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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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 선장을 유심히 지켜보던 리안은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력이 우세하다고는 하지만, 이곳에서 마석의 가격은 매우 비쌌다.
동방에서 가장 마석을 많이 생산하는 곳은 즁 대륙이었고 그다음은 조선국이었다.
마지막으로 지팡구는 마석을 가공하는 데 쓰이는 재료를 모두 수입에 의존했다.
지금 눈앞의 드레 해적이 저렇게 여인을 짐짝처럼 싣고 가는 것은 마석을 판 돈이다.
저들은 저 여인을 동남아로 데려가 사창가에 팔아 향신료를 살 것이다.
그 향신료를 가지고 율 대륙으로 가져가면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된다.
“뭐. 나도 해적 출신이니 인정을 베풀어 주지.”
딱히 해적질을 하진 않았으니 조금 억울할 법도 하지만, 불법을 자행한 해적들을 부하로 두고 있으니 그 죄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 해적이라 말한다면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달까. 다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해적이 해적을 털어먹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니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다 내놓고 꺼져라.”
그 말에 드레 선장은 눈을 끔뻑거렸다.
“내 말 못 들었냐? 다 내놓고 꺼지래도. 그 목숨도 거둬 가기 전에.”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악명 높은 드레 해적은 모든 화물을 리안에게 넘겼다.
당연히 짐짝으로 취급되던 여인들도 넘겨받았다.
“쯧.”
마음 같아선 배도 빼앗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불법적인 해적질을 했다는 것도 딱히 증명할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핵심전력인 잉글슨 입장에선 이벨 왕국의 상선을 털어먹은 것은 칭찬한 일.
“나중에 다른 말을 하면… 어쩌시려고.”
해리 공작이 리안에게 다가와 말했다.
잉글슨의 입장이지만, 리안의 편이기도 했다.
“뭐. 네르데르와 전쟁밖에 더 나겠습니까? 흐흐.”
리안의 말에 해리 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리안은 지금 율 대륙에서 가장 핫한 인물.
잉글슨의 연방국이지만, 외교권은 독립되어 있다.
네르데르에서의 항의? 꿈도 못 꾼다.
더군다나 이곳으로 왔던 300척의 배 중에는 네르데르 소속의 배도 있었다.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리안을 옹호할 것이다.
동방으로 오는 안전한 뱃길의 관문인 만가 섬과 코파나 영지 모두 리안의 소유였기에 척을 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어차피 국제 정치는 힘의 논리죠.”
명분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한 나라가 여러 나라를 동시에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방이 필요하고. 그래서 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레온 공국은 이 정도 억지를 부릴 만한 힘이 있었다.
“제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공왕 전하께 힘을 실어 드리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잉글슨의 다음 왕은 해리 78,900세로 세울까?’
리안은 아낌없이 주는 해리 78,900세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왕비는 인어 아가씨가 좋겠네.’
리안이 생글생글 웃자 해리 78,900세는 뭔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이만 가죠. 공작님의 후계를 위해 얻어야 할 게 생겼으니.”
“갑자기 제 후계는 왜…….”
“대 잉글슨의 미래를 위해 왕실의 번영이 중요하니까 해 본 소리입니다. 아직 자식이 없으시다고.”
해리 78,900세는 어릴 때 혼인을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부인을 잃었다.
그 후 몇 년간 재혼을 하지 않다가 부인을 다시 얻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스랑 제국의 귀족이었다.
스랑 제국과 잉글슨의 관계가 험악해지자 부인은 본국으로 돌아가 버리며 이혼당했다.
그 부인의 귀족 가문은 해리 78,900세의 가문을 이용하려 했는데, 두 나라가 악화되자 이용 가치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사랑이라 믿고 있던 해리 78,900세는 그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지만, 의사들이 이제 자식을 가지기 힘들다고…….”
방탕하게 놀던 그 시절 성병에 걸렸는데, 그게 잘못되어 불임이 되었다.
물론 이제 나름 그 방탕하던 버릇을 어느 정도 고쳤지만.
“그래서 쓰나요. 이곳 동방에 불타는 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봄의 여신 에오스 님의 신화에 나오는…….”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해리 78,900세의 눈에 희망의 피어올랐다.
“자식을 얻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찾아보도록 노력하지요. 일단. 지팡구로 가시죠.”
리안이 이끄는 선단은 즉시 지팡구의 동쪽에 있는 커다란 섬 규슈의 나가사끼 항구로 향했다.
가는 도중 여인들은 자신들이 풀려나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뻐했다.
“저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소녀가 부탁했다.
“저를 고용해 주십시오.”
그 소식을 들은 리안은 그녀를 불러들였다.
리안이 여인들을 풀어 주는 이유는 쓸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곽에 팔아버려도 되지만, 이미 나가사키의 유곽들은 포화 상태였기에 싼값에 네르데르 상인들에게 팔려 나가는 것이다.
“뭘 할 수 있지?”
뱃일을 시키려 해도 선원은 전문직이다.
힘을 쓰는 잡일을 시키려 해도 가녀린 소녀는 감당하지 못할 터.
“저는 마지막 한조 일족으로 암살에 능합니다.”
그러고 보니 얼굴 생김새가 낯이 익었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입가의 점 그리고 회색 눈동자.
이곳 동방의 사람들은 대부분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지녔다.
그렇기에 회색 눈동자를 가진 이들을 귀안이라 불렀다.
-귀신에 들린 것이지.
선천적이 아니라 백내장에 걸린 사람들도 오해를 받아 배척당하기도 했다.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도 했고.
“혹시… 이름이.”
“햄토리입니다.”
그녀의 말에 리안은.
‘유레카!’
S급 암살자 획득.
그녀는 이곳 영주를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스스로 몸을 팔아 네르데르의 배를 탔다.
그러다 동남아의 사창가에 팔렸다가 탈출해 율 대륙으로 넘어간다.
이후 어쌔신으로 활약을 하게 된다.
“어째서 돌아가지 않으려는 거지?”
리안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 물었다.
나가사키의 영주를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그로 인해 그녀의 일족은 몰살당한다.
경쟁 영주가 마지막 수단으로 암살자를 보낸 것이었고 그 경쟁 영주는 나가사키 영주에게 패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힘들었다.
백안을 가진 이는 지팡구란 섬에서 배척을 당하니.
다른 암살촌을 찾아가 정착도 못 한다.
그들은 첩자일까 봐 더더욱 배척을 하니.
“영주를 암살하려다 실패했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리 뛰어난 암살자는 아닌가 보구나.”
“그… 그것이…….”
“되었다. 거짓을 고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사실 그녀는 암살에 실패하지 않았다.
영주가 쌍둥이일 줄 누가 알았단 말이던가.
나가사키 영주는 불길하게 여겨지는 일란성 쌍둥이.
그걸 모두에게 속이고 둘이 함께 영지를 통치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
‘지금쯤 눈이 돌아서 이 아이를 찾으려 하겠네.’
형제이자 연인을 잃은 영주는 큰 현상금을 걸었다.
자신의 영지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영주들에게도 협조 공문을 보냈다.
-요즘에도 닌자 같은 불순한 것들이 존재하다니.
무사도를 숭배하는 지팡구의 영주들은 닌자를 아주 극혐했다.
물론 그러면서는 뒤로 암살자를 키웠다.
어쨌든 협조적일 가능성이 높다.
나가사키 영주에게 그녀를 넘겨주면 막대한 보상과 친밀도를 높일 수 있을 테니.
나가사키 항은 네르데르 상인들이 들리는 몇 안 되는 항구였다.
“그보다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끝을 봐야지.”
“무슨 말씀이시온지.”
“임무를 성공하지 못했으니 반 푼이지 않느냐.”
닌자들은 임무를 떠나기 전 금제를 받는다.
금제의 종류만 해도 열 가지는 된다.
그녀가 훗날 율 대륙에 가서 암살자로 이름을 떨치지만, 그녀는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
잡혀서 죽은 것이 아니라 수명이 다 된 것이다.
명성이 높은 암살자라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걸 금제 푸는 데 모두 사용했다.
그랬음에도 모든 금제를 풀지 못했다.
“어찌 저희 풍습에 대해 아시는지.”
“그게 중요한 것이더냐? 나는 얼마 쓰지도 못하고 망가질 장난감에는 관심이 없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아마 안전한 나라로 가게 되면 또 도망을 갈 생각일 테지.
목적지는 당연히 율 대륙.
그녀는 네르데르의 상인들에게 금제를 풀 만한 실마리를 얻었을 것이다.
“제 실력으로는…….”
영주의 경호가 몇 배는 더 강화되었다.
이 금제 때문에 영주도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형제이자 연인을 잃어 분노하는 것도 있지만, 닌자들은 금제를 풀기 위해 임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금제를 풀어 줄 수 있는 계약서는 적 영주가 죽으며 함께 사라졌다.
이제 닌자는 자신을 죽이는 것만이 금제를 풀 유일한 방법이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일족 중 마지막 생존자라 죽을 수 없사옵니다.”
사실 금제가 아니더라도 닌자들은 최선을 다해 임무에 임한다.
닌자들은 대부분 백안이라 어딜 가도 배척받는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의 일족끼리 똘똘 뭉치며 유대감이 매우 강했다.
그런 일족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를 허락해 준 영주에게 쓸모가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것도 금제가 걸렸을 텐데?”
금제를 건 영주도 바보가 아니다.
가장 먼저 금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생식 능력이다.
그래야 볼모로 잡혀있는 일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 아닌가.
어쩌면 가장 강하게 걸려 있는 금제일지도 모른다.
햄토리 한조는 율 대륙에서도 이 금제를 마지막까지 풀지 못했다.
“이거나 받아라.”
“이게 무엇이옵니까?!”
작은 나무 상자 안에 든 물건.
“그걸 먹는다면 한 단계 나아가게 될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주인이시여.”
그녀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래. 율 대륙이란 곳에 간다고 해도 금제를 풀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아.’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왕이면 정상적으로 금제를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고.
“세이나 누님.”
“말씀하십시오. 전하.”
“그녀를 탱글 신도로 받아 주세요.”
“탱글 님께서도 그녀를 반길 것입니다.”
탱글은 전쟁의 신이면서 암살을 지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제나 신자가 암살을 하면 약간의 축복과 함께 그가 거둔 생명을 받아 갔다.
‘세이나보단 햄토리지.’
원래는 세이나에게 그림자 정령 갑옷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더한 적합자가 나타난 것이다.
* * *
그곳은 종종 네르데르의 상선들이 들락거렸기에 커다란 배를 봐도 놀라는 일이 적었다.
촤아아악!!!
항구에 당도하자 항구 관리인이 급히 마중을 나왔다.
무려 16척이나 되는 선단.
상인들이 다녀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규모의 상단이 또 들어오다니.
주머니가 두둑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든 항구 관리인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환영합니다. 네르데르인들이여?!”
그런데, 배에서 여인들이 우르르 내리는 것이 아닌가.
우르르르!!
행색을 보아하니 분명 이 항구에서 팔려 나간 여인들이었다.
항구의 인력으로 그 많은 여인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
딱히 상관은 없긴 했다.
항구는 목책으로 둘러져 있어 어차피 빠져나가는 곳은 한 곳뿐이다.
“어엇?! 돌아온 건가?? 처음 보는 배 같은데…….”
다른 선단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다녀갔던 그 네르데르 배들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 여인들이 내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니.
“그보다 노예들은 왜…….”
리안은 여인들을 그냥 풀어 주었다.
비싼 돈을 주고 사 간 것을 왜…….
“설마!!! 환불을… 그런데 저렇게 막무가내로 풀어 주면 환불을 할 수가…….”
항구관리인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목책 때문에 여인들이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것.
일단 그녀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지시했다. 그리고 급히 영주성으로 사람을 보냈다.
철커덩.
그러다 특이하게 생긴 배에서 사람이 내렸다.
철로 된 배가 바다를 다닐 수 있는 걸까? 그야말로 떠다니는 철옹성이지 않은가.
아마도 저 배에서 내리는 자가 이 선단의 주인일 가능성이 높다.
* * *
나가사키 영주는 지나가는 낙엽에도 몸을 움츠렸다.
“으이이익!!”
그렇게 놀라는 자신을 보고 또 분통이 터졌다.
자신의 형제이자 연인을 뺏어 간 녀석에게 두려움까지 느껴야 한다니.
“도대체!!! 그년은 언제 잡는단 말이더냐!!”
“죄송합니다. 주군!!!”
그의 말에 부하들이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도 답답했다.
닌자도 사람인데, 밥을 먹어야 하니 민가에 내려올 텐데 작은 마을까지도 현상금 수배서를 뿌렸는데도 신고가 없었다.
“혹시. 네르데르 상선을 타고 나간 것은 아닐까요?”
“음… 그 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화근이 자진해 영지를 나갔다면 반길 일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금제 때문에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으니.
더더욱이 그녀의 일족이 모두 몰살당했으니 피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금제를 풀기 위해 그녀는 돌아올 것이다.
“주군!!! 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네르데르의 배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음?!”
“그리고… 여인들을 모두 풀어 줬다고…….”
“잡아라!! 당장 잡아다. 아니다. 그년들을 눈에 보이는 족족히 죽이고. 네르데르의 배들을 수색하라.”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