베어졌다.
어차피 죽으라고 배치해 놓은 신하다.
다만, 이렇게 하나씩 죽여 나가다 보면 죽음의 그림자는 실세에게 가까워진다.
이것은 압박으로 작용했다.
황제도 이것을 이용했다.
“폐하… 오랑캐 놈이…….”
그걸 지켜보던 대제독은 서신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에는 황제에게 바쳤다.
“이게 무엇이더냐.”
“오랑캐의 황제가 직접 이곳에 왔나이다.”
황제는 흥미보다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손끝이 떨려서 직접 서신을 받지 못했다.
“읽어 보아라.”
환관중 하나가 꽁꽁 봉인된 서신을 펼쳐 보았다.
그들이 읽을 수 있는 문자로 적혀 있었다.
「나는 율 대륙 신센롬 제국의 유지를 이어받은 레온 제국의 황제 레온이다.
조선국은 이 몸을 섬기던 전대 왕을 감히 살해한 바 응징하였고 정통성 있는 왕을 세웠다.
그러하니 즁 대륙의 황제는 하던 대로 새로운 왕에게 칙서를 써 주길 바란다.
아. 그리고 그대의 예의 없는 개를 훈련시켰으니 보상을 내어 놓도록. <리안 레온>」
끝까지 내용을 읽은 환관은 손을 덜덜 떨었다.
사실 황제가 가장 관대하게 대한 집단은 장군보다 환관이었다.
측근이라 딴마음을 가질지 몰라 대우가 좋았다.
다만, 여기서 환관을 용서한다면 체면이 구겨진다.
“저놈도 때려 죽여라.”
“폐… 폐하!!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환관도 밖으로 끌려나가 죽임을 당했다.
대전 안으로 피비린내가 솔솔 불어왔다.
“감히!!! 이를 어떻게 할 텐가!! 외국의 오랑캐 우두머리가 짐을 농락할 동안 그대들은 무얼 했던가!!”
그때 구석에 박혀 있던 신하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라면 말단 관복을 입은 그는 대전회의에서 입을 열 자격조차 없는 미천한 신분.
조금 이상한 것은 그의 나이가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신 도찰원 조마 천자께 감히 아뢰옵나이다.”
“호오~ 종7품 따위가?”
황제는 순식간에 화가 가라앉았다.
도찰원은 감찰 기관으로 원래라면 황제에게 직접 황제에게 보고하지만, 태업으로 막힌 지 오래였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지금 우리 즁 제국은 위기 앞에 있사옵니다.”
“나는 늘 태평성국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민란도 금방 제압될 것이고.”
“그렇지 않사옵니다. 하잘것없는 것은 맞사오나 예산이 현장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점점 반역도의 세력이 커지고 있사옵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머리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즁 제국이 건국된 것도 반란으로 인한 것이니.
“그래. 그렇다 하고. 지금은 반란보다 조선국이 문제일 텐데.”
“반란을 진압하고 곧장 여진과 조선국을 벌하시옵소서.”
다른 신하들은 그게 말이 되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대는 그걸 할 수 있겠는가?”
“맡겨 주신다면 성심을 다하겠나이다.”
“성심까지도 필요 없고. 목숨을 걸거라.”
“알겠나이다. 실패한다면 소신의 목을 치시옵소서.”
황제는 고민에 빠졌다.
권력을 넘겼다가 창을 거꾸로 들지 않을까?
그럼에도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좋다. 그대를 도독으로 삼는다. 짐이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는가.”
“일단 늘 하던 대로 저놈의 목을 치시옵소서!”
도독으로 임명된 노신은 대제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황제는 잠시 주춤했다.
그동안은 암묵적으로 세워진 허수아비의 목을 쳤다.
그런데, 지금은 군부에 영향력이 큰 대제독이다.
거기다가 실력으로 따지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
“저따위 서신을 가져와 폐하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 것은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이옵니다.”
그 말을 들은 대제독은 발악했다.
“폐… 폐하. 소장은… 소장은…….”
“끌고 가라.”
황제는 여느 때 와는 다르게 힘없이 명령을 내렸다.
대제독은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그대로 끌려가 즉결 참수되었다.
“일이 잘못되었다간 용서치 않을 것이다.”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그대로 나가 버렸다.
그 즉시 신하들이 도독에게 몰려들었다.
웃긴 것은 나이는 많은데, 죄다 낮은 관직의 관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지… 지금 제정신이오?!! 그대가 말한 대로 행하려면 우리 제국의 모든 역량을…….”
“지금 그대들은 보는 눈과 귀가 없는 것이오?!! 서구의 오랑캐들이 얼마나 발전한 문물로 무장했는지. 그리고 여진족들은 이미 통일 국가를 만들었소.”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는 법. 그리 다급하게.”
“답답합니다. 그대들이나 내가 이 나라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라가 살쪄야 우리가 빨아 먹을 것이 많은 법이오.”
그 말에 낮은 관직에 늙은 신하들이 고함을 질렀다.
“거머리!! 거머리라니. 말 다 했소!”
“다 했소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될 것이오.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하오.”
“그래. 그대만 잘났지. 어디 잘 해 보시오. 잘못되면 그대의 가문은 풍비박산 날 것이니.”
낮은 관직의 신하들은 한 소리씩 하고 떠났다.
그들은 즁 제국을 움직이는 실세들이었다.
* * *
즁 제국의 앞바다에서 황제의 답신을 기다리던 고잉미샤호에 배가 한 척 접근했다.
나름 큰 전함으로 고잉미샤호보다 조금 컸다.
깃발은 즁 제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깃발이 나부꼈다.
물론 진짜 황제가 탄 것은 아니고 길고 가늘게 변형된 것이 황제의 칙서를 전달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펄럭!
양쪽에서 모두 하얀 깃발이 올라왔다.
끼이익!
두 배가 접선을 했다.
저쪽에서는 의관을 잘 갖춰 입은 사람들이 고잉미샤호로 넘어왔다.
그들은 행동은 조심스럽고 기품이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형태의 움직임이 없었다.
“레온 황제국의 폐하를 뵈옵니다.”
한 늙은이가 리안의 앞에 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타국이지만 황제에 대한 예를 갖춘 것이다.
“그대의 직책은.”
“오호도독부 정1품 대도독 쩐다 왕이옵니다. 폐하.”
그는 한쪽 무릎을 꿇었지만, 허리는 꼿꼿이 세웠고 리안을 똑바로 쳐다봤다.
리안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즁 제국 최후의 충신 쩐다 왕(왕 쩐다-동방식).
따지고 보면 충신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나라가 망하면 자신도 망할 것을 알기에 나섰을 것이다.
즁 제국이 이런 꼴이 아니었다면 보신주의로 나라의 혈세를 쪽쪽 빨아먹었을 인물이었다.
“대제독이라. 그대의 주인이 큰마음을 먹었나 보군.”
“그저 내부에 작은 소란을 진압하기 위한 임시 직책일 뿐이옵니다.”
“그래. 그대의 주인에게 답은 받아 왔는가?”
리안의 말에 쩐다 왕은 칙서를 넘겨주었다.
요구대로 조선국 전왕의 공주를 다음 왕으로 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애초에 이것은 매우 요상한 일이었다.
자존심 높은 즁 제국에서 이를 응해 준 것도 이상했고. 리안도 굳이 즁 제국에게 이런 걸 받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조선국은 리안의 손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고맙다고 전해 주게나. 다만 수고비는?”
“여기 있사옵니다.”
대도독이 손짓하자 보좌하던 인물이 조심스럽게 두 개의 상자가 리안의 앞에 놓여졌다.
끼걱.
상자가 열리자 그 안에는 대제독의 목이 담겨 있었다.
다른 상자에는 황금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만족하시옵니까?”
“뭐. 이정도면 조금 아쉽지만 그런대로.”
“이야기가 잘 통해 다행이옵니다. 폐하.”
“나도 말이 잘 통해서 기분이 좋네. 건승하시게나.”
그렇게 대도독 쩐다 왕이 물러났다.
그가 탄 배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리안이 말했다.
“작전은 취소. 북방의 병력을 뒤로 물리고 상륙을 하려 했던 배들도 돌려야겠어요.”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주군. 저들이 저렇게 꼬리를 내리는 것은 자신이 없어서가 아닙니까?”
“자신 있을 때 붙어야 더 깔끔하거든요.”
리안이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