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217
서해에 도착하자 병력들이 매복을 시작했다.
이무기를 어떻게 끌어낸다는 것인지 다들 의문만 가득했다.
“전하. 위험하옵니다. 궁에서 소식을 기다리시는 것이…….”
매복지와 멀리 떨어진 봉우리.
그곳에 임금은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행차했다.
신하들은 당연히 말렸다.
“그대들은 내가 누구인지 잊었더냐.”
“저… 전하!!”
펄럭!
왕은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옷을 까 자신의 맨피부를 드러냈다.
몸 곳곳에는 상처들이 보인다.
그걸 하나씩 가리킨다.
“이것은 평양성에서 한 방! 이건 이치 전투에서! 이건 한양 수복을 할 때 또 한 방.”
“망극하옵니다. 전하!!”
신하들은 왕의 앞에 모두 조아렸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에 직접 참여한 자들이 없었다.
내가 전쟁에서 직접 싸울 때 너네는 뭐 했냐? 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가순신이 패배한다면 국가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이무기와 싸울 것이다.”
그는 산봉우리에서 바다를 내려보았다.
파라라락!
그런데, 용왕의 사자라던 공왕이 갑자기 하늘로 날아올랐다.
매복을 하던 병사들은 물론 왕도 놀랐고 신하들도 놀랐다.
“저… 제게 무엇인가?”
“마치. 호랑나비 같사옵니다.”
* * *
리안은 인어의 신호를 받고 바다로 날아갔다.
인어들의 왕이 된 리안은 먼 거리에서도 그들과 교감이 가능했다.
물론 정확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지만, 몇 가지를 사전에 짜 놓으면 그게 의사소통이지 않겠는가.
파라라라락!!!
리안은 빠르게 비행을 해 인어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에욧! 여기~~”
인어 세 마리(?)가 수면 위에서 리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리안은 즉시 그녀들이 있는 곳에 입수했다.
“꼼짝도 하지 않아요.”
“잠이 든 것 같아요.”
“소리를 질러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해요.”
소화를 시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력을 흡수한다고 해야 하나.
이무기의 진짜 먹이는 공녀 50명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인 주술이었다.
국가의 왕이 직접 전달한 50명은 그냥 50명이 아니었다.
“어이. 뱀.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여기 있는데?”
리안이 품에서 조선왕에게 받은 보옥을 꺼냈다.
거기에 살짝 마나를 불어 넣으니.
번뜩.
심해에 가라앉아 잠을 청하던 이무기의 눈을 떴다.
누런 홍채에 길게 검은색으로 그어진 눈동자.
리안을 주시했다.
“그건…….”
“이게 있다면 빨리 용이 될 수 있지.”
이 세계에 용은 단 두 마리만 남은 상태다.
오늘내일하는 고룡 한 마리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부화 직전인 한 마리.
지룡은 용을 멸종을 막기 위해 리안에게 협조했지만, 용은 사실 멸종하지 않는다.
가끔 선택받은 개체가 오랜 시간 수련을 하면 용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수련이 쉽지 않았다.
또한 눈앞의 이무기처럼 삿된 방법으로 수련을 하면 블랙 드래곤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블랙 드래곤은 용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다.
다만, 용이 되고 싶은 입장에서야 블랙 드래곤이면 어떠랴.
이 지옥같이 길고 힘든 수련을 끝내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한 상태다.
“어쩌면 날개를 개화할지도 몰라.”
“크르르르르.”
리안의 말에 이무기는 흥분하여 입에서 물거품이 빠져나왔다.
의지가 아닌 심해 속에서 육성을 낸 것이다.
“날개. 기대되지 않나?”
이무기의 최종 진화 상태인 날개.
워낙 작아서 비행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승천을 할 때 저 날개는 꼭 필요했다.
번외로 이 동방에선 용을 표현할 때 날개를 그리지 않았는데, 고대 시절 이 근방에 살던 용은 두 종류였다.
청룡과 황룡.
그 두 개체는 몸 전체를 보지 않으면 뱀처럼 긴 형태며, 날개도 작아 접고 있으면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율 대륙과 달리 이곳 용들은 뱀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넌 누구지?”
“인어들 아빤데.”
그 말에 이무기의 눈이 번뜩였다.
이무기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획득한다.
성장함에 따라 경험이 아닌 자연스럽게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음… 그런데, 너 왜 이렇게 몸이 검냐.”
“그 보옥을 내게 넘기면 말해 주지.”
“타락했구나. 인육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을 하네.”
리안이 물속임에도 코앞에서 손을 훠이훠이 젖는 시늉을 했다.
“기회를 줬음에도 걷어차는구나. 보옥은 물론이거니와 너도 함께 삼켜 주마!”
이무기가 잎을 가로로 길게 찢으며 리안에게 달려든다.
“어이쿠~ 이곳은 강이 아니라 바다라고.”
리안은 급히 옆으로 회피했다.
“이 뱀 새끼가 어디서!!”
“죽어라. 징그러운 놈아.”
“이 조개껍질이나 받아라!!!”
동시에 세 마리의 인어들이 이무기를 향해 공격했다.
이무기의 피부가 갈라지며 바닷속에 피가 퍼졌다.
“이놈!! 거기 섰거라.”
그러거나 말거나 이무기는 리안을 쫓았다.
이런 자질한 상처 따위는 보옥의 가치에 비하면 자잘했다.
거기다 인어 왕을 섭취한다면 자신의 격은 한 층 더 성장하리라.
샤아아아~
이무기의 피 냄새를 맡고 주변의 상어들이 왔다가.
샤아아아~
그 존재가 이무기임을 알고 곧장 도망가 버렸다.
용이 없는 이 시대에 이무기는 실로 바다의 왕이었다.
“와… 씨…!! 개빠르네.”
리안은 그런 이무기에게서 열심히 도주했다.
아직 어린 이무기라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10년에 가까운 전쟁을 펼치는 동안 이 반도에는 너무도 많은 원기가 쌓였던 것.
보통의 이무기라면 정화를 하며 조금씩 받아들였겠지만, 저 이무기는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그걸로도 모자라 국왕과 딜을 해서 소화를 돕는 주술적 행위까지 주기적으로 받아 왔다.
악룡이 되기 위한 풀코스를 밟은 것이다.
샤아아아아~!
녀석은 거대한 덩치를 유려하게 흔들거리며 리안을 추격해 왔다.
점점 거리가 좁혀져 왔다.
하늘로 솟아올라 도주할까 생각했지만.
‘아직.’
가순신과 군사들이 매복한 장소는 아직 멀었다.
결국 리안은 날개를 펼쳐 바다 위를 저공으로 날았다.
이무기도 수면으로 바싹 붙어 헤엄쳤다.
‘더럽게 무섭네.’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자 시커먼 것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퍽이나 징그러웠다.
그 와중에 이무기의 누런 눈이 리안을 주시했다.
샤샤샤샤!!
이제 거의 코앞까지 쫓아온 이무기.
인어들이 녀석의 몸에 달라붙어 공격해 봤지만 막무가내였다.
평소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작은 상처에도 물러나는 모습을 종종 보여 왔던 이무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처가 벌어져 피가 철철 흐르는 와중에도 리안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했다.
첨벙!!!
결국 리안은 따라잡혀 버렸고. 이무기는 저공비행을 하는 리안을 삼키기 위해 수면 위를 박차고 올랐다.
-스… 승천?!!
지켜보던 자들은 그 모습에 경악을 했다.
다만, 리안도 바보는 아니라 녀석이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고도를 높였다.
동시에.
반짝반짝!
보옥을 저 먼바다를 향해 던졌다.
그러자 바다에 숨어 있던 한 마리의 용이 입을 쩍 벌려 그것을 삼켰다.
쿠르르르릉!
그 순간 지진이 난 것처럼 사방이 진동을 했다.
쾅!!!
바다도 솟구쳐 오른다.
하늘을 날아오르던 이무기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아래를 바라봤다.
자신의 아래에서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있던 곳의 바닥이 융기해 육지가 되어 버렸다.
쿵!!!
솟아오르던 이무기는 어느 순간 바닥에 꼬꾸라졌다.
리안은 아슬아슬하게 이무기를 피할 수 있었다.
‘저게 있으면 상선들도 위험하지.’
위험했지만, 미리 제거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게임에서도 저걸 해치우는 데 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방법으로 해치운다면 싸게 먹히는 것이다.
“이노오오옴!! 이무기이이이!!!”
그때 사방에서 병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무기는 순간 아차 싶었다.
물이 아닌 곳에서는 자신의 진짜 힘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이무기는 저마다 선호하는 장소에서 수련을 하는데, 이 녀석은 그것이 물속이었다.
“좋은 말 할 때 물러나라. 그때처럼 몰살당하고 싶은 게로구나.”
이무기는 표정을 감추며 허세를 부렸다.
“흥! 어디 그때처럼 잘 싸우나 보자.”
가순신은 콧방귀를 꼈다.
이날만을 기다리며 이를 갈고 수련을 했다.
거의 매일같이 그때의 악몽을 꾸었다.
죽어가는 부하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쏴라!!”
숨겨둔 마포들이 불을 뿜었다.
퍼버버벅!!!
미리 화망을 구축해 놓았기에 대부분의 마포들이 명중했다!
끼리리릭!!!
이무기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바다로 도주하려 했다.
“돌겨어억!!!”
투트트트트!!
가순신은 수군통제사였지만, 원래는 육군 지휘관이었다.
그는 직접 오토호스를 타고 기병들과 함께 이무기를 향해 돌진했다.
샤사사삭!!
기병들은 오토호스 위에서 무기를 내질렀다.
이무기는 몸부림치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바다를 향해 달렸다.
지금까지의 기고만장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내가 어떻게 수련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상처는 점점 늘어갔고. 검붉은 피들이 땅을 적셨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걸까? 저 먼 곳에 넘실거리는 바다가 보였다.
‘살 수 있다.’
모든 공격을 받아 내며 처절하게 바다로 몸을 던졌다.
‘이제 살았구나’라는 안도감.
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함을 주었다. 그런데.
첨벙!
눈엣가시 같던 가순신도 함께 바다로 뛰어 들어왔다.
보그르르르.
이무기는 소름 돋는 미소를 지었고. 공기 방울이 생성되었다.
인간의 정점이라 불리는 마스터가 되었지만, 아직 육지에서도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가순신.
나중에 골치 아프기 전에 지금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꼴이 이 모양이지만 충분해.’
이무기는 가순신을 향해 몸을 틀며 입을 쩍 벌린 채 빠르게 접근했다.
가순신은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꿀꺽.
입속에 들어가는 순간 따끔거림이 느껴졌다.
끼리리리~?!
조금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그 통증이 심해지더니.
펑!
옆구리가 터지며 무언가 빠져나왔다.
그 고통이 어찌나 심했는지 순간적으로 몸이 까뒤집어졌다.
“물은 이제 네놈에게만 이점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가순신은 이상한 형태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이무기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도주하려 했으나.
부그르르르~~!!!
갑옷을 입은 가순신의 가공할 만한 속도는 어느새 이무기의 앞질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펑!! 펑!! 펑!!!
가순신은 검이 아니라 주먹으로 이무기를 두들겨 팼다.
그동안 입은 피해가 너무도 누적되어 저항하기 힘들었다.
펑!! 펑!!! 펑!!!
그렇게 얼마나 두들겨 맞았을까.
이무기의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절그럭!
몸에 쇠사슬이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그 쇠사슬에 이끌려 뭍으로 끌려 올라갔다.
저항을 하려 하면 그때마다 가순신은 이무기의 몸을 두들겨 팼다.
끼리리릭~!
혹시나 몰라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어도 보고 눈물도 흘려보았지만, 모두의 시선은 냉담했다.
“전하! 불충한 신. 마지막 선물을 바치나이다.”
가순신은 산봉우리를 향해 절을 올렸다.
그걸 본 왕도 눈물을 훔쳤다.
“사… 살려… 다… 오. 네가… 왕이 될… 수 있게... 도와.. 주겠다.”
…
이무기는 가순신을 향해 부탁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더러운 소리를 내뱉는구나.”
스각!!
가순신은 장검을 빼내어 그대로 이무기의 목을 쳐 버렸다.
단 일 검에 이무기의 목이 뚝 하고 잘렸다.
몇 년간 조선국의 바다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던 이무기가 죽었다.
샤아아아아! 두두두둑!
하늘에서 검은색 비가 떨어졌다.
죽으며 녀석에게 붙잡혀 있던 원혼들이 해방되었다.
다만, 비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작은 빛을 내며 반딧불처럼 하늘위로 올라갔다.
어찌보면 이무기가 그들을 흡수하며 정화도 시켜 준 꼴.
이 조선땅은 최소 몇 년가 풍년이 가시질 않을 것이다.
“저… 전하. 비를 피하십시오.”
신하들은 즉시 왕을 챙겼다.
그때 비를 맞으며 왕에게 다가오는 인물이 있었다.
“이들을 외면하지 마시오. 국왕.”
앳된 외모를 한 리안이었다.
“죽어 간 이들을 잊지 마시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바다의 공왕.”
조선왕은 조심스럽게 리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리안도 그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투두두두둑!
비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내렸다.
빗속에는 옅게나마 원혼들의 아픔과 추억들 그리고 소망이 담겨 있었다.
왕이 비를 맞으니 신하들도 비를 맞았다.
모두의 얼굴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계속 흘러내렸다.
어느 순간 비가 그치고.
“아. 궁궐 공사는 제발 그쯤 하시죠.”
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