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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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일어날 일.
리안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해리 공작을 충격에 빠뜨리게 했다.
“감히 누가 국왕 폐하를…….”
“당연한 수순입니다. 신센롬과 로이센 왕국의 전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죠.”
“그게 왜… 그렇게…….”
“귀족들의 행태에 백성들은 치가 떨리게 될 것입니다. 물론 잉글슨은 조금 다르겠지만요.”
그나마 섬나라였기에 전쟁이 직접적으로 발발한 율 대륙에 비해 나았다.
거기다가 본섬의 규모에 비해 많은 식민지가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그나마 안정적이랄까.
“혁명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국왕 전하의 최측근인 해리 공작님도 한 대 엮여 숙청당할 겁니다.”
“전하께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허무맹랑한 소리로 취급되겠죠.”
왕은 신이 내려 주는 고귀한 지위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왕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랬다. 귀족들도 백성도.
왕을 끌어 내릴수 있는 것은 같은 왕뿐이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오히려 국고를 축내고 있는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라 생각하겠죠.”
“그렇다면 레온 전하께서.”
“제가 말한다 한들 달라질까요?”
해리 공작이 리안의 말을 믿는 이유.
그동안 옆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아아… 저는 정말 어쩌면 좋습니까.”
“왕에 오르셔야죠. 귀족들은 해리 공작님을 살려 둘 리가 없을 겁니다. 그들은 뒤통수가 따갑겠죠.”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준비하셔야 합니다.”
해리 공작은 다재다능했지만, 왕이 될 자신이 없었다.
그저 놀기 좋아하고 장사에나 조금 소질이 있을 뿐.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제가 도와드리죠.”
“차라리 레온 전하께서 잉글슨의 왕이 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명분이라면 제 조카와 혼인을 하시면…….”
“그렇다 한들 일단 해리 공작께서 먼저 왕이 되셔야 합니다.”
해리 공작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걱정 마세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지금부터 차츰차츰 준비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레온 공왕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리안은 며칠을 머무르며 공작에게 해야 할 것들을 일러 주었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마치고 떠나려는 길.
“전하. 이것을 받아 주세요.”
“이게 무엇입니까?”
날이 없는 칼자루.
저것이 무엇인지 리안은 알고 있었다.
전설의 검이라 불리는 엑스칼리버.
칼날은 왕실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칼자루는 공작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저희 가문의 가보입니다. 공왕 전하께 충성의 증표로 드리겠습니다.”
해리 공작은 리안이 며칠 머무는 동안 불안에 떨었다.
만약 자신이 왕이 된다면 리안을 대적할 수 있을까? 그에게 왕위를 넘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지금 리안은 아일리 섬의 알바 공왕이다. 노르망 지역도 가지고 있다.
만약 작정하고 잉글슨을 정복하고자 하면?
그가 싸우는 것을 옆에서 보았다.
잉글슨에서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을까.
“과분한 징표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전하.”
사실 리안이 공작에게 왕이 되라고 말하는 순간 계산이 끝났다.
공작도 멍청하지 않았다.
만약 율 대륙도 혼란에 빠진다면 그 어떤 나라가 잉글슨을 도울 수 있을까.
결국. 리안이 다른 마음을 먹는 순간 잉글슨은 그의 손에 떨어진다.
‘레온 공왕에게 붙는 것이 가문을 존속시키는 방법이다.’
왕국이 망한다면 왕족도 망한다.
운이 나쁘다면 멸족당한다.
“공작 전하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잉글슨의 왕실에 보관 중인 칼날을 손에 넣는 순간 완성된 검으로 그대와 그대의 가문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전하.”
리안은 칼자루를 얻은 다음 잉글슨을 떠났다.
* * *
신센롬 제국과 로이센 왕국의 전쟁은 이제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신센롬 제국, 이벨 왕국, 스랑 제국, 루스 제국의 연합은 쉴 새 없이 로이센 왕국을 두들겼다.
잉글슨에서 자금을 지원해 줬지만, 이제 한계에 달했다.
“여제이시여. 너무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아무리 로이센 왕국이라 할지라도 이번만큼은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무려 6년이에요. 6년간 저 작은 나라를 어찌하지 못해서.”
그때 전장의 소식이 들려왔다.
“보고 드립니다.”
“그래. 어떻게 되었다느냐?”
“그것이… 우리 제국의 군대가 패배하여 후퇴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군을 무찌른 로이센 왕국군은 서쪽으로 이동해 스랑 제국과 교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을 들은 신센롬 제국의 여제는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폐… 폐하!!!”
신하들이 즉시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뭣들 하느냐. 당장 신관을 불러오지 않고!!”
그렇게 그날로 여제는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완전히 국정을 놓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침실에서 모든 보고를 받고 결제를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소서. 군대가 완전히 와해된 것이 아니고. 아직 루스 제국의 대군이 남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로이센 왕국군이 승승장구를 한다 해도 병력은 계속 줄고 있음을.”
로이센 왕국은 버티고 버티며 협상을 노리고 있었다.
문제는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아서 문제였다.
이제 와서 협상을 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것이 사실이었다.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은 전쟁은 벌써 6년이나 지속되고 있었다.
* * *
스랑 제국의 궁전은 갑자기 부산해졌다.
북신대륙에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북신대륙의 항구들이 연달아 공격받고 있습니다!!”
“우리 해군은 뭘 하고 있단 말이던가?!!”
“그것이… 철갑선이…….”
“또 그놈인가?! 그놈은 왜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어서 신센롬 제국의 전쟁이 끝나야 할 텐데…….”
평소 동요가 적던 황제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부쩍 감정을 내비쳤다.
“그것이 레온 공왕의 전함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양도 조금 달랐습니다. 그리고 한 척이 아니라 무려 세 척이었습니다.”
“뭐?!! 애초에 철갑선은 우리가 먼저 건조하지 않았던가. 들어 보니 그 고잉미샤호인가 뭔가도 우리 스랑 제국의 것이었고!!”
“송구하옵니다. 전하…….”
대신들은 눈치를 서로 보기만 했다.
“그래서 우리 조병창은 뭘 하고 있단 말이더냐!”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미 다섯 척을 건조한 상태이며, 테스트에 들어갔사옵니다.”
“테스트할 것이 뭐가 있는가! 이미 우리가 만들었던 배를 공왕은 잘만 타고 다니는데! 빨리 신대륙으로 배를 보내도록.”
다시 잉글슨 왕국과 스랑 제국의 해전이 벌어졌다.
* * *
그들이 전쟁으로 바쁜 사이 리안은 행성의 반대쪽에 도착했다.
조선국의 동북쪽에 새로 생긴 커다란 항구.
그곳은 커다란 배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누구냐!!”
부두를 점검하던 병사는 리안을 보고 놀라서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보통은 부무장으로 지급되는 무기였지만 부두에선 가끔 바다에 입수를 해야 했기에 그것만 챙기는 병사들이 많았다.
“이 항구의 주인이 돌아왔다고 전…….”
리안은 느긋하게 말했지만, 병사는 곧장 리안을 덮쳤다.
첨벙.
둘은 엉켜서 바닷속에 빠졌다.
리안도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뭐야?!!”
부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규규! 파닥! 파닥!!!
물에 빠지는 동시에 호기롭게 달려들던 병사는 물장구를 쳤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파사사.
그런 그의 뒷덜미를 리안은 잡아채서 부두에 올려놓았다.
몰렸던 사람들은 급히 리안에게 무기를 꺼내 들었다.
여기 항구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모두 병사나 다름이 없었다.
이들은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 모두 유목민이었기 때문.
“어어어?!!”
그때 누군가 리안의 얼굴을 알아봤다.
털썩!
“용왕님을 뵙습니다!!!”
“요… 용왕님을 뵙습니다!!!”
동시에 다른 이들도 모두 바닥에 엎드렸다.
이들은 충분히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가순신이 리안이 돌아올 것을 대비해 모든 이들에게 바다에서 튀어나오는 사람에 대한 매뉴얼을 전패했기 때문이다.
다만, 처음 리안에게 달려든 병사는 아직 교육 중인 신병이었다.
“다들 일어나라.”
리안의 말에 따라 다들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처음 알아본 자는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예전 리안의 적이었기에 그때의 공포가 남아 있어서였다.
“무슨 소란이더냐!!”
그때 주변을 거닐던 가순신이 일갈했다.
그의 시선에는 리안이 보이지 않았는데, 부두에서 일하던 이들이 모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주군!!!”
뒤늦게 리안을 발견한 그가 가까이 다가가 바닥에 엎드렸다.
조선국의 예로 인사를 한 것이다.
“그만 일어나세요. 앞으로는 군례로 족합니다.”
“송구하옵니다. 주군.”
그는 주변을 돌아보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리안이 돌아올 것을 대비해 매뉴얼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여기서 물에 젖은 이는 두 명.
리안과 한 병사였다.
스릉~!
머리가 좋은 가순신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덜덜 떨고 있는 물에 젖은 병사에게 다가갔다.
“훈련을 잘 시켰습니다.”
“송구합니다. 주군.”
“이자에게 상을 주세요. 군인다운 행동이었습니다.”
리안은 알고 있었다.
가순신이 저 병사의 목을 치지 않을 것을.
공명정대한 성격이라 끌고 가서 심문을 할 것이다.
문제는 그리되면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신병을 업무에 투입시킨 선임들이 난감해질 거다.
‘여럿 곤혹을 치르겠네.’
군기를 세우는 것은 좋으나 너무 FM인 것이 문제다.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여러 부족들이 섞였는데, 너무 강하게 나가면 오히려 나쁜…….
“장군. 제 책임입니다. 벌하여 주십시오!!”
“아닙니다. 구루카 백부장은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교육을 위해…….”
“다 제 책임입니다. 문제가 없을 거라 보고…….”
이미 장악을 다 끝난 것으로 보였다.
생각해 보니 동방의 끝에 있어 얻기 힘들어서 그렇지 얻으면 걱정이 없는 네임드가 가순신이었다.
“저를 봐서 봐주세요. 장군. 이렇게 무례하게 찾아온 제 잘못입니다.”
“어찌 주군을 탓하겠사옵니까. 소장의 책임이옵니다.”
이곳의 모든 것을 맡겨 놓아도 상관은 없지만, 시간이 조금 부족하다.
빨리 이곳 동방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가순신은 다 좋은데 신중해도 너무 신중한 탓이다.
물론 신중한 만큼 결과도 만족스럽지만, 그 신중을 덜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시간을 당길 수 있다.
“그럼 이번만큼은 누구의 죄도 무르지 않고 넘어가는 것으로 하죠. 다음부터는 확실히 ‘나다.’라고 표시 나게 올 테니.”
“주군의 배려에 감사드리옵니다.”
그렇게 대략적으로 상황이 정리되었다.
가순신의 주군이자 바다의 용왕 그리고 자신들의 왕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리안의 주변에서 바짝 엎드리는 바람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후…….”
리안도 금지하고 싶었지만, 바로 금지하진 못했다.
악습도 문화였고 이걸 파괴한다면 아무리 가순신이라 할지라도 통제하기가 힘들어진다.
이걸 아는 이유가 가순신만 데려다가 서구의 병사들을 지휘하게 만들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긴 하네.’
게임에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런 디테일을 넣은 게임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현질 유도가 심해서 그렇지 뜯어 보면 이것보다 복잡한 게임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걸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와… 이런 게임에 이런 걸 넣었다고?’라며 영혼 없는 박수를 칠뿐이었다.
그럴 것이 이 게임보다 순위도 높고 게임성이 뛰어난 게임이 많았기 때문이다.
“불편하시다면 고쳐 보겠습니다. 주군.”
역시나 보통 인물이 아닌 가순신은 리안이 이런 걸 불편해하는 걸 알았다.
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그였지만, 누군가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리안이었다.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 워낙 극단적인 성격이었기에 지금 이 정도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이쪽은 장군에게 맡겼습니다. 그것이 내 기분보다 백 배는 중합니다.”
“결과로 증명해 보이겠나이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 안에 들어서자 눈에 보이는 아무 탁자 위에 대충 걸터앉았다.
“이곳에 오래 머물지는 못합니다. 곧 대전투가 벌어지리라 봅니다.”
“이곳 북방의 패권을 지닌 홍이 우리를 눈치챘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싸우세요. 그리고 모두 흡수하세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자신이 없습니다.”
리안은 웃음이 나왔다.
가순신은 상대의 전력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그 홍이란 자는 즁 대륙을 접수하게 된다.
조선국도 그 나라에 사대하게 되고.
절대 만만한 적이 아니다.
“훈련은 어떻습니까?”
“최선을 다해 시켰습니다.”
“세력이 적다 해서 지지 않을 겁니다. 만약 진다면 혼자서라도 살아서 나에게 오세요. 벌을 받아야 하니.”
같은 병종으로 싸운다면 아무리 가순신이 대단하다 한들 진다.
달걀과 타조알의 싸움이다.
그런데 이쪽은 전혀 다른 무기 체계로 무장했다.
상대는 이쪽을 잘 모르고 이쪽은 상대를 잘 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세요.”
리안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무리 하위 버전이라지만, 율 대륙을 가속시켰다.
지금쯤이면 철갑선이 등장했을 것이고. 일반인도 쏠 수 있는 마총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거다.
여기서 삐끗한다면 공국은 보존할지 몰라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럼 맡기고 갑니다.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