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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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의 말에 국왕과 신하들이 입을 벌렸다.
국정이 삐걱거리고 있기는 하나 지금 국왕은 백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전쟁 영웅이기 때문.
문제는 내치와 정치가 엉망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점점 폭군이 되어 나중에는 반정이 일어나게 된다.
“궁궐은 나라의 상징이지 않습니까. 전쟁으로 인해 불탄 궁궐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궁궐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오.”
궁궐병 증상이 벌써부터 있었다니.
나중에는 거의 모든 국정을 신하들에게 던져 놓고 궁궐을 짓는 데만 몰두한다.
‘어떻게든 정상화시켜 놔야 한다.’
여기를 동방의 베이스 캠프로 삼을 것인데, 엉망이 되면 안 되지.
지금 이 나라의 북방에는 이민족들이 준동했다.
세력을 규합해 곧 즁 대륙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그 전에 이곳 조선국을 쳐서 후방의 안정을 도모할 것이다.
“백성들이 전쟁의 여파로 굶주리고 있고. 북방도 심상치 않다고 들었소.”
“그렇기에 더더욱 왕실의 위엄을…….”
리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 병은 어찌 못 고칠 것 같다.
아마도 머지않아 반정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역사보다 훨씬 더 빨리.
소드마스터 가순신도 없으니 말이다.
‘그냥 내가 접수해 버려?’
이 게임은 역사를 참조했지만, 많은 것이 달랐다.
아마도 지금 국왕의 모티브가 광해군.
다만 실제로는 광해는 15년간 즉위한 것과 달리 이 세계에서는 국정을 더 개판으로 운영하고 빠르게 망가진다.
‘다음 왕도 만만치 않으니.’
리안은 조선국을 접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려면… 뭐… 기다려야겠네.
* * *
대략 한 달.
리안이 조선땅에서 배를 박박 긁으며 지낸 시간이다.
수도인 한양이 아닌 부산포.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한 채 구해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샤아악! 샤아아악!!
밖에서는 가순신이 무예를 연마하는 소리로 요란했다.
소드마스터가 되었음에도 그의 수련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웅성웅성.
고용인들이 야단법석이다.
리안은 밖으로 나갔다.
“대감 마님. 왜구입니다요. 왜구가 또…….”
리안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백 척의 배들을 보았다.
백성들은 난리가 났지만, 미리 왕에게 말을 해 놓았다.
자신의 백성들이 상행을 위해 배를 타고 올 테니 놀라지 마라고.
-수… 수백 척이라니!
-무장한 배는 바다에 머물 것이니 걱정 마시오. 무역을 허락해 주겠소?
국왕과 신하들은 그걸로 한참이나 토론했다.
몇 년 전까지 바다 건너 왜국과 전쟁을 벌인 그들.
물려 7년이나 말이다.
당연히 리안에게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 척의 배? 조선국에게 그것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다.
-설마 용왕의 사신으로 온 자가 그럴 리가.
-예로부터 용왕님은 조선을 수호하는…….
-한양을 개방하면 혼란스러울 테니. 부산포를…….
-어차피 왜관도 거기 있으니…….
그렇게해서 교역을 허락받았다.
부산포 관아에서도 이 사실을 통보받았고.
“다들 소란 떨지 말라.”
가순신은 고용인들을 안정시키고 리안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일단 몸을 피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정도의 규모라면 부산포는 금방 함락될 것입니다.”
검을 진 그의 손이 부들거렸다.
왜구를 두고 도망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분하겠지.
리안이 없었더라면 한 놈이라도 베기 위해 해안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저들에게 쌓인 것이 많으니.
“아. 내가 말을 안 했었네요. 저들은 왜구가 아니라 상인들입니다.”
“배 모양이 왜구의 것과 조금 달라 보이긴 합니다만…….”
그제야 얼굴의 근육이 조금 풀리는 가순신.
“마중을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모시겠습니다. 주군.”
가순신이 앞장서 관아로 갔다. 역시나.
후두두두두!
관아는 갑자기 나타난 수백 척의 배를 보고 혼란스러웠다.
급히 군사들을 모으는 것이겠지.
조정에서 많은 상선이 올 것이라 언질을 받았겠지만,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는 알 수 없다.
대비는 해야지 않겠는가.
“어서 오십시오. 전하!”
리안이 관아에 도착하자 부산포를 책임지는 관리가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신발도 신지 않고 마루를 내려왔다.
마음이 급박했던 모양.
“너무 호들갑 떨 것 없어요. 보급을 하고 저들은 멀리 갈 테니.”
리안은 자신이 고용한 상단인 밀라노정 소속의 배를 제외하고 조선국과 교역을 시킬 생각이 없었다.
‘여긴 내가 독점해야지.’
특히 홍삼의 경우는 밀라노정 소속의 상단에게도 주지 않을 거다.
이 세계의 홍삼은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
거기에 만가와 함께 복용하면, 마나 유저가 마법사로 각성할 수 있게 된다.
이건 돈으로 살 수 없는 전략 무기.
“그럼 부… 부탁드리겠습니다.”
관리는 리안을 앞장세워 포구로 나갔다.
백성들은 모두 불안에 떨었다.
병사들이 안심을 시키고 있었지만, 왜국과 전쟁이 끝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구르르륵!! 쿵.
몇 척의 배들이 포구에 정박했다.
당연히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은 고잉미샤호.
“처… 철갑선이라니!! 어찌 철로 된 배가 바다에 뜰 수…….”
옆을 수행하던 가순신의 눈이 커졌다.
조선국도 거북선을 운영했으나 철갑선은 아니었다.
당연히 가 순신 외에도 많은 이들이 고잉미샤호를 보고 놀라워했다.
“아따. 배들이 허벌나게 크구만.”
그다음으로 크기에 놀랐다.
조선국에서 운용하는 군함보다 최소 세 배나 크니.
심한 것은 다섯 배는 커 보였다.
끼리릭. 쿵.
배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와 피부는 다양했으니 거기에 사람들은 또다시 놀랐다.
“전하. 도대체 언제…….”
배를 대기 전부터 포구에 리안이 있으니 놀랐다.
참고로 고잉미샤호는 신대륙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리안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었다.
철저하게 뱃길만 안내했다.
“내가 바람 속성이라 날아왔죠. 이땅에 미리 언질을 해 놔야 놀라지 않죠.”
“하긴. 수백 척이면 우리 율 대륙에서도 놀랄 만한 규모죠.”
대충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관리와 연결을 시켜 줬다.
이곳에서 무역을 할 수 있는 배는 고잉미샤호와 밀라노정 소속의 10척으로 한정 지었다.
그리고 나머지 배들은 보급만 할 수 있게 조치했다.
다들 아쉬워했지만, 향신료와 차 그리고 도자기와 비단의 고향인 동방에 오게 된 것만으로도 다들 감격했다.
어차피 교역은 즁 대륙에서 하면 된다 생각했다.
절그럭!
리안의 말대로 보급을 마친 배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뭉쳐서 온 것과 달리 각자의 무리대로 떨어져 나간다.
이미 대략적으로 표기된 지도를 줬기에 알아서들 할 것이다.
“공왕 전하. 우리 잉글슨은 지팡구로 가면 되는 것입니까?”
해리 78,900세가 리안에게 물었다.
쪼르르르.
그런 그에게 리안은 고잉미샤호로 데려와 차를 직접 따라 주었다.
향긋한 향기가 바닷바람을 타고 솔솔 불었다.
“함께 가시죠.”
잉글슨에서는 군함을 다섯 척이나 끌고 왔다.
크기도 크기거니와 뛰어난 마포 성능 덕에 동방에서는 거의 무적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함께 가 주시는 겁니까?”
“네. 저도 볼일이 생겨 버려서요.”
* * *
네르데르의 상선들이 지팡구라 불리는 나라의 항구를 떠났다.
배에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신기하게도 배에 많은 여인들이 짐짝처럼 실려 있었다.
일부 선원은 그 짐짝 중 하나를 꺼내 와 노리개로 썼다.
“으아아악! 뭐야. 왜 잉글슨의 배가!!”
“뭔 일야?!!”
파수대에서 소란을 피우자 다들 궁금해했다.
“서… 선단입니다!! 잉글슨과 베넷 조합의…….”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베넷 조합은 하브스 가문이 다스리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조합이다.
하브스 가문은 신센롬 제국과 이벨 왕국의 군주.
당연히 잉글슨과 사이가 매우 나빴다.
그런데, 지금 그 둘이 함께 항해를 했다.
“아니. 그놈들이 여긴 어떻게 와!!”
잉글슨은 인디아 제국에 한눈이 팔려 있었고. 베넷 조합은 중해를 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그나마 이벨 왕국의 도움으로 남신대륙에나 겨우 들락거리는 수준.
“베넷 조합의 소속은 어딘가?”
선장이 나서서 물었다.
“그것이… 밀라노정입니다!!”
“밀라노정이라… 잠깐. 거긴…….”
순간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레… 레온!!”
네르데르가 판매하던 마초 잎의 지분을 반강제로 빼앗아 간 인물.
리안은 직접 유통하지 않고 밀라노정에게 일임했었다.
다시 말해 밀라노정은 리안과 밀접한 사이라는 것.
“젠장!!! 혹시. 철갑선은 보이지 않나?!”
“잘… 안 보… 있… 있습니다.”
“혹시. 문장이 짐승의 앞발인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선장은 이마를 짚었다.
본국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다.
마지막으로 율 대륙을 떠났을 때 상황을 떠올렸다.
로이센 왕국과 신센롬 제국이 한참 전쟁을 벌였다.
네르데르는 로이센에 협조했고. 잉글슨도 로이센에 전쟁 자금을 대 줬다.
이걸 풀이하면 네르데르와 잉글슨은 간접적인 동맹.
끼리릭! 끼리리릭!
일단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 *
네르데르 상선의 배 한 척에서 하얀 깃발이 올리며 따로 떨어져 나왔다.
저건 항복이 아니라 대화를 하자는 것.
“우리도 가자.”
리안이 이끄는 선단도 자리에서 멈추고 고잉미샤호만 흰 깃발을 올린 다음 접근했다.
“반갑습니다. 레온 후작 합하!! 이런 머나먼 바다에서 합하를 뵙게 되다니 영광이옵니다.”
“아. 나 이제 후작이 아니라네.”
리안은 네르데르의 선장을 보며 웃었다.
“헙!!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 없지. 내가 후작이든 공왕이든 상관이 없을 테니.”
“그… 그게 무슨 말이옵니까!”
리안은 싸늘하게 웃었다.
반대로 네르데르 선장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드레. 자네 명성이 꽤 대단하더군.”
“어떻게 제 이름을… 영광입니다.”
“영광이라 할 것도 없지. 섬 두 개를 작살 냈더군.”
“그걸 어떻게…….”
드레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곳 지팡구까지 오며 보급을 위해 몇몇 섬을 약탈하긴 했다.
조금 도가 지나치긴 했지만, 이교도들이니 상관없지 않은가.
“어떻게 이교도라 단정 지을 수 있지? 포교를 시도해 보았는가? 그들이 믿는 신과 우리가 믿는 신이 다르던가? 혹여 이름만 다른 것은 아니었고?”
“그… 그들은 분명… 이교들이었습니다.”
드레는 급히 변명을 했다.
어차피 섬의 주민을 몰살시켰기에 증거도…….
“닥쳐라! 내 그들과 이미 친분이 있었거늘.”
리안의 말을 증명하기에도 증거가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
“아니… 닙니다. 전하.”
드레는 눈이 핑글핑글 돌았다.
어쩌면 리안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곳에 오며 친분이 있는 섬에 들렀는데, 그들이 몰살을 당해 분노하는 중이라면?
‘그보다 내가 그런 건 어떻게 알았지? 설마 생존자가 있나?’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해적질도 제법 했더군.”
“당치 않습니다. 해적질이라니요!! 저희는 합법적으로… 이벨 왕국의…….”
드레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항해를 하던 도중 이벨 왕국의 상선을 발견했는데, 겨우 두 척뿐이기에 공격했다.
당연히 증거 인멸을 위해 상선의 선원들을 몰살시켰고.
“사략 허가증은 가지고 있는가?”
“여… 여기 있사옵니다.”
급히 증서를 가지고 온 드레 선장.
“날짜가 지났잖아!!! 그대가 이벨 왕국의 상선을 공격한 것은 여기 허가증에 적힌 기한보다 이틀이 지난 날이야.”
“그걸 어찌… 헙!!”
드레 선장이 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어찌 알긴. 네가 네 입으로 말했으니까 알지.’
리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불법 해적은 어떤 형벌을 내리더라…….”
“고… 공왕 전하도 해적… 헙!!”
모면하기 위해 저도 모르게 리안도 해적 출신임을 떠벌렸다.
해적섬의 해적들 대부분이 불법 해적질을 하는 이들.
리안은 그 해적 섬에 들락거렸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호~ 그래서?”
“그게… 아니오라. 실언을 했습니다.”
드레 선장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리안의 명성은 뱃사람들 사이에 꽤 알려졌다.
그가 율 대륙을 떠나는 시점에서도 말이다.
‘이길 수 없어…….’
싸운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전력 차이가 심했다.
바다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잉글슨 군함을 다섯 척이나 끌고 왔다.
거기다 밀라노정 상선이 열 척.
상선이라 해서 전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규정에 따라 10문 이하의 마포를 탑재할 수 있게 국제적으로 합의가 된 상태다.
‘아아… 신이시여.’
드레 선장은 이제 와 신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