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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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같은 왕국의 귀족답게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물론 아주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언젠가 백작님을 꼭 뵙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상황이 이렇네요.”
“무엇 때문에 저를… 아.”
사실 뽀느노 백작이 유명하긴 했다.
군사적인 이유를 제외하고는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특히나 밤에 사랑받지 못하는 남자들에게는 신이라 추앙받는 그였다.
그의 앞에서 군사적인 이야기만 꺼내지만 않는다면 모든 남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남자였다.
“제게 부인을 만족시키는 101가지 기술을 배우고 싶은 게로군요.”
“율 대륙에서 백작님만큼 전문가는 없으니까요.”
뽀느노 백작의 자택 앞에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그를 만나기 위해 장사진을 쳤다.
그와 함께 밤을 보낸 여성들이다.
그로 인해 많은 소문이 돌았다.
뽀느노 백작의 소중이가 팔뚝만 한 것이 아니냐고.
그러다 우연히 몇몇 인물이 뽀느노 백작의 소중이를 보는 일이 발생했는데.
-빌어먹을. 내 6살짜리 아이도 그보다 크겠다.
라고 하여 그가 다시 주목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드웨어가 엉망이니 소프트웨어가 대단하다고 추측이 되었고. 실제로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남자들의 후담으로 ‘마누라가 바뀌었어요.’라는 말을 퍼뜨렸기에 그것이 증명되었다.
“후… 공자께선 부인 때문에 고민이 많나 봅니다. 이 몸이 그쪽으로 꽤 전문가이긴 합니다. 군사적 재능 다음으로요.”
공작의 후계자는 순간 움찔거렸다.
이미 소문으로 그와 군사적인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 돌았다.
“다만. 제가 조언을 해도 얼마나 써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해전 중에 마포가 불발이 되었습니다.”
“네?! 그럼 아버지는…….”
“1급 전열함과 함께 수장 될 뻔했지만. 겨우 목숨을 건져 탈출했습니다. 아마 돌아온다면…….”
그때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여인.
“그게 무슨 말이죠?!!”
뽀느노 백작도 그녀를 알고 있었다.
꽤 서열이 높은 장군답게 왕실의 모임에 많이 참석했고. 공주의 시녀였던 보련 랄시도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오랜만이군요. 엿듣는 걸 좋아하는 건 여전하군요. 공작님은 무사하십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포탄이 어찌 되었지가 더 중요하지요!!”
순간 뽀느노 백작은 당황했지만, 저런 여자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기본적인 양심이나 체면이 없으며 자기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사람.
“바다에서 포로를 심문해 본 결과 해군의 물품을 공자님이 주도했다고 하더군요. 공작님이 돌아오신다면 두 분이 걱정입니다.”
“하…….”
보련 랄시가 순간 몸을 휘청이며 벽을 짚었다.
“부인!!”
“손대지 말아요!! 지금 만사가 짜증 나니까.”
백작은 저런 여자는 버리는 것이 옳다고 백번 조언해 주고 싶었지만, 이미 공작 후계자는 영혼까지 빨린 모양이다.
보통 저런 여자를 파므파탈이라고 불렀는데, 소문과 달리 여자를 많이 만나 본 사람들은 저런 여자에게 빠지지 않는다.
팜므파탈이 인기녀가 될 수 있는 이유도 자신보다 더한 나쁜 놈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들은 그런 여자를 만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돌아오는 즉시 후계자를 바꿀 것입니다. 조카가 한 명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래서!! 그래서 어쩌란 거죠?!! 지금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건가요?! 백작님!”
보련 랄시는 땍땍거리며 백작에게 소리쳤다.
세상에 이런 현실감 없는 여자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의외로 많았다.
아니 여자 남자를 떠나 저런 인간들이 존재한다.
뽀느노 백작은 만 단위의 병사를 이끌어 본 장군이었고 숱하게 많이 봐 왔다.
그들은 늘 가면을 쓰고 최악의 순간에 문제를 일으켰다.
적보다 아군이 무서운 이유였다.
“제가 기껏 공자님과 부인을 놀리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전략적인 판단을 위해 온 것이지요.”
“그게 무슨…….”
“우리는 한 시간 뒤에 공격할 겁니다. 그리고 두 시간 안에 이 항구를 점령할 것이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라고 소리쳤다가 말을 끝까지 이어 가진 못했다.
군사적인 것으로 뽀느노 백작과 말을 섞지 말라는 이야기는 사교계에 널리 퍼진 이야기다.
그런데 웬일로 그는 화를 내지 않았고 죽자고 물고 늘어지지도 않았다.
“우선 이걸 보여 드리지요.”
뽀느노 백작은 마침 창문이 바다 쪽으로 나 있는 걸 발견하고는 활짝 열였다.
툭툭툭!
그리고 통신 아티팩트에 손가락을 두들겼다.
“저기 절벽을 보시겠습니까?”
정중하게 두 사람을 창가로 불렀다.
이곳이 천혜 요새인 이유가 바로 저 절벽들 때문.
펑!!!!
그 절벽에 포탄이 날아와 거대한 폭음과 함께 터졌다.
“꺄아아악!!”
보련 랄시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고. 그의 남편인 후계자는 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우리의 신무기는 해안 포대를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으니 참고하라는 차원에서 시연해 드렸습니다. 이미 군수물자에 손을 댄 것도 모자라서 이 항구까지 빼앗기면 그다음엔 무엇이 기다릴까요?”
보련 랄시는 그 말을 듣고 손을 덜덜 떨었다.
“아버님도 저런 신무기가 있다는 걸 보셨나요?”
“사실. 불발탄은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저 신무기에 함대 대부분을 잃었으니까요. 어쨌든 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만약 항복한다면 1/3에 해당하는 영토를 보장해 드리죠.”
그 말에 두 사람은 말을 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뽀느노 백작은 계속해 말을 이어 갔다.
“물론 아르헨 공작가가 아닌 랄시 가문의 이름으로 보장할 것입니다. 이미 아르헨 공작가는 반역을 저질렀기에 왕국의 입장에선 용서할 수 없습니다.”
순간 보련 랄시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르헨 공작령은 제국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땅덩이가 크다.
1/3이라 해도 웬만한 왕국보다도 더 크고.
물론 인구와 개발도가 낮긴 하지만, 땅덩이만 보면 공작령을 유지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랄시 공작가!’
그녀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남편은 휘어잡았는데, 문제는 그 망할 놈의 공작이었다.
그는 결혼 전부터 그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파혼을 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있다.
“이건 우리가 양보해 드릴 1/3에 해당하는 영토를 표시한 것입니다. 확인해 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시길.”
뽀느노 백작은 그리 말하고는 떠났다.
당연히 두 사람은 그를 제대로 배웅도 하지 않고 지도를 펼쳐 보았다.
“어어어?!”
생각보다 훨씬 후했다.
아니. 사실상 영토는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워낙 넓고 개척되지 않은 땅.
그중 알짜배기 땅 대부분은 보존해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잃는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서방님!”
“왜 그러시오. 부인.”
“아무래도 아버님이 노망이 난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이미 해전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했는데 포기를 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녀의 말에 평소 공작을 존경하던 아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들의 주장일 뿐이지 않소.”
“과연 그럴까요? 저들의 신무기 그리고 저렇게 아무런 재재 없이 항구 앞바다에 여유롭게 떠 있는걸 보세요. 그리고 한 시간. 저들은 우리에게 한 시간을 줬어요. 그게 뭘 뜻할까요?”
주변에 공작가의 해군이 있다면 한 시간도 아까웠다.
저렇게 여유를 부릴 틈이 없을 것이다.
특히나 시간은 원정군인 저들의 편이 아니다.
“진짜 저들의 말이 맞다고 보시오?”
“어차피 아버님이 돌아오면 우리 둘 모두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그것은 후계자도 인정하는 바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이미 이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아슬아슬했다.
자신의 사촌 동생에게 작위를 물려줄 움직임도 보였다.
“알겠소. 부인의 뜻대로 하겠소.”
결국. 아르헨 공작령의 해안 요새에 하얀 깃발이 올라갔다.
펄럭!
리안측은 신중하게 한 척의 수송선을 보내 병력을 상륙시켰고. 그들은 해안 포대들을 확인한 후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차례대로 배들이 부두에 닿았고 아르헨 공작가의 병력들은 그대로 무장 해제되었다.
‘이거 진짜 되네.’
사실 리안도 긴가민가했다.
“나 천재인가?!”
솔직히 보련 랄시를 공작가에 시집보내는 프로젝트를 했을 때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다.
“쯧.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네가 천재인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항법사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그동안은 전투에 한정해 리안을 믿었는데, 이렇게 멀리 내다보고 모략질을 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리안은 그런 적이 없다.
그냥 막연히 일을 꾸몄을 뿐. 어쩌다 잘 풀린 것이다.
“에헴! 그럼 앞으로 저에게 천재님이라 부르세요.”
“됐다. 차라리 그냥 내가 배에서 내리고 말지.”
리안은 어깨를 으쓱하고 그대로 요새로 걸어 들어갔다.
요새라 해서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바다 빼고는 분지처럼 생겼으며 중앙에 성채가 있을 뿐이었다.
생긴 것은 저래도 절대 무시 못 한다.
‘운이 좋았어.’
만약 항복하지 않았다면?
유한한 포탄으로 해안 포탑을 모두 제거하지 못한다.
적당히 피해를 감수하고 상륙을 해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못해도 3~6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거다.
상륙작전에서 교전을 해야 하는 함대 대부분을 잃었을 거고.
결국에는 이후 싸움은 바다가 아닌 지상전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견적을 이미 알고 있는 리안은 그냥 깔끔하게 이곳을 포기했을 테지만.
“와아아아아!!!”
리안이 가장 늦게 부두에 발을 딛자 항구를 장악한 아군들이 열렬하게 함성을 질렀다.
누가 보면 본국에서 개선식을 올리는 장군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검은 땅 1만의 병력을 뺀 나머지 이벨 왕국의 2만의 병사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리안이 대단하다 한들 이 항구를 점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리안의 견적과 달리 1만 이상의 사상자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륙해서 항구를 점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 조건이 너무 후한 것 아니야?”
환호 속에서 항법사가 리안에게 물었다.
매일 지도를 들여다보는 것이 일인 그는 의문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어떤 점에서요?”
“실질적인 아르헨 공작령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알맹이를 전부 보존해 주는 것 말이야.”
리안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뽀느노 백작을 바라봤다.
대신 설명해 주라는 뜻.
“몇 년이 되지 않아 망할 겁니다. 망하지 않더라도 왕국에 의존적인 형태를 지닐 것이고요.”
“그게 무슨…….”
“그 여자는 공작령은 고사하고 남작령도 고사하지 못할 겁니다.”
리안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번 항복의 조치로 다른 귀족들의 마음이 흔들릴 겁니다.”
“하긴… 저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항복에 관한 것을 다른 영지에 퍼뜨렸겠죠.”
항법사도 그 부분은 인정을 했다.
만약 이쪽에서 협상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것을 대비해 항복과 동시에 다른 귀족에게 서신을 보냈을 것이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리안은 세계적으로 거짓말쟁이가 될 테니.
척!!!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리안이 요새를 통과하자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군례를 올렸다.
그들은 이벨 왕국 소속이었는데, 존경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병사들에게 좋은 지휘관은 승리보다 생존을 보장해 주는 자이니까. 거기에 승리까지 한다면 더없이 좋고.
“리안 레온 공왕님을 뵙습니다. 항복 증서와 함께 저희 가문의 인장을 바칩니다.”
인장은 조잡하게 조립된 나무 조각들이다.
이곳을 개척하며 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영험한 것들을 조합한 것이다.
“네. 이 시간 이후로 이 항구는 이벨 왕국에 복속되며 나머지 약속한 땅은 랄시 가문의 지배를 인정합니다. 적대하지 않는 이상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중으로 모든 병력이 철수할 것을 이벨 왕국의 국왕 전하를 대신해 명하는 바입니다.”
“성실히 이행할 것입니다. 공왕 전하.”
대답은 후계자, 아니 전 후계자가 아닌 보련 랄시가 당당하게 말했다.
“포터 삼촌.”
리안이 말하자 포터가 고개를 끄덕이고 인장을 마법진 위에 올렸다.
그러자 전 후계자가 피를 떨구었고 보련 랄시가 그 위에 피를 덧대었다.
번쩍!
반응은 시원찮았다.
그럴 것이 이 징표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헨 가문은 공작이 된 지 한 세대 만에 저물었다.
“나 리안 레온이 국왕 전하를 대신해 보련 랄시를 여공작의 작위를 내리는 바입니다. 충성을 다하길.”
리안도 그냥 대충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딱히 예를 갖추거나 대단한 의식을 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소명을 다해 국왕 전하를 섬길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전하께서 따로 부르실 것입니다.”
“전하와 공주마마를 다시 뵙는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 말하고는 그들은 떠났다.
전 후계자가 안쓰러웠는지 뽀느노 백작은 자신이 쓴 저서를 그에게 줬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그 안에 메모가 있으니 가는 길에 읽어 보세요.
전후계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리안은 멀리서 그걸 지켜보았다.
장군이 돌아오자 리안은 은근슬쩍 물었다.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십니다.”
“딱한 청년이지요. 어쩌다가 저런 여자에게 코가 꿰였는지. 공작이 대단한 인물이긴 하지만, 명문가가 아니다 보니 자식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것이겠지요.”
괜히 리안이 찔렸다.
저렇게 된 원인이 리안에게 있으니.
“뭐. 그렇다고 명문가가 대단한 것은 아니고요. 최소한 저런 여자에게 빠지지 않은 안전장치쯤은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마 오늘이 가기 전에 죽을 겁니다.”
리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 여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죽었겠지만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르헨 공작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었고 이 세계인 연좌제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했으니까.
“전하!! 정탐선에 의하면 북쪽 방면에서 함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급히 리안에게 달려와 알리는 연락병.
“생각보다 더 빠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