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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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의 호통에 다들 어리둥절하며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죄인은 어서 무릎을 꿇으라.”
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한 나라의 왕임에도 단상 아래로 내려가 무릎을 꿇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누가 봐도 진짜 용왕이 온 것이라 생각이 드니.
“이 몸이 죄인이긴 하오나. 무슨 연유로 저를 핍박하시나이까. 바다의 수호자이신 용왕이시여. 저 검은 이무기가 우리 조선국의 바다를 헤집고 다니는 것은…….”
“그것이 너희 왕조의 죄다.”
리안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말했다.
그 말에 왕은 억울하게 다시 물었다.
“도대체 우리 조선국의 왕실이 무슨 잘못을 했나이까.”
“용왕의 보석을 너희 조선인이 훔쳐갔기에 용왕께서 힘을 잃으셨다.”
무슨 쌩뚱맞는 소리인 걸까.
그때 바다에 고개만 내밀고 있던 용이 말했다.
“나의 충성스러운 신하여. 너에게 맡기겠다. 짐은 휴식이 필요하다.”
라고 말하고는 다시 바다 아래로 인어들과 함께 부글부글 사라졌다.
용왕이 사라지자 왕과함께 무릎을 꿇었던 모든 이들도 어벙벙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이제 홀로 남은 리안에게로 향했다.
“크흠. 옥새의 장식에 달린 보옥을 받아 가야겠소. 국왕.”
“음? 그것은…….”
그것은 조선 국새 이전, 그러니까 전대 왕조에서 사용하던 보옥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 땅의 왕국 잘못이 아니란 말이 된다.
“나라를 세울 때 용왕께서 도움을 주셨소. 그 약속으로 보옥을 돌려받기로 했었는데.”
“그 보옥만 돌려 드리면 용왕께서 힘을…….”
사실 그 보옥은 그냥 귀한 장신구일 뿐 옥새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냥 줘 버려도 상관이 없다.
아니. 그걸 줘서 재상이나 다름없는 이무기를 처리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지경.
“잠깐일 뿐이오. 용왕께서는 그대들이 모르는 사이 이무기와 사투를 벌였지만, 보옥을 돌려받지 못해 결국 상처를 입고 요양 중이라오.”
“아아…….”
“너무 절망하지 마시오. 국왕. 잠시나마 그대들에게 힘을 빌려드릴 테니. 다만.”
“다만?”
리안의 말에 희망을 품는 국왕.
“그대들도 함께 싸워야 할 것이오.”
“정령. 용왕님과 우리가 함께 싸운다면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네도 소드마스터 있잖아.’
조선국 바다에 있는 이무기는 예전 아즈 제국 수도에 있던 이무기와 비교했을 때 어린 정도가 아니라 갓난아이에 불과하다.
소드마스터 정도라면 이런 어린 이무기는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 단.
‘바다만 아니면 되잖아.’
리안이 말했다.
“조선국 최고의 장수를 불러오시오.”
“최고의 장수라면…….”
그때 신하 한 명이 나섰다.
“신이 생각하옵기를. 지금은 가덕도에 유배 중인 전 전라 좌수사 가순신이 조선 최고의 장수가 아니온가 생각되옵니다.”
“음? 그자는…….”
이미 이무기와 싸움에서 패했다.
그때 수십 척의 군선과 천 명에 가까운 병사를 잃은 죄로 몇 년째 귀양살이 중이다.
‘짭순신에게 갑옷도 하나 줘야겠네.’
짭순신.
유저들 사이에 불리는 이름.
실제 이순신 장군과 달리 이 나라의 전쟁 때는 관직에 있지 않고 의병을 이끌었다.
주로 해안가에서 싸웠고. 적들의 배를 빼앗아 나중에는 함대를 만들어 대적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 공을 인정받아 장군이 된다.
‘유일하게 샤로트와 바다에서 비빌 수 있는 인물이긴 하지.’
전쟁 당시에는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
그는 강력한 무사이기도 하지만, 지략형 장수였다.
바다에선 거의 무적에 가까웠는데, 왜국의 소드마스터도 바다에선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대충 이를 갈며 소드마스터가 되었겠네.’
그는 여전히 이무기를 상상하며 귀양지에서 수련을 하는 중이다.
이무기도 가끔 그의 귀양지를 살피며 도발을 하기도 했고.
어쩌면 이무기가 가장 죽이고 싶어 하는 인간일 수도 있다.
그의 육체에 유일하게 상처를 입힌 인물이기도 했으니.
“그렇다면 그 무사를 용왕께 바치시오.”
왕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대신들이 그를 시기하여 귀양에 보내기는 했지만, 그는 이 땅에 몇 안 되는 충신이었다.
“일단 불러오긴 하겠습니다.”
리안은 조선국의 수도로 왕과 함께 갔다.
상투 위에 갓을 쓴 자들이 많이 보인다.
건물 양식도 실제 조선의 것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다만, 가끔 보이는 민초들의 삶은 꽤 고달파 보였다.
‘내가 애국자는 아니지만, 좀 도와줘야겠네.’
이 나라는 상업을 천시했다.
이것은 실제 조선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귀한 손님이 오셨다. 풍악을 울려라~”
궁전에 도착하자 용왕의 신하인 리안을 위해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이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간만에 입맛에 맞는 것을 찾았다.
아삭아삭.
리안은 정신없이 하얀 밥 위에 김치를 올려 씹어 먹었다.
다른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아삭아삭.
리안의 모습을 보며 국왕은 당혹스러웠다.
“김… 치가 입맛에 맞으신가 보오.”
주르르르.
리안은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귀한 궁중 요리들이 깔려 있었기에 김치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서!! 김치를 더 내어 오너라.”
왕의 명령에 김치가 상위로 올려졌다.
“왜놈들이 남기고 간 고추라는 것을 원래 김치에 뿌리니 보존력이…….”
리안의 귀에는 당연히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그 고추라는 것이 신대륙을 통해 전해지긴 했다.
왜국은 조선과 달리 율 대륙과 아주 약간의 교류는 하는 중이었다.
그 나라가 바로 네르데르 공국.
리안에게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그 나라다.
“후하…….”
“매우시면 이것을…….”
국왕은 리안에게 식혜도 건네줬다.
어쨌든 간만에 한국 음식을 먹으니 매워서 고통스러웠지만, 마음만은 충만했다.
그 신대륙에서 난 고추를 음식에 뿌려 먹은 적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젓갈을 구하지 못해 그동안 김치를 먹지 못하고 있었다.
“참으로 고맙소이다. 국왕.”
“아닙니다. 용왕님의 사신께서 흡족해하시니 참으로 기쁩니다.”
그렇게 리안은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고. 며칠이 지나자.
“신 가순신 전하의 부름을 받고 단번에 달려왔나이다!!”
허름한 하얀 옷을 입고 찾아온 남자.
‘오!! SR+. 원본이 너무 뛰어나면 짝퉁도 SR+가 되는 건가.’
리안은 그를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워낙 인상파라 일러스트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죄인.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전하와 이 나라에 입힌 천금 같은 죄를 갚을 수 있을까 고심 또 고심했나이다.”
“그대의 마음은 짐도 알고 있다.”
“그러하오시면 단 한 번만. 단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시옵소서. 이번엔 이 죄인이 홀로 가겠나이다. 목슴을 불태워서라도…….”
그때 국왕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리안이 나섰다.
“음?!”
리안이 다가오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감히 국왕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단 말인가.
상국의 사신인 걸까? 아무리 높은 자가 온다 한들 왕의 옆자리에 앉히지는 않는다.
연회 자리도 아니고 이곳은 국정을 다스리는 대전이지 않은가.
“목숨을 그리 함부로 쓰시면 되나.”
“뉘신지…….”
리안은 양피지 하나를 쫙 펼쳤다.
“용왕과 계약을 맺은 사람입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드래곤 하나는 왕으로 치니. 지룡도 왕이라면 왕이다.
계약을 맺은 것도 사실.
주먹이라 읽고. 계약이라 쓰는 걸 맺은 사이다.
“그렇다면…!!! 용왕님의…….”
“사신입니다.”
그 말에 가순신의 눈이 이글거렸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직감했다.
“이 죄인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입니까?”
“이 양피지에 이름을 기입하면 기회를 드리지요.”
양피지에는 알아듣기 힘든 글들이 적혀 있었다.
“대충 나에게 충성을 한다면 이무기를 이기게 해 주겠다는 계약입니다.”
“장수는 두 명의 주군을 모시지 않소이다!!”
가순신은 호통을 치며 주변에 기립해 있는 대신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다만, 모든 신하들이 그의 눈을 피했다.
그들도 지금 이 방법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일 년에 겨우 50명의 처녀.
많다면 많은 숫자라지만, 이 나라의 인구에 비하면 모래알 같은 숫자.
다만, 이 행위 자체가 왕실과 조정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짓.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이것은 언젠가 작은 불씨가 되어 백성들의 분노를 터뜨릴 기폭제가 될지도 모른다.
“전하!!!”
리순신은 눈물을 흘리며 국왕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나와 이 땅의 백성들에게 죄를 지었다고 했는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러면 거기에 이름을 적게나. 이 못난 임금을 원망하게나.”
국왕은 차마 가순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대전을 나가 버렸다.
그러자 내관이 그의 옆에 붓과 벼루를 내어 준다.
리안은 계약 성립을 위해 자세한 내용을 더 설명해 주었다.
“그대가 이무기를 무찌르는 순간부터. 그대의 주군은 나 레온 공왕이 되는 것이오. 이 계약은 전쟁의 신 탱글께서 보증할 것이오. 어기는 순간 죽어서 100년간 신들의 전쟁터에서 노예병으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오오오…….
신하들이 순간 감탄을 터뜨렸다.
사실 아무리 용왕의 사신이라 할지라도 왕의 옆에 앉아서 말을 함부로 내뱉는 리안이 못마땅하긴 했다.
그런데, 리안이 밝히길 스스로 공왕이라 했다.
어느 정도는 급이 맞아떨어지니 고깝던 눈빛들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저자는 멸망한 원제국과도 관련이 있는 자인가?’
그중에 예리한 자는 전쟁의 신이란 말에 집중했다.
원나라는 과거 이곳 동방의 땅에서부터 율 대륙까지 영향을 미치던 막강한 대제국이었다.
“인간계의 충성을 위해 계약을 위반하여 감히 신의 이름을 욕보이지 말라.”
가순신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기에 못박아 두었다.
전쟁이 두려울 리가 없기에 지조를 지키기 위해 계약을 어길 수도 있다.
“여기 조선국 국왕의 이름이 보일 것이다.”
“전하!!! 어찌하여… 결단코 신을 용서하지 마시옵소서…….”
가순신은 눈물을 흘리며 붓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양피지에 담았다.
이 계약에는 국왕의 영혼도 담보로 잡혀 버린 것이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대가 내 신하로 있는 한 이 땅에 최대한 도움을 줄 테니.”
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순신에게 큐브를 건넸다.
“이… 이것은 무엇이옵니까.”
“본 적이 있을 텐데요.”
리안이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큐브였다.
왜국의 군세가 대단했긴 하지만, 조선국을 궁지까지 몰아넣을 수 있었던 물건이기도 했다.
“아!!! 그런데 이건 어인 연유로…….”
분명 본 적이 있었다.
죽은 왜국의 장수를 불태우면 가끔 나오는 보석.
“그대가 본 것은 망가진 물건입니다. 더 상상해 보세요. 이게 무엇인지.”
취급해 본 적이 없으니 죽은 자에게서 큐브를 채취하는 법도 몰랐을 것이다.
“설마…….”
“애를 먹었던 그 갑옷들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지요.”
그 말에 가순신의 눈이 불타올랐다.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라도 이무기를 상대하는 것은 불안했던 탓이다.
그런데, 신의 갑옷이라 불리는 것까지 입게 된다면.
‘승산이 있다. 이무기 놈!’
참고로 소드마스터가 단독으로 이무기를 해치우려면 정령 갑옷은 필수다.
맨몸으로는 그다지 승률이 높지 않을 거다.
거기다가 물에서 싸운다면 승산은 더더욱 없어진다.
“준비하세요. 곧 그 뱀 대가리를 따러 갈 테니.”
“계약을 떠나 이 죄인에게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비즈니스죠.”
솔직히 리안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쪽 바다를 지킬 만한 제독이 필요했다.
코파나 영지를 틀어쥐고 있지만, 이쪽으로 열강들이 진출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거기다 단기적으로는 골치 아픈 것들이 남쪽 바다에 있지 않은가.
‘해적들이 있으면 마진이 좋지 않지.’
리안은 조선국과 수교를 한 뒤 상선을 열심히 굴릴 생각이다.
이미 이것도 왕과 계약을 맺은 상태다.
둥~ 둥~ 둥~
며칠 뒤 이무기와 싸울 병력들도 차출이 되어 서해 바다로 향했다.
무거운 마포들이 소들에 의해 옮겨지고 있었다.
정령 갑옷은 없지만, 마포는 발달한 나라가 조선국이었다.
다만, 마포들의 성능이 율 대륙의 것들보다 뛰어나진 못했다.
“배는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이무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걱정 마세요. 나에게는 다 계획이 있으니.”