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227
아앙르 항구의 총독이 왜 저러는지 알고서 리안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겨우 참아야 했다.
그의 집무실에는 온통 리안의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무슨 자기가 아이돌도 아니고.
“이게…….”
“우리 아앙르 항구의 구원자이시지 않습니까!! 총독 된 도리로 어찌 존경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왜 제가…….”
“진토닉! 그게 없었더라면…….”
총독이 갑자기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눈을 꾹꾹 찔렀다.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물론 지금도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닐 거다.
잉글슨의 국왕이 하도 벌여 놓은 짓들이 많아 돈이 모이는 족족 긁어 간단다.
‘이리 나오면 반품도 힘든데…….’
리안은 곁눈질로 창밖을 봤다.
노획한 칙 공작가의 거대 상선에서 흑인 노예들이 줄줄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배가 크다고는 하나 내리는 숫자가 무지막지했다.
그럴 것이 저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짝.
포박을 당한 채 짐칸에 눕힌 뒤 차곡차곡 쌓았다.
윗사람이 똥이나 오줌을 싸면 아랫사람에게 쏟아질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고. 이곳에서 출발해 신대륙에 도착하면 1/3이 죽을 정도.
“그보다 대단하십니다. 밀라노정의 상선으로 무장 상선으로 구성된 그것도 2급 전열함이 끼어 있는 칙 공작령을 이기다니요.”
“뭐. 운이 좋았습니다.”
“그보다 저 노예들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리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여기 맡겨 놓고 훈련을 시켜도 될까요?”
“네?! 저것들을 병사로 쓰신다고요?”
총독은 깜짝 놀랐다.
“조만간 사람을 보낼 테니 먹여 주고 재워 주세요. 그에 따른 비용도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것들은 말귀를 못 알아들을 텐데… 너무 멍청합니다.”
“문명의 혜택을 보지 못해서 그럴 겁니다.”
“정 뜻이 그러시다면…….”
이왕이면 노예를 잡아들이는 것을 못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리안의 권한이 없었다.
식민지는 왕국에서 직접 관장을 하기에.
* * *
배에서 실려 가던 노예들은 얼마 가지 않아 도로 돌아왔다.
어느 순간 번개가 치는 소리에 어찌나 놀랐던지.
“아아. 세마라미 님이시여!!”
노예들은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거기. 네가 믿는 신이 누구지?”
“나는. 위대하신 세마라미님을 믿습니다!!!”
배에서 내리고 나니 그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내용은 그들이 믿는 신.
“이름 말고!! 자세히 설명해!”
“참으로 무지하다. 세마라미 신께서는 코뿔소와 인간의 짝짓기를 관장하신다!”
“무슨… 개… 소리를…….”
조사관으로 나선 총독부 직원들은 기겁을 했다.
‘이놈들! 이교도가 아니랄까 봐.’
하지만 이미 리안에게 돈을 받아 일을 진행 중이었다.
총독이 워낙 리안을 물고 빨고 하니 이들도 대충 할 수는 없었다.
“하… 그러니까 에이브이 님을 믿는다는 거지?”
“네? 에이브이 님이요?!! 그분이 누구시죠?”
“너희가 말하는 사랑을 주관하시는 신이시지.”
“짝짓기는 세마라미님이…….”
답답하다는 듯 항의하는 노예.
“닥쳐!! 너희가 왜 핍박을 받는 줄 아느냐? 모시는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잘못된 교리로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술사님이… 알려 주신…….”
“그놈들은 악마다! 자. 여기 그림이 보이느냐.”
조사관들은 곧장 노예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했다.
사제들이 아니었기에 불가능했지만, 나중에 율 대륙에서 해당 사제들이 온다면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그들의 입맛에 맞춰 세뇌시킬 필요가 있었다.
“엇?! 저… 정말. 우리 마을 주술사님이…….”
“너희들은 그동안 속고 살았다. 너희가 지금 이런 취급을 받는 이유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만, 순진한 노예들을 설득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
“이기에 손바닥을 찍어라.”
“이게 뭔가요?”
“앞으로 올바르게 네가 모시는 신을 믿겠다는 다짐이다.”
“아이고.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들은 기겁을 하며 손바닥을 종이 위에 찍었다.
가끔 반항하는 자들도 있긴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소파스파 님은 기린과 같이 목이 긴 형상을 하신 분이다!!!”
부족이 다양한 만큼 믿는 신들도 다양했는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 보이는 자들도 꽤 되었다.
그런 자들은 리안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알아서 처리하세요.”
강제로 개종을 시키거나 교리를 바꾸는 것은 리안도 거부감이 들었지만, 최소한 이들이 이교도여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맡기고 갈 테니 부탁드리죠.”
“걱정 마십시오. 전하. 돈까지 지불하셨으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총독은 한편으로 기대도 하고 있었다.
노예로 큰돈을 벌려면 많이 팔아야 했다.
이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달랐으며. 외형도 완전히 딴 판이었다.
그저 노동력이 모자란 북신대륙에서 일이나 겨우 부려먹을 수준.
그런데, 이교도가 아님이 증명되고 교육이 가능하다면 더 비싼 값에 팔아먹을 수 있다.
사실 노예는 이곳 아앙르 항구뿐만 아니라 꽤 많은 항구에서 특산품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해지면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나도 따로 똘똘한 놈들은 빼서 교육을 시켜 봐야겠어.’
노예 사업이 시작된 것은 리안이 말라리아 약인 진토닉을 보급한 뒤.
역사가 깊지 않은 노예 시장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다.
‘역시 공왕 전하는 대단하신 분이다.’
* * *
리안은 총독에게 노예들을 맡기고 곧장 항구를 떠났다.
‘상선이 모자랐는데, 배를 건졌네.’
어쨌든 커다란 수송선을 얻게 되어 매우 기분이 좋았다.
동방으로 물자를 실어 날라야 했는데, 잘되었다.
“선장. 파수대에서 육지가 보인다는군.”
“다음부터는 운하를 이용해야겠네요.”
“확실히 돌아오니까 오래 걸리긴 했어.”
이동에 쓰인 시간만 거의 1년에 가까웠고. 중간중간 일을 보느라 반년 가까이 추가되었다.
“일단 이벨 왕국의 수도를 찍고 가죠.”
“아. 밀라노정 선단을 풀어놓긴 해야겠군.”
그렇게 리안은 이벨 왕국에 기항했고. 항구 관리인은 그들을 반겼다.
당연히 국왕도 그 소식을 듣고 항구까지 직접 행차했다.
“이렇게 무사히 다녀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
“전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그보다 대단하군. 저렇게나 귀한 것들을…….”
밀라노정이 짐을 하역하는 걸 보고 감탄을 터뜨렸다.
사실 밀라노 정은 중해에 거점을 두었지만, 가격 경쟁은 이곳 율 대륙 서쪽 끝에 있는 이곳이 더 좋았다.
그럴 것이 아무리 율 대륙과 오스 대제국의 관계가 좋지 않다 하더라도 뒷문으로 동방의 물건들이 들어왔기 때문.
“음?!”
그러다 배에서 끌려 내려오는 인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저… 저자는… 나페리카 칙 공작 아닌가?!!”
남부 신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도대체…….”
“대놓고 법을 어기는 것도 모자라 제가 이끄는 선단을 공격했습니다.”
“저자가 욕심이 많긴 한데 무슨 위법을 저질렀단 말인가?”
“아앙르 항구에서 노예를 샀습니다.”
국왕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아앙르 항구는 잉글슨의 땅 아닌가? 그보다 노예라니. 남신대륙에 남아도는 것이 노동력인데…….”
“북신대륙에 물건을 팔 예정으로 보였습니다. 남신대륙과 달리 북쪽에는 잡아서 부릴 노예도 많지 않으니까요.”
그제야 국왕도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그럼 저기 큰 상선들이.”
“네. 세금을 안 내려고 작정했었습니다. 나중에 정확한 금액을 내기 위해 미뤄 뒀다고는 변명했지만…….”
“쯧. 귀족들이 저 모양이니 돈이 줄줄 새어 나가지.”
비단 저런 짓을 하는 이는 칙 공작가뿐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 자네를 공격했다고? 해적이 되려 작정을 한 것인가? 아. 그렇다고 해적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네.”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자네는 내 사위인데. 감히!”
국왕이 어떻게 공작을 처리할까 눈알을 굴리는 사이 공작이 끌려 왔다.
“억울하옵니다. 전하.”
“도대체 뭐가 억울하다는 거지?!!”
이벨 국왕이 역정을 내자 리안이 슬쩍 작은 수정구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꽤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럴 것이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부터 전투가 끝날 때까지 내용이 들어 있다.
비단 고잉미샤호의 것들뿐만 아니라 상선들도 기록을 중시하기에 발뺌하기 힘들 터.
“이런 미친!!”
그러자 국왕은 진짜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수정구의 내용을 엿본 칙 공작도 증거가 많으니 발뺌을 하기 힘들어졌다.
“그대가 전하게. 해적질을 한 죄로 교수형에 목을 걸 것인가. 아니면 반역죄로 만인들 앞에서 목을 쳐 낼까?”
뭘 선택해도 죽음이었다. 다만.
“전하!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저를 처벌하시면 남신대륙의 귀족들이 불안해할 것입니다.”
칙 공작은 남신대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
남신대륙의 반발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끼리는 만나면 으르렁거리는데, 막상 외부의 일에는 하나같이 단결해 한 뜻을 냈다.
“마음대로 하라고 하게. 아니. 차라리 반기를 들었으면 좋겠군. 그렇다면 그대의 목 옆에 나란히 놓일 텐데.”
“그… 그게 무슨.”
“내 모를 줄 알았나? 기회가 되면 독립을 할 생각밖에 없는 네놈들의 생각을. 아니지… 이 참에…….”
칙 공작은 국왕이 자신을 살려 주지 않을 거란 생각을 엿보고는 침을 삼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레온 공왕.”
“네. 전하.”
“그대가 남신대륙의 반란 진압군을 맡아 줄 수 있겠는가?”
그냥 들었다면 왕이 개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가 어찌.”
“그대가 다스리는 공국이 잉글슨의 영향에 속함을 알고 있지만, 그대는 나의 사위이기도 하지 않는가. 만약 남신대륙에서 반역도당들을 잡고 나면 칙 공작가가 확보한 땅을 넘겨주겠네.”
리안은 머릿속으로 주판을 두들겼다.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는 장사이다.
특히나 칙 공작의 영지는 코파나 영지와 멀지 않았다.
“제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왕 전하.”
“아니네. 내 손으로 그대를 위해 한 놈을 직접 처단하는 것이 마땅하나 그럴 능력이 안 돼서 미안하네.”
그 말을 들은 칙 공작은 고함을 질렀다.
“저… 전하!! 살려…….”
“뭣들 하나. 어서 끌고 가지 않고!!”
그렇게 칙 공작의 애원 소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월척이네…….’
다만, 그들을 정리할 병력이 문제이긴 하지만, 상관이 없었다.
리안은 금방 그 병력들을 찍어 낼 수 있으니.
“어서 오시게나!!”
리안은 물건을 처리하는 즉시 브루타뉴 공국으로 떠났다.
도착하니 브루타뉴 공국의 공왕이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얼굴이 좋아지셨습니다. 전하.”
“그대는 많이 탔군.”
“바다에 오래 있었더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었네요.”
이제는 같은 공왕이지만, 얼굴색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얼굴색으로 보면 왕과 거지만큼이나.
“전하. 병력을 조금 빌리고 싶습니다.”
“자네가 이미 싹 쓸어가지 않았나.”
브루타뉴 공국의 공왕도 마음 같아서는 내어 주고 싶었지만, 이미 라인이 예전부터 대대적으로 모집해서 노르망 공작령에 투입하지 않았는가.
“마나 유저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참. 그대는…….”
그러고 보니 그냥 적당히 징집해 넘겨만 주면 되었다.
리안은 일반인도 쏠 수 있는 마총을 개발하고 열심히 쉬지 않고 찍어 내고 있었다.
일부는 다른 국가에 싼값에 팔려나가기까지 했다.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값을 많이 쳐 드릴 테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렇게 브루타뉴 공국의 왕은 전역에 공문을 뿌려 징집을 시작했다.
리안의 이름으로 끼워 넣으니 호응이 좋았다.
이미 이곳 브루타뉴 공국에선 리안의 이름이 흥행 수표로 취급이 되었다.
드르르륵!
공왕에게 징집을 부탁하고는 곧장 고잉미샤호를 타고 레온 백작령으로 향해다.
그곳까지 가는 길이 제법 잘 닦여 있었다.
안 본 사이 가도 만큼이나 영지 자체도 매우 발달한 것이 보였다.
“전하!!”
백작령의 수도로 가기 전 공업 단지가 보였다.
오기 전에는 터만 겨우 닦아 놓았는데, 이제는 공장들이 들어섰고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그곳에 들러 세기바라 남작을 먼저 만나 봤다.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와 보니 기대 이상이네요.”
“모두 전하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남작님의 수완이지요.”
못 보던 산업의 공장도 꽤 많이 들어서 있었다.
아마 세기바라 남작이 그들을 설득해 이곳으로 인도했으리라.
“그런데 여긴 직접 어쩐 일이십니까?”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리안은 계획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네?!! 어째서…….”
“판을 키울 필요가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