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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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로 병사들이 몰려나왔다.
나가사키 항은 외국과의 무역으로 부유한 곳이었고. 그만큼 무장이 잘 되어 있었다.
타다다다당!!!
그들은 마총으로 항구의 목책으로 다가온 여인들을 쏴 죽였다.
꺄아아아악!!
놀란 그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도망갈 곳은 바다밖에 없었다.
이곳 항구는 네르데르 상인들이 영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목책으로 둘러져 있으니.
“왜… 왜!!!이러세요!! 꺄아아악!”
배에서 내린 여인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도 여자라면 다 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죽은 여인들의 목을 잘랐다.
백성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들에게 병사들은 큰 소리로 경고했다.
“가족이 아닌 여자를 집안에 들였다가는 경을 칠 것이다!!!”
목책 너머에 있는 민가들에게도 엄포를 놓았다.
생명의 위협을 피해 도망간 여인들은 길바닥으로 내쫓겼다.
“목책으로 진입한다!!”
사무라이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 * *
그걸 지켜보던 리안 일행은 얼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목책의 입구로 한 남자가 걸어왔다.
“누가 이 선단의 주인이지?”
“무슨 일이지?”
“너희의 배를 수색해야겠다.”
“누구 마음대로?”
리안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물론 딱히 겁을 먹지는 않았다.
“영주님의 명령이다. 거절은 허락되지 않는다.”
사무라이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병력은 얼핏 잡아도 천 단위.
아주 작정하고 햄토리 한조를 잡을 요량인가 보다.
“풉!”
리안은 실소를 터뜨렸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고 있군.”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그쪽 같은데? 영주 따위가 일국의 왕인 나에게 거절을 허락하지 않겠다니.”
“와… 왕?! 무슨 개소리더냐.”
왕이란 말에 움찔했지만, 사무라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일국의 왕이 이렇게 상선을 타고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다.
“왕인 나를 모욕하다니. 전쟁이다. 함포 외교가 무엇인지 보여 주지.”
리안은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고잉미샤호에서 붉은 깃발이 올라갔다. 동시에.
퍼버버버벙!!!
대기 중이던 5척의 군함들에게서 마포가 뿜어져 나왔다.
네르데르의 상선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10문의 마포를 무장한 그들이었지만, 상선에 탑재 가능한 마포는 그다지 위력적이지 못하다.
잉글슨 함선이 내뿜고 있는 마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콰과과광!!!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목책들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목책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사무라이는 현실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꿈이 아닐까? 저렇게 강대한 위력의 마포라니.
“무… 무슨 짓이냐!!! 이러고도 계속 우리와 무역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더냐.”
“말했잖아. 내가 외교권을 휘두를 수 있는 왕이라고. 나는 지금 외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네놈이 주둥아리를 잘못 놀린 탓에.”
덜덜덜.
사무라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바로 뒤에는 백여 명의 부하들이 있었다.
목책을 너머 따라온 녀석들이다.
‘왕을 잡는다.’
불안에 떨다가 이내 마음을 먹은 듯 보였다.
“저놈을 잡아라!!!”
그렇게 말하고는 정령 갑옷을 입었다.
네르데르 상인들을 통해 유입된 것이다.
“가 경.”
“네. 주군.”
“저놈을 잡아 오세요.”
“알겠습니다.”
리안은 여유롭게 서서는 가순신만 보냈다.
1:100의 싸움.
누가 본다면 미친 짓이라 할 것이다.
부하의 목숨을 하루살이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펑!!!!
가순신이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바닷물이 적들을 덮쳤다.
신기하게도 리안 일행이 있는 곳은 바닷물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샤아아아아!!!
“으아아아악!!!”
달려오던 병사들이 파도에 휩쓸려 저 멀리 떠밀렸다.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정령 갑옷을 입었던 사무라이뿐.
어느새 1:1이 되어 버렸다.
“이럴 수가…….”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
가순신은 잠깐의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스으으으으!!!
단 한 걸음을 앞으로 내밀었을 뿐인데, 물기를 묻은 땅을 미끄러지듯 사무라이의 앞에 당도했다.
퍽!!!
그리고는 가벼운 주먹 한 방.
쨍그랑!!
사무라이를 감싸고 있던 갑옷이 산산 조각났다.
복구하기 위해서는 한참을 요양해야 할 것이다.
철퍼덕!
충격으로 사무라이가 무릎을 꿇었다.
가순신은 투구를 해제했다.
“어어엇!! 와까나베 사마!!!!”
파도로 인해 저 멀리까지 떠밀려갔던 병사들이 자리를 박차며 외쳤다.
그러다 한 병사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했다.
“조… 조선제일검!!! 가 순신…….”
전쟁에 참여한 적이 있던 그가 가순신을 알아본 것이다.
왜군들에게 가순신은 공포 그 자체였다.
정령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들과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고 목을 베어 버리는 괴물.
“도… 도망가!!!”
“저건 상대하지 못해.”
“하지만 와까나베 사마가…….”
“늦었어. 병신아!!”
병사들은 사기를 잃고 도주했다.
전쟁이 끝나고 몇몇 조선의 장수들의 일화가 일본 전역에 퍼진 상태.
가순신은 그중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
“거참. 충성스러운 병사들을 뒀네.”
가순신은 축 늘어진 사무라이의 상투를 잡아끌고는 리안의 앞에 처박았다.
“주군. 명에 따라 이놈을 잡아 왔나이다.”
“수고했어요.”
역시 소드마스터는 소드마스터.
너무도 손쉽게 적장을 잡아 왔다.
리안은 쪼그려 앉았다.
멍한 표정을 짓는 사무라이.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네 혀로 인한 결과를 보기 전에 정신을 잃으면 곤란하지.”
리안의 옆으로 한 여인이 다가왔다.
곁에 있던 공왕이 흠칫하며 길을 터줬다.
“케어해 주세요. 인어 아가씨.”
“네. 왕이시여.”
모든 인어는 바다의 사제.
그녀가 기운을 퍼뜨리자 사무라이는 정신을 차렸다.
“이노오오옴!!!”
퍽!!
그런 그의 등을 밟아 단숨에 제압하는 가순신.
이내 그는 몸이 꽁꽁 묶여 포박당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안내해 주세요.”
“으아아악! 이거 놔라!! 놓으란 말이다.”
사무라이는 발악했지만, 리안은 그를 뱃머리에 묶어 버렸다.
* * *
거친 폭음 소리에 영주는 화들짝 놀라 바닥에 엎드렸다.
그를 수행하던 부하들은 영주를 내려다볼 수 없어 함께 엎드렸다.
“으아아아. 이게 무슨 일이더냐!!”
간이 작아진 영주는 몸을 덜덜 떨었다.
“주군!!! 그곳에 있던 병사가 왔습니다!”
“이리로. 이리로. 데려와라.”
병사는 영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찌 된 일이더냐.”
“적들이 함포를 쐈습니다. 영주님…….”
병사는 덜덜 떨며 보고했다.
영주도 떨고 병사도 떨었다.
“가순신. 가순신이…….”
“갑자기 가순신은 웬 말이더냐!!”
조선과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자가 주인을 바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충성을 하는 자가 왕이라고…….”
뭔가 머리가 복잡해지는 영주.
“와까나베는!! 뭘 했단 말이더냐.”
“그게 와까나베 님이 도발을… 해서…….”
그냥 계집 하나만 잡아 오면 될 걸 일을 크게 만든 와까나베.
사실 앞뒤 사정 보지 않고 명령을 내린 것이 영주 자신이지 않던가.
그그그그극!!!
그때 밖에서 땅 긁는 소리가 들렸다.
뭔 일인가 싶어 급히 밖으로 뛰쳐나간 영주.
겁이 났지만, 그도 사무라이.
“어어어…! 배가… 배가 육지를 날다니…….”
모두 입을 쩍 벌렸다.
웬 철갑선 하나가 공중에 떠서는 영주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 압력으로 땅이 파이고 있었다.
그 뒤로는 무장한 병력들이 따랐다.
“주구우우운!!!”
그런데, 철갑선의 뱃머리에 한 남자가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
“와까나베?! 저… 저놈이!!! 수치스럽지도 않단 말이더냐. 혀라도 깨물고 죽을 것이지.”
분통을 터뜨리는 영주.
그런데 철갑선이 영주성에 다가오더니 천천히 옆으로 돌렸다.
“흐… 흐익!!!”
영주는 적들이 뭘 할지 예상했다.
방금 전에 났던 그 거대한 소리.
퍼버버버벙!!
고잉미샤호의 함포가 불을 뿜었다.
견고하게 쌓은 성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주… 주군!! 피하십시오!”
“두… 두고 보자!!”
영주는 분노를 터뜨렸지만, 막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륙으로 물러난 다음 병력을 이끌고 다시 이곳을 수복할 생각이었다.
“어서! 영주님을 모셔라!”
부하들이 급히 영주를 데리고 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구름이라도 지나간 걸까?
말을 타고 도망가던 영주에게 그림자가 잠시 지나가더니.
스아아아악!!!
영주의 머리 부분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주… 주군!!!”
부하들이 에워쌌지만, 이미 늦었다.
툭!!
바닥에 쓰러진 영주의 몸 위에는 붙어 있어야 할 머리가 사라진 뒤였다.
* * *
고잉미샤호는 영주성을 손쉽게 접수했다.
소소한 전투가 있었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적들은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와아아아!!!
쉽게 이기든 어렵게 이기든 승리는 승리.
병사들은 의기양양하게 성벽에 올라 함성을 질렀다.
“주인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림자에서 소녀가 튀어 올랐다.
모두가 놀랐지만, 가순신과 세이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곳 영주의 목을 바칩니다.”
“항구에 매달아 놔. 모두가 볼 수 있게.”
그렇게 영주의 머리가 항구에 매달렸다.
백성들의 반응은 아주 나쁘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인이 바뀌는 것은 익숙한 일.
어차피 자기들과 다른 세상의 일인 것이다.
“그보다… 이곳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공작이 리안에게 말했다.
“땅을 지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죠.”
“설마…….”
* * *
리안은 함대를 이끌고 지팡구의 거대한 섬인 규슈 지역의 해안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항구가 보이는 족족 포격을 가했다.
“도…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그들은 항의를 했다.
“나가사키의 영주가 우리를 먼저 공격했다.”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다니며 열심히 두들겨줬다.
그사이 고잉미샤호는 완전히 내륙으로 들어갔다.
이내 규슈 대영주의 성에 당도했다.
거대한 배가 땅 위를 가르니 감히 막는 이는 없었다.
“주군. 정체불명의 요괴선이 곧 이곳에 당도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나가사키의 영주 놈은 뭔 짓을 했기에 저들이 저리 난리이란 말이더냐!”
해안 도시들은 해안 도시대로 난리가 난 상태.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해서 보고가 들어오는 중이다.
“그것이… 소문으로는 먼저 병력을 풀어서 공격을 했다고 하는데…….”
“그놈이 미친 거 아니더냐. 남만인들과 교역을 하게 해줬으면 제대로 할 것이지!!”
효율을 위해 항구 하나만 개방해 놓은 상태.
그런데, 그 항구의 영주가 사고를 쳐도 제대로 친 것이다.
“대책은?!”
“지금 병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일단 피하십시오. 주군.”
“흥!! 아무리 철갑선이라 해도 만 명의 군사를 막지는 못할 거다. 감히 내 땅에서 소란을 일으킨 죄를 물을 것이다.”
* * *
고잉미샤호는 시원하게 전진했다.
“선장. 정말 괜찮겠어? 너무 안으로 들어왔는데…….”
항법사가 불안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것은 당연한 걱정이다.
율 대륙에서 이렇게 대놓고 움직인다면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더군다나 오면서 몇몇 마을이나 도시를 지나쳐 왔고 그것들의 규모로 추정해 봤을 때 인구가 적은 편이 아니다.
나가사키 항구에 동원되었던 병력만 봤을 때도 결코 적은 병력이 아니었다.
“우리가 도착하면 대충 만 명은 모였으려나.”
규슈 지역이라면 더 많은 병력도 동원할 수 있겠지만, 고잉미샤호보다 더 빨리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규슈 대영주의 주변 영지들에서 부랴부랴 병력을 끌어다 쓸 것이다.
“마… 만 명이면!!”
다들 놀란 눈치.
아무리 부유선이 떠다니는 요새라 할지라도 만 명을 상대할 수 없다.
리안이 자신만만한 이유를 몰랐다.
두그그그!!
고잉미샤호는 제대로 된 저항을 받지 않고 무사히 규슈의 대영주성에 도착했다.
도시는 생각보다도 더 컸다.
이상하게도 성벽에조차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둥~! 둥~! 둥~!
어느 순간 사방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1만이나 달하는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잉미샤호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까지 들어 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가라! 나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여.”
와아아아아!!!
1만의 병력이 사다리나 밧줄 따위를 들고서 고잉미샤호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그들의 생각은 단순했다.
움직이든 말든 함락하면 그만이라고.
1만이면 충분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